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리날레 개막작 상연을 앞두고: <<슈피겔>>과 톰 티크버의 인터뷰

2025. 2. 7. 03:0035mm

 텔레비전 시리즈, <바빌론 베를린 (Babylon Berlin)>을 연출하며 보낸 몇 년을 지나, 톰 티크버 감독이 영화관에 돌아왔습니다.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함으로써 발생하는 인지적인 왜곡, 오만함과 복잡한 현상(the present state), 그리고 "X세대(Generation X)"의 유산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 Joachim Gern

 

 1965년, 부퍼탈에서 태어난 톰 티크버는 독학하여 영화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여러 영화 학교 입시에서 낙방한 후, 1993년, 장편 데뷔작인 <Die tödliche Maria> 각본을 썼습니다. 그는 1998년, 액션과 실험적인 요소를 섞어 우연의 힘을 다룬 영화, <롤라 런 (Lola rennt)>으로 첫 번째 거대한 성공을 거두고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티크버는 케이트 블랜칫(역주: 2002년 작, <헤븐 (Heaven)>), 클라이브 오언(역주: 2009년 작, <인터내셔널 (The International)>), 톰 행크스(역주: 2012년 작, <클라우드 아틀라스 (Cloud Atlas)>와 2016년 작, <홀로그램 포 더 킹 (A Hologram for the King)>) 등, 유명한 배우들과 작업했고, 2012년, 워차우스키 자매(The Wachowskis; 라나와 릴리)와 함께 데이비드 미첼의 소설, <<클라우드 아틀라스>> 원작으로, 1억 달러 넘게 들인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2010년대 중반,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가 배경인 <바빌론 베를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티크버가 공동 각본가이자 연출자인 아힘 폰보리에스, 헨드리크 한트뢰크텐과 함께 만든 이 정교한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다섯째이자, 마지막을 장식할 시즌이 진행 중입니다. 감독의 새로운 영화, <더 라이트 (Das Licht)>는 우리 시대 주요 논쟁거리가 투영된 갈등을 겪는 베를린 중산층 가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2월 13일, 제75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Internationale Filmfestspiele Berlin (Berlinale))에서 초연하고, 3월 20일, 극장 개봉할 예정입니다.

 톰 티크버가 소호 하우스 베를린(Soho House Berlin)에서 <<슈피겔>>과 만났습니다. 그는 지쳐 보이지만, 동시에 조금 들뜬 듯합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새로운 영화에 관해 풀어놓는 첫 번째 인터뷰입니다. 그가 <더 라이트>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갑자기 방 안의 유선전화가 울렸습니다. 티크버는 <롤라 런>과 같다고 껄껄거렸습니다. 그 영화에서 프랑카 포텐테가 분한 주인공은 남자 친구, 마니로부터 당황스러운 전화를 받고 그를 구하려고 달려 나갑니다. 객실의 전화가 다시 꺼지고, 티크버는 인제 완전히 깨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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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주: 아래로 질문자의 말(굵은 글씨)과 톰 티크버의 답변이 교차하며 이어집니다.

 

티크버 씨, 이 주 정도 있으면(역주: 인제 꼭 일 주 남았습니다), 당신의 새로운 영화, <더 라이트>와 베를리날레 문을 열어요. 2002년의 <헤븐>, 2009년의 <인터내셔널>에 이어, 당신의 경력 가운데 어느덧 세 번째죠. 칠 년 전에는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하셨어요. 이를테면, 친정이랄까요?

 당연히 기쁘지만, 긴장도 됩니다. 작품을 상연하면서 그 한가운데 앉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제게는 중요한 일이며, 저는 당연히, 관객을 사로잡고 싶습니다.

 

<더 라이트>는 당신이 거의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영화(역주: 2016년 작, <홀로그램 포 더 킹> 이후 처음)예요. 그간 텔레비전 시리즈, <바빌론 베를린> 작업으로 바쁘셨죠?

 저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보고 싶었습니다. <바빌론 베를린>에서 우리는 우리 조부모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시리즈 중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 사이 연결고리를 찾아왔지만,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 우리를 움직이는 많은 요소를 다루지 못했습니다. 인제 저는 지금, 그리고 미래에 우리가 직면하는 변화와 거대한 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만 싶었고, 그를 위해 우리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습니다.

 

 

<더 라이트>는 기후 변화와 난민 위기,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빈곤,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실존적 위기, 계급과 젠더 문제, 컴퓨터 게임에 관해 이야기해요. 고로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죠.

 다만, 그 출발점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습니다. 저희 가정부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나타나지 않았고,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할지, 그를 돌봐 줄 사람이 있는지. 그 끝에 그에게 큰일은 없었다고 밝혀졌지만, 제가 그의 집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와 25년을 함께했는데도 말입니다.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군요.

 그렇습니다. 많은 가정에, 대개 독일인이 아닌 누군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모든 일을 보기 좋게 해냅니다. 좋은 영혼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고, 존중하고, 돈을 줍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그를 거의 알지 못합니다. 매주 어떤 사람이 자기 삶의 영역에 들어와 질서를 만드는지 사람들은 전혀 모릅니다. 영화의 생식세포는 바로, 저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었습니다. 저는 수년간 우리와 어울리는 모든 문화를 포용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작 저 자신은 그리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전 세계 각지의 사람이 독일에서 우리와 살고 있습니다. 현실이 그러합니다. 왜 우리는 그를 인정하기를 그토록 어렵게 여깁니까? 저는 저의 실패와 제 세대의 실패에 대해 생각하는 일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 세포로부터 하나의 유기체, 이 영화가 성장했습니다.

 

<더 라이트>에서 당신은 베를린 한 중산층 가정의 사사로운 일을 돌보는 시리아 여성 이야기를 들려줘요. 극 중 라스 아이딩어가 연기하는, 거리낌 없이 털털하고 외국인에 대해 편견 없는 척하면서도 자기 아내나 두 자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중간 계급 광고 전문가가 당신의 분신인가요?

 강력한 목소리로 풀어가고 싶은 영화에는 모든 배역에 몰입하기가 도움이 됩니다. 저는 여러 해에 걸쳐, 배역마다 각자의 삶을 갖도록 하면서도 그들의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를 계속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신의 가정부는 영화의 받침점이 되는 극 중 인물로 어떻게 옮겨졌나요?

 저는 스스로 궁핍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우리에게 낯선 사람으로 팔리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많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저는 이 배역을 구세주로 묘사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가족 구성원들이 감당하는 그 어떤 몫보다도 크고 무거운 무언가가 덤불 속에 숨어있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낍니다.

 

 

<더 라이트>에는 뮤지컬 장면과 심지어 애니메이션 마디까지 삽입돼 있으며, 퀸(Queen)의 노래, <Bohemian Rhapsody>가 영화를 관통하듯이(wie ein roter Faden) 흘러나와요. 프레디 머큐리는 언젠가, 원래 세 곡의 구상이 있었는데, 결국에는 한 곡에 채워 넣었다고 말했죠. 당신의 영화도 그랬나요?

 <Bohemian Rhapsody>는 우리 영화의 음악적인 청사진입니다. 많은, 서로 다른 영향력과 아이디어, 열망을 한데 모을 수 있음을 프레디 머큐리가 작곡가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보여 주었다는 사실이 저를 안심하게 했습니다. (<Bohemian Rhapsody>에는) 어딘가 엉뚱해 보이는 전환기들이 있지만, 막힘이 없이 조화롭습니다. 훌륭합니다. 우리 영화를 거기 비교하며 주제넘게 굴지는 않겠지만, 예, 저도 비슷한 출발점을 가졌습니다. 현재의 불협화음을 포착하면서도 동시에 영화가 무얼 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저는 전부 균형 있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바빌론 베를린>과 경험 이후,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정말 많은 재료가 있으니, 하나의 시리즈로 만들자고?

 역시 한 명의 영화 애호가로서, 솔직하게, 저는 그런 유의 영화가 그립습니다. 독일어로, 활기차고 진정 큰 화면을 위해 만들어진, 몸과 마음을 바친, 영화 예술적인 요소로 가득 찬 영화가. 그런 영화가 때로는 과해 보일 수 있습니다. 전하려는 이야기, 다루어지는 주제가 바로 와닿지 않습니다. 저는 제 눈앞에 벌여놓은, 동시에 소용돌이치는 여러 가지를 보며 감탄하고 싶습니다. 제가 (관객으로서) 그런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 감독으로서, 저도 그러한 일을 해봐야 합니다. 이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더 라이트>가 두 달 후에 극장에서 개봉하면, 그때 뭇사람이 판단할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 시리즈의 폭발적인 인기몰이로 인해, 사람들은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복잡한 이야기에 익숙해졌는데요. 인제 영화의 화법도 달라질 수 있을까요? 꼭 그렇게 해야 할까요?

 근본적으로 형식이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리즈가 자주 적용하는, 미친 듯이 많고, 종종 놀라운, 수많은 우회로를 영화에 쓸 수 없습니다. 영화는 그보다 경제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끝이 맺어진 하나의 예술적 체험으로서 영화가 갖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영화가 매번 또 다른 이야기를 예고하지는 않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과잉 공급 탓에 시리즈에 관한 담론이 거의, 더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아직 다 보지 못했으니 기다려 달라고 끊임없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안 서는 중에 각자 다른 시리즈를 보고 있어서 모두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까요?

 더는 내용이나 미학적인 가치에 관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두가 놓쳤거나, 봐야 하는 시리즈에 관한 대화만이 그를 대신할 뿐입니다.

 

영화가 예술 작품에 관한 공동의 대화를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요?

 한 시대의 문화적인 담론을 결정하는 영화는 언제나 단 몇 편에 불과하지만, 거기서조차 벗어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당신의 견지를 정해야 합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영화를 혼자 싫어하기도 늘 재미있고, 그 또한 그 일부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사람들에게 작용하여, 그를 통해 당대를 정의하고 우리가 진정 어디로 가고 싶은지, 이곳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무엇이 이 맥락에 적절한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미학적으로 이야기하도록 하는 제공물이 되려 하기를 저는 당연히 바라고, 또한 몹시 그리워합니다.

 

<더 라이트>가 바로 그런 시도가 성공한 하나의 영화인가요?

 글쎄, 자기 역량의 과대평가에 의한 인지적 왜곡은 추락 전에 찾아옵니다(웃음). 자신이 영화의 힘을 믿고, 영화관에 향수가 있다고 말할 때면, 자신에게도 엄격해져야 합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자신은 무얼 위해 영화관에 가는지. 저는 집에 커다란 텔레비전도 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며 눈을 굴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아이들이 이 영화 또는 저 영화가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Kinofilm")인 듯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기꺼이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기를 원합니다.

 

톰 티크버의 1998년 작, <롤라 런>의 한 장면. [ⓒ Imago Images/ United Archives]

 

50년 전, 많은 사람은 <Bohemian Rhapsody>를 두고 노래가 너무 길고, 너무 괴상하며, 너무 꽉 채워져서 절대 성공하지 못하리라고 말했죠.

 재미있게도 제 경력 중에는 이미 왕왕 <Bohemian Rhapsody>와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롤라 런>을 두고 많은 사람이 영화가 세 번이나 시작하는데, 학생들을 위한 장난 수준이지, 제대로 된 장편영화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니라고, 철학적인 액션 영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영화관에서 틀 만한 영화인지, 그 적합성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습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230쪽 분량의 각본을 제출하자, "좋아요. 재미있는데, 이제, 진짜 무얼 만들 건가요?"라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우리(역주: 톰 티크버와 워차우스키 자매)는 바로 그 제출한 각본에 따라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저도 이러한 "위험 감수하기"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철학적인 액션 영화"를 위한 자본 확보가 전보다 쉬워졌나요, 어려워졌나요?

 지독하게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된 자금 조달 구조를 상대하고 있는데, 이는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에 필요한 요구에 거의 응하지 않았습니다. 예산은 십 년 전과 같은 수준에 머물렀지만, 더는 그 정도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더는 그 돈으로 영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문제입니다. 제가 <에밀리아 페레즈 (Emilia Pérez)>와 같이 급진적인 작품에 더욱 흥분하는 이유입니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만든, 여성으로 성별을 확인하는 수술을 받는 멕시코 카르텔 수장의 이야기, 뮤지컬 스릴러죠. 13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이 유력한데요.

 이 유쾌하고 나이 든 프랑스 출신 교양인, 오디아르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보십니까? 넘치는 주관적인 열정과 분노를 지닌, 불행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많은 희망을 그리는 영화입니다. 저는 그가 압도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흔둘의 그는 일각에서 (감독 자신은) 이성애자, 백인, 프랑스인으로서 영화의 주인공과 형편이 다르다는 점을 비난당했어요. 그가 트랜스 사람들이나 멕시코에 사는 사람들의 감정, 상태에 관하여 전혀 알지 못한다죠.

 갑자기 진정성의 곤봉이 흔들리는 꼴이 웃깁니다. 제가 18세기 파리에 관하여 무얼 알겠습니까? 그와 같은 잣대라면, 저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Das Parfum - Die Geschichte eines Mörders)>를 만들지 말아야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습니까? 사실, 모든 영화는 또한 하나의 서술이고, 감정입니다. 누구나 지극히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한 편씩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비로소 자기 주관을 세우고 그를 펼쳐낼 수 있는 주제를 찾았을 때야, (말하자면) 두 번째 영화와 함께 예술가의 작업이 시작됩니다. 그다음, 양측은 놀라운 융합 단계에 돌입해, 서로에게 영양을 공급합니다.

 

당신의 영화에는 때로 초자연적인 요소,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에서나 볼 듯한 성질, 꿈과 춤의 구성단위가 등장해요. 당신은 스스로 정치적인 영화 제작자라고 생각하시나요?

 예, 대부분 제 영화에는 특정한 정치적 참조 사항이나 정보원이 있었습니다. <롤라 런>은 90년대 말, 베를린이 다시 모습을 바꾸던 변혁기에 개봉했습니다. 헬무트 콜(역주: 독일 기독교 민주 연합(Christlich Demokratische Union Deutschlands) 출신으로 1982년부터 연방 총리로 재직했으며, <롤라 런>이 개봉하던 1998년에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이 당선하고 16년이 되던 당시, 변화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유토피아적으로 작동하는 장소, 베를린을 만들려면, 새롭고 신선한 힘이 필요했습니다.

 

제75회 베를리날레 개막작으로 선정된 톰 티크버의 신작, <더 라이트> 중 한 장면. [ⓒ X Verleih]

 

오늘 우리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나요?

 오늘날, 우리는 마치 모순된 태도와 감정에 소모되는 듯이 느껴집니다. 이렇게도 분명한 시선을 취하기가 어려웠던 적은 없습니다. 세상이 혼란을 향해 활짝 열린 듯 보입니다! 제게는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이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 유세 중 거대한 화면에서 연설하는 일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 충격적입니다. 저는 즉시 조지 오웰을 떠올렸습니다. 빅 브라더(역주: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 등장하는 가상의 국가, 오세아니아의 독재자; Big Brother)의 새 얼굴입니다. 이는 또한 하나의 영화 아이디어입니다! 우리가 어디쯤 왔습니까?

 

이 대목에 "우리"는 누구를 지칭하나요?

 우리 영화가 다루는 세대, 제 세대와 당신의 세대입니다. 이러한 모순, 우리가 감당할 수도 없고 길들일 수도 없는 어떤 유령을 불러냈다는 느낌 속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시장을 개척하며 새로운 세기의 문을 열었고, 결국, 지켜보기만, 방관했습니다. 중산층이 잘 버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문제가 생겼고, 우리 영화에서도 그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 딸이 가족에게 쏘아붙입니다. 무슨 일을 벌였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그러면 우리는 답합니다. 우리도 다만,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고.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많이 이루었다고.

 

무엇을 이루었나요?

 우리는 더욱 큰 개방성과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자유의 개념을 찾는 정찰병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주장할 수 있었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인제 그 전부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다만, 사실, 저는 우리가 진정 힘든 과제를 안겨 준 젊은 세대가 우리 세대의 젊은 시절보다 더 빨리 한 곳에 수렴하리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욱 열린 생각과 감정의 공간에서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 공간이야말로 우리가 70년대와 80년대 초, 정찰에서 챙겨와 보전해 낸 우리의 유산입니다.

 

어느덧, 당신도 거의 예순이 됐죠. 영화감독에게 최고의 나이란 존재할까요?

 시작과 중간, 끝. 장마다 해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장뤼크 고다르(1930-2022)에 대한 견해와 관계없이, 우리는 늘 그의 초기작, <네 멋대로 해라 (À bout de souffle)>의 영향력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경력 중 한복판의 걸작인 <주말 (Week-end)>에 관해서도 생각합니다. 또한, 너무도 자유롭고, 주의가 집중된 후기의 훌륭한 작품들도. 제게 고다르는 영화가 한 예술가의 삶과 사고의 진화를 어떻게 투영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저는 제가 황혼에 접어든 뒤, 당신이 <더 라이트>가 당신의 <주말>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보다 두 살 많은 당신의 친구, 쿠엔틴 타란티노는 열 편의 장편영화 끝에(역주: 2019년 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를 마지막으로) 그만두고 싶어 해요.

 하지만, 저는 확실히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쿠엔틴이 왜 그리하고 싶어 하는지, 그만의 개인적이고, 특이하며, 터무니없는 규칙을, 한 번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보겠습니다. 당신은 제정신이 아니라고(Du hast sie doch nicht alle). 쿠엔틴은 적어도 열 편의 영화를 더 만들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 나이 든 영화감독도 많습니다.

 

94세에도 새로운 영화(역주: <배심원 #2 (Juror #2)>)를 영화관에 건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말이죠?

 클린트, 그렇습니다! 그의 신작은 끝내줍니다! 그가 멈춰서지 않아서 신께 감사합니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던 노년의 감독들도 물론 있습니다.

 

예를 들면요?

 지금 이름을 대고 싶지는 않습니다. 끝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비극적인 일입니다. 저는 스스로 영화를 보러 가기를 멈추고, 자기만의 신화에 매달릴 때만 그 끝을 알지 못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에게 도전 과제를 세우며,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내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기를 바라고, 나도 계속 그를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만이 종국에 유효한 단 하나의 기준일 터입니다. 98세가 돼서라도.

 

티크버 씨, 이 면담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려요.


Beier, L., & Borcholte, A. (2025, February 1). >>Ich wollte alles in die Waagschale werfen<<. Der Spiegel, 6, 108-111. https://www.spiegel.de/kultur/kino/tom-tykwer-ueber-sein-kino-comeback-ich-wollte-alles-in-die-waagschale-werfen-a-8d7cc464-1e94-4d69-a2ee-130e3da3bfc5?giftToken=e4309998-e1d4-462c-871d-c7b7ea41203e

 

(S+) Tom Tykwer über sein Kino-Comeback: »Ich wollte alles in die Waagschale werfen«

Nach Jahren mit der Fernsehserie »Babylon Berlin« kehrt Regisseur Tom Tykwer ins Kino zurück. Ein Gespräch über Größenwahn, die komplexe Gegenwart und das Vermächtnis der Generation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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