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우스 쿠냐: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 등장한 또 하나의 브라질리언

2020. 3. 2. 17:00#HaHoHe

지난주, 메르쿠어 슈필아레나에서 마테우스 쿠냐가 헤르타 BSC 유니폼을 입고 데뷔골을 넣었습니다. 그는 이 경기, 명실공히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 City-Press]

 

 "Er war sehr aktiv, forderte viele Bälle, suchte viele Eins-gegen-eins-Situationen und war mutig."

 "그는 대단히 활동적이었고, 여러 차례 공을 향해 달려들었으며, 일대일 상황을 여러 번 찾아냈고, 대담했습니다."

 

 위르겐 클린스만의 이기적이고도 추하기 그지없는 퇴장 이후, 낙동강 오리알이 돼(그가 애초에 클린스만의 수석코치로 합류했으니), 등 떠밀리듯 헤르타 BSC 감독직을 대행하는 알렉산더 누리는 지난주, 메르쿠어 슈필아레나에서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 시합에 마테우스 쿠냐가 매우 활동적이었으며, 실로 대담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슈프레아테너는 원정길에서 우베 뢰슬러의 순간적인, 강한 전방 압박과 번갈아 가며 절반 공간을 파고드는 에리크 토미, 케난 카라만, 발론 베리샤, 케빈 슈퇴거, 마티아스 치머만의 움직임에 정신 못 차리고 혼쭐이 나, 0 대 3으로 크게 뒤진 채 중간 휴식 시간을 맞았습니다. 대기실에서 누리가 얼빠진 사람처럼 넋이 나간 사이, 경험 많은 골키퍼, 토마스 크라프트가 열정적인 연설로 선수들을 독려했고, 후반 19분 무렵, 블라지미르 다리다의 투지(거의 끝줄을 벗어나는 공을 끝까지 따라가, 상대와 경합하며, 미끄러지며, 다시 가운데로 감아올렸고, 그가 에리크 토미의 손에 맞고 들어가 버렸습니다.)가 마침내, 잔디 위, 베를린 노파의 열한 명을 깨웠습니다. 사실상, 김이 빠질 대로 빠진 경기가 이어지던 중에 경기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 버릴(어쩌면, 이 시즌, 클럽의 성패까지 바꾸어 버릴) '전환점'이 찾아오자, 전반전부터 가진 기술을 앞세워서 상대 수비와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던 쿠냐가 제일 먼저 응답했습니다. 1 대 3이 된 지 이 분여 만에, 페널티 구역 밖에서, 오른발에 제대로 걸린 슈팅(상대 수비수 발에 맞고 굴절되는 운도 일부 따랐습니다만)으로 플로리안 카스텐마이어의 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9분 뒤, 크시슈토프 피옹테크가 직접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적으로 "집행"하여, 3 대 3, 무승부를 완성했습니다. 드리블 돌파 일곱 번에 그 성공률 100%, 여섯 번 반칙을 당하고 네 차례 상대 골키퍼를 시험하여, 그중 두 개를 골문 안쪽으로 향하게 했으며, 한 번, 상대 골망을 흔들었고, 또 한 번은 골대를 맞혔습니다. 쿠냐는 2019-20년 분데스리가 24번째 경기, 실로 '놀라운' 활약상을 선보였습니다.

 

마테우스 쿠냐는 브라질의 "4회 연속 올림픽 남자축구 종목 본선 진출" 일등 공신이 된 뒤, 헤르타 BSC에 전격 합류했습니다. 그는 2020 도쿄 올림픽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 대회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 Luisa Gonzalez/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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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겨울 이적 시장: "최다 지출" 헤르타 BSC

2020년 1월의 분데스리가 이적 시장 문이 닫혔습니다. 지난여름부터 본격적으로 헤르타 BSC GmbH & Co. KGaA(이하 헤르타)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해, 결국, 지난해 11월까지 49.9%가량을 확보, 이적 시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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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린스만의 대단히 이기적인 퇴장

위르겐 클린스만이 헤르타 BSC(이하 헤르타)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구단 역사상 네 번째로 짧은 임기에 해당하는 76일간 팀을 이끌며, 분데스리가 아홉 경기를 감독하는 동안, 꼭 세 번씩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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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시즌, 헤르타 BSC를 따르는 모든 이가 입을 모아, 마테우스 쿠냐가 합류한 뒤로, 팀 공격진이 뿜어내는 에너지 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선수가 전방에서 대단한 투쟁심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 이적 시장에서 슈프레아테너와 계약하던 당시, 쿠냐는 브라질 23세 이하 대표팀 일원으로 자국의 2020 하계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콜롬비아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의무 건강 검진 절차도 대서양 건너에서 밟았습니다.). 페드리뉴(SC 코링치앙스 파울리스타), 파울리뉴(바이어 04 레버쿠젠), 앙토니(상파울루 FC), 헤이니에르(CR 플라멩구) 등과 대표팀 공격을 이끈 쿠냐는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 대회 다섯 경기에 출전, 꼭 다섯 골을 뽑아내며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이기지 못하면, 도쿄행이 좌절될 수도 있었던 아르헨티나 대표팀과 최종전(브라질 대표팀이 3 대 0으로 완승했습니다.)에 홀로 두 골을 집어넣으며, 브라질 대표팀의 "4회 연속 올림픽 남자축구 종목 본선 진출" 일등 공신으로 떠올랐습니다. 베를린의 노파로서는 앞으로 가치가 오를 일만 남은 선수를 일찌감치 선점한 셈이 됐는데, 막상 지난달 중순, 쿠냐가 독일로 돌아왔을 때는 그의 새로운 클럽 상황이 아주 나빴습니다. 안방에서 1. FSV 마인츠 05에 1 대 3으로 참패한 뒤, 강등권과 격차가 승점 여섯 점에 불과한 14위로 분데스리가 순위표에서 위치가 떨어졌고, 무엇보다, 그를 베를린 베스트엔트로 이끈 지도자, 감독이 도망가듯이 사퇴해 버려서, 그의 지도는 받아보지도 못했습니다. 체력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쿠냐는 쉴 수 없었습니다. SC 파더보른 07과 경기(22라운드; 2 대 1로 승리)에 곧바로 데뷔했고, 데뷔골까지 넣을 '뻔'했습니다. 이 경기 후반 22분경, 그가 발뒤꿈치로 넣은 아름다운 골은 경기 종료 후, 상대 수비수 자책골로 정정되었습니다. 기록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의연함을 보인 그는 "다음 경기에 다시 골을 노리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진 1. FC 쾰른과 일전에는 전반 45분을 뛰면서 침묵했지만, 이번 뒤셀도르프 방문 경기에 비로소 데뷔골을 신고해 약속을 지키고, 그의 득점 소식을 기다리던 베를린 축구광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천재적인 기술과 잔디 위에서 광기가 어우러진, 대단히 독창적인 선수" 마테우스 쿠냐는 자신의 투쟁심으로 주변을 물들이려 합니다. [ⓒ City-Press]

 

 마테우스 쿠냐는 끊임없이 동료들을 경기장 높은 곳으로 이끌며, 넘치는 패기와 엄청난 열의로 경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압박 기준선을 끌어올리고, 자신의 투쟁심으로 주변마저 물들이려고 합니다. 그는 곧 그야말로 자신이 이 새로운 클럽을 위해 해야 할 일이라고 목소리 높입니다. 헤르타 BSC에서 세 경기를 마친 현재, 베를린의 신문들은 일제히 쿠냐를 두고 "천재적인 기술과 잔디 위에서 광기가 어우러진, 대단히 독창적인 선수"라고 평가합니다. 오늘, 그가 잔디 위에 공급하는 엄청난 열정과 활력은 이번 시즌, 그 어느 때보다 침체해 있는 헤르타 BSC 선수단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팀에 꼭 필요한 요소인 까닭에, 뭇사람이 지난겨울 이적 시장에 미하엘 프레츠(헤르타 BSC 운동 부서 전무이사)가 그의 영입을 위해 지출해야 했던 기본 1,500만 유로, 최대 1,800만에서 2,000만 유로 남짓한 이적료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투자였다고 말합니다. 쿠냐는 메르쿠어 슈필아레나에서 22번이나 경합에 나섰습니다. 잔디를 밟은 두 팀의 다른 그 어떤 선수도 그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는 14번 경합에 승리, 60% 넘는 승률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헤르타 BSC 파랗고 하얀 유니폼을 입은 뒤, 매 경기, 절반 이상 경합 승리(전체 승률은 61.4% 수준입니다.)를 기록하고 있는 그입니다. 신체 조건이 압도적이거나, 대단한 근육질의 선수가 아닌데도 자신보다 한참 큰 수비수와 부딪히기도 마다하지 않고, 물리적인 힘 싸움에는 이따금 밀리더라도 집중력 높여서, 개인 기술로 어떻게든 공 소유권을 지켜내는 쿠냐의 능력이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오스트쿠어베, 안방 응원단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합니다. 일단 그가 공을 잡으면, 골문을 향해 돌아서면서 그를 몰아, 한참 전진하니, '기대'하게 합니다. 위르겐 클린스만이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서 개조한 분대를 내팽개치고 떠서 자리를 옮겨갈 때만 해도 심연에 다다르는 듯했던 이곳의 공기에 쿠냐 덕에 다시, 새로운 활기가 돕니다.

 

베를린 베스트엔트로 옮겨오기 전, RB 라이프치히에서 마테우스 쿠냐는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 Imago Images]

 

 사실, 전반기, 헤르타 BSC로 옮기기 전에 RB 라이프치히에서 보낸 마테우스 쿠냐의 시간은 절대 순탄치 않았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출전 시간이 274분에 그쳐, 더 많이 뛰고 싶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현했으나, 스스로 부진한 모습을 벗어던지지도 못하여, 한 개 도움을 올리는 데 머물렀습니다. 티모 베르너와 파트리크 시크, 크리스토페르 은쿤쿠, 유수프 포울센 등, 쟁쟁한 선수들과 경쟁에 밀린 그는 자연스레 이적을 추진했습니다.

 항간에는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와 브라이턴 앤드 호브 앨비언 FC 등, 프리미어 리그 클럽 일부가 그에게 먼저 관심을 드러냈다고 전합니다.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파트리크 쿠트로네를 ACF 피오렌티나로 떠나보내고(임대 이적), 잉글랜드에서 하위 무대를 전전하던 라파 미르를 결국, 스페인 무대, SD 우에스카로 돌려보낸 뒤(임대 이적), 최전방에 버티는 간판선수, 라울 히메네스와 조금 다른 성향의 공격수를 들이고 싶어 했습니다. 최근,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펄펄 나는 황희찬 선수와 연결된 때도 이때입니다. 하지만, 누누 이스피리투 산투 감독과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는 또 한 번, 조르즈 멘드시의 네트워크를 통해 포르투갈 국적의 다니엘 포덴스(이번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고의 돌파 기술을 지닌 선수입니다.)를 영입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고, 마테우스 쿠냐나 다른 후보의 이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수의 공격수에 눈독을 들이던 브라이턴 앤드 호브 앨비언 FC는 마땅한 영입 없이 겨울 이적 시장을 마쳤습니다.

 한편으로 마테우스 쿠냐는 브라질 태생으로, 과거, 독일 국가대표 공격수로 활동했던 케빈 쿠라니를 이적 대리인 겸 협상 과정의 통역으로 세워, 독일 안에서 이적을 타진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겨울에 잉글랜드 등, 다른 무대로 "완전한 새로운 도전"을 택하기보다는 그나마 일 년이라도 뛰면서 적응할 시간을 가진 분데스리가에 남는 편을 선수가 선호했을 수 있습니다. 쿠라니는 협상이 비밀리 진행 중이던 때, 위르겐 클린스만 내외와 라스 빈트호스트 내외의 저녁 식사 자리에 함께하여(적어도 같은 식당에서 포착돼)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적 시장 문이 닫히던 날, 쿠냐는 헤르타 BSC의 야심 찬 계획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본래,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 라이프치히에서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지니, 클린스만과 이전의 여러 지도자가 주목했던 그의 재능이 꽃을 피우려 합니다.

 

호니는 프리킥을 참 잘 차는 선수였습니다. 종종 멋진 골을 집어넣고 인기를 얻었습니다. [ⓒ Michael Kienzler/ Bongarts/ Getty Images]

 

 헤르타 BSC는 이전부터 브라질 출신 선수들과 인연이 깊습니다. 마테우스 쿠냐도 이 역사를 의식했는지, 콜롬비아에서 돌아오고 처음으로 가진 면담에 "저도 그들의 성공을 이어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999년, 크루제이루 이스포르치 클루비 소속으로 브라질레이랑(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21경기에 22골을 몰아치고 독일로 건너온 고 알렉스 아우베스(1974-2012)가 2000년대 초반, 세 시즌 동안 활약(분데스리가에서 두 자릿수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매년, 합계는 그에 준하였습니다.)했고, 후에 토트넘 홋스퍼 FC로 이적, 잉글랜드 무대에 입성하기도 했던 지우베르투 다시우바 멜루는 2000년대 중반, 분데스리가에서 성적을 내던 슈프레아테너의 핵심 선수였습니다. (성적 면에서) "황금기"가 쇠락하던 2000년대 후반에는 하파에우(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소속 공격수)가 '스승' 뤼시앵 파브르(2007-2008년부터 2009년 9월까지 헤르타 BSC를 이끌었으며, 취리히에서부터 하파에우를 지도했습니다.)를 따라, 분데스리가에 입성했고, 시세루 산투스(현 보타포구 FR 소속 미드필더)가 중원 한 자리를 책임졌습니다. 이 세대, 베를린의 노파가 두 번째 2. 분데스리가로 강등된 2012-13년, 홀로 대회 18골을 몰아치며 승격을 이끈 호니는 2010년 여름부터 육 년간, 여러 '놀라운 골'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물론, 루이장(90년대 끝 무렵에 SC 코링치앙스 파울리스타 소속으로 브라질 무대를 주름잡은 공격수지만, 유럽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안드레 리마(2007년, 보타포구 FR 소속으로 브라질레이랑 두 자릿수 득점을 달성하고 베를린 베스트엔트에 입성했지만, 적응에 한참 애를 먹고 방출됐습니다.), 알랑 호드리기스 지소자(현 클루비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소속 미드필더; 2016-17년, 리버풀 FC에 적을 둔 채로 임대 이적해 왔지만, 거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등, 빛을 보지 못한 사례도 존재하지만, 여전히, 베를린의 많은 축구광은 "브라질 출신 선수"라는 딱지를 긍정적인 기억과 연결하여, 일단 기대부터 걸고 보는 습성이 있습니다.

 

브라질 출신 선수들과 인연이 깊은 헤르타 BSC에서도 독보적인 최고의 선수는 마르셀리뉴 파라이바입니다. 그는 그야말로 한 시대를 대표했습니다. [ⓒ AFP]

 

 마테우스 쿠냐까지 열여섯 명의 브라질 출신 선수 중 헤르타 BSC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는 이는 단연, 한 시대를 풍미한 마르셀리뉴 파라이바입니다. 2001년 여름, 고 알렉스 아우베스에 이어, 클럽 역사상 두 번째 브라질 선수로 합류, 2006년 여름에 트라브존으로 떠나기까지 오 년간 분데스리가 155경기에 나선 그는 65골을 넣어, 미하엘 프레츠(84골), 에리히 "에테" 베어(83골), 로렌츠 호어(75골) 다음 순위에 이름을 올렸고, 43개 도움으로는 스무 개도 넘지 못한 "2위권" 프레츠, 하파에우, 마빈 플라텐하트 등을 가볍게 따돌렸습니다. 골과 도움의 합은 당연히 역대 1위입니다. 마르셀리뉴가 등장한 2000년대 초중반, 독일 프로축구 최상위 무대를 기교 넘치는 공격형 미드필더, "체너(Zehner)"가 수놓았습니다. 중원에 다이아몬드를 그리는 442 대형이 유행했고, 미하엘 발라크(바이어 04 레버쿠젠, FC 바이에른 뮌헨)와 메흐메트 숄(FC 바이에른 뮌헨), 이을드라이 바슈튀르크(VfL 보훔, 바이어 04 레버쿠젠, 헤르타 BSC) 알략산드르 글례프(VfB 슈투트가르트), 토마시 로시츠키(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요앙 미쿠(SV 베르더 브레멘) 등, 세계 각국 쟁쟁한 선수들이 경쟁했습니다. 마르셀리뉴 파라이바는 그중에서도 독특한 개성으로 유명했습니다. 마치 오늘의 폴 포그바(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보는 듯, 매번, 머리 모양을 바꾸고 나왔고, 훈련에 불성실했습니다. 마구잡이로 주위에 돈을 빌려주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경기 하루 전에 광란의 파티를 즐겨 구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가진 재능만은 확실하여, 경기장 가운데서 그가 공을 만지고, 오래 소유하여 "천재성"을 뽐내기가 팀 전체의 공격 전술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슈프레아테너와 다만, 썩 기분 좋게 헤어지지는 못했으니, 지나친 의존도는 그의 부침이 다소 심했던 마지막 시즌, 팀 성적 부진으로 이어졌고, 무엇보다, 언제나 한 조직의 정해진 규칙 안에 가두기 어려웠던 "말썽꾼"이 2006년, 여름 휴가 이후 무단으로, 아흐레나 늦게 훈련장에 나타나면서, 그간, 그의 잔디 위 화려한 기술이 가려왔던 여러 문제가 폭발했습니다. 기강을 무너뜨리고 분위기를 흐린 마르셀리뉴는 빠르게 선수단에서 고립됐고, 방출당했습니다.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 "디터 회네스 시대"의 상징적인 얼굴인 그는 시간이 흐르며, 그가 저지른 여러 실수를 용서받았고, 다시금, 베를린의 축구광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 하나로 남았습니다.

 

전진 드리블에 능한 마테우스 쿠냐는 발바닥으로 공을 밀어놓고 몸을 돌려서 상대를 따돌리거나, 라 크로케타를 구사하여 비좁은 공간을 뚫고 나오는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 City-Press]

 

 기껏해야 세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마테우스 쿠냐야말로 마르셀리뉴 파라이바의 인기에 진정 도전해 볼만한 재능으로 보입니다. 현재 자국 최고 선수인 네이마르 주니오르(파리 상제르망 FC)와 같은 화려함은 갖지 못했지만, 간결함을 바탕으로 공 지키는 기술이 매우 뛰어납니다. 공을 "예쁘게만" 차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그를 더 독특하게 만듭니다. 발바닥으로 공을 밀어놓고 몸의 방향을 바꾸고, 크게 회전하면서 상대를 따돌리거나, "라 크로케타(La Croqueta; 상대를 앞에 두고 순간적으로 공을 한쪽 발에서 반대쪽 발로 옮겨, 역동작을 유도하고 치고 나가는 기술)"를 자주 구사하여, 좁은 공간을 뚫고 나옵니다. 그렇게 상대 페널티 구역을 직접 타격하기도 하고, 동료를 위해 기회를 창출하기도 하며, 최전방과 그보다 반 칸에서 한 칸 정도 처진 공격수 자리는 물론, 좌우 날개 공격수 자리까지 채웁니다. 열여덟 나이에 스위스 시옹에서 데뷔한 뒤, 독일로 넘어와, RB 라이프치히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랄프 랑니크의 전술적인 철학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여러 해 동안 독일 축구계의 주요 연구 대상이 된 랑니크의 전술에서 가장 바탕에 놓여 있는 두 가지 핵심, 강한 전방 압박과 왕성한 활동량의 단서를 쿠냐의 경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투쟁심을 바탕으로 전방에만 머물지 않고, 경기장 모든 잔디를 밟을 듯한 움직임으로 뒤쪽에서부터 이루어지는 슈프레아테너의 공격 조립에도 힘을 보탭니다. 메르쿠어 슈필아레나에서도 팀이 상대 강한 전방 압박에 고전하여 좀처럼 뒤쪽에서 풀어 나오지 못하자, 쿠냐가 직접 중앙선까지 내려와서 공을 넘겨받은 뒤, 앞으로 공을 운반해 주었습니다. 경기장에만 서면, 대단히 강한 승리욕에 불타는데, 가끔은 그 열정이 과하여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경고를 받기도 합니다. 장차 더 큰 선수가 되려면,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은 길러야 합니다. 이는 문전에서 결정력 향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선수가 합류하면, 어느 팀이나 한동안은 그 선수의 동작 하나하나에 관심을 두고, 사소한 실수는 관대하게 용서해 주는 여유를 보입니다. 아직 이 기간에 있는 마테우스 쿠냐의 경기력이 그래서 더 높이 평가받는 면도 없지는 않습니다. 단, 다양한 전술적 쓰임새가 증명된 그이므로, 이 기세를 이어가고, 일부 약점(때로 과도한 승리욕과 문전 침착성)을 보완할 수만 있으면, 향후 헤르타 BSC의 야심 가득한 계획에서 그는 대단한 비중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