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라>: 자신을 꿰뚫어 보는 사람 앞에서 폭발시킨 감정

2024. 11. 27. 17:0035mm

 

ⓒ Stephane Mahe/ REUTERS

 

 

 대단히 흥미로운 영화, <아노라 (Anora)>의 주인공, 젊은 여자 성 노동자는 뉴욕을 배경으로 돈과 사랑을 향한 꿈을 좇습니다. 미국 영화로는 테런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이후 13년 만에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에서 황금종려상(Palme d'Or)을 받은 이 영화에 내년 3월, 아카데미 수상 영예가 더해질 수 있습니다. 그 유명한 "아메리칸드림"만큼이나, 미국 사회의 이면, 그와 동떨어진 듯한 현실을 비판하는 이야기에도 관객들은 이제, 익숙합니다. 동화와 같은 행복의 약속과 구체적인 불평등의 대조. 자칫, 기시감을 줄지도 모르는 주제를 션 베이커 감독은 직설적인 표현과 '있는 그대로의 영상'으로 담습니다. "미화"도 지나친 개입도 없이, 언제나 그렇듯, 부족하지 않은 익살스러운 표현 요소와 함께. 그는 늘 "미국적인 환상"으로 가득 찬 곳에서 하루하루 살아남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게 조명을 비춥니다. 월트 디즈니 월드 바로 옆에 공공주택으로 개조된 값싼 모텔 단지 거주자(<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를,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포르노 배우(<레드 로켓 (Red Rocket)>)를. 하늘 높이 솟은 고층 건물이나 월트 디즈니 월드 따위가 "무한한 가능성"을 흘리지만, 자본주의의 극지에서, 그 이면에, 끝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에 빠진 이가 감독이 내세우는 주인공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누구라도 그 등장인물의 속물성을 마냥 손가락질할 수 없습니다. 이십 년 넘게 메가폰을 잡으며 그 뚜렷한 색깔, 다른 감독들과 다른 소재로 영화광 사이에 이름을 날렸지만, 지난 5월, 사실상 "칸의 주인공"이 된 신작, <아노라>에서처럼 그가 사회적 신분 상승을 향한 (허황한) 꿈과 그 좌절에 따른 실망감을 잔인하고도 빠르게 그려낸 적은 없습니다. 뉴욕, 80년대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집단으로 거주하는 브루클린의 브라이턴 비치, "리틀 오데사(Little Odessa;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같은 이름의 영화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를 배경으로, 이 영화는 그야말로 관객을 그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션 베이커 감독의 여느 영화처럼(심지어는 그중 최고라고 할 정도로), <아노라>의 마지막 장면은 짙은 여운과 그를 시청한 관객들의 서로 다른 해석을 가득 안깁니다.

 

ⓒ Nathaniel Gray

 

 션 베이커 감독은 오늘날 할리우드의 몇몇 유명 감독과 달리, 특정 배우를 '고정적으로' 자기 영화의 주연으로 세우지 않습니다. 다른 감독들과 비교해도 그의 작품에 배우의 활약상이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다는 평가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날린, 잘 알려진 배우와 손을 잡기도 하지만,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하는 "초짜들"도 촬영 현장을 찾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선택하는 배우들은 그가 극 중 부여하는 역할을 아주 사실감 있게 표현하여 관객을 사로잡고, 놀라움을 줍니다. <아노라>의 주인공, 아노라, "애니(Ani)"로 분한 마이키 매디슨도 그렇습니다. 그는 아직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촬영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속 악명 높은 맨슨 패밀리(The Manson Family)의 일원, "세이디(Sadie)" 배역으로 대중에 얼굴을 알린 배우입니다. 영화 막바지, 타란티노 특유의 "절대적 악한에 대한 응징"을 당하여, 단단히 고생했습니다. 션 베이커는 그가 출연한 또 하나의 유명 영화, <스크림 (Scream)>이 개봉한 주에 "확신을 갖고" 주인공으로 낙점, 연락했다고 전합니다. 아직 <아노라>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나오기 전이었습니다. 감독은 마이키 매디슨을 택한 배경에 관하여, 그가 감정적인 돌변의 순간, 순발력과 재치가 돋보이는 연기를 한다(많은 사람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그의 연기를 칭찬하며, 잔혹한 최후에 내는 비명이 인상적이라고 말하지만, 어린 마이키 매디슨의 표정 연기도 훌륭한 편입니다)고 말했고, 비명을 잘 지른다는 이야기도 더했습니다. 영화를 관람한 여러 사람이 언급하듯, <아노라> 중반부에도 그가 사력을 다해 (토로스 일당에 대하여) 저항하며 비명을 내지르는 장면이 있으니, 주인공의 강인함을 표현하는 과정 중 감독이 배우의 장기를 끌어왔다고 볼만합니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마이키 매디슨은 애니의 일을 이해하고, 브루클린 억양을 익히려고 촬영 시작보다 이르게 브라이턴 비치로 향했다고 합니다. 낯선 환경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을 듣고, 그들과 대화하며, 자기 몫의 실사는 충실히 했다고 자신합니다. 그는 극 중 인물을 그리는 과정에 이처럼 자기 의견을 많이 묻고, 반영해 주는 감독과 처음 작업했다고 고마움을 드러내지만, 션 베이커 감독은 반대로, 애니라는 주인공을 입체화하는 데 마이키 매디슨이 도움을 주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이키 매디슨은 벌써, 내년도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에 도전할 후보로 꼽힙니다.

 

 

 꾸준히 새로운 배우를 발굴하는, 말하자면, 지금껏 보인 션 베이커 감독의 "작업 규칙"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인물이 카런 카라굴리안입니다. <아노라>에서도 토로스 역으로 관객과 만난 그는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배우로, 지금껏 션 베이커 감독이 내놓은 모든 작품에 얼굴을 비추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연기를 배운 적이 없지만(마흔이 되어서야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합니다), 90년대 초에 뉴욕 대학교 영화 학교 재학생들과 어울렸다고 합니다. 션 베이커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아노라>가 세상에 나오고 한 인터뷰에서 카런 카라굴리안은 "왜인지 모르겠는데, 션이 제게 늘 배역을 주더라고요."라고 농담도 했지만, 할리우드의 뭇사람이 인정하듯, 그는 감독이 작품을 만드는 데 매우 핵심적인 인사입니다. 예를 들어, <탠저린 (Tangerine)> 작업 중에는 아르메니아 출신 배우를 찾고, 아르메니아어 대사를 쓰고, 자막을 다는 일 등을 그가 도맡았습니다. <아노라>에도 아르메니아어 대화 장면이 삽입됐는데, 감독은 여전히 그 언어를 구사하지 못합니다. 여태 제일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영화의 제작 동기, 계기도 카런 카라굴리안이 제공했습니다. 1990년, 처음 미국으로 건너온 그의 발걸음이 닿은 곳이 브라이턴 비치였습니다. 그곳은 옛 소련 국가에서 뉴욕으로 넘어온, 러시아어를 쓰는 이민자들을 끌어들이는 하나의 거대한 자석과도 같았습니다. 배우는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 (Prince of Broadway)> 작업을 마친 뒤에 감독과 "다음 작품"에 관한 발상을 주고받던 중, 문득 브라이턴 비치에서 자기 친지가 겪은 일을 이야기한 순간이 <아노라>의 출발이라고 기억합니다. 그로부터 십오 년 넘게 이어진 이 거대한 계획이 그에게는 리틀 오데사에 바치는 헌사와 같습니다. 타티아나 그릴(Tatiana Grill)이라는 브라이턴 비치의 유명 식당이 그 이름 그대로 영화에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카런 카라굴리안은 고급화하며, 자신이 처음 당도했을 때의 매력이 사라지는 이 지역에서 "마지막, 희미한 한 줄기 빛"을 포착한 기분이라고 밝혔습니다.

 <아노라> 시나리오를 내기도 전에 션 베이커 감독이 점찍은 또 한 명의 배우(이로써 셋 =마이키 매디슨, 카런 카라굴리안, 유라 보리소프)는 이고르 역을 맡은 유라 보리소프입니다. <6번 칸 (Hytti nro 6)>과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Капитан Волконогов бежал)>에 연달아 출연하여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얼굴을 알린 러시아 배우로, 자국에서는 이미 인지도가 높습니다. 감독은 <레드 로켓>을 들고 밟은 2021년 칸 영화제에서 <6번 칸>을 보고 그를 마음에 두었다고 전합니다. 흥미롭게도 그 영화에서 유라 보리소프가 분한 인물, 료하와 <아노라> 속 이고르가 닮기도 했습니다. 폭력을 쓰고, 말을 함부로 내뱉는 듯하며, 여성 등장인물에 위압감을 주는, 소위 "세 보이는" 인상을 가졌는데, 그 뒤에 감추어진 순수한 영혼, 부드러움이 반전의 묘를 줍니다.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의 표도르 볼코노고프 대위(역시 유라 보리소프가 그를 연기했습니다)는 용서받을 용기를 발휘하여, 뜻밖에, 자기 내면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아노라>의 실질적인 남자 주인공이라고도 할 만한 이고르를 완성한 유라 보리소프는 자꾸만 촬영 현장에 션 베이커 감독이 "전부 수정된" 대본을 들고 나타나서 당황스러웠다고 말합니다. 마이키 매디슨은 "언제나 준비된 배우"로서 바로 돌변하는데,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고 이해할 시간이 필요한 자신은 늘 한두 발짝 늦게 돌입했다고, 그래서 두 사람이 연기하는 방식이 서로 다름을 알았다고. 반대로 마이키 매디슨은 유라 보리소프가 촬영 중 자기 배역, 그 자체로 사는데, 그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며 그보다 정열적인 배우를 이전에 본 적 없다고 했습니다. 사실, 션 베이커 감독은 그 "즉흥성"과 "있는 그대로의 현장을 살린 연출"로 유명합니다. 배우들은 타티아나 그릴에서 촬영하던 때, 정말로 저녁 식사를 하고, 생일을 축하하려고 그곳을 찾은 고객들에게 이반의 사진을 보여 주며 대사를 던졌습니다. 가게 주인만 영화 촬영 사실을 알았는데, 감독이 다시 그를 여러 차례 반복하자, 식사 중이던 이들이 (마땅한) 짜증을 내어, "미친 경험"을 선물했습니다. 물론, 션 베이커는 처음에 찍은 영상을 영화에 싣기로 했습니다.

 

 

 <아노라>는 결국, 젊은 남녀, 애니와 이반의 사랑에 관한 영화가 아닙니다. "노동자" 애니에 관한 이야기로, 그 '노동'이 성 노동일 뿐이며, 그는 자기 직업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결말부, 부모 손에 잡혀서 러시아로 돌아가는 이반이 받는다는 벌이 아버지 회사에 출근하여 일하기라는 점을 떠올리면,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의 대비가 중요한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일하는 하루하루 애니가 "살아내며" 지켜야 하는 자존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스트리퍼를 주인공으로 세우면서 그 노동을 그리다 보니, 나체 장면이 자주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감독이라면, 이때, 딜레마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애니는 자기 일에 충실한 노동자이므로, 영화 속 장면들이 선정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대원칙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원칙에 지나치게 압도되어, 현실적이지 않은 화면을 담으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로 시각적인 착취를 위해 배우를 혹사하는 일이 일어나서도 안 됩니다. 다행히 션 베이커는 이렇듯 민감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루는 조율 능력이 탁월한 감독입니다. 벌거벗은 몸이 화면에 자주 비치지만, 그중 하나라도 눈요기의 대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일' 자체보다 그 일을 하는 '사람'에 시선을 잡아 두는 감독이 빛을 발한 작품입니다. 그의 진지한 관심은 사회 현실주의 비참한 드라마에 쉽게 갇혀 버리는 사람을 영화적인 표현으로 돕는 데 있습니다. 사실, <아노라>는 "아노라"라는 이름을 찾은 애니, 한 명의 이야기로, 그가 업계에 종사하는 모두를 대변하지는 못하지만, 매체들은 그로부터 션 베이커 감독이 궁극적으로, 황금종려상의 영광을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성 노동자에게 바쳤다고 씁니다.

 관객에게 애니의 노동 현장, 그 역학을 소개하기 위해 감독과 마이키 매디슨이 제일 공을 들인 촬영이 도입부, 클럽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션 베이커 감독은 애니의 "일상적인 밤"을 담고자 했습니다. 클럽 배경을 차리고, 그 클럽이 현재 운영하는 듯이 보이려고 보조 출연진이 현장을 돌아다니고 큰 소리로 떠들 수 있게 했습니다. 촬영 중 디제잉과 음악을 허용했습니다. 소리/음향이 무엇보다 중요한 촬영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애니, 마이키 매디슨은 무선 마이크를 착용하고 30분 넘게 클럽을 돌아다니며 그곳을 찾은 고객들(보조 출연진)과 대화하고, '일'을 했습니다. 계산적인 태도로. 최소한의 약속은 있었지만, 거의 즉흥 연극의 연속이었습니다. 배우는 언젠가 또 이런 촬영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면서도 어떻게 답할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반응을 살펴서 다음 단계를 밟는, 배우로서 꿈 같은 경험을 했다고 증언합니다. 그의 사전 조사도 효과를 발휘하여, 그 '노동 현장'을 망원 렌즈로 담아낸 30분 중 영화에 쓸 이삼 분만 잘라내기가 감독은 몹시 괴로웠을 정도라고 말합니다. 션 베이커 감독이 이야기했듯이, 멀리서 대화 장면을 잡아냈다는 점은 그 유명한 로버트 올트먼(1925-2006)의 <내슈빌 (Nashville)>을 닮기도 했습니다.

 

ⓒ NEON

 

 <아노라>는 크게 전반부와 중·후반부, 두 덩어리로 나뉘고, 조금 더 들어가면, 할리우드 대중 영화의 일반적인 구성법을 따라, 3막 구조를 갖추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세 막은 서로 다른 색깔을 드러냅니다. 영화의 첫 번째 막, 전반부는 관객에게 너무도 익숙한 "신데렐라" 이야기로, 완전한, 순정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아예, 월트 디즈니 월드로 신혼여행을 가겠다는 아노라에게 방은 신데렐라의 동화에서 받은 영감에 따라 꾸밀 생각이냐는 룰루의 물음으로 두 이야기를 겹쳐서 보게 설정합니다. 마이키 매디슨은 생존에 필요한 애니의 영리함을 구현해 내고, 자신을 동화 속 주인공에 빗대는 그 순수함에 관객을 빨아들여, 심지어는 이 영화의 갈래(사랑 이야기로)를 착각하게 합니다. 그 상대가 되는 이반으로 분한 마크 아이델슈타인도 어린아이처럼 쾌락에 빠져 즐기는, 미성숙한 억만장자 역할을 완벽히 해내,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누리는 특권에도 불구하고 그가 "명예를 아는 사람"이기를 바라도록 합니다. 그러나, 낭만적인 사랑으로 모든 불평등을 극복하기란, 션 베이커 감독에게 한낱 신화(현실이 아닌)에 지나지 않습니다. 두 시간 넘는 영화의 중간 지점에 채 이르기도 전에, 그 첫 번째 막은 비정한 줌 아웃, 롱 쇼트와 함께, 너무도 급하게, 끝을 맺습니다. 2막에는 적절한 슬랩스틱 코미디, 블랙 코미디와 로드 무비가 어우러집니다. 추리물을 방불케 하는, 어딘가 어두운 화면으로 극의 공간적 배경 구석구석을 비집고 들어갑니다. 애니와 이반의 사랑 이야기에 푹 빠져 버린 관객 눈에는 갑작스럽고도 엉뚱한 변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전까지 40분가량 풀어놓은 이야기는 감독이 중·후반부를 위한 상황적 배경을 설명, 소개하기 위해 꺼낸 포석에 불과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비교적 짧게 펼쳐지는 세 번째 막은 애상적인, 못내 쓰라린 종결을 향해 달려갑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아노라> 각본의 알짜는 애니가 혼자 집을 나가 버린 이반을 찾기 위해 토로스 일당(토로스, 가르니크, 이고르)과 동행, 카메라가 이들의 시선을 거의 같은 시간대로 따라가는 가운데 도막입니다. 잠시만 영화 머리 부분을 수놓은 파티의 밤과 프리몬트 스트리트의 화려한 불빛, 빠르게 불이 붙은 애니와 이반의 "사랑", 그 미혹에서 벗어나면, 극 중 제일 '감정'이 "차가운" 듯한 이 구간에 '노동자'로서 애니, 토로스의 몸부림이 제일 처절하고도 "뜨거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NEON

 

 영화를 본 뭇사람이 이야기하듯, <아노라>는 그 유명한 <귀여운 여인 (Pretty Woman)>의 안티테제(Antithese)가 될 수 있습니다. 안티테제는 그에 상응하는, 정립된 명제에 대한 반대 명제로, 과거의 명제에 내재한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변증합니다. 널리 사랑받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 <귀여운 여인>의 주인공 역시, 여자 성 노동자입니다. 외모가 훌륭하고 대단한 재력을 가진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의 관계에서 출발해, 결혼이라는 지점에 도달하는 점까지 션 베이커 감독의 신작과 똑같습니다. 34년 전의 영화는 여기서 결말을 찾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지만, 다시, <아노라>에서 이러한 전개는 그 첫 번째 막에 국한합니다. "영화광"인 감독이 마찬가지로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완전히 새롭지는 않은 작법으로 전체 이야기의 대전제를 빠르게 이해시켰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끝에 이르러 그는 <귀여운 여인>의 달콤한 꿈을 노래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관계의 모순'이라는 측면에 집중한다면, 애니와 이반의 관계에 크게 세 번의 '거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애니는 러시아 이민 배경을 가진 미국인입니다. 이반이 클럽에 나타나자, 애니가 쉬는 시간(대기실에서 동료와 담소를 나누며 간단히 식사 중)이었는데도 그에게 배정된 이유입니다. 아직 사춘기도 다 지나지 않은 듯이 행동하는 철부지, 이반은 애니에게 푹 빠져서, 처음에는 클럽 밖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다음에는 일주일 내내 붙어있으려고, 끝내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미국인인 애니와 혼인함으로써 이반은 영주권을 얻기도 합니다)하려고, 총 세 번의 계약을 제안하고, 점점 더 큰 비용을 지급합니다. 상대의 요구 조건보다 늘 조금 더 내준다는 점(예를 들어, 1만 5,000달러에 두 번째 제안을 받아들인 애니에게 "내가 너였으면, 3만 달러 밑으로는 거래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하는 등)도 흥미롭습니다. 그의 호화스러운 저택을 찾은 애니가 무슨 일을 하기에, 이 전부를 누리고 사는지 묻자, 그는 아버지의 부 덕분이라는 사실을 전하나, 구체적인 (이반과 그 아버지의) '직업'이 극 중에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올리가르히(Oligarch) 중 하나이리라는 추측만 가능할 뿐. '노동'이 핵심 제재가 되는 영화라는 점을 기억하면, (이반이 무엇으로 "먹고사는지" 직접적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제법 의미심장합니다. 결국, 애니와 이반의 모든 관계는 불평등하게 분배된 자원을 기반으로, 다시, '거래'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러한 동기는 션 베이커 감독의 작품에 공통으로 나타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유독 그가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계약의 두 당사자가 서로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보기 어려운 중에 한쪽이 그를 파기해 버리면, 이는 돌이킬 수 없이 와해할 위험성이 존재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책임감이라고는 완전히 결여한 이반이 등을 돌리며, 영화의 최종 장, 사랑의 감정에 매달리던 애니조차 계약의 허무한 종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이반으로 분한 마크 아이델슈타인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기한 인물이 내면의 어린아이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며 일종의 "숨 쉴 구멍"을 찾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친구"라고 부르는 주변 인물들(가령, 코니아일랜드의 사탕 가게에서 일하는 톰과 크리스털 등)도 진정한 친구가 아니고, 광란의 파티는 그가 자신을 지키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즉, 자신을 억누르는 부모에게서 멀리 떨어진(혹은 그렇게 믿고 싶었던) 미국에서 이반은 공허했습니다. 사랑이 전혀 없었다기에는 어폐가 따르지만, (극 중, 그가 애니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은 말처럼) 이반에게 (애니와) 계약은 성적인 쾌락과 함께 그 공허함을 잠시나마 달래준 상대와 짧은 "재미"였습니다. 감독은 이 "권력 구조(Power dynamic)"의 사실적인 묘사를 <귀여운 여인>이 정립한 "상승 이야기"를 뒤집을 최적의 방식으로 보았습니다.

 

ⓒ NEON

 

 토로스가 잔뜩 화가 난 여성(이반의 어머니, 갈리나 자하로바)과 통화하며 쏘아붙임을 당하면서 영화의 두 번째 막이 오릅니다. 앞서, 이반이 집에서 연 요란한 "새해 파티" 중 해가 바뀌는 카운트다운 이후, 동생인 가르니크와 포옹하는 모습으로 짧게 화면에 잡혔지만, 제대로 된 그의 등장은 사실상 이 장면이 처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감독은 이때, 토로스를 미디엄 쇼트로 비춥니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끝을 고한 직전, 롱 쇼트와 대비되는 연출입니다. 이반이 결혼했다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라고 토로스는 가르니크를 저택으로 보냅니다. 이고르와 함께. 우락부락해 보이는 두 남자의 방문이 애니의 "행복"을 걷어냅니다. 다시, 그 "행복"이란, 이반이 (애니가 일하는) 클럽을 방문함으로써 우연히 찾아왔고, 또 다른, 낯선 이들이 불쑥 방문함으로써 사라집니다. 인제부터 애니는 그 끝자락이라도 붙잡고자 합니다. 가르니크가 이반에게서 두 사람(애니와 이반)이 부부가 됐음을 공식화하는 문서를 확인했습니다. 아들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들은 이반의 부모는 곧장 뉴욕으로 항로를 정하고, 토로스도 만사 제쳐두고 저택으로 출발, 결혼을 무효로 하려 나섭니다. 극의 장르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앞서서 1막을 <귀여운 여인>과 비교했다면, 여기서부터는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전설적인 파워 포워드, 케빈 가넷이 출연한 사프디 형제(Safdie Brothers)의 2019년 작품, <언컷 젬스 (Uncut Gems)>가 떠오른다는 평이 많습니다. 부모의 방문 소식을 듣고 겁에 질려 버린 이반이 비겁하게 도망치고, 애니는 가르니크, 이고르와 남겨져, 자신을 지키기 위한 물리적인 싸움을 시작합니다. 장장 28분에 달하는, 이 영화를 두 눈으로 확인한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주거 침입, 한바탕 소동"이 이어집니다. 가까스로 분위기가 진정되자, 네 사람(애니와 토로스 일당)은 우선, 이반을 찾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읍니다. 본격적인 로드 무비의 시작인데, 션 베이커 감독은 그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즉흥 연기/연출이 계속됩니다. 일례로, 토로스가 운전대를 잡은 차의 조수석에서 가르니크가 구토하자, 토로스는 "내일 아내가 이 차를 운전할 거란 말이야!"라며 분개하여 동생을 나무랍니다. 감독은 이 대사를 아르메니아어로 시작해서 러시아어로 바꾸었다가, 영어로 마치도록 주문합니다. 자신이 이해하는 언어는 마지막 하나뿐이지만, 장면에 참여하는 배우들의 역량을 믿었습니다. 카런 카라굴리안은 유라 보리소프나 바쳬 토우마시안(가르니크 역) 같은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영화 첫 번째 막의 남자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이반이지만, 두 번째 막부터는 오히려, 애니와 토로스(아주 넓게는 애니와 토로스 일당, 셋)의 닮은 점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토로스의 형편을 이야기하자면, 애니의 눈에 악당처럼 보일지 모르는 그 또한, 가족을 가진 사람이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중입니다. 카런 카라굴리안에 따르면, 영화 속 "그날"은 토로스에게 일 년 중 제일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아이의 대부가 되는 날로, 아르메니아 문화권에서 그는 매우 큰 중요성이 있는 일입니다. 그를 모를 리 만무한 인물이 자리를 박찼습니다. 직장과 수입을 잃을 마당에 자칫, 가족의 안녕조차 위태로워질 수 있는, 엄청난 순간입니다. 자신을 고용한 내외(이반의 부모)와 아내에게서 '동시에' 견디기 힘든 압박을 받는데, 이 이민자는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말 그대로, "생존 본능"을 깨웁니다. 해고될 위기로부터 자기 직장(부모에게서 떨어진 이반의 사실상 후견인이자, 집사, 한편으로 그를 감시하는 사람으로서 일)과 삶을 지켜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밤에 우리가 그(이반)를 찾을 거야."라는 대사는 토로스의 결의를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애니의 처지도 그와 아주 다르지 않습니다. 그의 시각에서 무뢰한들로부터 가정을 지켜야 함은 당연하고, 애초부터 이반과 부부의 관계가 계약의 성격을 가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반의 아내로서 자기 자리, "직업"도 잃지 않으려 한다고 비약할 만합니다. 토로스가 이반의 "감시"를 소홀히 하여, 그가 "사고"를 쳐 버린 시간이 이 주, 애니의 꿈 같은, 동화 같은 "행복의 시간"이 이 주, 이반과 결혼한 뒤, 클럽을 떠나는 애니에게 절대 오래갈 수 없는 관계라고 저주한 다이아몬드가 제시한 기간도 이 주입니다. 영화 내내, 션 베이커 감독은 애니와 토로스를 서로 마주 보는 관계로 설정했습니다.

 

ⓒ NEON

 

 각자 방식은 다르지만, '이름'을 중요하게 활용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앨프리드 히치콕 경(1899-1980)의 <레베카 (Rebecca)>가 떠오르고, 지난해, 여러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 (Cerrar los ojos)>도 들만합니다. <아노라>도 그렇습니다. 주인공은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을 "애니"라고 소개합니다. 아노라 미헤예바라는 본명이 있지만, 누군가 그 이름을 부를 때면, 꿋꿋이 "애니"로 정정합니다. 미국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이름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심지어 능숙한 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극 중, "아노라"라고 불리는데, 애니조차 그를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 세 번 있습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이반과 결혼하며 혼인 서약할 때, 마침내 고주망태가 돼 자신이 일하던 클럽에서 다이아몬드와 붙어있던 이반을 찾은 뒤, 토로스에 이끌려서 뉴욕 주 대법원 재판장에 섰을 때, 그리고 결국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이반과 이혼하며 서류에 서명할 때. 이 세 번 모두, "아노라"라는 이름은 "애니"를 취약하게, 순진하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이름'이 중요한 또 따른 등장인물은 이고르입니다. 그는 '전사'라는 뜻을 가진 자기 이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심지어는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자기 본명을 자꾸만 감추려는 애니와 거꾸로, 극 중, 의지와 관계없이, 편의적으로 불리곤 합니다. 처음에 토로스는 이반의 결혼 "소문"을 확인하라고 가르니크를 보내며 "러시아 녀석"을 데리고 가라 말하고, 이반은 처음 본 이고르를 "깡패"라고 호칭합니다. 심지어 애니는 그가 "강간범의 눈"을 가졌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그는 강인해 보이는 그 외모 탓에 종종 모욕당하지만, 그가 하는 일 때문에 세상에 손가락질을 당하는 와중에 자기 품위,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을 지키려는 애니와 마찬가지로, 실은, 성실히 오늘을 살아가는 노동 계급의 일원일 뿐입니다. '엄청난 부를 가진 사람'을 상징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 이반의 아버지, 니콜라이 자하로프와 이들의 이름이 같은 가치 선상에 놓일 수 없습니다.

 

ⓒ NEON

 

 영어를 하지 못했던 할머니를 위해 러시아어를 익혀야 했던 애니와 할머니의 집에 살고, (영화의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이 펼쳐지며, 애니가 꼭 그와 같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차를 모는 이고르는 알고 보면, 동류입니다. 어쩔 수 없이 협력하는 중에 토로스, 가르니크와 티격태격하던 영화 두 번째 막에도, 눈앞에 나타난 이반의 부모에게 철저히 무시를 당한 최종 막에도, 아무리 애니가 퉁명스럽게 그를 밀어내도 이고르는 그가 "다치지 않도록" 받쳐 주었습니다. 애니는 미국에서 이름의 뜻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응수하지만, 마지막 밤, 이고르는 "아노라"라는 이름의 뜻을 직접 찾아서, 상대가 늘 숨기려고만 했던 그 이름에 "빛", "석류", "밝다."라는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이는 이튿날 아침으로 이어져, '아노라'에게 감정적인 혼란을 주고 새로운 가능성과 같이 문을 열어 두는 결말로 연결, 끝을 맺습니다. "애니"가 신데렐라가 돼 그 뿌리를 마침내 벗어나는 줄 알았지만, 이 영화 전체가 사실은 (애니가) 언제나 그를 끌어당기던 본명, "아노라"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셈입니다.

 다양한 해석을 낳고, 그로부터 션 베이커 감독과 출연진에게 즐거움을 주는 '마지막 장면' 이야기보다 이 영화에 관한 단상을 마무리하기에 더 좋은 주제도 없을 터입니다. 이고르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애니가 이반에게서 사과를 받고 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이반과 이혼하는 조건으로 약속받은 1만 달러를 찾아 주었으며, "주택 침입" 이후 토로스에게 빼앗겼던 다이아몬드 반지(이반이 결혼의 대가로 준)를 돌려주었습니다.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폭설을 뚫고 짐을 대신 문 앞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영화의 두 번째 막, 서로 다른 꿈을 가진 채(애니는 그가 남편으로서 자신을 위한 행동과 말을 해주리라고 기대하고, 토로스는 애니와 이반의 결혼을 무효로 하여, 이반의 부모가 미국 땅을 밟기 전에 상황을 최대한 수습할 요량입니다)로 이반을 찾아 나서면서 옆자리에 타고 싶지 않다고 했던, 그 정도로 이를 떨고 경멸했던 남자의 행동을 돌아보며, 아노라는 분명, 복잡한 마음이었습니다. 혹자는 마지막 순간, 그가 처음으로 이고르를 향한 사랑을 느꼈다고 해석합니다. 여기에 동의하지는 않는다면(단적으로 "이 차는 꼭 너와 같아."라는 아노라의 말에 이고르가 마음에 드는지 묻자, "아니."라고 딱 자르는 대답도 있기에), 아노라가 시종일관 그를 막 대했던 데 대한 작은 뉘우침, 이반과 관계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드러나는 접점, 공통점 따위로 인한 당황스러움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노라는 사실상 극 중 처음으로(마지막에 가서야 그렇다는 점도 의미심장한데), 이고르에게 '경제적인 대가에 대한 답례로서가 아닌' 성적인 행동을 합니다. 그의 이러한 행동에 이고르가 입을 맞추려 하자, 아노라는 그에 저항하다가 결국은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무너집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그의 당혹감이 충분히 읽힙니다. (늦어도 두 번째 막에 이반이 그를 버리고 도망친 뒤부터) 시종일관 자기 감정을, 최선을 다해서 감추려고 했던 아노라가 거기 압도돼, 더는 버티지 못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꿰뚫어 본 이고르 앞에서 어느 때보다, 어쩌면, 이제아먈로 진정, '벌거벗겨진 기분'이었을 수 있습니다. 차 안에서 벌어지는 이 사건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든, 분명한 하나는 그가 마음이 구슬퍼질 정도로 쓸쓸하며, 아프고, 또한 한없이 아름다운 감정의 자극을 준다는 점입니다. 관습을 풀고 주인공의 모습에 온전히 초점을 맞춘 <아노라>가 바로 그와 같은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