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 창조된 세계 속 주인공의 공포감이 관객의 경험으로

2024. 12. 22. 20:0035mm

 "Everything, everything in the body is a process. Including death.", Enriquez, M. (2024). A sunny place for shady people (McDowell, M., Trans.). Granta Books.

 

 2021년, 메건 맥다월에 의해 영문으로 번역, 출판된 <<The Dangers of Smoking in Bed (Los peligros de fumar en la cama (2009); 한국어판 제목은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로 국제 부커상 후보에 오른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고전 공포 소설의 작법에 현대적인 자기 언어를 입혀, 아르헨티나와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 문제를 꼬집기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1973년 12월생인 그는 독재 치하 아르헨티나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공포 영화, 문학으로부터 자신만의 언어를 찾았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실제 있었던 끔찍한 사건을 제재로 공포 문학을 써 내려감으로써 (주로 라틴 아메리카 밖에서) 피해자들의 고통을 장르 문학에 이용하기가 너무 착취적이라고 비판도 받으나, 엔리케스는 공포가 우리 감정의 필수적이고 구성적인 요소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하며, 자신을 변호합니다. 사실, 때로는 공포가 좋기도 하다며. 생존하고, 감추고, 이입하고, 실상의 공포에 대한 예행연습이 되므로. 오늘날, 우리 삶의 테러, 폭력으로는 가난과 중간 계급의 점차적인 소멸, 영구적인 경제적 불안정성, 망명, 지나친 관료주의, 정치적인 광적 흥분, 범죄적인 상황들과 고통, 탄압 따위를 듭니다. 개발 도상국의 이촌향도 현상 역시, 작가의 작품 중에 종종 그려집니다. 엔리케스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뉴욕 타임스>>의 질문에 "라틴 아메리카 사람"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앞으로도 자신은 그와 같은 사회 문제를 자기 언어로 고발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엔리케스는 "라틴 아메리카 여성"으로서 자기 정체감을 느낍니다. 신체적인 결정권을 보호해 주는 법의 울타리가 부재한 중에 성차별적일 뿐 아니라, 빈약하고 제한적인 구직 시장에서 자신을 위해 싸우며 성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공포감을 주는 장치가 까닭 없이 쓰이지 않습니다. 작가는 여성 혐오와 독재, 붕괴, 학대와 성적인 폭력, 빈곤 등, 실재하는 괴물들에 초자연적인 렌즈를 덧씌우는 형태로 그 장르를 빌려 옵니다. 다시, 그의 언어가 그가 보고 들은, 경험한 테러를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 제77회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 2024)에서 초연하고 각본상(Prix du scénario)을 탄 뒤, 9월 셋째 주, 독일 내 여러 상영 스크린에 걸린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를 관람하고 극장 문을 나서며, 엔리케스의 수필을 떠올렸습니다.

 

ⓒ MUBI

 

 

 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빚어낸 영화 <서브스턴스>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제아무리 두드러지는 신체적 특징을 확인했을지라도 그 점만으로 서로를 '의심 없이' 알아봤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매일 마주치는 상대조차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젊은 날의 외모를 되찾겠다는 굳은 각오로 이미 비밀스러운 자기 활성화 약물,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를 주입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주사하여 얻은, 목 바로 아래서부터 꼬리뼈까지 척추를 타고 이어지는, 괴상한 흉터를 통해서라면 모를까. 이 흉터는 "서브스턴스"의 효과로 사용자의 뼈, 근육과 피부 조직을 모두 찢고, 그의 어리고, 더 탱탱하며, "더 나은" 모습이 세상에 나온 흔적입니다. 아무 문제 없이, 이를 "영광의 흉터"로 남기는 조건은 단순한 듯 엄격합니다. 그 "더 아름다운" 인물의 모습이 단일하고 고유한 독자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양새가 서로 다른 둘이 실은 한 명의 사람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일주일마다 그 두 모습(자아)이 "교체(switch)"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예외"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파르자 감독이 세운 영화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도 우연한 계기로 접한 "서브스턴스"를 주문, 자기 팔오금에 놓았습니다. 과거에 영화배우로, 현재 "Sparkle Your Life with Elisabeth"라는 쇼를 진행하는 운동 강사로, 카메라 앞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을 정도로(적어도 감독이 빚어낸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그를 직관적으로 떠올리게 할 만한 별을 받을 정도로) "잘 나갔지만", 흐르는 세월 속에 나이를 먹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살아 있지만, 극이 시작했을 때 이미, (정신적으로) 죽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내건 방송의 제작 책임자, 하비(드미 무어보다 여덟 살 많은 데니스 퀘이드가 연기했습니다)가 돌연히, 그가 카메라 앞에 세우기에 너무 나이가 많다며 훨씬 어리고, "예쁜" 여성을 찾아 나선 탓(여자 화장실 이용이 불가하여 급히 들어간 촬영장 남자 화장실에서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하비의 통화 내용을 엿들은 뒤로 내면에 균열이 가, 어쩌면, 스스로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현실'이 터져 나와 그를 마주한 듯합니다)입니다. 결국, 그 조건에 부합하는, "더 나은 나"를 갈망하며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를 주입, "또 다른 자아(The Other Self)"에 생명을 불어넣고(activate), 깨어난 그에 "수(SUE;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를 사용하며 배정받은 번호, 503과 문자가 직관적으로 닮기도 했고, 그 숫자를 계산기에 입력하여 "SUE"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수의 등장과 함께 렌즈와 필터의 변화로 만들어진 강렬한, 다소 과장된 분홍빛(반면에 엘리자베스는 깨어지는 특성의 달걀노른자를 연상시키는 채도 높은 노란색 코트를 입고 등장하여, 극의 후반부로 향할수록 탁해지는 색으로 상징됩니다)이 그 관능적인 유혹 속으로 관객을 빨아들입니다. "Pump It Up with Sue".

 

ⓒ MUBI

 

 "For I do not exist: there exist but the thousands of mirrors that reflect me. With every acquaintance I make, the population of phantoms resembling me increases. Somewhere they live, somewhere they multiply. I alone do not exist.", Nabokov, V. (1965). The eye (Nabokov, D., Trans.). Phaedra.

 

 1955년에 출판된 <<롤리타 (Lolita)>> 저자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아직 뉴욕으로 망명하기 전인 1930년, 베를린에서 러시아어로 펴낸 작품, <<The Eye (Соглядатай)>>가 있습니다. 100쪽 남짓한 분량의 이 소설은 베를린에 사는 러시아인 가정 교사, 일인칭 주인공이 마틸다라는 여성과 불륜하다가 남편으로부터 구타를 당한 뒤, 자살을 기도하며 시작합니다. 책의 나머지 부분은 화자가 산 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들 삶을 관찰하고, 거기 집착하는 내용에 할애됩니다. 종장(빈티지 북스 1990년 판본 103쪽)에 소설 속 "나"는 우리 대부분은 타자의 눈으로만, 타자가 우리 삶의 일부를 어림잡아 살필 때 우리에 관하여 떠들어 대는 이야기로만 자신을 스스로 돌아본다는 (자주 인용되는) 깨달음에 도달합니다. 고로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없고, 내가 비치는 수천의 거울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황량함이 <서브스턴스>의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보이는 자기혐오에서 읽힙니다. 감독이 나보코프의 유명한 문장을 의식했는지는 그가 직접 밝히지 않는 한,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엘리자베스의 세상은 그야말로, 온통, 거울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비의 통화를 엿들은 촬영장 남자 화장실에 비치된 거울과 약물을 주사하고 깨어나 처음으로 수의 모습을 마주한 널찍한 화장실의 직사각형 거울부터, 광택 나는 문손잡이나, 주인공의 삶, 그 자체를 상징하는 도발적인 색채의 촬영장 복도 벽면에 달린 대형 액자들, 집에 걸어둔 커다란 자기 사진, 집 조망에 들어오는 거대 광고 스크린에 이르기까지, 엘리자베스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하루라도) 젊은 그의 얼굴과 몸이 정지된 시간 가운데 붙잡혀 있습니다. 타자의 눈동자와 이 수많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두고 엘리자베스가 "더 나은 나의 모습"을 동경한 까닭, 그가 진정 두려워한 대상은 결국, 하루가 다르게 소실되는 젊음, 곧, 노화입니다.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말처럼, 공포, 두려움은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나치면, 우리의 영혼을 쉬지 않고 갉아먹는 괴물이 됩니다. 작중 복도의 액자와 거리의 거대 광고판 속 얼굴과 몸이 엘리자베스가 아닌, 수의 모습으로 '교체'된 뒤로 거울은, 집 안팎의 크고 작은 유리면은 수보다 노화한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끊임없이 비추며 경쟁심을 부추기고, 이는 노화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두려움을 젊음에 대한 집착으로 연결합니다. 엘리자베스의 자기혐오는 영화가 끝나기까지 제동 없이 가속합니다. 전망 좋고, 한때 자기 성공을 당당히 드러내 보이던 집이 그를 가두는 공간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는 "서브스턴스" 사용을 "종료(terminate)"하려 하다가도 주저하고, 끝내는 그 "종료 약물(Terminator)"을 받아오고도 전량 주사하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 "교체"를 위한 바늘과 관을 가져오고 마는 지경에 이릅니다. 엘리자베스는 수에게 "너 없이는 안 돼."라며 목 놓아 흐느낍니다.

 

수는 몸에 달라붙는 뱀 가죽 문양의 옷과 용이 그려진 가운 따위를 입고 등장하여 극 중 재생의 관념을 시각적으로 강화합니다. [ⓒ MUBI]

 

 "Hoje me deu tristeza,
 sofri três tipos de medo
 acrescidos do fato irreversível:
 não sou mais jovem.", from Dolores by Adélia Prado.
더보기

 "Today I was stuck by sadness,

 I suffered from three kinds of fear

 added to the irreversible fact:

 I am no longer young."

 

 사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영화는 비위 약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가 아닙니다. 피와 고어가 절대적으로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장편 데뷔작, 지난 2017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 공개되자마자 주목받은 <리벤지 (Revenge)> 촬영에는 프랑스로부터 촬영지인 모로코로 배송된 재료로 매우 많은 양의 가짜 혈액이 생산, 공급되기도 했습니다. 칸에서 선을 보인 직후, <서브스턴스>도 그 못지않은 폭력성을 제공한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파르자 감독이 작품을 소비하는 관중에 공포감을 조성하는 방식은 이야기에 유령을 자주 출몰시키는 마리아나 엔리케스와 사뭇 다르니(그 역시 신체 공포를 입히기도 하지만), <리벤지>와 <서브스턴스>는 신체 공포 영화(Body horror film)입니다. 인간 신체를 변형하거나 파괴함으로써 공포와 불편함을 유발하는 장르입니다. 엔리케스는 우리 몸의 전부가,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하는데, 파르자의 <서브스턴스>에서는 바로 그 장르를 분명히 하는 장치로 (수가 엘리자베스의 몸을 문자 그대로 뚫고 나온 뒤, 그 찢어진 부분을 꿰맨다거나, 트로이가 수의 뱀 가죽 문양 옷 지퍼를 내리자, 내장이 쏟아져 나오는 등의 장면에 더하여) '노화'의 개념이 쓰인 방식이 사뭇 흥미로우면서도 섬뜩합니다. 수의 자아는 처음에 엘리자베스에게 "서브스턴스" 사용을 거대한 하나의 승리처럼 보이게 해 주었습니다. 두 주연 배우, 엘리자베스 스파클을 연기한 드미 무어와 수로 분한 마거릿 퀄리의 신체적인 유사성만큼이나 둘의 차이가 극 전반의 개연성을 확보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퀄리가 무어보다 키가 크고, (무어가 늘 갖고 싶었다고 말하는) 파란 눈의 소유자라는 점 등이 그러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수의 얼굴과 몸으로 '다시금' 만인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일을 즐겼고, 하비에게서 해고된 쇼의 진행자로서 자리도 비교적 쉽게 되찾았습니다. 일주일씩 모습을 바꾸는 중, 수의 차례가 오면, 그는 엘리자베스의 척수액을 뽑아 자신을 "안정(stabilise)"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수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교체 시기를 임의로 거부, "안정제(Stabiliser)"를 정량보다 많이 뽑아서 쓰면, (마치 젊을 적의 선택과 행동이 미래의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주해라도 되는 듯이) 그 대가로 엘리자베스가 신체 일부분에 급격한 노화를 겪습니다. 당연히, 욕심이 과할수록, 변화가 빠릅니다. 이는 극이 진행되는 내내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조절해 준 음악의 도움을 받아, 상당한 불편함과 공포감을 선사합니다. 처음에는 엘리자베스의 집게손가락에 "이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는 이윽고 자기 뒤를 밟은 듯한 "서브스턴스"의 또 다른 사용자, 남성(207; 이 숫자를 계산기에 입력하면, '썩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 "ROT"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과 대화("It gets harder each time, to remember that you still deserve… to exist! That this part of yourself is still worth something! That you still matter!"; "Has she started yet? Eating away at you?")하여 수의 자아가 자신을 먹어 치우고 있다, 소모하고 있다는 두려움에 빠집니다. 자기혐오의 싹이 무서운 속도로 자라납니다. 본래 모습으로서는 자기 존재의 가치가 손아귀로 빠져나가는 느낌입니다. 수는 이런 엘리자베스가 그에게 주어지는 이레 동안 TV 앞에 앉아 먹기만 한다고 불만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서브스턴스" 공급자의 답은 늘 둘은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경고, 즉, 수의 모습으로서든 엘리자베스의 모습으로서든 자신이 선택하여 생기게 한 결과라는 진실뿐인데.

 

영화 마지막, 만신창이가 돼 도망친 몬스트로 엘리자수, 엘리자베스의 얼굴은 바닥에 박힌 자기 별에 도착하여, 사실상 처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음 짓습니다. [ⓒ MUBI]

 

 하비로부터 새해 전야, 방송사 최대 규모 쇼의 주역을 약속받은 수는 그 제동 장치가 고장 난 마냥 욕심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결국, 영혼이 달아난 듯이 누워 있는 엘리자베스로부터 더는 척수액을 뽑아서 쓸 수 없는 순간에까지 이릅니다. 원래 '일회용'인 그 도구들을 한참 재사용한 뒤입니다. 몹시 노화한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 사용 중지를 끝끝내 포기하고 수를 깨웠을 때, 두 자아는 서로를 마주합니다. 수는 엘리자베스의 몰골에 넌더리가 나서, "종료 약물"을 자신에게 주입하려 했다는 사실에 이성을 잃어, 마침내, 엘리자베스를 죽이려고 달려듭니다. 상당한 시간 전에 "교체" 이후 옷조차 입지 못하고 욕실에 (사실상) 방치된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숨길 요량으로 타일 뒤 벽을 직접 부수고 문까지 만들었던, 그리고 엘리자베스를 그 문 뒤에다 끌어다 두었던 그입니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엘리자베스와 수의 만남이 한 여성의 심리적인 충돌을 드러낸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해석하면, 결국, 수의 모습을 한 엘리자베스에게 원래 자신의 모습, '노화한' 엘리자베스는 감추고 싶고, 종국에는 지우고만 싶었던 존재인 셈입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없이 수는 더는 자신을 "안정"시킬 수 없습니다. 그토록 염원하던 새해 전야 촬영장 뒤편에서, 처음에는 이가 빠지고, 손톱이 빠지더니, 급기야 귀까지 떨어집니다. 가까스로 뛰쳐나온 수가 "더 나은 나"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역시 일회용인) 잔량의 "활성화 물질(Activator)"을 주사하는데, 너무 높이 날려고 한 이카로스의 밀랍 날개는 태양에 가까워지자, 열을 받아 녹아내리고 말았습니다. 파르자 감독이 존 카펜터 감독의 1982년 작, <괴물 (The Thing)> 등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창작했다는 "괴물", 몬스트로 엘리자수(Monstro Elisasue)가 수로부터 깨어납니다. 그는 그 뒤로 이어지는, 기괴함이 극에 달한 마지막 장을 이끕니다. 예정된 새해 전야 무대에 올라, 가슴 한쪽을 토해 내고 목이 잘리고 분말 소화기가 분말을 분사하듯이 객석을 향해 피를 내뿜습니다. 영화의 이 마지막 이십여 분을 일부 비평가는 과도하다며, 잘라내는 편이 나았으리라고 하고, 혹자는 그가 <서브스턴스>를 올 한 해 "호불호가 제일 심하게 갈리는 영화(hate it or love it)"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한 파르자 감독의 변은 영화의 폭력성에 관한 한, 자신의 관심이 가학적인 포르노나 "고통을 주기 위한 고통"을 보여 주기에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는 폭력에는 늘 일종의 거리감이 있고, 그는 현실을 벗어나며, 자기 영화는 마치 팝(Pop)의 세계처럼 매우 다채롭고 시각적인 설정에 기반한다고 주장합니다. "너무 극단적인 폭력"은 오히려, 그 가운데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폭력의 과도한 성격이 시각적으로 관객을 현실감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하므로. 몬스트로 엘리자수와 완성한 "광란의, 피의 새해 전야"보다 수가 부린 욕심의 대가로 엘리자베스의 노화가 매우 빠르고 세차게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기가 더 두렵다면, 그는 '노화에 대한 공포'라는 영화의 주제를 거꾸로 강화합니다.

 

몬스트로 엘리자수의 '사랑받기를 원하는 순수함'을 이해한다면, 극 마지막 막의 기괴함, 폭력성에 눈이 가려져서 이 영화를 고스란히 싫어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MUBI]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거의 전신이 귀와 가슴과 피부로 덮여 있습니다. 수의 등장을 기대하던 관객은 그를 보고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고, 혼비백산합니다. 그 "괴물"은 다이아몬드 귀걸이로 피부를 뚫고, 몇 가닥 되지 않는 머리카락을 곱슬곱슬하게 만들고, 준비된 푸른빛의 드레스를 입고 그 자리에 나왔습니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The Shape of Water)>에 착안해,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는 뭇사람이 "괴물"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몬스트로 엘리자수의 "괴물"과 같은 모습, 그런 그의 행동들은 사실, 사랑받지 못한다는 데 대한 두려움, 남들과 다른 데 대한 두려움, 남들로부터 예단 당하는 데 대한 두려움에 떨지만, 그 이면 깊숙이 자리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르고 약하며, 여린 영혼을 전달함으로써 공감을 끌어냅니다. 엘리자베스도, 수도, 사랑받기를 원했고, 다른 한편으로 언젠가 그 사랑을 잃을지 몰라 두려워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하비에게 해고당한 뒤, 방송사가 선물한 수십 송이의 장미, 촬영장에서 보낸 세월을 치하하는 형식적인 쪽지를 보고 마음이 무너집니다. "YOU WERE AMAZING", 그가 받은 사랑이 모두 과거의 일로만 느껴지게 하는 문구입니다. 그의 다른 자아인 수가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엘리자베스는 초라해지기 마련이었습니다. 수의 '욕심'은 그래서, '한때' 사랑받았으나,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그 본모습을 앎에서 배양됐습니다. 엘리자베스가 광기 어린 듯이 집(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자기 본체를 가두는 공간)을 어지르면 어지를수록, 수의 욕심은 더 강하게 정당화했습니다. 의미심장하게도 새해 전야의 쇼를 앞두고 그가 받은 카드에는 "THEY ARE GOING TO LOVE YOU"라고 쓰여 있습니다. 언젠가 수는 틀림없이 사랑받을 테지만,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이미 그러한지는 그가 명시적으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엘리자베스로부터 "서브스턴스"가 꺼낸 수, 다시 그런 수로부터 나온 몬스트로 엘리자수의 '사랑받기를 원하는 순수함'을 이해한다면, 극 마지막 막의 기괴함, 폭력성에 눈이 가려져서 이 영화를 고스란히 싫어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극 중 등장하는 남성 인물은 화면에 들어설 때마다 입을 놀려 여성을 성적으로 희롱합니다. 이는 내내 말수 적고, 상냥하며,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고 발버둥 치고, 미소를 짓도록 그려지는 엘리자베스, 수와 대비됩니다. [ⓒ MUBI]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 삶의 많은 행동과 태도가 우리가 접근할 수 있었고, 노출되었던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며, 자신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자신은 남자아이들이 언제나 더 멋지고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음을 봤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여자아이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무얼 할 수 있고, 어떻게 보여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고정 관념이 존재했습니다. 조신해야 했고, 웃어야 했고, 착하게 굴어야 했습니다. 감독이 어려서부터 체감한 이 불평등이 <서브스턴스> 각본을 페미니즘이 더해진 신체 공포 영화로 발전시켰습니다. <서브스턴스>는 여성으로서 그가 순응해야 했던 관습에 관한 작품이고, 그런 사회가 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지금도) 주는지에 관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파르자 감독은 이를 여성의 신체와 그가 어떻게 세상의 거울에 비치는지에 대한 통렬한 복수와 같은 작품이라고 자부합니다. 고로, 기괴함으로 두려움과 불편함을 유발하는 특수 효과를 사용함으로써가 아니라, 작가가, 주인공이 여성 됨으로 매일 마주하는 공포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입으며, 그가 어느 또래인지 따위가 폭력적인 시선의 관심을 끄는. 이는 피부가 갈라지고 피비린내 나는 불길이 사그라든 뒤에도 남아, 관객을 괴롭힙니다. 남성 인물이 화면에 들어설 때마다 그는 입을 놀려 여성을 성적으로 희롱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찾는 여성이 어리고 관능적이기를 원하며, 그가 당장 자기 앞에 서기를 바란다("I want her young, I want her hot, and I want her now!")는 하비의 말을 우연히 들었고, 입안 가득 소스 바른 새우를 머금은 하비(여러 유생 단계를 거쳐서 성체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새우의 껍질을 벗겨서 다소간 게걸스럽게 입에 넣는 하비의 모습을 일부러 길게 보여 줌으로써 그와 같은 남성이 이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로부터, 역겹게도, "오십이 넘으면, 뭐, 그게 멈춰(After 50, well… it stops)."라는 가르침을 당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하비가 말하는 "그것(it)"이 무엇인지 되묻지만, 시종일관 여성을 성적인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그의 제작자로부터 답을 듣지 못합니다. 엘리자베스 해고 이후, 쇼의 새로운 진행자를 채용하는 면접장에서 두 심사 위원, 두 남성도 마찬가집니다. 이들은 한 지원자를 보고 차라리 얼굴에 가슴이나 달렸으면 좋겠다고 망발하고, 뒤이어 등장한 수를 향해서는 일단, 모든 기관이 제자리에는 있다고 중얼거립니다. "안정화"하지 못하고 몸에 이상한 변화가 나타나, 급히 새해 전야 쇼 촬영장을 벗어나는 수를 붙잡고 하비가 던지는 "예쁜 여자들은 늘 웃어야 해(Pretty girls should always smile)! 그러니 웃어(So smile)!"라는 대사는 작가가 주는 이러한 불편함으로 가히 상징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러한 남성들과 대비하여, 엘리자베스와 수는 극이 전개되는 내내 말수 적고, 상냥하며,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고 발버둥 치고, 미소를 짓도록 그려집니다. 그들은 대개 감정을 숨기려고 애쓰는데, 그 통제력을 잃고 폭발하는 순간은 언제나 엘리자베스의 그 두 자아가 서로 충돌할 때입니다.

 

ⓒ MUBI

 

 "El cuerpo no es un castigo: el castigo es que se hable tanto de él hasta que duele tenerlo.", Budassi, S. (2022). Animales de compañía. Entropía.
더보기

 "The body is not a punishment: the punishment is that people talk about the body so much that it hurts to have it."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남성 중심 사회 한가운데 홀로 던져진 여성입니다. 지각의 표류로 희생된 이로, 너무 많은 미용 작업, 화장, 시술, 수술 등으로 더는 자기 얼굴을 찾을 수 없게 된 누군가입니다. 그의 비극은 외부에서 가해진 폭력적인 성 역할을 스스로 내면화한 더 큰 비극과 닿아 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가진 자기혐오의 원천입니다. 거울 속 노화한 자기 모습을 보고 침울해하며, 그 증거가 눈에 띄지 않도록 장갑을 끼고 가리려 하는 절차적 폭력을 스스로 가합니다. 극장을 찾은 관객은 한때 유명했던, 큰 인기를 구가한 여성(엘리자베스)을 보고 있습니다. 그는 매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해야만 고용될 만하다는 말을 듣고, 그 요구 사항에 매달려서 전부, 성공적으로 해낸 여성입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이 그 상사의 눈에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이름처럼 반짝이는 순간(Elisabeth "Sparkle")에, 자기 시선에조차 그는 모자라 보였습니다. 결국, "너무 멀리 가 버린" 그를 보고 관객은 돌아서서 "괴물"이라고 욕합니다.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는 그가 수의 모습을 했을 때, 이미 자신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인제는 남들이 무어라고 말하든, 그는 이미 자신에게 무한히 나쁜 방식으로 말하고, 무한히 나쁜 방식으로 자신을 대합니다. 극 초반, 교통사고로 내원했다가 병원 밖으로 나온 엘리자베스는 프레드라는 (잊고 지낸) 옛 친구와 마주쳤고, 그의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207" 남자와 대화하고 귀가한 뒤로 (내면화한 성 역할로 인한) 불안 증세를 보이던 그는 가까스로 프레드를 떠올리고 전화를 걸어, 그와 저녁 약속을 잡습니다. 그에게 "여전히 너무 아름다워."라고 말해 주는 프레드의 존재는 사실상, 이 깊은 늪에 빠진 엘리자베스에게 내민, 그를 조금이라도 건져줄 도움(구원)의 손길로 보입니다. 약속 장소에 나가려고 엘리자베스는 단장합니다. 수가 "오래된 물건"이라고 빼놓은 옷을 찾아 입고, (수의 모습으로 처음 마주했던) 욕실 거울 앞에 서서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입술에 색을 칠합니다. 프레드가 그를 보았다면, 그는 틀림없이 "너는 여전히 빛나."라고 해주었을 테지만, 엘리자베스는 번번이 집 밖으로 나서는 문 앞에서 발이 묶입니다. 곳곳에 도사리는 거울에 반사하여 눈에 들어오는 수의 모습이 그에게 점점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수의 상과 지금 자기 모습을 번갈아 살피며 파운데이션 위에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칠했던 입술의 입술에 칠합니다. "너무 멀리 가 버린" 엘리자베스는 결국, 울분에 차서 화장을 다 지우고, 색이 다 번져 버리도록 얼굴을 쥐어뜯습니다. 연속된 이 인상적인 연기 장면은 엘리자베스(화장 전)가 수(화장 후)로, 그리고 다시 몬스트로 엘리자수(화장이 다 번져 버린 뒤)로 변신하는 과정을 압축하여 보여 주는 듯하며, 그래서 더욱 강렬합니다.

 

62세의 드미 무어는 <서브스턴스> 속 배역과 자신을 분리하여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그 존재 가치에 대하여 거절당한 배역의 상처와 깊은, 내면적인 연결도 경험했다고 고백합니다. [ⓒ Greg Swales]

 

 

 드미 무어는 아직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기 전, 대리인의 강력한 요구에 등 떠밀리듯 원고를 읽었다고 전합니다. 그는 이 영화가 관객과 평단에 통해서 문화적인 영향을 주거나, 반대로 완전한 재앙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80년대는 주류 영화 산업에서 여성의 입지가 거의 없었던, 그들이 거의 배제된 시대로 평가되는데, 이때 활약한 60년대생 인기 배우 집단, "브랫 팩(Brat Pack)" 일원이었던 무어는 몇 편의 졸작과 비교적 나은 범작들에 출연하다가 1990년, <사랑과 영혼 (Ghost)>으로 일약, 큰 인기와 명성을 얻었습니다. <어 퓨 굿맨 (A Few Good Man)> 등에서 주역을 맡으며 90년대 초중반, 성공 가도를 달린 그는 당대 할리우드에서 제일 돈을 많이 버는 여성 배우였습니다. 특히, 무어는 그의 경력 중, (당연하게도) 옷을 다 입고 카메라 앞에 선 시간이 그를 벗고 그렇게 한 시간보다 길었지만, 보통 후자의 경우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더 과장된 선전의 대상이 됐고, 더 많은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습니다. <은밀한 유혹 (Indecent Proposal)>, 1,250만 달러를 받고 출연해 스트리퍼로 분한 <스트립티즈 (Striptease)> 등으로 그랬고, 만삭의 나체로 장식한 <<베니티 페어 (Vanity Fair)>> 표지 화보로 그랬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감독들로부터 너무 말랐다거나, 너무 살이 쪘다는 등의 지적을 받으면서 자신에게 상당히 높은 "미적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다만, 흐르는 세월은 이번에도 무상하여, 1997년, 리들리 스콧의 <지.아이. 제인 (G.I. Jane)> 출연 이후로 그의 시대는 많은 이의 기억 속에 흐릿해졌습니다. 그는 성적인 대상으로 만들어진 인상과 당당하고 강인한 여성으로서 위상을 거의 동시에 지녔습니다. 이러한 배우의 역사는 <서브스턴스>의 세상에 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세운 엘리자베스 스파클이라는 주인공과 배우, 드미 무어를 겹쳐서 보도록 합니다. 무어는 가족 없이, 오로지 자기 경력을 쌓는 데 자신을 내던진, 그래서 그를 빼앗기면, 그 무엇도 남지 않는 여성으로서 엘리자베스의 모습과 세 자녀의 어머니로서 자신을 분리하여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그 존재 가치에 대하여 거절당한 배역의 상처와 깊은, 내면적인 연결도 경험했다고 고백합니다. 60대의 그는 다시 나체로 카메라 앞에 노출됐지만, 이번에는 "완벽하게 보일 필요가 없어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를 자신에게 주사했지만, 배우는 자신이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프레드와 약속 시간을 앞두고 욕실 거울 앞에서 벌이는 그 중요한 장면을 통해 드미 무어에게 신체적인 노출 없이, 그의 자의식과 연기력으로 진가를 발휘할 최고의 순간을 선물했습니다. 무어는 스스로 가하는 가혹한 비판과 비교를 통해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피상적인 집착으로 자신을 향한 사랑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마거릿 퀄리는 <서브스턴스>가 우리 인간이 자신을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자신을 미워하는 바로 그 마음 때문에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 모습에 대하여 감정과 주의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했습니다. [ⓒ Thea Traff]

 

 "완벽"에 관하여 이야기한다면, 바로 그러한 까닭에 드미 무어는 자신보다 수 역할을 맡은 마거릿 퀄리의 연기가 더 어려웠다고 말합니다. 전통적으로, 특히 남성의 시각으로 이상화한 여성을 그려야 했는데, 엘리자베스의 본래 자아가 그의 몸이 이전과 같은 탄력을 잃었다는 이유로 내쳐진 뒤에 위기를 겪고 있다면, 수는 막 생명을 얻어서 인생을 탐험해 나가려는 참입니다. 무어는 자신에게 그 배역이 주어졌다면, 압박감이 대단했을 텐데, 놀랍도록 자신감 넘치는 퀄리의 모습에 감탄했다며 어린 후배를 칭찬했습니다. 겉모습에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하던, 거기 중심이 쏠린 젊을 적 자신의 자국이 그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퀄리는 지난 일 년을 몹시 바쁘게 보냈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 (Poor Things)>,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Kinds of Kindness)>에 연달아 출연했고, 도중에 에단 코엔의 <드라이브 어웨이 돌스 (Drive-Away Dolls)>에도 참여했습니다. <서브스턴스>가 올해 개봉한 그의 세 번째 영화(<가여운 것들>은 지난해 개봉)입니다. 촬영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계속되니, <드라이브 어웨이 돌스> 에단 코엔, 트리샤 쿡 부부의 신작, <Honey Don't!>, 로버트 해머 감독의 1949년 작, <친절한 마음과 화관 (Kind Hearts and Coronets)>을 바탕으로 하는 <Huntington>,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Blue Moon> 등을 연속해서 찍었습니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보낸 <서브스턴스> 각본을 읽던 때, 퀄리는 클레르 드니 감독의 <정오의 별 (Stars at Noon)> 촬영으로 파나마에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현실의 자신과 동떨어진 듯한 역할 제안에 망설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반전된 동화의 공포 이야기가 독특하기도 했고, 그가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되리라고 생각해서 수가 되기로 했습니다. 완성된 결과물을 두고 퀄리는 우리 인간이 자신을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자신을 미워하는 바로 그 마음 때문에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 모습에 대하여 감정과 주의를 불러일으키는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서브스턴스> 미장센은 <샤이닝>을 대거 따랐습니다. [ⓒ MUBI]

 

 다시, 드미 무어는 이 영화 작업 중 자신이 느낀 해방감 일부가 거의 예순둘에 가까운 나이(1962년 11월생인 그는 지난달에 마침내 62세가 됐습니다)에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하며 지금껏 존재해 온 그 어떤 규칙에도 얽매일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 데서 왔다고 말합니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창조해 낸 세상은 그가 이전에 여행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파르자 감독은 <리벤지> 작업 때보다 많은 지원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드미 무어, 마거릿 퀄리, 데니스 퀘이드와 같이 유명한 배우들과 함께했을 뿐 아니라, 유니버설 픽처스의 참여(비록 후반부 작업 중에 편집을 두고 감독과 이견이 있어서 배급 계약은 파기했으나)로 제작 예산이 늘었고, 무엇보다 더 많은 영감을 이전의 예술 작품에서 얻었습니다. <서브스턴스> 각본의 큰 줄기에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980년 작, <엘리펀트 맨 (The Elephant Man)>,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 (Notre-Dame de Paris)> 가운데 콰지모도(Quasimodo)의 삶 등이 영향을 주었고, "서브스턴스" 주입 이후에 "더 나은 나"의 모습이 "본체(Matrix)"를 뚫고 나오는 등의 설정은 탈바꿈 과정이 중요하게 쓰이는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감독의 1986년 작, <플라이 (The Fly)>를 참조했다고 합니다. 극 초반, 하비와 엘리자베스의 식사 중 잔 안에 빠져서 몸부림하는 파리의 모습이 분명, '이유 없이' 오래 화면에 잡히지는 않았습니다. 그 잔에 채워진 액체의 빛깔이 이후 등장하는 "서브스턴스"를 연상케 한다면, 그 약물 오용 및 남용에 대한 경고가 이미 여기 보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광란의 마지막 막은 브라이언 드팔마의 1976년 작, <캐리 (Carrie)>, 스탠리 큐브릭의 1980년 작, <샤이닝 (The Shining)>에서 따왔습니다. 특히, 큐브릭의 영상은 엘리베이터에서 쏟아져 내리는 피의 해일로 파르자 감독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음은 물론이거니와, <서브스턴스>의 미장센에도 자주 헌정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내면의 균열을 느낀 촬영장 남자 화장실, 원색으로 길게 뻗은 복도가 대표적입니다. 대담한 화면에 일부 관객은 심지어, 이자벨 아자니 주연, 안제이 주와프스키 감독의 1981년 "문제작", <포제션 (Possession)>을 소환하며, 엘리자베스와 수의 서사에 <이브의 모든 것 (All About Eve)>도 견줍니다. 비교적 젊은 층은 겁을 먹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어두운 분위기에 지난해 개봉한 아리 애스터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 (BEAU IS AFRAID)> 이야기도 합니다.  <캐리>와 <샤이닝>의 원작 소설가, 스티븐 킹은 메인주 포틀랜드 출신인데, 메인주 지역번호는 207이고, 메인주 최대 도시인 포틀랜드보다 세계적으로 더 유명한 포틀랜드는 오리건주의 최대 도시입니다. 오리건주의 지역번호는 503입니다. "서브스턴스"의 두 사용자가 받은 번호의 함의를 찾으려는 또 다른 시도입니다. 파르자 감독은 영화 속에 자신만의 문법으로, 있는 그대로의 만물을 극단으로 밀어붙여서 새로운 세상을 만듭니다. 파르자 감독과 그의 촬영감독, 벤저민 크라춘은 극이 시공간이 뒤섞인 어딘가에서 전개되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의도적으로 미관을 조작했습니다. <서브스턴스> 촬영 대부분은 파리에서 이루어졌는데, 공간은 마치 로스앤젤레스의 환상처럼 보입니다. 단순한 구조의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지나다니는 사람은 또 별로 없습니다. 엘리자베스와 수의 촬영장은 80년대, 집은 90년대 유행한 식으로 꾸며졌습니다. 막상 수는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데. 곧게, 높이 솟은 야자수가 건물의 잔인한 직선과 어울리는 듯한데, 영화 중간중간 삽입된 그 야자수 장면은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만신창이가 돼 도망친 몬스트로 엘리자수, 엘리자베스의 얼굴이 바닥에 박힌 자기 별(동판)에 도착, 사실상 처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으니, 그토록 치열하게 살면서도 그가 야자수의 수직적인 연장선 너머는, 때로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하는 하늘은 쳐다보려 하지도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결국, 그 모든 경쟁의 상대가 실은 땅에 발을 딛고 선 자신 외 아무도 아니었음을. 드미 무어에게 해방감을 주었던 세상도 이렇듯 아주 치밀하게 설계됐습니다.

 

영화를 보는 "환상적인 경험"에 매료됐던 코랄리 파르자는 제77회 칸 영화제에 각본상을 들었고, 인제 골든글로브 시상식 감독상 최종 후보군에도 포함됐습니다. [ⓒ Sameer Al-Doumy/ AFP]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영화를 보는 "환상적인 경험"이 어릴 적, 적응하지 못한 일상에서 자신이 탈출하는 방법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장르 영화가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화두로 던지는 훌륭한 수단이라고 믿습니다. <서브스턴스>에서 감독은 아래위 붙은, 몸에 꼭 끼는 수의 분홍색 옷을 눈요깃거리 삼는 하비나, 포르노를 생산하는 양 유독 수의 가슴과 엉덩이에 집착하는 카메라 움직임, 화면의 이상을 찾겠다고 몰려들어 다시 그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돌려보는 제작진을 통해, 시각적으로, 여성 됨에 대한 폭력의 불편함, 불쾌함을 극대화했습니다. 영화 역사상 이러한 영상에 담긴 여성 배우가 수없이 많지만, 유난히 과장된 이 영화의 작법은 지금껏 영화가, 수없이 많은 거울이, 여성의 몸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인식에 미친 영향을 다시 생각하도록 하면서 엘리자베스, 수, 몬스트로 엘리자수의 내면화한, 비틀린 성 역할론, 거기서 싹 튼 자기혐오를 관객의 경험으로 확장합니다. 몇몇이 이야기하는 "존재론적인 붕괴의 위기"가 다분히 감독이 의도한 실재였던 셈입니다. <서브스턴스>에서 이렇듯 무게 있고 기괴한 공포 장치와 웃음을 주기 위한 풍자의 균형을 그런대로 맞추려던 파르자 감독의 시도가 다만, 일부 관객의 눈에는 옥에 티인 듯한데, 그러한 비판을 일부 수용한대도 공개 이후 영화가 누리는 여러 성과는 그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2012년까지 여성 감독에게 웬만해서는 문을 열어주지 않던 칸 영화제에 본상을 타고 구태를 바꾸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한 파르자 감독은 이 주 전에 발표된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82nd Golden Globe Awards) 감독상 후보 여섯에도 들었습니다. 불과 육 년 전, "여성 없는 감독상" 시상에 나선 내털리 포트먼이 공개적으로 일침("And here are the all-male nominees!")을 놓았던 장(당시 75번째 행사)인데, 지난해, <바비 (Barbie)>의 그레타 거윅과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의 셀린 송(송셀린)에 이어, 올해도 파르자와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All We Imagine As Light)> 파얄 카파디아 감독 등, 두 명의 여성이 최고 감독 자리를 두고 경쟁하기를 허락받았습니다. 드미 무어가 여우주연상, 마거릿 퀄리가 여우조연상 후보군(코미디 또는 뮤지컬 장르 대상)에 각기 포함되고, 각본상과 최우수 코미디 또는 뮤지컬 부문에도 영화가 입후보하면서 <서브스턴스> 팀은 내년 초, 최대 다섯 개 상을 노려볼 수 있습니다. "지독히 호불호 갈리는" 이 장르 영화가 또 어떤 영예를 차지할지, 그로부터 언젠가 관객에게 안긴 공포감을 거두어 갈 날이 올지 눈길이 갑니다.


에필로그

 

"What is the subject of the painting? Who is looking at whom? The painter at the king and queen; the king and queen at themselves in a mirror; the viewer at the king and queen in the mirror; the viewer at the painter; the painter at the viewer, the viewer at the princess, the viewer at the ladies-in-waiting? Welcome to the labyrinth of mirrors that is human life.", Harvey, S. (2023). Orbital. Jonathan Cape.

"Do you suppose a mirror remembers all the people it's ever reflected?

 Maybe, he replies, but you know I-I will remember the picture of you in this mirror as long as I live.
 So will I, she replies.
 And they go on.", Erpenbeck, J. (2023). Kairos (Hofmann, M., Trans.). New Directions.

 

 얽히고설킨 거울의 미로가 곧 인간의 삶이라지만, 과연, 거울은 그가 한평생 담아내는 모든 상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결국, 표면에 부딪히는 모든 빛의 줄기를 입사각과 같은 반사각으로 뱉어낸다면, 그러지 못한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합니다. 살면서 '나'의 상이 수없이 많은 거울에 맺히겠지만, 그 다수의 표면은 '나'를 망각합니다. '나'와 서로 사랑하는 눈동자에 사랑받는 모습으로 잡혀서 갇힐 수 있다면,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은지 나의 엘리자베스 스파클, 수, 몬스트로 엘리자수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