2019년 여름, 베스트엔트에 부는 변화의 바람

2019. 6. 4. 00:00#HaHo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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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에서는 해리 케인과 손흥민 선수(이상 토트넘 홋스퍼 FC)의 경력 첫 번째, 반대쪽에서는 위르겐 클로프(리버풀 FC 감독)의 해외에서 첫 번째, "주요 대회 우승" 도전으로 만인의 시선이 집중됐던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경기가 이른 시간에 터진 무함마드 살라흐의 페널티킥 골과 후반 막판에 더해진 디보크 오리기의 골을 엮은 리버풀 FC의 2 대 0 승리로 끝났습니다. UEFA가 주관하는 최고 권위의 클럽 대항전이 막을 내리며, 이제, 여러 국가에서, 유럽 축구계의 해는 2019-20 시즌으로 넘어갑니다. 너도나도 지난날의 아쉬움은 뒤로하고, 좋았던 기억은 간직하며, 약간의 불안감과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부대에 새로운 술을 담을 준비에 나섭니다. 올여름은 베스트엔트, 베를린의 노파에도 '격변의 계절'입니다. 지난달, 헤르타 BSC 유니폼을 입고 십이 년을 근속한 파비안 루스텐베르거가 정든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 그를 사랑해 마지않는 관중들에 작별 인사하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계약 만료 후, 루스티는 BSC 영 보이즈 선수가 됩니다. 헤르타 BSC 19세 이하 팀 소속으로 그 연령대, 전국 최고 대회를 제패하는 데 일조하는 등, 내부에서 작지 않은 기대를 받았으나, 중요한 시기에 발목이 부러져 수술받고, 결국, 분데스리가에서 자주 기회를 잡지 못한 약관의 율리우스 카데(1. FC 우니온 베를린으로 이적을 확정했습니다)도 도시 동쪽으로 이사를 앞두고 동쪽 응원석 앞에 섰으며, 무엇보다, '감독으로서도' 클럽의 '전설'이 된 남자, 팔 다다이가 그를 보좌해 온 라이너 비트마이어, 아드미르 함자기치 등과 거기 있었습니다. 헤르타 BSC 지휘봉을 잡고 치른 172번째 경기(65승 42무 65패), 65번째 패배(바이어 04 레버쿠젠에 1 대 5로 졌습니다). 감독으로서 자기 평점은 "3점"이라고 말한 다다이를 슈프레아테너 응원석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가수, 프랑크 찬더는 <Nur nach Hause> 가사 첫 마디에 그의 이름을 집어넣고 부르며 배웅했습니다. 이 여름, 독일연방공화국 수도, 서편에 부는 변혁기의 바람은 바로 이 "지극히 감성적인 안녕"부터 '어제의 추억'으로 날려 보냅니다.

 

 

 팔 다다이와 함께한 지난 1,579일(오늘까지)은 분명, 헤르타 BSC, 구단 역사의 한 장을 장식했습니다. 사 년 전 겨울, 2014-15 시즌, 열아홉째 경기까지 분데스리가 17위에 그친 팀을 맡아, 다다이는 최종 15위로 인도, 어렵지만, 잔류를 견인했고, 이어진 네 번의 계절은 (차례대로) 분데스리가 7위, 6위, 10위, 그리고 11위로 마쳤습니다. 특히, 그가 준비 과정부터 지도한 처음 두 번의 시즌에는 UEFA 주관의 클럽 대항전에 도전할 자격을 갖추기도 했습니다. 2016년 여름에는 UEFA 유로파 리그 예선 3라운드에 덴마크의 강호, 브뢴뷔 IF를 만나, 1·2차전 합계, 2 대 3으로 석패하고 고배를 마셨지만, 독일 프로축구 최상위 대회에서 순위표상 위치를 한 단계 끌어올린 이듬해에는 당당히 UEFA 유로파 리그 본선에 직행, 아틀레틱 클루브, FC 조랴 루한시크, 외스테슌츠 FK 등과 한 조에서 겨뤘습니다. 헤르타 BSC가 유럽 무대에 진출하기는 아드리안 라모스(현 그라나다 CF 소속 공격수)와 하파에우(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소속 공격수), 시세루(현 보타포구 FR 소속 미드필더) 등이 공격에서 끌고, 우카시 피슈쳬크(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소속 수비수)와 아르네 프리드리히, 스티브 폰베르겐(최근, 자기 선수 경력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등이 수비에서 받치던 2009-10 시즌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디터 회네스, 전 헤르타 BSC 상임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미하엘 프레츠, 현 헤르타 BSC 운동 부서 전무이사에게로 권력이 넘어간 이 시기, 자기 선수 경력의 황혼기를 보내던 다다이(그는 2012년에야 축구화를 벗었습니다)(훗날 자기와 같은 날, 다른 위치에서 베를린을 '잠시' 떠나는) 파비안 루스텐베르거 등과 중원에서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2009년 여름에 본격화한 프레츠의 시대("Die Ära Preetz"), 다다이 이전까지 분데스리가에서 최고 성적은 요스 뤼휘카이 전 감독(현 FC 장크트 파울리 감독)이 이끌던 2013-14 시즌, 11위였고, 사령탑에 앉았다가 떠나간 이의 숫자는 아홉을 헤아렸습니다. 올여름, 다다이는 슈프레아테너의 감독직에서 내려오며, "프레츠 등 운영진으로부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가 낸 성적에 불평할 수 없었기 때문일 터입니다. 오히려, 그와 작별이 너무 아쉬운 나머지, 발표가 날 당시, 직전 다섯 경기에 내리 패하고, 분데스리가 순위표에서 위치가 (그가 부임하고 가장 나쁜) 열한 번째까지 떨어졌는데도 (감독과 결별을 선택한) 프레츠 전무이사 등 운영진에 대한 베를린 축구광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정도였습니다. 다다이는 앞으로도 헤르타 BSC와 '종신 계약'에 묶이지만, 그의 '분데스리가 선수단 감독으로서 계약'은 만료되는 '이' 시점이 프레츠 전무이사는 '더 큰 꿈'을 위해, 새로운 현장 지도부를 꾸릴 적기라고 판단했습니다. "여름에 헤르타 BSC에 새로운 추진력을 불어넣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니, 막상 결정은 빠르게 내려졌는데, 프레츠와 다다이가 두 차례, 대화를 하고 나서, 발표문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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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5일 아침, 팔 다다이와 '여름 작별'을 공식 발표한 뒤로, 한동안, 베스트엔트에서 누가 그의 뒤를 이을지에 관한 추측이 여러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왔습니다. 과거, 독일 국가대표팀을 지휘했던 위르겐 클린스만, 위르겐 클로프의 친구이자, 허더즈필드 AFC를 이끌고 프리미어 리그에 도전했던 다비트 바그너(바그너는 대신, 올여름, FC 샬케 04 사령탑에 앉습니다), 어느덧 이 년째 베이징 궈안에서 활동하는 로거 슈미트, FC 포르투와 첼시 FC, 토트넘 홋스퍼 FC, FC 제니트 등을 거치며 유명세를 쌓은 안드레 빌라스보아시(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 손을 잡습니다), 각자 홀슈타인 킬과 SSV 얀 레겐스부르크에서 지도력을 선보인 팀 발터(VfB 슈투트가르트로 이직이 결정됐습니다)와 아힘 바이어로처(1. FC 쾰른에서 새 도전을 시작합니다) 등이 대표적입니다. 미하엘 프레츠 전무이사와 운영진은 정기적으로 UEFA 주관의 클럽 대항전에 나서는 분데스리가 최고 클럽들을 따라잡고자 하는 대담한 꿈을 꾸고, 그 프로젝트에 걸맞은 감독을 원했습니다. 여러 후보의 장단점을 고루 파악한 뒤, 어언 한 달 만인 5월 12일에 공표한 '최종 선택'은 놀랍게도 또 한 번의 "내부 해결책"이었습니다. 근 오 년 조금 넘게 헤르타 BSC II를 감독해 온 안테 초비치가 (그와 비슷한 길을 걸은) 다다이의 후임이 됩니다. 내년 여름까지 임기에 우선, 합의했다지만, 그의 전임자가 그랬듯, 초비치도 헤르타 BSC와 '종신 계약'을 체결해, 어느 시점엔가 분데스리가 선수단의 감독으로서 역할이 다하면, 유소년 아카데미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프레츠 전무이사는 초비치 신임 감독을 "우리와 함께 프로 비즈니스에 발을 들인, 차세대 헤르타 BSC의 주자"라고 소개하며, 그가 그 어떤 후보보다 "헤르타 BSC의 정체성"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그를 골랐다고 말했습니다. 크로아티아 청소년 대표를 지냈지만, 베를린에서 태어난 초비치는 선수 시절, 두 번, 베를린 노파의 일원으로 활동(1996년부터 2000년까지; 2003년부터 축구화를 벗기까지)했으며, 2010년부터 클럽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지도자로 생활했습니다. 그가 가르친 이름 중에는 시난 쿠르트(현 WSG 스바로프스키 티롤 소속 공격수), 막시밀리안 미텔슈테트, 조던 토루나리가, 팔코 다다이, 데니스 야스트쳄프스키, 플로리안 바크, 율리우스 카데 등이 있습니다. 미하엘 스키베가 떠난 2012년 2월, 레네 트레초크와 초비치가 분데스리가에서 한 경기를 담당한 바 있으며, 뒤이어 부임한 오토 레하겔 전 감독을 보좌해,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 승강 플레이오프에도 나섰으나, 2. 분데스리가로 강등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초비치는 지난 2015년 2월, 다다이가 헤르타 BSC 감독으로 계약할 당시에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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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 안테 초비치는 미르코 디크하우트, 전 SpVgg 그로이터 퓌르트 수석코치와 지난 2007-08 시즌부터 2009-10 시즌 초반까지 헤르타 BSC에서 뤼시앵 파브르 전 감독(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을 보좌했던 하랄트 겜퍼레(이상 두 명의 신임 수석코치)의 도움을 받습니다. 선수단 몸 상태를 책임지는 헨리크 쿠흐노와 헨드리크 피트, 골키퍼 분대를 가르치는 솔트 페트리 등은 계속 직무를 수행합니다. 초비치가 맡던 헤르타 BSC II 사령탑으로는 안드레아스 "체케" 노이엔도르프, 전 헤르타 BSC 17세 이하 팀 감독이 옮깁니다. 지난 시즌, 초비치가 감독한 헤르타 BSC II는 레기오날리가 노르도스트에서 4위를 차지했습니다. 지금의 대회 체계가 정립된 2012년 이후 최고 성적입니다. 34경기에 60골을 넣었으니, 이 또한 마찬가지, 최고입니다. 초비치 감독은 공격적인 운영을 전제로, (때에 따라 4231 대형으로 변형하는) 433 대형과 (때에 따라 3142 대형이나 3412 대형으로 변형하는) 352 대형, 343 대형 등을 폭넓게 혼용하며, 유연성을 발휘했습니다. 최후방과 중원에서 안정적인 공 소유를 강조했고, 중앙선 위, 좁은 공간에서는 가까운 두세 선수가 짧게, 빠르게 주고받으며 파생하는 장면을 자주 연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주제프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FC 감독을 '닮고 싶은 모델'로 꼽으며, 상대보다 자주, 오래 공격권을 쥐기를 원하지만, 사실, 앞선 사 년 반, 팔 다다이 체제에서 그러한 경기에 숙달하지 못한 선수단이 얼마나 그 요구를 채워줄지 미지숩니다. 같은 이유로, 또, 헤르타 BSC가 당장 분데스리가에서 대부분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지는 못했음을 기억할 때, 맨 뒤 수비선에 세 명의 선수를 배치하고 시즌을 시작하는 편이 안전할 수 있습니다. 다다이는 그가 유소년팀을 지휘하던 때, 큰 점수 차 승리가 거듭되자, 자신이 "기적의 지도자"인 줄 착각했는데, 분데스리가 감독으로 도전에 나서자마자, 현실을 깨닫게 됐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공격적이고 매력적인" 운영을 추구하더라도, '초짜' 초비치 감독의 성패는 특히, 시즌 초반, 수비 안정화에 달렸습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데드리크 보야타, 조던 토루나리가, 자바이로 딜로순, 루카스 클륀터 [ⓒ City-Press]

 

 새 감독과 맞는 첫 번째 계절인 만큼, 여름 이적 시장에 선수단을 잘 개편해야 합니다. 앞으로 석 달가량, 신문 지면을 뜨겁게 달굴 이 과정의 신호탄은 지난달, 벨기에 국가대표 출신 수비수인 데드리크 보야타(전 셀틱 FC)가 자유계약으로 헤르타 BSC의 파랗고 하얀 유니폼을 입기로 합의하면서 쏘아 올렸습니다. 탄탄한 신체 조건을 갖춘 데다, 위험 지역에서도 상대 공격수를 향해 몸을 날리는 대담함이 돋보이는 보야타의 합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중앙 수비수'를 분대에 더함으로써, 안테 초비치 감독이 최종 방어선을 새로 구축하는 일에 도움을 줍니다. 어려서부터 벨기에, 잉글랜드,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등지를 거치며 공을 찬, 경험 많은 보야타는 베를린에서 카림 레키크와 함께, "맨체스터 시티 FC 출신 중앙 수비 듀오(다만, 맨체스터에서 두 선수의 활동 시기는 거의 겹치지 않아, 지금까지 맨체스터 시티 FC 21세 이하 팀에서 한 경기를 같이 뛰었을 뿐입니다)"를 결성할 수 있습니다. 초비치 감독이 부임함에 따라, 클럽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그에게 배우며 성장한 어린/젊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부여되리라는 기대도 커집니다. 대표적인 선수가 조던 토루나리가와 막시밀리안 미텔슈테트, 데니스 야스트쳄프스키, 플로리안 바크 등인데, 보야타 영입으로, 토루나리가와 바크에게는 기존의 니클라스 슈타크와 레키크 외에 넘어야 할 큰 산이 하나 더 생겼고, 미텔슈테트의 앞에는 여전히 마빈 플라텐하트가 버티며, 야스트쳄프스키는 아직 '우선순위' 날개 공격수로 활약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초비치 감독은 이들의 성향과 장단점을 이미 잘 파악하고 있고, 길게 봤을 때, 이들이 알을 깨고 나오도록 현장 지도부가 도와야 한다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 간간이 출전하며 팀 내, 손에 꼽을 "크랙"의 본능에,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도중에 다치는 바람에 자꾸만 멈춰 섰던 자바이로 딜로순도 새 감독 체제에서는 더 많은 기회를 노리며, 성장세에 박차를 가하려 합니다. 이들에게 얼마나 시간이 주어질지, 그리고 이들은 그 주어진 시간, 자신을 얼마나 잘 보여줄지 주목됩니다. 발렌티노 라차로가 국내외에서 여러 클럽의 "여름 영입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가운데, 그가 떠난다면, 우측면에서는 루카스 클륀터의 역할 중요성이 커집니다. 서쪽의 대성당 도시, 쾰른에서 많이 사랑받고 넘어왔지만, 베를린에서 첫 번째 계절, 분데스리가 열 경기, 592분 출전에 그쳤던 클륀터에게도 반전이 필요합니다. 그의 무척 빠른 발과 공격적인 본능이 초비치 감독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잉고 실러, 헤르타 BSC 재무 부서 전무이사 [ⓒ Oliver Mehlis/ dpa]

 

 디터 회네스, 전 헤르타 BSC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권력을 잡던 시기, 곧, 21세기의 막이 막 오른 2000년대 초반에도 베를린의 노파는 큰 꿈을 꾸었습니다. 기회만 닿으면, 니코 코바치(1996년 여름에 떠났다가 2003년 여름에 복귀), 프레디 보비치, 아르투르 비히니아레크, 이을드라이 바슈튀르크 등, 이미 분데스리가에서 이름을 날린 선수를 영입했고, 마르셀리뉴나 바르트 호르, 아르네 프리드리히, 지우베르투 다시우바 멜루, 하파에우, 안드레 리마, 고이코 카차르 등과 손을 잡는 데는 적잖은 이적 대가를 투입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모두의 경력이 잘 풀리지는 못했어도, 일부가 '전설'이 돼, 클럽은 "유럽 무대"에 종종 명함을 내미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 값은 비쌌습니다. 회네스의 시대가 저물고, 미하엘 프레츠 전무이사와 슈프레아테너는 수년간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고, 분데스리가 클럽 면허 발급 및 유지를 위한 DFL의 재정적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제,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약하려거든, 상황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미 RB 라이프치히와 같은 신흥 구단이 등장해, 사오 년 새 1억 유로 가까이 쏟아부으며, 강팀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VfL 볼프스부르크나 TSG 1899 호펜하임의 사례도 유사합니다. 결국, 헤르타 BSC도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원석을 발굴해 다듬는 작업은 계속하되, 곳간을 늘리며, 이적 시장에서 필요한 만큼 투자할 '지속 가능한' 여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자리에서 물러나며, 팔 다다이는 그가 임기 동안, 새로운 선수 영입에 쓴 돈보다 선수를 내보내며 벌어들인 수입이 더 컸던 점을 지적했습니다. 올여름, 헤르타 BSC는 시장에서 새로운 재정적 동반자를 찾습니다. 지난해 말, 미국의 사모 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 넘어가 있던 헤르타 BSC GmbH & Co. KGaA 지분 일체를 7,120만 유로가량 대가에 모두 회수한 클럽은 광고의뢰자와 계약 등으로 연간 3,520만 유로 정도 수익을 기대합니다. '오래된 부채'를 모두 덜어내고, 앞으로 새로운 자기 지역 구장 건설을 비롯한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경기장 밖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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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새로운 계절을 맞을 준비에 들어가는 일은 즐겁습니다. 올해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오는 설렘과 긴장, 약간의 흥분 때문일 터(이번에는 도시 내 경쟁자인 1. FC 우니온 베를린의 등장이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입니다. '안정됐던 지난날'과 막 작별을 고했기에, 어쩌면, 오늘, 베스트엔트에 불어 드는 이 변화의 바람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의 당도를 알리는지도 모릅니다. 클럽 운영진은 입버릇처럼 "헤르타 BSC의 정체성"을 말하지만, 사실, 그 "정체성"이 무엇을 담는지는 때로 불분명합니다. 몇 해 전, 베를린의 노파는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광고 대행사, 융 폰마트와 협력하여, "헤르타 BSC -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소규모 신생기업"이라는 정신에 기초, "우리는 시도합니다. 우리는 실패합니다. 우리는 승리합니다."라는 주의를 세운 바 있습니다. 이 표어가 아직 유효하다면, 설명은 한결 쉬워집니다. 올해도 슈프레아테너는 담대한 도전에 나서서, 현실의 벽에 부딪혀, 깨지고 넘어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어서서, 털고 나아갑니다. "가난하지만, 매력적인 도시" 베를린에서는 누구나, 무엇이든 해볼 수 있습니다. 경기장 안, 잔디 위의 안테 초비치 신임 감독도 그래야 합니다. 대부분의 선수가 팔 다다이 체제를 함께 지나왔습니다. 곧, 선수단에도 변화가 찾아오겠지만, 지난 사 년 반, 이들이 완성해 놓은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초짜' 감독은 개성 있는 그림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시행착오가 불가피한데, 미하엘 프레츠 전무이사에게 그를 기다려 줄 인내심이 얼마나 있을지 두고볼 일입니다. 침체의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그 끝에 거의 다다랐다고 믿는 경기장 밖에서는 머지않아, 헤르타 BSC가 그토록 기다려 온 "재정적인 광풍"이 생성돼,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을 집어삼킬지 지켜봐야 합니다. 중국과 미국 시장을 오가며 새로운 재정적 협력자를 찾아온 베르너 게겐바우어, 헤르타 BSC 상임위원회 회장은 KKR 이후, '투명한' 자금 출처에, '믿을 수 있으며', 클럽 경영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을 인물과 협력을 원칙으로 제시했습니다. 까다로운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어떤 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올여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