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7. 08:00ㆍ35mm
프롤로그
"Wherever you are on this planet, you've recently given some thought to leaving it. Space is looking more promising every day. There's no political corruption on Mars, no war on the Moon, no juvenile jokes on Uranus. Surely space settlement presents the best chance since about 50,000 BC to try out something completely new and leave all the bad stuff behind. After five decades of stagnation in human spacefaring, we now have the technology, the capital, and the desire to go beyond the age of quick forays to the Moon and seize our destiny as a multiplanetary species.
Well… maybe not.", Weinersmith, K., & Weinersmith, Z. (2023). A city on Mars. Penguin Press.
"The earth, from here, is like heaven. It flows with colour. A burst of hopeful colour. When we're on that planet we look up and think heaven is elsewhere, but here is what the astronauts and cosmonauts sometimes think: maybe all of us born to it have already died and are in an afterlife. If we must go to an improbable, hard-to-believe-in place when we die, that glassy, distant orb with its beautiful lonely light shows could well be it.", Harvey, S. (2023). Orbital. Jonathan Cape.
"If humanity survives the next few centuries, it's probable we'll expand into space. People, nations,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have options about how to proceed. The choices we make now - about the pace of expansion and the rules underpinning it - will shape that future in ways we can't yet imagine. The wrong choices wouldn't merely slow us down, they might create existential risk for humanity.", A city on Mars.

지난달 23일, 제75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Internationale Filmfestspiele Berlin (Berlinale))가 성공리 마무리됐습니다. 본상을 가져갈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 않던, 노르웨이 출신 다그 요한 하우게루의 <드림스 (Drømmer)>가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Goldener Bär)을 타, 파란을 일으킨 가운데, 명예 황금곰상(Goldener Ehrenbär) 주인공이 된 틸다 스윈턴과 <Dreams>의 제시카 채스테인, <블루문 (Blue Moon)>의 이선 호크와 마거릿 퀄리, 앤드루 스콧(은곰상 조연상(Silberner Bär/Beste Schauspielerische Leistung in einer Nebenrolle)을 받았습니다.), <컴플리트 언노운 (A Complete Unknown)>의 티모테 샬라메, <If I Had Legs I'd Kick You>의 로즈 번(은곰상 주연상(Silberner Bär/Beste Schauspielerische Leistung in einer Hauptrolle)을 받았습니다.), <The Thing with Feathers>의 베네딕트 컴버배치, <Hot Milk>의 에마 매키와 피오나 쇼 등, 올해도 유명 영화인들이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경쟁 부문의 열아홉 편을 비롯한, 총 26개국 250편의 영화가 베를린을 찾아, 새로운 집행위원장, 트리샤 터틀의 첫 번째 베를리날레를 수놓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잔뜩' 기대를 품고, 손꼽아 기다린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 (Mickey 17)>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미키 17>은 경쟁 부문에 들지 않은,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Berlinale Special Gala)" 초청작이었으므로, 황금곰상이나 은곰상 따위의 시상 대상이 애초부터 아니었습니다. 일부는 이를 의아하게 여기기도 했는데, 봉준호 감독은 사실,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지만, 어떠한 수상 욕심 없이, 가볍게 관객에게 영화를 보이고 싶어, 그를 거절했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영화제가 끝나고 나면, 아무래도, 누가 어떤 상을 받았는지에 주로 조명이 비추어지는지라, 자칫, 가리기가 쉬웠으나, 영화제 개막도 전부터 (<미키 17>을) 너도나도 "꼭 봐야 할 영화"로 들었으니, 그 화제성은 '그런데도' 확실했다고 하겠습니다.

익히 알려졌듯이, <미키 17>은 지난 2022년에 출판된 에드워드 애슈턴의 공상과학 소설, <<미키 7 (Mickey 7)>>을 각색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아직 원작 소설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일찍이, 영화 제작을 결심했습니다. 작품의 설정 일부가 자연스레 수정됐으니, 먼 미래에서 2050년대, 비교적 가까운 미래로 당겨진 시간적 배경이 대표적입니다.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영화와 소설의 주인공, 미키 반스는 "익스펜더블(Expendable)"로, 외장 메모리에 저장되는 기억을 갖고, 3D 생체 프린터에서 정제된 유기물을 원료로 계속 뽑아지는 복제인간입니다. 미키가 탄 식민지 개척 우주선이 니플헤임이라는 외계 행성을 목적지로 하니, 우주선이라는 닫힌계의 유기 물질이 끊임없이 "재사용"됩니다. 소설 제목인 "미키 7"은 이렇게 복제된 일곱 번째 미키를 뜻합니다. 봉준호 감독이 각본에서 그를 열 번 더 죽이면서, 영화는 "미키 17", 열일곱째 미키가 이끌게 됐습니다. 주인공이 "열 번 더 죽고 새로 태어나는" 일련의 과정은 말로써 가볍게 전달돼 지나가고, 영화가 정말 관심을 두는 "미키"에게 집중력을 잡아둡니다. 이 과정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비극적이며, 심지어는 (보기가) 조금 불편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특히, 니플헤임 탐사에 투입된 미키 덕에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과학자들이 그 백신을 개발하겠다면서 미키에게 인체실험하여 그를 여러 번 죽이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각본이 아직 코로나19 범유행에 있던 지난 2021년에 쓰였다는 점과 만나, 관객에게 어딘가 으스스함을 느끼도록 합니다. 사실상 영화에는 "미키 17"과 "미키 18", 두 명의 미키가 등장합니다. 결국, <미키 17>이 미키 반스가 그간, 스스로, 외부 환경에 의해, 타성에 젖듯이 잃어 버린 자존감을 찾아가는 성장 영화의 성격을 지녔다고 하면, 미성인이 성인으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열일곱과 열여덟의 숫자가 갖는 의미가 깊습니다. 미키 18이 미키 17보다 충동적·본능적이고, 훨씬 예측이 불가능하게 행동하여, 미키 18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놓인 등장인물들이 그가 아직 출력된 지 얼마 안 돼서 불안정하다는 변명을 늘어놓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미키 18이 없었다면, 그가 미키 17과 동시에 존재하는 "멀티플(Multiple)" 상황이 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금방이라도 깨질 듯이 유약한 미키 17, 주인공에게 주어진 삶이 더 불행하게 끝을 맞았으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 but all those things are beautiful, because their beauty doesn't come from their goodness, you didn't ask if progress is good, and a person is not beautiful because they're good, they're beautiful because they're alive, like a child. Alive and curious and restless. Never mind good. They're beautiful because there's a light in their eyes. Sometimes destructive, sometimes hurtful, sometimes selfish, but beautiful because alive. And progress is like that, by its nature alive.", Orbital.
극 중, 잊을 만하면, 주변 인물들이 미키에게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죽음이 찾아오면, 어떤 기분이 드냐는 물음입니다. 익스펜더블로서, 아무래도 여러 번 죽어봤고, 보관된 기억이 연속해서 흐르니, 그 느낌을 잘 알지 않느냐고 다그칩니다. 미키에게 모두가 기피하는, 위험하고, 아직 알지 못하는 바깥에서 임무나 일거리를 지속적으로 던져 주면서, 반복적인 그의 죽음에 이들은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습니다. 꾸준한 자극에 역치가 지나치게 높아져, 인제는 아예 무감각해진 모양샙니다. 영화에는 본래, 화염방사기 등에 쓰이는 휘발성 연료이지만, 식민지 개척 우주선에서 쾌락을 얻기 위한 마약으로 밀거래, 오용되는 가공의 화학 물질, 옥시조폴(봉준호 감독의 다른 작품, <설국열차>에 등장하는 크로놀을 연상시킵니다.)이 등장합니다. 이를 거래하거나 흡입하다가 적발되면, 처벌받지만, 이미 한참 그 환각 효과에 중독된 이들은 희석조차 하지 않고 순도 100%의 옥시조폴을 들이켜기에 바쁩니다. 니플헤임으로 떠난 원정대 대다수에게는 미키의 죽음이 곧, 옥시조폴, 마약과도 같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별다른 거리낌 없이, 어떠한 양심의 가책 없이, 단순히 호기심이 발동한 듯이 건네는 그 의뭉스러운 질문이 미키를 거북하게 합니다. 자신이 '진짜' 죽은 적은 없기 때문이고, 질문 자체가 그의 주기를 소모적으로만 치부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매번 답을 피하던 미키 17은 제니퍼(엘렌 로버스튼이 분했습니다.)를 눈앞에서 잃은 카이(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가 분했습니다.)에게 영화 종반,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실은, 그렇게 여러 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는데도, 몇 번이고 그 과정을 다시 밟아도, 자신은 "여전히, 항상, 매번(still, always, every time)" 죽음이 끔찍이도 싫고 두렵다고 고백합니다. 미키가 품은 이 의미심장한 공포감을 최후의 순간, 케네스 마셜(마크 러팔로가 분했습니다.)이 자신과 함께 자폭하려는 미키 18의 눈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러고는 마셜이 생애 마지막이 될 말을 전합니다. 죽음에 대한 그 공포감이 "너(미키 반스)"를 "인간"이 되게 한다고. 우주선, 카이의 방으로 돌아와, 미키 17의 솔직함에 카이도 그가 꼭 출력된 결과물 같지 않고, 그저 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답을 돌려주었습니다. 이 대목에 문득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중 지난해, 부커상을 수상한 서맨사 하비의 소설, <<오비탈>>에서 떠오른 한 구절을 끌어오면, "아름다움"은 "살아 있음", 눈동자에 비치는 빛에서 올지 모릅니다. "익숙해야 마땅할" 죽음을 두려워하는 미키의 모습이 역설적으로, 비록 그의 몸이 재사용된 유기물로 생체 프린터에서 찍혀 나온, 과장하여, 기껏해야 하나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대도, 그 순간, 뜨겁게 살아 있는 그의 인간다움, 비길 데 없는 그의 아름다움을 알게 합니다.

미키의 애인이면서, 케네스 마셜의 죽음 이후, 결말부에 "위원회"의 새로운 지도자로 올라서는 나샤 배리지(나오미 애키가 분했습니다.)가 <<오비탈>>의 구절에서 출발한 단상의 외연을 확장합니다. 아름다움이 선함에서 비롯되지 않으며, 때로는 파괴적이고, 때로는 상처를 주고, 때로는 이기적이어도, 살아 있으므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면으로. 사실, 나샤야말로 극 중, 때로 꼬인 도덕관을 가진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와 미키는 그들이 속한, 니플헤임을 인류의 우주 식민지로 개척하기 위한 원정대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식당에서 마셜의 연설과 그를 향한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각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다가 우연히 눈이 맞았습니다. 이들은 이후, 성적인 관계를 거쳐, 연인으로 발전했습니다. 미키는 나샤가 자신을 위해, 자기 문제에 대하여 기꺼이 이성을 잃고 나서줄 사람이라고 읊조립니다. 과학자들이 미키에게 인체실험을 가하고 그를 혼자 두자, 나샤는 으름장 놓으며 방호복을 빼앗아 입고는 그가 외롭지 않도록 곁을 지켜 주었습니다. 이제까지 거의 유일하게, 미키의 '끝이 아닌' 죽음에 마음을 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기까지는 대개 나샤의 정의로움, '선함'을 붙잡고 늘어지게 하나, 그는 극 중에서 그와 반대되는 모습도 자주 보여 주었습니다. 가장 쉽게, 그는 (근본적으로 미키에게 유리하지 않은) 우주선의 체제를 수호하는 경찰이고, 미키 17과 미키 18의 멀티플을 인지했을 때, 미키 18의 부추김에 넘어가, 옥시조폴에 취해 있었습니다. 성적인 끌림에 열중하다가,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따라 들어온 카이에게 상황을 들키자, 뻔뻔한 태도도 보입니다(이때, 미키 18을 줄 테니, 미키 17은 자신에게 양보하라며 나샤와 협상을 시도하는 카이도 도덕적으로 복잡한 인물이기는 매한가집니다.). "이전의 미키들"이 지나가는 중에는 인체실험 이후, (나샤와 미키의) 피에타(Pietà) 구도를 따른 듯한 연출이 눈에 들기도 하는데, 아들을 잃은 슬픔에도 목 놓아 울지 않는 성모 마리아처럼, 나샤는 눈물을 쏟지 않습니다. 그의 의연함을 뒤집으면, 나샤에게도 당장 무릎에 앉힌 미키가 숨을 거두어도, 그의 복제가 끝나지 않는 한, 그와 영영 작별하지는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던 셈입니다. 미키의 죽음을 유난스럽게 생각하지 않기는 결국, 그도 우주선의 여느 사람과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아름다움이 선함과 직접 관계를 맺지는 않습니다. 익스펜더블 프로그램 폐지에 앞장선 나샤는 마침내, 미키와 함께 늙어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소회를 밝힙니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가 지난해, 모질게도 주입한바, 노화는 또한,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때로 선과 악의 회색 지대에 오래 머무른다고 해도, 나샤는, 미키는, 살아 있어서 아름답습니다.

역대 세 번째(최근,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 (Anora)>가 그 네 번째 역사를 썼습니다.)로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 황금종려상(Palme d'Or)과 아카데미 작품상(Academy Award for Best Picture)을 "독식"한 영화, <기생충> 이후, 봉준호 감독이 햇수로 육 년 만에 들고나온 <미키 17>에서 유독 극찬받는 점은 흥미롭게도 할리우드 공상과학 영화 특유의 화려함이 아니라, 미키 반스 역을 맡은 주연 배우, 로버트 패틴슨의 물오른 연기력입니다.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여러 출연작이 있지만, 사프디 형제(Safdie Brothers)의 2017년 작, <굿타임 (Good Time)>, 로버트 에거스의 2019년 작, <라이트하우스 (The Lighthouse)>, 크리스토퍼 놀런의 2020년 작, <테넷 (Tenet)> 등에 차례로 출연하면서 로버트 패틴슨은 남 부럽지 않게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로 영화광들의 뇌리에 자신을 각인시켰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미키 17> 이전에 그가 우주선을 타고 나간 영화로 클레르 드니의 2018년 작, <하이 라이프 (High Life)>가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창세기"를 뒤집은 난폭한 수작에서 감옥과도 같은 직육면체 우주선에 태워져, 항해의 진정한 목적을 알지 못한 채, 우주로 추방된 지상 사형수 한 사람이 "몬테"입니다. 사악한 생식 실험을 자행하는 정신 나간 의사, 알고 보면, 또 다른 범죄자인 "딥스(쥘리에트 비노슈가 연기했습니다.)"에 대하여, 스스로 독신자라는 로버트 패틴슨의 몬테가 빗나가지 않는 설득력으로, 이 지옥의 어두운 여행기에 관객을 붙잡아 두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미키 17>, 또 하나의 우울한 우주선에 올라탄 미키는 잇단 사형 선고를 앞둔 배역입니다. 로버트 패틴슨은 홀로, 계속해서 복제되는 미키 반스의 여러 얼굴, 연번마다 조금씩 다른 성격을 연기해야 했습니다. 특히, 미키 17과 미키 18은 관객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그 차이점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했고, 그는 이 까다로운 과업을 얼굴의 상처나 옷에 대문짝만하게 쓰인 숫자 없이도, 심지어는 그 둘이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가히 완벽하게 수행해 냈습니다. 미키 18이 소각장에서 만난 티모(스티븐 연이 연기했습니다.)와 몸싸움을 벌이며 그를 소각로, 죽음에 밀어 넣으려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미키 17은 그런 미키 18을 말리느라 정신이 없는데, 관객은 소각로 작은 원 안에 비치는 표정만 보고도 (티모의 시점에) 번갈아 등장하는 두 명의 미키를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22년, <더 배트맨 (The Batman)>의 브루스 웨인으로 분해,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우수에 잠긴 배트맨도 인상적으로 그려낸 배우는 축 늘어진 어깨에, 창백한 안색을 하고, 약간 쉰, 체념한 듯한 목소리를 내어 미키 17을 완성했습니다. 뭇사람이 그에게서 처음 듣는 목소리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미키 17은 <하이 라이프>의 몬테와도 다른 사람입니다. 그는 끊임없는 죽음과 재출력의 굴레에 갇힌 와중에도 어떻게든 삶의 끝자락을 붙잡고자 하고, 나샤를 사랑하고, 남들이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삶일지라도 그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다시 그와 달리, 돌발적인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 미키 18은 훨씬 배짱 두둑하고 용감하게 보이며, 틈만 나면, 미키 17의 "나약함"을 증오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로버트 패틴슨이 떠오르는 발상을 적극적으로 제안해 준 덕에, 미키 18이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고, 예상보다도 그의 예측 불가능성이 두드러질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또 한 명의 배우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카이 카츠 역을 맡은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에바 이오네스코 감독의 2011년 작, <비올레타 (My Little Princess)>에서 십 대 어린 나이에도 이자벨 위페르와 공동 주연으로 나서,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이고, 뤼미에르상(Prix Lumières) 신인여우상(Lumière de la révélation féminine) 후보에 오른 배우입니다. 그는 지난 2021년, 제78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Mostra Internazionale d'Arte Cinematografica) 경쟁 부문 최고 영예, 황금사자상(Leone d'oro)을 탄 <레벤느망 (L'Événement)> 주역이기도 합니다. 이해, 봉준호 감독이 영화제 심사 위원장으로서 그를 눈여겨보았고, <미키 17>의 카이 역으로 점찍었습니다. 아나마리아는 작가를 꿈꾸다가 예기치 못한 임신 사실을 안 뒤, 끝내 중절을 결심하기까지 갈등을 겪는 대학생, <레벤느망>의 안 역으로 삼 년 전, 제47회 세자르상(César du cinéma) 신인여우상(César de la meilleure révélation féminine)과 제27회 뤼미에르상 여우주연상(Lumière de la meilleure actrice)을 동시 석권, 자타가 공인하는, 프랑스 영화계의 떠오르는 별이 됐습니다. 작년에도 브뤼노 뒤몽의 <제국 (L'Empire)>, 제시카 팔뤼의 <마리아, 나로 살기 (Maria)>,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 (Le Comte de Monte-Cristo)>>을 원작으로 하는 같은 이름의 영화에 출연하여, 리나 쿠드리와 파브리스 뤼키니(이상 <제국>), 피에르 니네, 아나이스 드무스티에(이상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미키 17>은 그의 할리우드 진출작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처음 그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몹시 기뻤고, 한편으로 놀랐다고 말합니다. 아카데미에서 인정받은 최고의 감독, 토니 콜렛, 마크 러팔로, 로버트 패틴슨 등, 세계적인 배우들과 (특히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업하다 보니, 현장에서 위축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봉준호 감독이 긴장을 풀 수 있게 도와주어, 아나마리아는 배우로서 자기 경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미키 17>을 그는 인간성에 관한 영화라고 소개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할 줄 알고, 그 다름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할리우드 대작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독립 영화에 꾸준히, 번갈아 가며 출연해 온 스칼릿 조핸슨, 페넬로페 크루스, 내털리 포트먼에게 매료됐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인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의 다음 행보에도 관심이 갑니다.

익스펜더블을 주인공으로 세운 영화라는 점을 기억하면, 어딘가 역설적으로, <미키 17>은 필멸하는 존재로서 인간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온 소동이 시작되기 전에, 미키 반스는 지구에서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니플헤임의 크레바스에 빠진 미키 17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위험에 빠질 수는 없지 않냐며 화염방사기만 챙기고, 그 상황에 기껏 한다는 질문이 죽음이란, 어떤 기분인지입니다. 그는 영화 종반, 철창에 갇힌 미키 17과 미키 18을 찾아가, 자신을 위해 신체를 여러 토막으로 나누고 "한 번만 더 죽어주기를" 부탁하기도 합니다.) "친구", 티모와 함께 마카롱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도산했습니다. 살인적인 고리대금업자에게 쫓기자, 도망치듯 니플헤임으로 떠나는 우주 항해에 지원했고, 약관도 제대로 안 읽고 익스펜더블 계약에 서명했습니다. 이제부터 그는 영구적인 하나보다 가역적인 여러 번의 죽음이 더 낫다는 절박함을 자기 위안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담으로, 니플헤임의 크레바스에서 "크리퍼"를 마주하고 죽음을 직감한(반전이 있었지만) 미키 17이 지금까지 이야기를 주욱 들려주는 이 45분 남짓이 다양한 극의 분위기와 전개 속도, 관찰이 얽힌 방식, 사회적인 풍자, 삶에 대한 우울한 고백,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성찰 등으로, 그 이야기의 밀도와 순수 즐거움 차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여러 비평가가 극찬하는 구간입니다.
하지만, 사실상 과학에 몸을 기증한 미키에게 신체적인 '완전한' 자유가 더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삶 양 끝에는 3D 생체 프린터와 소각로가 있는 듯하지만, 그의 수명을 하나의 행렬에 담을 수는 없습니다. 익스펜더블로서 미키의 삶은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Σίσυφος)가 받는 형벌, 꼭대기에 이르면, 반대편으로 곧장 굴러떨어질 줄 알면서도 산으로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형벌과 같습니다. 미키는 운명적인 어린 시절 실수에 대한 죄책감에 꾸준히 시달리고, 삶의 즐거움과 죽음의 종말이 동시에 부정당하는 지옥에서 헤엄합니다. 죽음이 너무나도 싫다는 미키의 절규에는, 적어도 일부는, 그 죽음의 기억조차 간직한 채, 다음에는 십 분, 십오 분이 될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삶을 위해 눈을 떠야 한다는 점이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는 눈 뜬 시간이 그에게 악몽일 수도 있습니다. 크레바스에서 미키 17은 크리퍼들이 몇 초 만에 자신을 먹어 치우리라고 추측했지만, 그들이 한입 베어 물지 않고 그를 풀어주자, 그는 (우주선의 유기 물질을 재활용한 결과물일지라도) 자신이 여전히 좋은 고깃덩이라고 항의하며 그들을 원망하는 기행을 보입니다(사실은 그들이 자신을 구해 주었다는 사실을 그는 나샤의 도움으로 뒤늦게야 깨닫습니다.). 바닥난 자존감으로 나사가 풀려 버린 미키의 모습인데, 사랑스럽게도 뒤죽박죽인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페이소스는 거의 발작적인 그의 자기 연민 속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에는 미키의 '소멸하는'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크게) 세 개의 버튼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그에게 면면한 재해 신경증을 안겨 준, 어릴 적, 차 안에서 호기심에 눌러 본 바로 그 "빨간 버튼"이고, 그다음은 크리퍼들의 꼬리를 잘라 오라고 니플헤임에 내던져진 미키 17과 미키 18 몸에 두른 폭발물의 활성화 버튼(미키 17과 미키 18 각 하나씩인데, 흥미롭게도 미키 17의 폭탄은 빨간색 버튼으로 터뜨릴 수 있고, 미키 18의 폭탄은 녹색 빛이 도는 버튼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익스펜더블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행사장에서 미키의 손에 쥐어진 버튼입니다. 으레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어떠한 결과를 수반합니다. 미키는 어려서 그 빨간 버튼을 눌러서 사고가 나, 엄마를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미키 18은 유달리 그 괴로움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미키 17에게 사실 그 사고가 차량 결함에 의한 결과였고, '우리'가 그 버튼을 누른 행동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고, 피차 아는 바가 아니냐고 일갈합니다. 하지만, 버튼을 누른 그 기억만은 틀림없으므로, 즉, 그가 사건의 도화선은 아니었을지언정, 전혀 없었던 일이 되지는 못하므로, 자기 혐오적 불안에 사로잡힌 미키 17을 진정시킬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 버튼은 마침내 인간과 크리퍼 사이 전쟁에 대한 위기감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하는데, 그를 눌러서 마셜을 안고 같이 세상을 등진 미키는 역시, 자발적 활동이 잦은 미키 18(녹색 버튼)이었습니다. 그렇게 기어코, 모두가 니플헤임에 발을 내린 뒤, 마지막 세 번째 버튼을 누름으로써 미키는 속박에서 벗어납니다. 그가 더할 나위 없는 해방감을 가졌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허탈함이 같이 밀려왔는지는 다 알기 힘듭니다. 나샤가 연설하는 동안, 깜빡 잠에 든 미키는 꿈속에서 3D 생체 프린터로 스스로 복제, 익스펜더블이 돼 돌아온 마셜 부부를 마주하고는 잠시 충격에 빠졌다가, 미키 18이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짐작하며 꺼지라는 말을 입 밖에 냅니다. 꿈결의 이 연속된 장면으로 미루어, 우리의 불쌍한 주인공은 아직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단, 적어도 미키 반스는 '진정한 끝'이 정해진 삶("뒤집힌 창세기" <하이 라이프>의 몬테처럼)을 되찾았고, 인제 그를 더욱 의미 있게 꽉 채울 수 있습니다. 상투적이지만, 시간과 사랑의 힘으로 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베를리날레에서 그간, 세계와 시대의 문제를 직시하는, 용감한 영화가 꾸준히 관객을 만났는데, <미키 17>도 그와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기술이 얼마고 발전해도 인간은 어리석을 테고, 어쩌면, 문명이 붕괴할 수 있습니다. 단, 감독은 인간성만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역설합니다. 곤충을 먹고 어떤 딱정벌레 맛이 더 좋은지 이야기하는 한이 있어도 말입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 관점이 우주까지 나가, 공상과학과 정치적 해학이 어우러진 <미키 17>(그래서 규모가 아무리 커졌어도 "봉준호 감독 영화"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풍자 소재는 미래와 현재, 과거에 모두 있습니다. 가령, 영화 최종 막에 크리퍼를 향해 나아가면서 카메라에 어떻게 하면 더 멋진 영상을 남길지 고민하는 마셜 일당의 모습에 유튜브, 틱톡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 집착, 사실상 중독된 현대인의 일상이 투영됐고, 삭제 버튼 한 번 누르면, 외부 저장소에 보관된 모든 정보가 지워져, 익스펜더블이라도 그 성격, 정신까지 몽땅 제거될 수 있다는 설정으로 스마트폰, 인터넷에 과하게 의존하는 현상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인 배양육이 등장하여, 바퀴벌레 단팥묵을 선보인 <설국열차>(<설국열차>와는 극 전반이 닫힌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비추며, 하위 계급의 반란 이야기를 다룬다는 면에서도 비슷합니다.), "슈퍼 돼지" 옥자와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의 우정으로 동물의 권리 보호와 육식의 교착한 주제를 건드린 <옥자 (Okja)> 등, 봉준호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연결성(<미키 17>은 <괴물>, <옥자>에 이어, 괴생물체가 등장하는 그의 세 번째 영화이기도 합니다.)도 확보합니다. "특별 만찬"이라고 미키 17을 꾀어내 미리 언질 없이 배양육을 먹이는 실험을 하고, 고기와 포도주를 즐기며 찬송가를 부르는 마셜 내외의 모습은 익스펜더블인 미키의 안전, 생사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의 냉소적인 태도를 또 한 번 드러냄과 동시에, 이 우주선 내 부조리한 계급 체계(평상시에는 엄격한 열량 기준에 맞춰서 배식받는 만큼만 먹을 수 있는 미키는 주린 배를 채우려고, 눈앞의 음식이 실험 단계 배양육인 줄도 모르고, 가히 게걸스럽게 그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가임기, 순종 여성"으로서 카이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말은 이 단락에 관객이 느끼는 불편함을 극대화합니다. 과거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있습니다. 크루아상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크리퍼(<듄 (Dune)> 연작의 샤이 훌루드도 얼핏 떠올랐습니다.)가 잘 보이지는 않아도, 실은 우리와 같은 눈을 가졌고, 여러 층위의, 전쟁을 원치 않는 순수한 생명체인데도 불구하고, 겉보기에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그들을 섣불리 적시(애초에 "크리퍼"라고 붙인 이름부터 그 생김새가 소름 끼친다는 뉘앙스를 내포합니다)하고, 그들을 죽여서 그들 행성을 식민지화하려는 인간의 욕심은 서부 개척 시대, 미국에서 벌어진 원주민 학살 등, 극악무도한, 추악한 인류사를 너무도 쉽게 들춥니다. 무리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마마" 크리퍼는 "루코"를 잃은 뒤, 꼬리가 잘리고 고문당하는 "조코"라도 구하겠다고 자식들과 착륙선을 에워쌌습니다. 높은 주파수의 음으로 인간들을 죽이고 니플헤임을 지키겠다던 마마의 위협이 실은 한낱 허풍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영화는 그를 최대한 익살스럽게 그려 내지만, 다른 한편으로 밀려오는 씁쓰름한 맛은 피할 수 없습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미키에게 일어나는 일은 개인 차원에서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대됩니다. 오늘도 산업 현장에서는 불의의, 때로 막을 수 있었던 비극적인 사고로 누군가 유명을 달리합니다. 작업 환경이 나아지리라는 오래된 희망을 품었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이 그 일을 대신합니다. 누군가 자리를 이탈하면, 다른 누군가 조용히 그를 채우는 형식입니다. 영화에서는 서로 다른 이은 번호의 미키가 그 쳇바퀴를 돕니다. 왜 그가 이 일에 지원했는지 되묻는다면, 어떻게든 우주선에 몸을 실어야 한다는 절박함 속, "특별한 기술이 없어서"입니다. 여기에도 사무치는 슬픔이 존재합니다.

마크 러팔로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 (Poor Things)>에서 맡은 덩컨 웨더번 역의 동화 혹은 만화적인 연무에 아직 조금 젖은 상태로 <미키 17>의 악한, 케네스 마셜을 연기했습니다. 그는 원정대를 이끄는 사람으로, 니플헤임의 정복자가 되고자 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마셜을 구현하는 데 역사 속 여러 부패한 권력자의 모습을 참고했다고 말하는데, 지금, 이 시점, 어쩔 수 없이 그가 가장 강하게 연상시키는 한 사람은 지난 1월부터 다시 백악관에 들어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입니다. 케네스 마셜은 트럼프의 방자한 태도와 일론 머스크의 망상을 '동시에' 가졌습니다. 그는 쉬지 않고 남을 조소하고, 과장된 분장술로 치장합니다. 그는 상스럽고도 가증스러운, 주전적인 미사여구와 "약속의 땅"을 들먹이는 별난 구경거리의 연출로 가득한, 행성 간 영토 확장설을 설파, 군중을 선동합니다. 약간의 기독교 민족주의와 종교적 광신이 뒤따릅니다. 배우는 병적인 자기애와 수선한 말투, 우스꽝스러운 머리로 표현되는 이 독재자를 연기하기가 사실, 꽤 재미있었다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그와 같은 독재자는 필패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원작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케네스 마셜의 부인, 토니 콜렛이 연기한 일파도 작중에 세웠습니다. 역시,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며 "그들만의 세상"에 빠져 산 역사 속 "독재자 부부"에 착안하여 배역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파는 자신보다 우둔해 보이는 남편을 앞세우면서도, 자신이 마치,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의 비극 (The Tragedy of Macbeth)>>에 등장하는 맥베스 부인(일파가 가진 야망과 무자비함, 권력을 추구하는 성질 따위가 그와 흡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도 똑같은데, 단, 일파는 남편이 죽고, 이튿날, 그와 같은 선택을 했으며, 그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한 결과였는지가 명시적이지 않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이라도 되는 양, 쉬지 않고 악랄하게 지저귑니다. 그는 주로, 본바탕을 알 수 없는, 불길한 소스를 이리저리 마구 저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소스를 향한 일파의 집착은 그가 본디, 맛과 빛깔을 내려고 음식에 넣거나 위에 끼얹는 액체라는 점을 떠올릴 때(물론, 소스가 필수적인 음식도 있지만), 니플헤임 식민지화를 위한 이 여정 자체가 그에게는 고작, 기호에 맞는 새로운 상품, 자극(소스는 색을 덮음으로써 어떠한 인과 관계, 책임 관계를 흐리는 성격도 지닙니다.)을 찾는 여흥에 불과할 수 있음(밑바닥에서 생사의 주기를 오가는 미키의 '일'은, 하루하루 그의 동기는 적어도 허영에 있지 않습니다.)을 암시합니다. 크리퍼 꼬리와 같은, 새로운 재료를 구하는 데 혈안인, 그러면서도 자신은 방 안에서 화면으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일파에게 이 전부는 마음 가는 대로 혼합기에 넣고 한 번 섞어서 주변에 실험하면 그만인 놀이일 뿐입니다.
다만, 이 마셜 부부의 설정은 <미키 17> 초연 이후, 아쉬운 소리를 제일 많이 듣는 부분입니다. 이들을 내세우면서 영화가 시도하는 사회·정치적인 풍자가 이내 여러 차례 반복되며, 초장에 이루어 낸 빼곡함에 미치지 못하고 이야기가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각본을 완성하고 촬영을 마무리하면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지난 일 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훨씬 더 혼란하고 어수선해진 국제 정세에 피해를 본 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막을 두 명의 미키(미키 17과 미키 18)와 크리퍼들의 교감으로 이어가는 데 열중하며, 이 뒤틀린 우주선에서조차 사라지지 않은 인간성을 너무도 사랑스럽게, 따뜻하게, 마치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동화처럼 풀어내는데, 왜인지 "절대적 악한"으로만 단정 지어진 케네스 마셜과 일파 이야기가 힘을 보태주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마셜은 관객에게 두 번의 선거에 패한 "실패한 정치인"이라고만 제시돼, (특히, 봉준호 감독의 이전 작품에서 만난 "악역" 무리와 비교에서) 평면적으로 보입니다.

니플헤임 식민지 개척을 위해 떠난 우주선의 권력 역학, 인간 군상을 마지막으로 찬찬히 뜯어 보면, "가임기 여성" 제니퍼가 죽게 두지 말고, 언제든 다음 노동자로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으로서 미키가 대신 죽었어야 한다고 대성질호하고, 배양육을 먹고 구토, 고통을 호소하는 미키 17에 대하여 고통을 줄여주겠다며 권총을 겨누거나(케네스 마셜), 그 와중에 아끼는 고가의 양탄자에 구멍이 나고 피로 얼룩이 질까 봐 걱정하는(일파) 등, 최고위층은 역겨운 위선으로 가득합니다. 과학자들, 곧 지식인층 다수는 익스펜더블을 통해 크리퍼들을 말살하려 하거나, 만찬장에서 미키의 고통을 또 하나의 임상 시험 기회로 여기는 등, 적극적으로 권력자에게 부역합니다. "절친"이라면서 시도 때도 없이 미키를 착취하고 학대하는 티모(사실, 이 우주선에서 식사 시간에는 열량 제한을 어기면, 곧장 경고음이 울릴 정도로 자원이 엄격하게 관리되는데, 티모가 크레바스에 갇힌 미키 17 구출을 거절하면, "유기물 덩어리"를 낭비하는 모순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기회주의자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종요로이, (조금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는" 이들은 따로 있습니다. 딴짓하느라 생체 프린터에서 출력돼 나오는 미키가 받침대 없이 꺾어져, 그대로 널브러지는데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할 만큼, 이곳의 권세는 부패했습니다. "순종" 백인들의 정치 체제가 안전하게 굴러가는 까닭은 "잡종" 유색 인종(나샤와 스티브 박이 연기한 지크 등)이 그를 수호해 주는 덕분이며, 이들은 결정적인 순간, 부조리를 영상 증거로 남기고(선전을 위한 마셜 일당의 촬영과 대조를 이룹니다.), 거기 맞설 줄 압니다(봉준호 감독 작품에 등장하는 공권력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이게도 이들은 양심에 따라 행동합니다.). 동글동글한 안경을 쓰고 순박한 미소를 짓는 연구원, 도로시(패치 페란이 분했습니다.)는 실험실에서 유일하게, 미키에게 조금 다른 온도로 대하여 주는 인물입니다. 십오 분이라는 미키의 가장 짧은 주기를 안내하면서도 십 분보다는 낫다고 말하는 천진난만함을 보여,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고 그를 막 대하는 동료들과 대비되고, 크리퍼들이 자신을 꿀꺽하지 않고 구해주었다는 미키의 말을 들은 뒤, 부르르 입술 떨어서 내는 소리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재빨리 통역기를 개발, 미키를 통해 그들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낯선 생물체를 보고 가진 공포의 본질에 홀로 다가서는 미키에게 이들은 든든한 조력자이며, 또한 각자가 이 서사시의 작은 영웅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도 필요한 얼굴들입니다.
'35mm'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를리날레 개막작 상연을 앞두고: <<슈피겔>>과 톰 티크버의 인터뷰 (1) | 2025.02.07 |
---|---|
<이처럼 사소한 것들>: 연약하지만, 터벅터벅, 진실을 향해 (0) | 2025.01.14 |
<서브스턴스>: 창조된 세계 속 주인공의 공포감이 관객의 경험으로 (8) | 2024.12.22 |
<아노라>: 자신을 꿰뚫어 보는 사람 앞에서 폭발시킨 감정 (9) | 2024.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