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3. 16:00ㆍ#HaHoHe
지난 2007년부터 작년 여름까지 헤르타 BSC의 파랗고 하얀 유니폼을 입고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을 누빈 파비안 루스텐베르거가 지난주, 베를린 일간지, <<타게스슈피겔>>과 만났습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베를린에서 보낸 지난 12년의 세월과 스위스로 돌아간 이후의 생활, 그리고, '지금'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Q1. 루스텐베르거씨(Herr Lustenberger), 지난 몇 주간, 혹, 더는 헤르타 BSC에 몸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기쁘지는 않았나요?
사실, 그랬습니다. 식구들이 스위스에 머무는 동안, 홀로, 베를린에서 이 주간, 자가 격리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입니다. 때때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요즈음 같은 때는 최선인 듯합니다.
Q2. 요즈음, 당신의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마치, 하루하루가 휴가처럼 느껴집니다. 아이들이 집에 있고, 매일, 한 시간 반 동안 소화해야 하는 운동 프로그램만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가족에게로 돌아갑니다.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한답니다.
Q3. 훈련 계획은 어떻게 구성되나요?
코칭스태프는 운동이 너무 단조로워지지 않도록, 전부 다양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날은 실내에서 운동하고, 또 어떤 날은 달리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는 식입니다. 목요일에 처음으로 화상 세션을 가졌습니다. 오랜만에 동료들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일이 언제, 어떻게 계속될지 모르니, 전반적으로 어렵습니다.
Q3-1. 공은...
그립습니다. 무척이나 많이. 하지만, 공뿐 아닙니다. 동료들과 함께하는 공간, 대기실에서 삶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습니다. 휴가 때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그때는 삼 주 뒤면, '다시 시작할 시점'이라고 알 수 있습니다.
Q3-2.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아주 다르죠.
못해도 4월 19일까지는 모여서 훈련할 수 없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집에 머뭅니다. 저는 상황이 허락해, 최소한, 팀 훈련이 열리고, 공을 갖고 운동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으로서는 (상황이) 그리 보이지 않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름다운 만큼이나, (다른 한편으로) 언젠가는 일터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겁니다.
Q4. 여유를 틈타 베를린의 옛 동료들과도 연락을 좀 해봤나요?
연락은 늘 했습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조금 덜했나 봅니다.
Q4-1. 왜요?
하루하루가 똑같기 때문입니다. 서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물리 요법사들이나, 페어 셸브레드와 정기적으로 연락합니다. 비록, 지금은 베를린에 있지 않지만(역주: 젤케는 1월에 임대 계약을 체결하고, 브레멘으로 옮겼습니다), 데이비 젤케와도 가끔 문자를 주고받습니다. 그게 거의 답니다. 이제는 제가 잘 모르는 새로운 선수가 헤르타 BSC에 많습니다.
Q5. 지난여름에 이적한 뒤로, 다시 베를린에 와 본 적이 있나요?
작년 11월, 국제 경기 휴식기에 이틀 정도, 베를린을 찾았습니다. 헤르타 BSC에도 들러서, 잠시 대기실에 머물다가, 몇몇 사람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Q6. 헤르타 BSC의 행보는 얼마나 가까이 따르고 있나요?
가능한 한 최대로 따릅니다. 아무래도 제가 베를린에서 뛰던 때만큼은 아니지만, TV로 경기를 시청하고, 언론에 보도되는 이야기도 확인합니다. 선수 개개인과 연락하면서도 소식을 듣는데, 아마, 언론를 통해서보다도 그편으로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웃음).
Q6-1. 이번 시즌에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Q6-2. 위르겐 클린스만과 그의 사임을 둘러싼 온갖 소동을 어떻게 보셨나요?
대다수의 다른 사람과 같이 봤습니다. 오직 소수만이 "훌륭한 행동!"이라고 말한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감히 평가/판단할 수 없습니다. 언론을 통해 나온 이야기들을 당연히 알지만, 구단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제가 한 발짝 물러서는 이유입니다. 단, 클린스만이 작별을 택한 방식은, 확실히, 헤르타 BSC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Q7. 헤르타 BSC는 현재, 13위에 머물러 있어요. 강등권과 승점 차는 6점이죠. 이전 클럽의 상황이 계속 염려되나요?
물론, 저도 상황을 살피고, 경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클럽에서 보냈는데,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야말로, 이상합니다 - 그 반대입니다. 하지만, 걱정은 안 됩니다. 헤르타 BSC가 충분히 좋은 상태이기 때문이고, 경쟁하는 다른 팀들이 위협이 될 정도로 많은 승점을 쌓지는 못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회가 끝까지 진행된다면, 저는 헤르타 BSC가 그를 엮어, 분데스리가에 잔류하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Q8. 당신은 헤르타 BSC와 12년을 동행했고, 독일에서 12년을 보냈죠. 너무 오래 지나, 고향으로 돌아가자, 심지어는 아직 당신이 스위스 독일어(역주: 스위스에서 쓰는 독일어는 독일에서 쓰는 독일어와 단어, 표현, 발음 따위가 많이 다릅니다)를 할 수 있는지 질문받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아직 작동합니다. 사실, 점점 나아집니다. 집에서도 표준 독일어를 사용하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큰 변화로 다가왔습니다. 어디선가 표준 독일어가 들리면, 금세 그에 따라가기도 하지만, 제 스위스 독일어는 나날이 개선됩니다. 어휘력을 되찾는 중이라고 해두겠습니다.
Q9. 베를린을 떠나, 주민 숫자가 적은 마을로 이사했어요. 대도시의 습성이 당신과는 잘 안 맞았나요?
저는 주민 수가 적은, 한적한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베를린을 떠나, 사람이 적은 곳으로 옮긴) 이 일은 제 뿌리로 돌아온 셈과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베를린에서 절대 잊고 싶지 않은, 멋진 나날을 보냈습니다. 베를린과 같은 대도시가 나쁘다는 인상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 전혀 없습니다. 저는 베를린에서 12년을 보낼 수 있어서 기쁩니다. 도시는 매우 훌륭합니다. 동시에, 저는 집에 돌아와서 기쁩니다. 요즈음 같은 때는 특히, 대도시보다 시골이 조금 더 쾌적하고, 편안합니다.
Q10. 분데스리가에서 스위스 수퍼 리그로 옮기며 받은 스포츠 문화적 충격은 얼마나 컸나요?
전혀 크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비교하지 않기로 했고, 분데스리가에서 무엇이 더 좋았고, 더 아름다웠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를 취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물론, 루가노에서 2,000명가량 관중 앞에서 경기하면, 무언가 조금 다릅니다. 하지만, 경기장에 얼마나 많은 관중이 들어왔는지에 관계없이, 언제나, 경기에 이기기가 제일 중요합니다. 저는 스위스가 점점 힘이 빠진다고 생각합니다. 유럽 최고의 대회를 두기에는 나라가 너무 작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우 좋은 기반을 갖추고 있습니다.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Q11. BSC 영 보이즈와 당신은 슈퍼 리그 2위를 달리고, 슈바이처 컵에서도 8강전에 진출했지만, UEFA 유로파 리그에서는 조별 단계에 고배를 마셨어요. 베른에서 일 년의 사분의 삼을 보낸 뒤, 성과를 돌아본다면요?
아마, UEFA 유로파 리그에서 하나만 제외하면, 경기장에서 결과는 사실, 잘 나고 있습니다.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우리가 누구를 상대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FC 포르투에 두 판을 모두 졌지만, 레인저스 FC와 페예노르트 로터르담을 상대로는 승점 넉 점씩을 쌓았습니다. 준수한 결과였는데, 불행히도, 그다음으로 이어지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저는 우리의 UEFA 유로파 리그에서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예선전(역주: BSC 영 보이즈는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만나, 1•2차전 합산, 3 대 3 무승부를 거뒀지만, 원정 다득점에 밀려, 최종 승자가 되지 못했습니다)만 짜증스러웠습니다.
Q11-2.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와 두 번 비기고, 떨어졌죠.
제 생각에는 우리가 더 좋은 팀이었지만, 아마 그 수준에는 부족했나 봅니다. 우리가 다음 단계를 밟으려면, 아마, 한 끗이 더 필요합니다. 우리가 내년에도 유럽 클럽 대항전에 나서서, 더 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Q12. 당신은 (이적하자마자) 곧장, BSC 영 보이즈 주장이 되었어요. 감독의 지시였나요?
감독님이 제게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셨는데, 저는 선수단 지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주장이 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선수들도 동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필요한 지원을 받습니다. 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Q12-1. 감독이 왜 새롭게 팀에 합류한 당신에게 그 임무를 맡기려 했는지 설명해 줬나요?
우리 팀이 아주 젊은 편이라, 감독님께서 해외에서 뛴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 줄 주장을 원하신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주장 완장 없이도 그를 위해 노력했을 겁니다. 대중의 눈에 주장직은 늘, 실제보다 큰 의미를 내포한 듯 비치지만, 제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Q12-2. 당신이 팀 내에서 높이 존경받는다고 읽었어요.
그렇게 읽었다면, 아마, 사실일 겁니다 (웃음). 진지하게, 아닙니다. 저는 팀에 잘 녹아들었고, 당신이 보듯, 클럽의 현재 위치도 좋으며, 저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러한 점들이 제 성취에 반영됐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족하는 이유이고, 제가 느끼기에, 베른에서도 저를 잘 봐주는 듯합니다.
Q13. 제리 세오아네는 사실, 시즌 전에 헤르타 BSC에서 다르더이 팔의 뒤을 이을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이에요. 세오아네 감독과 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나요?
아뇨, 우리는 그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 팀 외에 그의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고, 없습니다.
Q13-1. 헤르타 BSC가 또 새로운 감독을 찾는 중인데요.
아직, 아무도 제게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헤르타 BSC가 제게 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을 겁니다.
Q14. 제리 세오아네는 어떤 감독입니까? 무엇이 그를 특별하게 합니까?
그는 과거, 루체른에서도 그랬고, 지금, 베른에서도 그렇고, 잘하고 있고, 어느 시점엔가,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매우 야심적이고, 많이 요구하며, 자신과 팀에 높은 성취 기준을 적용합니다. 매 훈련 단위에 그를 볼 수 있습니다. 매 단위, 매 경기에 그는 최고를 뽑아내길 원합니다. 그는 그를 선행하고, 우리에게 존경받습니다.
Q15. 마지막 질문인에요. BSC 영 보이즈에서 데뷔하던 날, 팀원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어요. 어떤 노래를 골랐나요?
독일 힙합 밴드, 블루멘토프(Blumentopf)의 <6 Meter 90>를 골랐습니다. 솔직히, 조금 긴장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무대 중 '사고'는 없었습니다 (웃음).
Q15-1. 자주 노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한 클럽에 오래 머무르면, 좋겠네요.
맞습니다. 제가 헤르타 BSC에 왔을 때는 그런 관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저는 처음으로, 팀 앞에서 노래해야 했습니다. 나빴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해냈습니다. 끝나서 기뻤습니다.
Q15-2. 슬리퍼가 날아들지는 않았어요.
심지어는 박수갈채도 있었는데, (저뿐 아니라/무대를 꾸민) 모두에게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 무대가 어땠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습니다.
파비안 루스텐베르거는 무려, 12년 동안, 베를린에서 생활하며, 308경기를 뛰었고, 그중 분데스리가 경기는 220경기에 달했습니다. 지난 시즌에도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 속, 독일 프로축구 최상위 무대 경기에 스물아홉 번, 모습을 비추었고, 언제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 "젝서("Sechser")"와 최종 방어선 가운데, 중앙 수비 자리를 오가며, 선수단에 발생한 틈을 메워 주었습니다. 이미 이곳에서, 그는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간 이번 시즌에는 슈퍼 리그 18경기를 포함해, 총 27경기를 뛰며, BSC 영 보이즈의 핵심으로 활약합니다. 루스티는 헤르타 BSC가 재정난에 헐떡이며,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던 시절을 함께 지났고, 두 번의 2. 분데스리가 강등과 한 번의 UEFA 유로파 리그 진출을 목격했습니다.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마지막 안방 경기,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호각 소리가 울리기 전, 정든 올림피아슈타디온 오스트쿠어베(=안방 응원석)과 인사하며, 눈물을 쏟은 그입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벌써, 꽤 오랜 시간, 잔디 위를 누볐지만, 1988년생인 루스티는 아직, 만 31세에 불과합니다. 베를린 노파를 따르는 축구광들은 그가 은퇴하는 날까지, 그의 경력을 응원합니다. 언젠가, 프로 선수로서 첫 번째 막이 내리면, 그가 베를린으로 돌아와,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파비안 루스텐베르거는 최근, <<슈포트1(Sport1)>>와 인터뷰에도 응했는데, 여기서 그는 헤르타 BSC의 브루노 라바디아 감독 선임을 "좋은 선택"이라고 표현하며, 라바디아 감독은 선수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팀을 발전시키는 데 강점이 있으며, 예전에는 분데스리가에서 그가 그저, "특급 소방수" 정도로만 여겨졌지만, 지난 시즌에 VfL 볼프스부르크에서 보여 주었듯, 팀을 재건해 내는 능력도 뛰어난 인물이라고 평했습니다. 또한, 라스 빈트호스트와 테너 홀딩 B.V.의 투자에 대해, 돈으로 당장 성적을 살 수 없고, 시간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싹이 틀 때까지, 모두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Hermanns, S. (2020, April 5). Fabian Lustenberger im Interview: "Ich mache mir keine Sorgen um Hertha BSC". Tagesspiegel. https://www.tagesspiegel.de/sport/ich-mache-mir-keine-sorgen-um-hertha-bsc-74709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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