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9. 16:00ㆍ35mm
"Gestehen wir jedoch, es ist ein saures und trauriges Geschäft, das alte Rom aus dem neuen herauszuklauben, aber man muß es denn doch tun und zuletzt eine unschätzbare Befriedigung hoffen. Man trifft Spuren einer Herrlichkeit und einer Zerstörung, die beide über unsere Begriffe gehen. Was die Barbaren stehen ließen, haben die Baumeister des neuen Roms verwüstet.", von Goethe, J. W. (1913). Italienische Reise (K. Jahn, Ed.). Breitkopf & Härtel. (Original work published 1829)
해외로 여행을 떠나며, 우리는 우리의 배경을 벗어나, 낯선 미지의 세상에 발을 들입니다. 개방적인 이들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유독 발랄하고 뜻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대상을 이해하는 데는 일정 수준 한계가 존재하고, 방문객과 세계 각지의 심리적 거리감, 그를 이어주는 다리는 그 위를 지날 때마다 흔들거리기 일쑤입니다. "위대한 독일인", 요한 볼프강 폰괴테조차, 1786년 11월 7일, 그의 두 눈에 담긴 당시 로마 풍경으로부터 고대 로마의 모습을 선별해 내는, 필요하지만, 불쾌하면서도 가슴 아픈 일을 하며, 그곳에서 차마 그의 이해로는 형용할 수 없는 장엄함과 파괴의 파편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여행이란, 본질적으로, 약간의 운이 따를 때 우연한, 예상치 못한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오해'와 '반쯤 이해'의 빈번한 줄다리기입니다.
지난해,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에서 감독상(Prix de la mise en scène)을 탄 미겔 고므시는 자신을 처음으로 그곳 경쟁 부문에 입성시켜 준 최신작, <그랜드 투어 (Grand Tour)>에서 바로 그 여행의 괴리를 글자 그대로 만들어, 자신의 여행자들이 예정됐다고 믿은 장소에 절대 머물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영국령 버마에 주둔한 식민지 관리, 에드워드(곤살루 웨딩턴이 분했습니다.)에게는 몰리(크리시타 알파야트가 분했습니다.)라는 약혼자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장거리 약혼을 해왔으며, 인제 몰리가 랑군에 와서 칠 년 만에, '마침내' 그 계약을 성사하려고 합니다. 영화는 몰리를 기다리는 에드워드와 함께 시작합니다. 하지만, 몰리의 배가 선착장에 가까워져 올수록, 에드워드에게는 더 큰 초조함이 밀려오니, 우리의 전반부 주인공(영화는 크게, 몰리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도망하는 에드워드를 비추는 전반부와 끈질기게 약혼자를 추적하는 몰리를 따라가는 후반부로 나뉩니다.)은 손에 든 꽃을 한 송이씩, 아무렇게나 주위에 나누어주고, 싱가포르로 떠나는 또 다른 배편에 몸을 싣습니다. 몰리가 곧장 따라붙어, 방콕과 사이공을 거쳐, 결국, 중국까지 건너가, 해체 이전의 대영제국을 관통하는 웅장한 여정 속으로 두 사람을, 관객을 안내합니다. 공교롭게도 칸에서 경쟁한 자장커 감독의 <풍류일대 (风流一代)>와 꼭 닮은 이 영화는 미겔 고므시 감독이 윌리엄 서머싯 몸이 캄보디아, 태국 등지를 여행하고 남긴 한 글(<<The Gentleman in the Parlour: A Record of a Journey from Rangoon to Haiphong>> 가운데)을 읽고,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노라>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인공이 된 션 베이커 감독이 연단에 올라 역설했듯이, 오늘날, 우리는 영화 산업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집 밖에서' 예술을 지원하기가 시민의 의무처럼 받아들여져, '예외 사례'가 눈에 띄었다지만, 지난해, 세계적으로 극장 수입은 실망스러우리만치 줄어들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로 이러한 경향성이 뚜렷해졌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고, 부분적으로 할리우드에서 잇단 파업을 탓하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상품의 범람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영화,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지 보면, (논증할 수 있는 일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시간을 죽이기 위한, 혹자는 "세 시간짜리 광고"와 같다고까지 혹평하는 영화가 마치 하나의 틀에서 찍어낸 듯 양산돼, 정말 누구라도 붙잡고 오래 이야기할 만한, "특별한 영화관에서 경험"을 찾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소비자가 적지 않습니다. 미겔 고므시가 내놓은 <그랜드 투어>는 이러한 현상에 정면으로, 거칠게 저항하는 작품으로서 의미가 더욱 큽니다. 에드워드와 몰리라는 두 주연을 세웠지만, 이들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뻔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닙니다(스크루볼 코미디의 성격도 분명히 지녔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음성으로 계속 전해지나, 시간 연쇄에 따라 있는 그대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때로 모험극, 추리극의 성격을 띠는 이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현대 아시아의 거리 풍경을 담은 다큐멘터리에 포개어진 극중극처럼 보입니다(고로, 과거와 현재가 발칙하게 겹칩니다.). 사실, 싱가포르에 닿고 에드워드가 몰리의 전보를 받은 래플스 호텔("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 경의 이름을 딴 고급 호텔)에서 장면이나, 몰리에게 호의를 베풀며 구애하는 티머시 샌더스(클라우디오 다실바가 분했습니다.)의 전원 사유지에서 장면 등, 배우들이 연기하는 대부분 모습은 포르투갈 리스본, 이탈리아 로마의 영화 촬영용 방음 장치를 설치한 무대에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과장되게 꾸며지고, 빽빽하게 채워진, 명백히 인공적인 장소에서 찍은 이 영상은 고므시 감독이 직접 아시아 각지를 돌아다니며 촬영한 영상과 상당한 괴리감을 선사(어떤 의미로는 감독이 서로 다른 두 영화를 만들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합니다. 저무는 식민 시대의 멋진 비현실을 감독은 다양한 영화적 표현으로 증폭했습니다.

"Under the rain and scorching sun, a melancholic creature treks through jungles and arid lands for months. In the heart of the black continent, neither beasts nor cannibals seem to frighten then intrepid explorer. Followed by a contingent of men carrying bead fabrics and modern scientific expedition tools. The group includes in its ranks His Majesty the King of Portugal, or at least his will, as expressed in a royal decree, and he who is above is who all creatures call Creator, and whose voice lives in the Bible.
But even if his legs move forward by superior will sovereign or divine the heart, the most insolent muscle of all anatomy, dictates other reasons for the match. Poor miserable man! This whimsical organ rules over both King and the Eternal. So we here by reveal the true law of this expedition to roam the ends of the world walking away from the lands where he saw his beloved wife perish, as if he could ever stop death. Intrepid he is, but out of desperation. Taciturn and melancholic, the sad figure wanders desolately over the inhospitable planes.
And my mysterious unknown, he is visited from afar by the one whom his heart begs for, wearing - oh morbid details! - the dress that hugged her when she returned to dust.
'You may run as far as you can, for as long as you like, but you will never escape your heart.'
'Then I will die.'
'You sad and poor soul.'", Gomes, M. (Director). (2012). Tabu [Film]. O Som e a Fúria.
공간부터, 버마는 미얀마이고, 랑군은 양곤이며, 사이공은 호찌민입니다. 지나온 세월, 이름만 바뀌지 않았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An der schönen blauen Donau)>를 배경음악으로 호찌민에서 '교통 체증을 뚫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장면이나, 노동자들이 얼기설기한 전신주를 푸는 장면, 그들을 비추는 카메라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본체만체하며, 주민들이 마작판을 벌이고, 요리하고, 대나무를 추수하고, 장 서는 곳에서 닭싸움을 구경하는 모습은 에드워드, 몰리의 사랑 이야기와 언뜻,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합니다. 심지어는 싱가포르에서 방콕으로 향하던 열차가 탈선한 뒤, 에드워드가 길잡이를 고용하여 헤집은 정글에서 휴대전화가 울리고, 양쯔강(揚子江)을 거슬러 오르려고 그가 연락선을 잡아타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영국인이라는 에드워드와 몰리는 물론, 대영제국의 모든 '등장인물'이 포르투갈어를 구사합니다. 이토록 터무니없는 고증 오류는 당연히, 감독이 의도한 바입니다. '과거'의 그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거나, 문제 삼지 않으니, 마술적 사실주의(Realismo mágico)의 파편이 분명하게 쥐어집니다.
미겔 고므시 감독의 작품을 차례로 본 관객이라면, 이러한 방식에 어느 정도 기시감을 가질 만합니다. 감독은 일찍이, 2008년 작, <친애하는 8월 (Aquele Querido Mês de Agosto)>에서 16㎜ 카메라로 찍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을 유려하게 조타하여, 청춘의 사랑 이야기와 연결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사 년 뒤에 나온 <타부 (Tabu)>는 <그랜드 투어>와 유사성이 더 큽니다. <타부>에서 고므시는 모잠비크를 배경으로, 포르투갈인 두 주인공, 오로라(아나 모라이라가 젊은 그의 모습으로 분했습니다.)와 벤투라(카를로토 코타가 젊은 그의 모습으로 분했습니다.)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를 폈습니다. 낭만적으로 그려질지언정, 언제 들킬지 모르는 불안함에 시달려야 했던 그들의 사랑처럼, 오로라에게 비할 데 없는 해방감을 주고, 이국적인 정서와 "쉬운 삶"뿐 아니라, 도박 빚과 머리 아픈 사랑 문제가 없는 삶을 벤투라에게 약속한, 말 그대로 "낙원(Paraíso)"으로 지칭된 아프리카 대륙에는 식민지 사람들에 대한 노동 착취의 구조가 깊숙이 뿌리내렸습니다. 모잠비크는 이미 지난 세기에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지만, (그의 최신작에서 그렇게 하듯) 감독은 현대적인 장소들을 그곳이 아직도 포르투갈 치하에 있는 듯이 알맞게 배치, 사용합니다. 말하자면, '현재'를 '과거'에 입히려는 시도를 감독은 이전부터 해왔습니다.

나라가 바뀔 때마다, 그에 맞춰서, 다른 언어로, 끊임없이 출력되는 장면 해설은 관찰하고, 스스로 구두점 찍으며 굽이굽이 흐르지만, 그가 에드워드, 몰리의 행적을 파악하는 데나, 자기 약혼녀로부터 필사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달아나려는 남자의 심정, 동기를 이해하는 데 구체적인 도움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감독은 계속해서 하나의 영상을 보여주고, 그가 실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고, 다른 의미가 있다고 관객을 설득하는 데 삼인칭 해설을 사용합니다. 끊임없이 직관적인 인상, 사진과 청각적인 정보, 문자가(심지어는 문자와 문자도) 서로 단절되는데, 이는 신비롭고 달콤하며, 환상적인 방식의 가벼운 희극을 한결 광범위하고 불안정하며, 자유로운 한 편의 시로 변화시킵니다. 단순한 병치 이상으로, 이러한 분리는 하나의 상에서 다른 상을 떼어낸 다음, 이야기를 통해 전부, 다시 엮어내는 이중적인 움직임을 독려합니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벽, 시간성을 깨뜨리고, 공간적으로 시대성을 깨뜨리며, 실재하는 세계의 경험과 허구를 연결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관계까지 정립합니다. 화면에 나타나지 않지만, 이 과정에 무척 중요한 목소리 대본을 미겔 고므시 감독과 그의 작가들(<친애하는 8월>부터 함께하는 마리아나 히카르두, <타부>부터 합류한 텔모 추로, 그리고 가장 최근에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모린 파젱데이루)은 <타부>, <천일야화 (As Mil e Uma Noites)> 삼부작(차례로 'O Inquieto', 'O Desolado', 'O Encantado') 작업 때와 마찬가지로, 영화를 편집하면서 썼다고 합니다. 프랑스 출신인 모린의 포르투갈어에 프랑스어 억양이 섞여 있어, 이 점에 흥미를 느끼고, 처음에는 음성 녹음에 '더 많은 억양'을 찾으려고 했고, 그 계획이 발전하여, 편집이 거의 마무리됐을 무렵에는 '더 많은 언어'로 이어졌습니다. 장면을 해설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그랜드 투어>의 이야기를 들려주니, 결국, 에드워드와 몰리, 관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나라를 오가는 동시에, 여러 언어를 오가며 여행하게 됩니다. 특히, 편집자가 하나의 감정을 재빨리 이항하여, 충동적이고 불확실하지만, 원기 왕상한 안내를 제공하니, 관객은 허구와 현실을 주체적으로 여행할 수 있습니다.

<그랜드 투어>에서는 누벨바그(Nouvelle Vague;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의 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어떤 관객은 (추측건대, 서사가 중심이 되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네 멋대로 해라 (À bout de souffle)>, <국외자들 (Bande à part)>의 분위기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장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의 실존주의(Existentialism) 철학에 근거하여, 이때까지 영화의 관습적인 면을 비판하며 등장, 1950년대와 1960년대, 프랑스 영화계를 휩쓴 이 "물결"은 장뤼크 고다르(1930-2022; <네 멋대로 해라>와 <국외자들> 모두 그의 작품입니다.), 프랑수아 트뤼포(1932-1984), 클로드 샤브롤(1930-2010), 에리크 로메르(1920-2010), 알랭 레네(1922-2014) 등, 거장들의 이름으로 대표됩니다. 이 시기, 더 가볍고, 더 빛에 민감한, 새로운 카메라와 필름이 개발되어, 인위적으로 차린 무대 밖에서 촬영 비중이 커졌고, 그래서 영화가 종종 다큐멘터리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알랭 레네는 1956년, 불멸의 다큐멘터리 고전, <밤과 안개 (Nuit et Bourillard)>를 내놓았습니다. 누벨바그 시대 영화에는 (이제 미겔 고므시의 최신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불연속적인 편집, 고정된 배경 속, 연기자의 동작이 시간을 뛰어넘는 듯한 연출(Jump cut)이나, 필름의 전통적인 편집 속도보다 훨씬 길게 지속해서 촬영하는(Long take) 등의 기술이 빈번하게 쓰였고,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랜드 투어>에서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외에도 주세페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Il Trovatore)> 가운데 <저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 (Di quella pira)>, 보비 다린의 <Beyond the Sea> 등이 (오로지 그 순간의 감수성을 고조하려는 목적으로, 때로 소음과 뒤섞여) 인상적으로 쓰였습니다. 마닐라에서 건진 영상 중에는 한 중년 남성이 프랭크 시내트라의 <My Way>를 부르며 뜨겁게 눈물 흘리는 뭉클한 장면도 있습니다.

그 옛날, 요제프 폰슈테른베르크(1894-1969)의 작업처럼 잘 짜인 촬영장에서 카메라 위치를 잡고, 각도를 조정하고, 동선을 미리 약속, 확보하여 찍은 장면들과 달리, 미겔 고므시 감독이 16㎜ 필름에 담아낸, 훨씬 동적인 현대 아시아의 산수는 삶의 희로애락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영화 첫 장면은 미얀마의 유원지에서 페리스 관람차를 손수 돌리는 사람들의 수동적이고 반복적인 율동을 집중해서 비춥니다. 한편, 오사카 도톤보리 운하에서는 화려한 불빛 아래로 여객선이 미끄러지듯 운항하고, 둥팡밍주(东方明珠)가 위용을 뽐내는 상하이는 고층 건물로 빼곡합니다. 이 영상이 화려한, 이국적이고 신기한 광경을 기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 자체로 서양의 시각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왜곡되고 전도된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축적된 그 고정 관념을 깨뜨리는 역설을 이루기도 합니다. 영화 후반부로 향할수록, 곧, 관객이 에드워드를 쫓는 몰리의 여정에 동행하면서부터는 그 화려함의 밀도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광활하고, 한없이 거칠고, 때로 잔인하기까지 한 자연(예를 들어, 폭우가 쏟아지는 모습 등으로)이 더 두드러지며, 서사는 느슨해지고, 작품의 시적인 감수성이 강조됩니다. 문득, 시적 사실주의(Réalisme poétique)의 정수, 대표작으로 꼽히는 <라탈랑트 (L'Atalante)>가 떠오릅니다(그렇게 감독은 다시, 시대를 거슬러 오릅니다.). 스물아홉에 요절한 빅토르 위고(1905-1934)의 유작이자, 그가 남긴 유일한 장편인 이 영화는 "라탈랑트"라는 이름의 바지선을 타고 모험을 떠난 한 신혼부부 이야기를 보리스 카우프먼(1906-1980)의 초현실적이고도 몽환적인 화면으로 그려냈습니다. 사랑과 이별, 재결합의 구조를 지나는 스크루볼 코미디의 성격을 따르면서도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는 구태, 제도, 체제로부터 무정부주의적인 해방을 노래했습니다. 디타 파블로가 연기한 <라탈랑트>의 쥘리에트는 파리를 둘러보고 싶은 갈망과 그러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탈주도 감행하겠다는 결단력을 지닌, 선장인 그 남편의 힘으로도 통제되지 않는 '자율 의지의 표상'으로서, 쉼 없이 달아나는 남자를 붙잡아 결혼하고야 말겠다는, 고집이 센 만큼 주체적인 <그랜드 투어>의 몰리와 닮았습니다.

미겔 고므시 감독은 첫 번째 장편인 <네게 마땅한 얼굴 (A Cara que Mereces)>부터, <친애하는 8월>, <타부>, 그리고 최신작, <그랜드 투어>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자기 작품을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고 있습니다(심지어, <천일야화>는 완전한 삼부작입니다.). 그가 이러한 작업 방식을 선호하는 까닭은 관객이 1부, 곧 극의 전반부에서 얻은 경험이 그들이 2부, 후반부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그랜드 투어>는 자기 약혼녀를 피해 도망치는 에드워드와 시작하며, 몰리의 모습을 1부에 비추지 않습니다. 마치, 지난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 <브루탈리스트 (The Brutalist)> 첫 번째 막에서 에르제베트(펄리시티 존스가 연기했습니다.)가 남편인 라슬로(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연기했습니다.)에게 보내는 편지로 그렇게 하듯, 몰리는 왕왕 수신인에게 전해지는 전보를 통해서만 자기 존재감을 인지시키므로, 2부가 시작하기까지 그는 하나의 추상적인 객체(무슨 이유에선지 에드워드가 피해 도망치는, 혹은 도망쳐야 하는)에 지나지 않습니다. 몰리보다 에드워드에 관해 더 깊이 이해하는 상황에서, 그를 더 잘 아는 상황에서 몰리의 여정에 동행하며, 관객은 영화를 더욱 능동적으로 체험합니다.
감독이 심어 놓은 차이점도 있습니다. 경유하는 곳마다 그림을 그리는 에드워드는 늙고 추한 얼굴을 그려, 자화상이라며, 언젠가 자기를 찾는 여자가 있으면, 전해 주라고 남깁니다. 그가 에드워드가 표현하고, 자신을 전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웃음 많은 몰리는 시각적인 형상보다 청각적인 자극을 좋아합니다. 영화 막판, 앞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된 죽림에서 몰리는 길을 잃지 않도록 응옥(랑케쩐이 분했습니다.)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합니다.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진동하듯이 터뜨리며 내는 파열음, 듣기에 따라, 거슬릴 수도 있는 소리는 그의 주특기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쓴 장면 해설과 순간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감정을 극대화하는 음악에 주로 의지하여 극을 끌어간 전반부와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후반부에는 등장인물끼리 주고받는 대사가 길어집니다. 장면 마디가 길어지고, 화면과 음성이 점차, 서로 대응합니다. 미겔 고므시 감독은 에드워드의 여행을 그리며, 초기 무성영화 시대에 널리 활용된 기법들을 가져왔습니다. 가령, 장면의 세부 사항을 강조하려고 검은색 화면 안에 필름 카메라 조리개, 원을 나타내는(Iris shot) 연출이나, 두 개 이상 화면을 중첩하여 단일 프레임에 동시에 나타내는(Superimposition) 편집술을 그는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결국, 한때 성행한 무성영화에서 대조된 불협화음만큼이나 음울한 얼굴을 한 에드워드가 몰리와 결혼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가 (직접 내는 소리보다는 그림 따위로) 지켜온 예술의 아름다움이 퇴색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각국을 여행하기 전, 담고 싶은 요소들을 조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장면들이 이후에 덧입혀진 허구의 과거 이야기, 특히 주요 등장인물의 내면과 공명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40년대 할리우드 영화처럼 식민지 배경을 만들어 놓고 촬영하면, 그가 여행 중 찍어온 현대 아시아의 모습과 분명한 변화를 보여줄 수 있었고, 이는 휴대전화와 같은 소품이 반대 상황에 동원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겔 고므시 감독은 줄거리를 읊는 과정으로써 영화를 이해합니다. 미얀마, 베트남, 일본, 그가 여행한 나라마다, 전통적인 공연 예술로서 인형극에 쓰인, 서로 다른 모습의 인형과 기술이 있었습니다. 영화에 그림자 인형극 장면들을 삽입함으로써 감독은 그를 소개하고자 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효과를 기대했습니다. 인형은 사람이 만드는 구경거리 안에서만 생명을 얻는 피조물이지만, 그 역사가 이어지며, 그 가운데 살고,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고므시 감독에게 영화란, 인형극을 늘여놓은 매체입니다. 장뤼크 고다르, 베어너 헤어초크 같은 거장들이 그들을 둘러싼 현실을 그들이 만든, 말하자면, 허구적인 결과물에 중요한 요소로 빌렸듯이, <그랜드 투어>의 매 순간, 미겔 고므시는 화면 밖, 자신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암시합니다. 고다르의 영화를 이야기한다면, 마오주의(Maoism; 毛泽东思想)와 마르크스-레닌주의(Marxism-Leninism; Марксизм-ленинизм)를 탐구하던 그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악령 (Бесы)>>을 느슨하게 각색하여 만든 <중국 여인 (La Chinoise)>의 영향을 일부, 유추할 수 있습니다. 급기야, 고므시 감독은 불이 켜지고, 촬영에 임하던 조가 몰리를 데리고 나가는 장면으로 <그랜드 투어>를 닫으며, 영화를 이루는 허구적인 요소와 실재하는 세상의 경계를 무너뜨려 버립니다. 인형극의 인형처럼, 죽고, 다시 살아난 몰리는 앞으로, 영혼의 예언을 수집하는 '동반자' 응옥과 필름의 극예술을, 시간을 거슬러서, 계속, 살아갑니다. 그 영속성을 노래하며.

<타부>보다 훨씬 더 종잡을 수 없고, <천일야화> 삼부작보다는 덜 산만한 <그랜드 투어>는 미겔 고므시 감독에게 "믿음에 관한 영화"입니다. 칠 년 넘게 얼굴도 못 본 남자가 여전히 자신을 만나, 결혼하고 싶어 한다고 '집착에 가까우리만치' 믿어 의심치 않는 여자와 겁에 질린, 상대를 향한 믿음이 없는 남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마주 봅니다. 몰리는 양쯔강을 거슬러 오르며, 한 가톨릭 사제를 만났습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종교적인 믿음을 잃어버려, 평신도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담은 편지를 보낸 뒤, 주교를 만나려고 막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하루아침에 결정한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신부는 에드워드에게 가진 몰리의 믿음이 실로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며,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강연하는 성경의 한 구절(마태복음 17장 20절)을 인용합니다. 거센 풍랑에 사공들과 응옥이 쉬어 가기를 권하고, 몰리가 신부에게 뜻을 묻자, 그는 이 배를 이끄는 사람(몰리)의 뜻을 따르겠다고 순종적으로 답합니다. 랑군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기 전부터 건강이 심히 약해진 몰리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고 고집하고, 정박하려던 땅의 치안도 불안정하여, 하는 수 없이 일행이 계속 물줄기를 거스릅니다. 그 끝에는 배가 부서져, 모든 사공과 신부가 목숨을 잃었고, 응옥과 몰리만 간신히 몸을 피해, 감독이 "기적"을 행한 죽림에 다다랐습니다. 포르투갈 문화에는 가톨릭 문화가 깊숙이 파고들었으며, 미겔 고므시 감독 역시,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감독은 (믿음으로 꽉 찬) 몰리의 "부활"을 처음부터 계획했습니다. 촬영을 준비하며, 천장에 조명등을 설치하던 사람에게 그 장면을 어떻게 찍을 생각인지 자세히 전달했습니다. 영화 속 인물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영생"을 얻었습니다. 감독에 따르면, '믿음'이 필요한 또 한 집단은 객석에 앉은 사람들입니다. 관객들은 그가 빚어낸, 과거와 현재, 현실과 허구가 마구 뒤섞인 듯한 세상에 발을 들이고, 그 안의 인물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바로 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딘가 모호한 이야기의 결말에 닿는대도, 다소간 터무니없는 혼란을 목격한대도, 그를 조소할 자유를 관객에게 주기가 또한, 미겔 고므시 감독을 즐겁게 합니다. "파격적"이다 못해 "도발적"이고 "실험적"인 그의 <그랜드 투어>는 그 반응들로 비로소 영원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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