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1. 21:00ㆍ#HaHoHe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시점이고, 상황이지만, 동시에, 조금 미덥지 않은 선임이라는 목소리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헤르타 BSC는 지난 9일, 알렉산더 누리 감독 대행과 마쿠스 펠트호프 수석코치, 베르너 로이타르트 체력 담당 코치 등, 남아있던 "위르겐 클린스만 사단"과 동행을 마무리 짓고, 브루노 라바디아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기로 했다는 보도 자료를 내보냈습니다. 새로운 군함의 우두머리는 그의 함선이 도중에 좌초하지 않는다면, 오는 2022년 여름까지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잔디 밖 일렬에 설 수 있는 계약을 따냈습니다. 라바디아 감독 부임과 함께, 그와 15년째 공동 작업해 온 에르딘치 "에디" 쇠제르가 이번에도 그 사단의 핵심으로 합류했고, 1990년대, 뮌헨에 "World of Speed"라는 속도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던 "속도 전문가" 귄터 케른이 새롭게 가세, 로이타르트의 역할을 인수했습니다. 여기에, 올라프 얀센, 전 VfL 볼프스부르크 수석코치가 쇠제르와 "2인 수석코치 체제(베를린의 노파는 경험이 없는 안테 초비치, 전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려, 시즌 출발을 이와 같은 형태로 했고, 지난 11월, 그 초비치가 경질되고, 클린스만이 급히 소방수로 앉았을 때도 누리와 펠트호프를 내세워, 같은 기조를 유지했습니다)"를 만들어, 힘을 보태며, 기존 헨리크 쿠흐노, 헨드리크 피트, 두 훈련 코치와 솔트 페트리 골키퍼 코치 등이 잔류, 현장 지도부를 완성합니다.
브루노 라바디아는 베를린에서 작업을 몹시 기대하고 있으며, 헤르타 BSC의 거대하고도 야심만만한 도전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고 전했습니다. 클럽 운동 부서를 관장하는 미하엘 프레츠 전무이사도 알렉스 누리와 마쿠스 펠트호프, 베르너 로이타르드 등이 위르겐 클린스만의 무책임한 사임 속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고, 책임을 다해주어 고맙다고 하면서도, 분데스리가에서 잔뼈가 굵은 라바디아 감독을 선임함으로써, 뜻하지 않은 휴식기, 분대를 재정비하고 다음 시즌 구상을 세우며, 클럽의 야망을 현실화하기 위한, 위대한 첫 발걸음을 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한편, 프레츠 전무이사는 최근, "공격적이고 아름다우며, 재미있는 축구"를 희망한다는 안방 응원단의 거센 목소리가 신경 쓰였는지, 라바디아 감독에게는 바로 그러한 축구를 구현하기 위한 착상이 풍부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브루노 라바디아가 아직 축구화 끈을 동여매던 시절, 그는 제법 괜찮은 "골 사냥꾼(Torjäger)"이었습니다. 골문 앞, 위치 선정 능력이 뛰어났고, 마무리하는 발목 힘이 좋았으며, 그런대로 공 다루는 기술도 갖추었습니다. 1. FC 카이저슬라우턴 유니폼을 입고, 1990-91 시즌, 분데스리가 정상을 경험하기도 했고, FC 바이에른 뮌헨(이곳에서도 1993-94 시즌에 "마이스터샬레"를 들어 올렸습니다)과 1. FC 쾰른, SV 베르더 브레멘,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등을 거치며, 굴지에서 활약했습니다. 통산 독일 프로축구 최상위 무대에서 103골을 터뜨렸고, 2. 분데스리가에서도 세 자릿수 득점(101골)을 폭발시켰습니다. 지금껏 이 놀라운 기록을 작성한 선수는 그가 유일합니다. 독일 국가대표로 두 경기를 소화하기도 했던 그는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 여섯 번의 승리만 더하면, 유프 하인케스와 토마스 샤프, 펠릭스 마가트, 프리트헬름 풍켈, 빈프리트 셰퍼, 위르겐 뢰버 등에 이어, "분데스리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세 자릿수 승수를 쌓은 일곱째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이었던, 라바디아가 정든 유니폼을 벗고, 지도자로서 인생 두 번째 막에 뛰어들기는 지난 2003년의 일입니다. 그해, 그는 축구계에서 자기 경력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던 다름슈타트로 돌아와, SV 다름슈타트 98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 2003~2006 | SV 다름슈타트 98
- 2007~2008 | SpVgg 그로이터 퓌르트
- 2008~2009 | 바이어 04 레버쿠젠
- 2009~2010 | 함부르거 SV (1기)
- 2010~2013 | VfB 슈투트가르트
- 2015~2016 | 함부르거 SV (2기)
- 2018~2019 | VfL 볼프스부르크
- 2020~ | 헤르타 BSC (예정)
그리하여, 브루노 라바디아가 지금까지 지휘한 클럽의 면면은 위와 같습니다. 주로, "강팀"보다는 중위권으로 분류되는 클럽, 또는 강등권에서 허덕이는 클럽을 맡아, 상황을 정리하고 빠르게 팀을 재정비하여, "너무 나쁘지만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낸 이력이 있습니다. 독일 프로축구 수준에서 그에게 "특급 소방수"의 이름이 붙은 이유입니다. 본인은 더는 강등권 싸움에 지친 클럽에 들어가서 잔류를 이끌고, 바로 다음 여름에 팀을 떠나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으며, 분데스리가에서 "소방수"로만 소비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냉정하게, 지금 그에게 그 이상의 역량을 기대할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들이 들 만한 근거 사례는 그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쉽게 발견됩니다.
2008-09 시즌 개막을 앞두고 브루노 라바디아는 바이어 04 레버쿠젠과 이 년 계약을 맺었습니다. 당시, 미하엘 스키베를 떠나보낸 뒤로, 위르겐 클로프와 미르코 슬롬카, 울프 키어스텐 등과 연결되던 클럽은 클로프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합류하고, 슬롬카는 FC 샬케 04와 얽힌 계약 문제로 선임하기가 어려워지자, 직전 시즌에 SpVgg 그로이터 퓌르트를 2. 분데스리가 6위로 이끌며 주목받은 젊은 감독, 라바디아를 선택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습니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 모험에 가깝기는 했습니다. 이 시즌, 바이어 04 레버쿠젠은 유럽 클럽 대항전에 진출하지 못해,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에만 집중하면 되었는데, 라바디아 감독은 공격 중심의 축구를 구사하며, 쾌조의 출발을 해, 레버쿠젠 축구 애호가들을 설레게 했습니다. 그는 아르투로 비달(현 FC 바르셀로나 소속 미드필더)을 전진 배치하고, 헤나투 아우구스투(현 베이징 궈안 소속 미드필더)와 트랑킬로 바르네타를 그 양옆에 두며, 지몬 롤페스가 뒤를 받치게 해, 말하자면, 다이아몬드 모양에 가까운 허리 조합을 완성했습니다. 1. FC 쾰른에서 넘어온 파트리크 헬메스가 스키베 감독 밑에서는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자주 나선 슈테판 키슬링과 나란히 최전방에 섰고, 두 선수는 유기적인 호흡으로 상대 최종 방어선 뒤의 공간을 파괴했습니다. 라바디아 감독의 팀은 역동적이었고, 7라운드, 헤르타 BSC와 경기에 득점하지 못하고 패하기 전까지는 매주, 두 골 이상 터뜨리며, 사랑받았습니다. 하지만, 시즌 후반부로 향하며, 그러한 기세가 급격히 꺾였습니다. 이기는 날보다 비기거나 지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결국, 2009년 봄, 바이어 04 레버쿠젠은 분데스리가 순위표 아홉째를 차지하는 데 그쳤고, DFB-포칼에서도 결승전, 메수트 외질(현 아스널 FC 소속 미드필더)에 실점하며 SV 베르더 브레멘에 패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일 년 전과 비교하여, 독일 프로축구 최고 무대에서 두 골을 더 넣었을 뿐이고, 순위는 하락(7위 → 9위)했으며, 실점은 6골 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수준의 결과는 절대 아니었지만, 그래도 루디 푈러를 비롯한 구단 수뇌부는 감독의 '공격 축구'를 향한 열정만은 높이 평가했고, 그에게 나름대로 신뢰와 지지를 보냈습니다.
브루노 라바디아는 2009년, 마르턴 욜 감독이 AFC 아약스로 갑작스레 자리를 옮기면서, 그 후임을 물색하던 함부르거 SV와 합의에 도달, 일 년 만에 레버쿠젠을 떠났습니다. 함부르거 SV는 2008-09 시즌에 분데스리가에서 열 골을 넣은 이비차 올리치를 FC 바이에른 뮌헨에 자유 계약으로 내준 뒤였지만, 여전히, 호세 파올로 게레로(현 SC 인테르나시오나우 소속 공격수)와 믈라덴 페트리치가 최전방에 버텼고, 피오트르 트로호프스키와 다비트 야롤림, 마르셀 얀즌, 요리스 마테이선 등, 주축 선수 다수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욜 감독과 분데스리가 5위를 차지한 전력이었고, DFB-포칼과 UEFA-컵에서도 나란히 준결승(공교롭게도 모두 SV 베르더 브레멘을 만나서 접전 끝에 탈락했습니다)에 진출한 팀이었습니다. 자연스레, 라바디아 감독도 더 큰 도전, 더 큰 시험대에 오른 셈이었고, 동시에, 더 큰 성장을 이룰 기회를 잡은 셈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그는 끝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냈고, 분데스리가 32라운드, TSG 1899 호펜하임 상대 1 대 5 참패 이후, 경질됐습니다. UEFA 유로파 리그 4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DFB-포칼에서는 두 번째 단계에 탈락을 경험했고, 분데스리가에서는 7위에 머물렀습니다. 2008년, 바이어 04 레버쿠젠에 부임한 시점부터, 2010년 4월, 함부르거 SV에서 경질될 때까지, 이 기간, 라바디아 감독의 경력을 종합해 보면, 나름대로 공격적인 지향점을 갖고, 역동적인 축구를 시도했지만, 막상 맡았던 클럽의 기대치를 고려할 때, 기대치를 한참 밑도는 결과지를 들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분데스리가 전반기의 막이 내리고, 모두가 겨울 휴식기 돌입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2010년 12월, 브루노 라바디아는 VfB 슈투트가르트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이때, 슈바벤은 분데스리가 열여섯 경기를 치르는 동안, 고작 승점 12점을 쌓는 데 그쳐, 순위표 뒤에서 두 번째 자리에 머물며, 전반기 마지막을 장식할 FC 바이에른 뮌헨과 한판을 남겨놓고 있었습니다. 클럽은 시즌 개막 후, 분데스리가 최하위까지 떨어지자, 빠르게 크리스티안 그로스 감독을 경질하고, 옌스 켈러를 새로운 사령탑으로 모셔 왔지만, 켈러 감독 밑에서도 강등권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다시 두 달여 만에, 시즌 '세 번째 감독'을 선임하기로 결정, 라바디아에게 기대를 걸었습니다. 라바디아 감독은 겨울에 허이널 타마시를 데려와, 2선 중앙에 배치, 경기 조율을 맡겼고, 그를 중심으로 4231 대형과 442 다이아몬드 대형을 세워, 상황을 개선해 나갔습니다. 후반기에 9승 3무 5패의 성적(후반기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내서 당장 순위도 끌어올렸고, 경기력도 안정세를 찾았습니다. 이 계절, VfB 슈투트가르트의 분데스리가 최종 순위는 위에서 열두 번째. 이때부터 라바디아 감독은 본격적으로, "특급 소방수"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합니다.
다시금 지도력을 인정받은 브루노 라바디아는 이듬해에도 슈바벤과 함께할 기회를 잡았는데, 이번에는 대회 17골을 터뜨린 마틴 하니크(현 함부르거 SV 소속 공격수; 원소속은 SV 베르더 브레멘)와 후반기 합류한 뒤로 여덟 골을 몰아친 "겨울 신입생" 베다드 이비셰비치의 화력을 앞세워서 분데스리가 6위를 차지, UEFA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손에 넣었고, DFB-포칼에서도 8강(FC 바이에른 뮌헨에 0 대 2로 패해 탈락)에 진출하는 등,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역시, 후반기에 보여준 상승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해가 바뀌고, 분데스리가 17경기에서 9승 4무 4패의 성적을 냈는데, 18라운드 이후, 그보다 좋은 성적을 낸 클럽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FC 바이에른 뮌헨, 딱 둘뿐이었습니다. VfB 슈투트가르트는 분데스리가 63골을 기록했으며, 이 역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80골), FC 바이에른 뮌헨(77골), FC 샬케 04(74골)에 이은 4위였습니다. 바로 이때가 라바디아의 지도자 경력에서 가장 빛난 일 년으로 으레 평가받습니다. 공격에서 여러 선수가 자기 몫을 해줬고, 허리에는 크리스티안 겐트너(현 1. FC 우니온 베를린 소속 미드필더)와 빌리암 크비스트가, 최종 수비선에는 세르다르 타시츠가 버텼습니다. 허이널을 중심으로 짠 감독의 4231 대형과 전술도 그런대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다음 시즌, 초반에 찾아온 부진 탓에 이르게 경질되기는 했지만, 슈투트가르트에서 라바디아는 썩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고 할 만합니다.
사실상, 모든 지도자에게 통용되는 이야기지만, 브루노 라바디아에게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여태 지휘한 클럽 중, 이 년 넘게 팀을 만들 시간을 부여받은 곳에서는 제법 좋은 성과를 거뒀고, 특히, 공격적인 면에서 팀을 잘 개조했습니다. 당시, 하위 무대에 속한 클럽이기는 했지만, SV 다름슈타트 98에서 출발하며 그랬고, VfB 슈투트가르트에서 그랬으며, 지난 시즌, VfL 볼프스부르크에서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과연 "특급 소방수", 그 이상의 역량을 지닌 감독인지에 관한 물음에 확답할 수 없는 까닭은 그가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채 이끈 클럽이 몇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슈바벤과 뵐페에서 두 번째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뒤에는 경기장을 떠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세 번째 시즌, 부진한 출발의 책임을 지고 경질당했고, 볼프스부르크에서는 계약 연장에 실패했습니다. 전반기보다는 후반기에 더 나은 경기력을 보여 주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새 시즌 출발이 좋지 않아서 희생된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다시, 브루노 라바디아는 자기 능력을 검증받을 만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적이 없다고 변호할 수 있습니다. 그가 경험이 풍부하고,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인사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새로운 감독이 됐다는 소식을 접한 축구광들이 그의 성공을 확신하거나, 그의 밑에서 대략적인 "경기 그림"을 좀처럼 그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라바디아가 이끈 팀들의 전체적인 무게 중심은 언제나 중앙선 위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는 파트리크 헬메스와 슈테판 키슬링, 두 최전방 공격수의 파괴력을 앞세워서 상대 수비를 찍어 눌렀고, 함부르거 SV에서는 피오트르 트로호프스키와 다비트 야롤림, 제 호베르투, 엘제로 엘리아(현 이스탄불 바샤크셰히르 FK 소속) 등, 미드필더들의 공격력을 극대화했습니다. VfB 슈투트가르트에서는 허이널 터마시를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했고, 마틴 하니크와 베다드 이비셰비치 같은 선수들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지난 시즌, VfL 볼프스부르크에서는 측면 수비수들의 공격적인 움직임이 눈에 띄었고, 바웃 베흐호르스트가 선봉서 고군분투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지금껏, 구성된 분대에 맞게 '공격력 강화'라는 목표를 실현해 왔다고 할 수 있으나, 동시에, 감독의 철학, 그 가운데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다소 모호했고, 골을 만들기 위한 세밀한 접근법이 부재했다고 풀이될 여지도 있습니다. 오늘, 라바디아 감독 선임에 베를린 노파의 안방 응원단이 가장 불안해하는 점은 결국, 하나의 거대한, 지속 가능한 톱니바퀴가 도통 그려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지난 시즌에 브루노 라바디아 감독이 지도한 VfL 볼프스부르크는 433 대형에 기반을 둔 "점유율 축구"를 첫 번째 경기 계획으로 활용했습니다. 쿤 카스테일스가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고, 윌리앙과 로빈 크노헤, 존 앤서니 브룩스, 제롬 루시용이 최종 수비선을 구축했습니다. 역삼각형 중원에는 조슈아 길라보기를 중심으로, 야니크 게르하르트와 막시밀리안 아놀트가 포진했고, 주로, 레나토 슈테펜과 바웃 베흐호르스트, 아드미르 메흐메드가 전방 세 명의 공격수로 나섰습니다. 다니엘 긴체크와 요시프 브레칼로도 제법 많은 경기에 뛰었고, 허리에서는 엘비스 레즈베차이와 유누스 말르(지난겨울에 1. FC 우니온 베를린으로 임대 이적했습니다)가 주요 교대 자원으로 활약했습니다. 긴체크가 나올 때는 442 다이아몬드 대형에 가까운 운영을 선호했으나, 늘 그렇듯, 그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기간이 너무 길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아우토슈타트의 늑대 군단은 경기당 평균 52.5%의 공 점유율을 가져와, 이 부문 분데스리가 다섯째에 올랐고, 측면에서 가운데로 감아올린 시도는 네 번째로 많았습니다. 좌우 측면 수비수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고, 경기장 가운데 두 명의 미드필더, 곧, 역삼각형 중원의 위쪽 두 선수는 흔히 말하는 "아흐터(Achter ='8번')"와 "체너(Zehner ='10번')"의 옷을 번갈아서 입었습니다. 뒤쪽에서부터 공격을 만들어서 올라갔는데, 쿤 카스테일스 골키퍼의 첫 번째 배송 목적지는 대개, 공을 받으려고 내려온 조슈아 길라보기였습니다. 길라보기가 압박당하면, 공은 수문장에게로 돌아가거나, 두 명의 중앙 수비수로 넘어갔는데, 이때, 윌리앙과 제롬 루시용 등, 좌우 측면 수비수가 너른 공간에 포진하여, 다음 공을 잡는 선수의 선택지를 늘려주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로빈 크노헤나 존 앤서니 브룩스는 주로, 압박이 헐거워져 있는 경기장 가운데, 아흐터에게 공을 넘겼으니, 이는 직선적인 축구로 상대 일차 압박을 풀어내고, 빠르게 공격을 조립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윌리앙과 루시용은 사실상 '미끼'였던 셈이고, 실질적인 공격 전개 중, 긴 패스 비중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VfL 볼프스부르크는 경기당 평균 42.6개의 긴 패스를 연결, 이 부문 분데스리가 전체 선두를 차지했고, 전체 패스 시도 중 긴 패스 비율은 16.4%로, 경기당 평균 50% 이상 점유율을 기록한 팀 가운데 제일 높았습니다. 크노헤와 브룩스 모두, 90분당 열 개 이상의 긴 패스를 뿌렸는데, 이는 대부분, 측면 높은 위치로 공을 전달하거나, 반대편으로 공격 방향을 바꾸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때때로 한 번의 패스만으로 상대 수비 뒤의 공간을 공략할 때는 주로 바웃 베흐호르스트가 그 출구로 나섰고, 직접 공을 따내서 골을 노리거나, 주변 동료에게 공을 연결,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중앙에서 공중 경합 이후, 땅에 떨어지는 공의 소유와 그를 즉각 슈팅으로 전환하기는 브루노 라바디아 감독의 경력 중 뒷전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겨룬 18개 클럽의 경기 성향을 전방 압박 강도(High Press)와 측면에서 가운데로 공을 감아올리는 공격 형태의 활성도(Crossing), 공격권 점유도(Ball Possession), "선 굵은 전개"의 활용도(Direct Play) 등, 네 개 큰 범주로 나누어 분석해 보면, 브루노 라바디아 감독의 볼프스부르크가 유독, 길게, 빠르게 공을 앞으로 보내는 데 집중했고, 높은 위치에서부터 상대를 흔드는 데 힘을 다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늑대 군단은 지난 시즌, FC 바이에른 뮌헨과 바이어 04 레버쿠젠, RB 라이프치히에 이어, 분데스리가에서 전방 압박 효율 4위를 기록했습니다. 라바디아 감독은 상대 공격 단위 초장부터 측면 활용을 강제하고자 했습니다. 좌우 측면의 날개 공격수와 바웃 베흐호르스트가 중앙의 선수들과 일대일로 맞서면서 시동을 걸었고, 바라던 대로, 옆줄 근처로 공이 나가면, 레나토 슈테펜과 아드미르 메흐메디는 곧장 공 받는 선수를 괴롭히고, 허리의 선수들이 다음으로 공이 구를 수 있는 길목을 차단하려 움직였습니다. 역삼각형 중원의 맨 아래 꼭짓점으로 활약한 조슈아 길라보기는 이때, 두 명의 아흐터 뒤에 버티며, 경기장 가운데 빈 곳을 채우기 위한 전방위 움직임을 가져갔는데, 일차적인 압박 시도가 무위에 그치면, 속도를 살려서 올라오는 상대 공격 흐름을 지연하거나, 아예 공을 빼앗아 오는 임무를 그가 맡았습니다. 고로, 공격 작업 시, 첫 번째 공 받는 선수가 돼, 상대를 끌어당기고, 공격권이 상대편에 있을 때는 공간을 막는 움직임으로 팀 전체 균형을 잡는, 공수 양면에서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됐던 길라보기입니다. 경기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이 완전히 바랬던 25라운드, FC 바이에른 뮌헨과 일전에 아우토슈타트 클럽이 0 대 6으로 참패를 당한 일은 절대, 우연한 결과나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한편, 비교적 덜 두드러지는 크로스 활성도는 브루노 라바디아 감독이 이끈 VfL 볼프스부르크의 여러 득점 장면에, 공격이 조립될 때는 너른 공간에 자리 잡고 있던 좌우 날개 공격수가 어느 순간, 가운데로 침투하여, 마지막 동료의 '전달'을 받은 뒤, 직접 마무리하는 모습을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라바디아 감독은 페널티 구역에 최대한 많은 숫자를 밀집시켜, 상대 수비를 어렵게 만들고자 합니다. 그가 그의 공격수에게 요구하는 거의 모든 조건을 갖춘 바웃 베흐호르스트는 때로 크로스가 날아들면, 그로부터 비교적 가까운 지점과 먼 지점을 오가며 골을 노리기도 했지만, 빠른 발과 넓은 활동 반경을 살려, 레나토 슈테펜이나 아드미르 메흐메디가 가운데로 들어올 때면, 측면으로 돌아 뛰면서 중앙의 수비수를 끌고 나가, 동료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만일, 브루노 라바디아 감독이 지난 시즌에 아우토슈타트에서 구사한 전술을 그대로 베를린으로 가져오고자 한다면, 좌우 측면 수비수의 역량이 강조되고, 역삼각형 중원의 아래쪽 꼭짓점에 서는 선수, 곧, 조슈아 길라보기가 늑대 군단에서 입은 옷을 넘겨받을 선수의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헤르타 BSC는 오는 여름, 무려, 여덟 명의 주요 선수와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미 슈투트가르트에서 라바디아 감독과 함께한 바 있는 베다드 이비셰비치, 임대 계약이 끝나는 마르코 그루이치와 마리우스 볼프, 살로몽 칼루, 알렉산더 "에시" 에스바인, 토마스 크라프트, 페테르 페카리크 등, 경험 많은 선수들이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을 떠날 수 있습니다. 올랭피크 리요네로부터 뤼카 투자르가 합류할 예정이고, 지난겨울에 노리치 시티 FC로 임대 이적한 온드레이 두다도 우선, 복귀할 가능성이 높으나, 결국, 라바디아 감독이 공격 위주의 축구를 펼치기 위해서는 기회를 노려, 분대를 살찌워야 합니다. 산티아고 아스카시바르와 투자르, 블라지미르 다리다, 아르네 마이어 등이 버틸 중원에 그런대로 무게감이 있으나, "길라보기의 바로 그 역할"을 맡을 한 명을 찾으라면, 각자 의문부호가 존재하고, 더불어, 새로운 조합에 대한 고민이 남습니다. 오른쪽 측면 수비수도 구해야 하는데, 발렌티노 라차로가 지난 시즌의 맹활약을 뒤로하고 떠난 이래, 루카스 클륀터와 볼프가 그를 대신했으나, 이번 시즌, 둘 다 그다지 만족스러운 모습은 아닙니다. 페카리크와 재계약 가능성이 있는 이유입니다. 제일 큰 문제는 최전방에 있습니다. 1월 이적 시장에 큰돈을 들여서 크시슈토프 피옹테크와 계약했는데, 그는 라바디아 감독이 선호하는 유형의 선수가 아닙니다. 라바디아 감독은 비단 지난 시즌에만이 아니라, 그가 거쳐온 거의 모든 곳에서, 키가 크고 신체적인 바탕이 좋은 공격수와 호흡을 잘 맞췄습니다. 레버쿠젠에는 슈테판 키슬링이 있었고, 슈바벤에서는 이비셰비치가, 볼프스부르크에서는 바웃 베흐호르스트가 활약했습니다. 피옹테크는 골을 잘 노리는 공격수로서 매력이 있지만, 강도 높은 신체 경합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위치 선정을 영리하게 해서 긴 패스의 출구 역할은 어느 정도 해내도, 상대 선수와 몸을 부딪쳐서 공을 지켜주기까지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와 비교하면, 오히려, SV 베르더 브레멘으로 임대 이적한 데이비 젤케가 라바디아 감독과 더 잘 맞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분데스리가 일정 중단 이후, TV 중계권료 수입이 줄어들어, 당장 지출을 동결한 헤르타 BSC이지만, 여름 이적 시장에 또 한 번, 만만치 않은 과제와 마주할 운명입니다.
브루노 라바디아는 그 특유의 "소방수"로서 강한 인상 때문에 분데스리가에서 제일 과소 평가된 축에 속하는 감독일 수 있고, 반대로, 몇 번의 짧았던, 단편적인 성공만으로 지도자로서 여러 단점이 가려진,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고평가된 감독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걸어온 길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아주 다른 두 이야기가 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헤르타 BSC에는 당장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위르겐 클린스만이 무례하게 떠난 뒤로, 새로운 사령탑 후보로 제일 간절히 원해 온 니코 코바치에게서 "여름 부임"에 관한 확답을 계속 못 받고 있었고(원래는 코바치가 여름에 계약서에 서명한다면, 그때까지 알렉산더 누리 대행 체제를 끌고 갈 심산이었는데, 코바치, 전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은 한 언론 매체와 만난 자리에서 "가치 있는 곳"으로 갈 준비가 됐다고 말하는 등, 사실상, 헤르타 BSC 감독직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또,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여, 불가피하게 독일 프로축구 상위 무대, 모든 경기장에서 공 구르기가 멈춘 터라, 올여름에는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기 위한 기간이 단축될 수밖에 없으므로, 라바디아 감독을 들이기로 한 선택은 어쩌면, 주어진 제일 현실적인 안이었습니다.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합니다. 라바디아 감독에게는 시간이 필요하고, 슈프레아테너에는 성공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함께 가기가 제일 까다로운 둘(시간과 성공)이지만, 미하엘 프레츠 전무이사가 11년째 지속된 그의 시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열네 번째 감독으로 라바디아를 선택한 이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적절히 조율해 나갈 각오가 필요합니다. 라바디아는 과거, 레버쿠젠에서 그 직선적인 성격 탓에, 선수단과 팬들은 물론, 구단 수뇌부와도 마찰을 빚은 적이 있습니다. 이미, 클린스만과 곤욕을 치러야 했던 클럽인 만큼, 그와 관계 형성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현장과 책임자들이 서로 같은 목표, 야망을 공유해야 합니다. 상황이 현실을 직시하게 했을 수도 있고, 불안감이 당장 가능한 한 선택을 하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과 성공, 이상과 현실, 그리고 "낮게 매달린 열매"에 가득 들어찬 야심. 새로운 사령탑은 정해졌으니, 헤르타 BSC의 앞으로 행보가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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