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5. 22:00ㆍ#HaHoHe
모두를 만족시킨 이적 시장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기간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으며, 하나하나 불확실성이 너무도 큰 "추가"가 있었습니다. 도쿄에서 개최된 2020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남자축구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건 "에이스"는 이베리아반도로 떠났고, 최전방에서 넘치는 힘을 자랑하던 공격진의 "야수"는 러시아로 향했습니다. 팀 득점의 상당 부분을 책임진 선수들과 하나, 둘 작별하며 우려를 키웠는데, 그를 대신할 만한 조각이 당장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전력이 약화했다는, 달갑지 않은 평가가 나옵니다. 게다가, 이적 시장의 문이 아직 열려 있던 막바지에는 아쉽게, 어딘가 어설프게 일을 진행하여,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책임자들에게도 할 말은 있겠으나, 결과가 마뜩잖으니, 그 쓴소리는 그들이 (적어도 다가오는 겨울 이적 시장의 개장 전까지는) 안고 가야 할 몫입니다.
브루노 라바디아와 "잘못된" 시즌 개막을 맞고, 결국 그가 열여덟 달 사이에 지휘봉을 내려놓은 네 번째 현장 책임자(안테 초비치부터), 세 번째 '정식' 감독(알렉스 누리는 대행이었으므로)이 된 뒤, 다르더이 팔을 위급 호출하여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미하엘 프레츠는 그 과정 가운데, 헤르타 BSC 운동 부서를 총괄하는 전무이사로서 자신의 11년 반 임기, 열네 번째 감독으로 선택한 라바디아와 동반 경질, 무려 25년 만에, 불명예스럽게 조직을 떠났습니다. 아르네 프리드리히가 슈포트디렉터로서 그의 업무를 일부 대리한 겨울을 지나, 이번 여름 이적 시장은 지난 6월에 프레츠의 후임으로 공식 선임된 프레디 보비치가 맞은 첫 번째 "분기점"이었습니다. 논리적으로, 이번 이적 시장 성과로 그의 중간 성적이 매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많은 물음표를 남겼습니다. 당장 분데스리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와 마주하는데, 보비치가 세운 "강력한 정신력과 투지, 팀 정신으로 무장한 선수단"을 완성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선수들의 이동을 논하기에 앞서,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의 시대가 문을 열고 내려진 첫 번째 중대한 결정을 짚어야 합니다. 헤르타 BSC는 다르더이 팔에게 일 년 더 지휘봉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감독들이 서로의 꼬리를 물며 연쇄 이동하는 보기 드문 그림(예를 들어, 아디 휘터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로 떠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올리버 글라스너를 앉혔고, 글라스너와 작별한 VfL 볼프스부르크는 마르크 판보멀을 선임했습니다)이 펼쳐진 가운데, 헤르타 BSC도 충분히 그 흐름에 동참할 수 있었지만, 직전 이 년 동안 너무 많은 사령탑 교체로 '일관성'과 '안정성'을 잃어버렸다는 분석 속에, 한 시즌 쉬어 가며 숨을 고르고 전력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좋든 싫든, 보비치 전무이사와 관계자들은 이제 다르더이 감독의 일 년을 보장해 주어야 사리에 맞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아르네 프리드리히 슈포트디렉터도 눌러 앉혔습니다. 축구화를 벗은 뒤로 미국에 정착하면서 스트레스 가득한 프로 축구의 세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데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은 그입니다. 지난겨울, 본의 아니게 막중한 책임을 떠안기도 한 터라, 그의 잔류가 다소 예상 밖이라는 반응도 있습니다. 자의로 클럽을 떠날 수도 있었는데, 협의 끝에 남겼다면, 역시, 보비치 전무이사는 프리드리히를 존중해야 합니다.
"프레디 보비치 사단"의 합류가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디어크 두프너가 선수단 계획을 담당하는 직책에 앉았고, 바바카르 웨인이 스카우트 부서 수석으로 옮겨 왔습니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비치 전무이사와 호흡을 맞추며 강력한 팀을 조직한 벤 망가를 데려오지 못했지만(보비치 전무이사를 잃은 독수리 군단이 한껏 강화된 권한을 미끼로 그를 붙잡았습니다), 두프너와 웨인이 서로 적응하여 능력을 통합하면,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명목상 두프너가 웨인보다 직급은 높습니다. 프라이부르크임브라이스가우를 비롯, 독일 남부에서 경력 중 대부분을 보낸 두프너는 하노버 96에서 슈포트디렉터로서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썩 만족스럽지 않은 이적 시장에서 성과와 맞물려, 우려를 표하는 이가 적지는 않지만, 그에게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티아스 보어스트는 경기 전략 책임자로 합류했습니다. 그는 9세 이하 팀부터 다르더이 팔 감독의 분데스리가 선수단까지, 훈련 내용과 경기 전략을 개발하여 잔디 위에서 클럽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제바스티안 첼리호프스키가 수석 경기 분석관으로, 가보어 루어가 경기 분석관으로, 토마스 베스트팔이 팀 매니저로 그를 지원합니다. 유소년 아카데미에는 VfL 볼프스부르크에서 일한 파블로 티암이 '공동' 책임자로 들어와, 기존의 베냐민 베버와 협업합니다. 프랑크 포겔 코디네이터는 보직 이동하여 12세 이하 팀부터 16세 이하 팀까지 맡기로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교육과 개발 담당자로서 아카데미에 속한 인사들(선수들과 코치들)의 연속적인 발전을 지원합니다.
그 외에 분데스리가서 짧고도 힘든 실패를 경험한 안테 초비치가 헤르타 BSC II 감독으로 복귀했고, 1. FC 쾰른에서 안드레아스 멩어 골키퍼 코치가 이적해 왔습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헤르타 BSC 소속으로 활약, 선수단 주장으로도 활동한 베다드 이비셰비치는 축구화를 벗고 공격수 코치로 변신했습니다. 슈프레아테너를 위해 뛴 159경기에서 그는 56골을 넣었습니다. 독일 프로 축구 최상위 무대에서 통산 그보다 많은 골을 넣은 외국인 선수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클라우디오 피사로, 에우베르 등, 셋뿐입니다. 현장과 지원 스태프를 구하느라, 여기서부터 대단히 분주하게 여름을 난 클럽입니다.
나간 선수를 열거하는 데만도 한참이 필요합니다. 지난 시즌 중에 일찌감치 은퇴를 선언한 사미 케디라를 비롯해, 마테오 겐두지, 네마냐 라도니치, 매슈 레키 등의 계약이 만료됐습니다. 나란히 임대 계약이 끝난 겐두지와 라도니치는 각자 원소속 클럽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자리는 없었습니다. 겐두지는 아스널 FC를 떠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 임대 계약에 합의했고, 다시 그 마르세유에서 밀린 라도니치는 SL 벤피카와 일 년 임대 계약을 맺었습니다. 베를린 베스트엔트에서 사 년을 포함해 젊은 날의 십 년을 독일에서 보낸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 날개 공격수, 레키는 귀향했습니다. 그가 분데스리가와 같은 최고 무대에서는 한계가 분명했다지만, 아직은 자국에서 손에 꼽히는 선수로서 매력이 있습니다. 시티 풋볼 그룹의 멜버른 시티 FC가 레키를 잡았습니다.
이들과는 달리, 성공적으로 분데스리가에 첫발을 내디딘 다르더이 마르톤은 지난 5월, 오는 2025년 여름까지 유효한 장기 연장 계약을 체결했고, 두 고참 선수, 뤼네 야르슈타인(2023년 여름까지)과 페테르 페카리크(2022년 여름까지)도 새로운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숱한 이적 소문에 휩싸인 데드리크 보야타도 오는 2024년 여름까지 계약을 연장, 잔류했습니다.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의 "첫 번째 영입 선수(=수아트 세르다)"가 발표되자, 에두아트 뢰븐이 경쟁을 위해 옮겼습니다. 뢰븐은 한 시즌 임대 계약을 통해 VfL 보훔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선수단 편성을 위한 예산이 매우 제한적인 보훔에서 그는 몹시 중요한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베를린에서 경력은 기대보다 잘 안 풀렸지만, 그곳에서는 반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꾸준히 경기에 나서며 성장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또 다른 선수, 제시크 은간캄도 '잠시', 오래도록 몸담은 클럽과 작별했습니다. SpVgg 그로이터 퓌르트와 임대 계약을 맺었는데,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연습 중 크게 다쳤습니다. 십자 인대와 반월상 연골의 손상이 동시에 발견되어서 수술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완벽한 몸 상태로 돌아오는 데 우선,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다르더이 마르톤의 연착륙으로 입지가 좁아진 오마르 알데레테도 불과 일 년여 만에 베를린을 떠났습니다. 발렌시아 CF와 일 년간 유효한 임대 계약을 맺었는데, 헤르타 BSC는 선수의 이동 과정에 별도의 임대료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호세 보르달라스 감독은 헤타페 CF에서 일하던 때부터 알데레테를 원했습니다. 보르달라스 감독과 시즌 초반, 라리가 선두 경쟁에 참여하는 전통의 박쥐 군단이 다음 시즌, UEFA가 주관하는 클럽 대항전 진출권을 손에 넣으면, 750만 유로가량에 알데레테는 완전한 발렌시아 CF 소속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한편, 이적 시장 막바지에 오마르 알데레테와 같은 이유로 조던 토루나리가가 이적을 희망하고 나섰지만, 이미 순서 정리를 통해 파라과이 국가대표 수비수를 내보낸 베를린의 노파가 그마저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는 토루나리가에게 팀에 남아서 헌신하기를 요구했습니다. 결국, 자기 힘으로 경쟁을 이겨야 하는 선수입니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겨울에 다시 환경 변화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존 코르도바가 꼭 일 년 만에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오스트쿠어베(안방 응원석)와 작별했습니다. 코르도바의 방출이 처음부터 이적 시장에서 헤르타 BSC의 계획에 들지는 않았지만, FC 크라스노다르가 2,000만 유로가량의 기본 이적료와 부대 조항을 포함한 막대한 제안을 던지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물론, "일시불"은 아니지만, 이는 지난 2019년, AS 생테티엔으로부터 레미 카벨라를 영입하며 지출한 1,200만 유로를 넘어, 크라스노다르의 클럽이 한 명의 선수에게 투자한 최고 비용입니다. 이 년간 팀의 주요 득점원으로 활약한 마르쿠스 배리가 "친정" IFK 예테보리로 자유 이적한 데 이어, FC 아르세나우 툴라로 떠난 예브게니 마르코프, 역시 계약이 끝난 아리(무적) 등이 이탈, 최전방에 수요가 확실했기에 이러한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FC 아흐마트 그로즈니로부터 블라지미르 일리인(300만 유로가량 대가에)을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빅토르 곤차렌코 감독에게 더 다양한 선택지, 더 많은 지원군이 필요했습니다. 일리인은 최상위 대회에서 자기 경력 중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직후지만, 직전 이 년을 제외하고는 다섯 골 이상 이 수준에서 기록한 적이 없는 그를 최고 수준의 공격수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코르도바는 지금껏 러시아에서 먼 곳에서만 뛰어왔습니다. 그러나, 과거, 제페르손 파르판(현재 클루브 알리안사 리마 소속), 막시밀리안 필리프(현재 VfL 볼프스부르크 소속) 등, 분데스리가 출신 공격수가 그곳에서 제법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점, 아르툠 주바(FC 제니트), 조르제 데스포토비치(FC 루빈 카잔) 그리고 일리인 등, 장신 공격수의 활약상이 최근, 러시아 프리미어 리가에서 두드러지는 점 등이 그에게 긍정 신호로 보였습니다. 콜롬비아 출신의 "야수"는 27세 시즌을 맞은 지난해, 분데스리가에서 일곱 골을 터뜨렸습니다. 최고의 수비수들조차 버거워하는, 압도적인 힘과 훌륭한 제공권을 자랑하지만, 그의 나이와 그 이전 경력을 고려하면, 슈프레아테너로서도 당장 "최고의 대가"를 받고 선수를 넘겼다고 할 만합니다. 코르도바는 러시아로 옮기자마자, 기대를 충족하며 러시아 프리미어 리가 여섯 경기에 다섯 골을 터뜨리는 등, 쾌조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들어온 선수의 면면과도 같이 다루어야 하는 문제지만, 존 코르도바의 이탈과 동시에, 헤르타 BSC는 최전방에 큰 숙제를 떠안았습니다. 시즌 준비 기간, 다르더이 팔 감독과 선수단은 오스트리아 레오강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는데, 코르도바가 러시아로 향하면서, 데이비 젤케를 제외하고는 마땅히 시험할 만한 중앙 공격수가 없는 상황(헤르타 BSC II 소속으로 레기오날리가 개막일을 맞아야 했던 루벤 베르트뮐러까지 차출했지만)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시즌 후반기, FC 샬케 04와 경기 도중 발목이 부러져서 수술받은 크시슈토프 피옹테크는 그 뒤로 쭉 재활 중인데, 아직 복귀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분데스리가 29경기에 나서서 무려 41골을 넣고 FC 바이에른 뮌헨과 대회 역사를 새로 쓴 지난 일 년, 베를린의 노파에서는 세 명의 선수가 각자 일곱 골씩 넣고 "팀 내 최다 득점자"로 체면을 세우는 데 그쳤습니다. 그중 둘이 코르도바와 피옹테크이며, 다른 하나는 마테우스 쿠냐입니다. 젤케는 "최악의 이 년"을 보낸 뒤인데다, 최근, FC 바이에른 뮌헨과 방문 경기에 역습에 나서다가 상대 수비수, 탕기 니앙주 쿠아시와 엉켜 넘어지면서 늑골이 골절됐습니다. 그가 절치부심의 각오로 새로운 장을 준비하였고, SV 메펜과 DFB-포칼 일 회전 경기에 후반전 추가 시간, 극적인 결승 골을 뽑음으로써 "때로는 가장 절박한 선수가 일을 낼 수도 있습니다."라는 다르더이 감독의 기대 섞인 말을 현실로 만들지, 많은 베를린의 축구광이 "한 번 더 속아 주고자 했지만", 가벼운 뇌진탕 증세로 1. FC 쾰른과 분데스리가 첫 번째 경기에 결장한 데 이어, 큰 충돌로 또 한 번 자리를 비우면서, 안타까움만 키웁니다. 이적 시장에서 성적으로 돌아오면, 새로운 선수가 몇몇 가세하기는 했지만,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와 그의 관계자들이 빠져나간 코르도바의 공백을 그만큼 잘 메웠는지는 의문입니다. 당장 독일 프로 축구 최상위 무대에서 해마다 (두 자릿수 골을 고사하고) 일고여덟 골 이상 넣어 줄 수 있는 선수가 냉정히, 안 보입니다. 훨씬 더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올여름의 성과에 대한 뭇사람의 불만족은 코르도바가 크라스노다르로 떠나면서부터 시작됐을 수 있습니다.
루카 네츠의 이적은 올여름, 베를린의 축구광들이 제일 아쉬워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가 400만 유로 수준의 대가로 그를 데려갔습니다. 헤르타 BSC는 선수가 후에 다시 팀을 옮기면, 그 과정에 발생하는 수입 일부를 또 챙깁니다. 독일 프로 축구 생태계 안에서 18세 이하 선수가 이보다 큰 대가에 이적한 전례가 없습니다. 즉, 네츠는 "분데스리가 내, 역사상 제일 비싼 고등학생 선수"입니다. 협상을 주도한 서쪽 망아지 클럽의 막스 에벌은 그를 그 위치, 독일 최고의 재능이라고 치켜세우며 합의에 도달한 데 흥분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난해, 프리츠 발터 메달 17세 이하 부문 세 번째 입상자(동메달)로 선정됐으니, 에벌의 반응을 이해할 만도 합니다.
누군가의 기쁨이 누군가의 슬픔일 수도 있습니다. 수 년째 반복되는 "재능 유출의 역사"로 고통받는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오스트쿠어베에 루카 네츠의 이적은 또 하나의 깊은 상처로 남습니다. 클럽은 지난해, (적어도) 근 십 년 사이 유소년팀에서 나온 최고의 기대주라던 라자르 "라키" 사마르지치를 잃었습니다. 그는 사전 합의된 여름 휴가 기간을 넘기도록 스페인에서 돌아오지 않으며, 이적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결국, RB 라이프치히가 그를 품었습니다. 육 년 전에는 하니 무크타가 SL 벤피카로 떠났습니다. 시계를 더 돌려, 지난 2007년에는 크리스토퍼 쇼히를 레알 마드리드 CF에, 제롬 보아텡을 함부르거 SV에, 케빈프린스 보아텡을 토트넘 홋스퍼 FC에 한꺼번에 내주기도 했습니다. 모두 베를린 노파 최고의 재능으로 불렸던 선수입니다. 오늘, 내슈빌 SC에서 뛰는 무크타나 레기오날리가에서 축구화를 신는 쇼히의 경력은 기대처럼 풀리지 않았습니다. 보아텡 형제의 경력은 화려하나, 프린스조차 그때, 섣불리 잉글랜드로 떠난 일을 몹시 후회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습니다. 뱃심 좋게 덮어놓고 장담하며 떠났던 사마르지치는 지난 일 년, 라이프치히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고, 완전히 전력 외의 선수로 분류된 올여름, 우디네세 칼초와 새로운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그의 잠재력만은 여전하며, 기회를 받으면, 언제라도 그가 폭발할 수 있다고 믿지만, 붙잡지 못해 그를 원망한 팬들도 씁쓸함을 느낍니다.
슈프레아테너도 "최고의 재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 제안했다고 말합니다. 당장 마빈 플라텐하트와 막시밀리안 미텔슈테트가 버틴다지만, 팀의 미래 구상에는 루카 네츠가 있었습니다.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가 베를린에 남는 편이 선수가 기회를 잡기에 더 유리했으리라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다르더이 팔 감독은 준비 기간, 미텔슈테트를 산티아고 아스카시바르를 보조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시험하며 네츠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한 방안을 찾았습니다. 보비치 전무이사는 결국, 네츠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로 이적을 선택한 까닭이 "더 나은 계약 조건", 곧, 더 높은 금전적 대우에 있다면서, 최근, 어린 선수들이 자꾸만 자기 경력 초창기에 큰돈을 만질 기회에 사로잡혀서 후회할지 모르는 결정을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독일 국가대표 수비수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우승의 영광을 함께한 페어 메르테자커도 일전에, 어린 선수들이 너무 큰돈을 만지는 오늘의 시장 환경이 그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명백한 독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습니다.
하지만, 루카 네츠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그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가 헤르타 BSC보다 자기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개발 계획을 제시했고, 자신은 거기에 만족했다고 말합니다. 라미 벤세바이니가 오른쪽 허벅지 근육에 불편함을 호소해서 남들보다 일이 주 늦게 시즌을 시작했는데, 네츠가 아디 휘터 감독의 "첫 번째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휘터 감독은 반년이라도 그보다 오래 클럽에 몸담은, 좌우 측면을 모두 책임질 줄 아는 조 스컬리를 벤세바이니가 선발 명단에 들지 못한 세 경기, 먼저 내보냈습니다. 그러나, 스컬리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벤세바이니의 몸 상태도 꾸준히 확인해야 하므로 네츠에게 앞으로 기회는 분명, 찾아옵니다. 네츠는 공격적인 성향이 매우 짙은 선수입니다. 왼발로 공을 잘 차고, 기본기, 기술이 뛰어납니다. 발도 빠르고, 키도 작지 않아서 공중에서 경합에 쉽게 밀리지 않습니다. 공격과 수비의 무게 추를 맞추기 위한 노력은 아직 필요합니다. 휘터 감독은 최종 방어선에 세 명의 중앙 수비수를 두고 전술을 잘 짜기로 정평이 났습니다. 네츠는 이때, 왼쪽 윙백으로서 자기가 가진 잠재력을 뽐낼 수 있습니다. 앞으로 그의 경력이 가시밭길이 될지 장밋빛이 될지는 그의 학습 태도와 의지에 달렸습니다. 아주 약간의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해 줄 뿐입니다.
루카 네츠와 합의에 이른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는 내심 자밀 나자르에게까지 손을 뻗어보려 했지만, 헤르타 BSC 유소년 체계에 새로이 합류한 파블로 티암에게 저지당했습니다. 헤르타 BSC 19세 이하 팀에서 뛰는 나자르는 장신의 중앙 수비수로, 뒤쪽에서 길게 공을 보내는 능력이 일품입니다. 양발을 모두 쓰고 공중 경합에도 능하나, 아직 근력이 부족하고, 수비에서 내공은 더 쌓아야 합니다. 내년 여름에는 이적 시장에서 선수의 운신 폭이 더 넓어질 수 있습니다. 당장 붙잡기는 했지만, 그를 클럽의 미래 조각으로 여긴다면, 더 확실한 방어책이 필요합니다.
성장이 다소 정체된 "옛 최고의 재능"도 클럽을 떠났습니다. 아르네 마이어가 FC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 일 년간 유효한 임대 계약을 따냈습니다. 분데스리가 25경기에 선발 출전하면, 500만 유로 상당의 조항이 자동으로 효력을 얻어, 그는 완전히 남쪽에 정착할 수 있습니다. 2019년 여름에 다르더이 팔이 지휘봉을 내려놓고(결국은 돌아왔지만), 2020년 1월, 외부에서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이 유입된 뒤로, 자리가 애매해진 마이어가 자꾸만 경쟁을 피하며 도망을 다닌다는 일각에서 비판이 나옵니다. 지난 시즌은 대부분을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소속으로 보냈는데, 발목을 다쳐서, 위장이 안 좋아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을뿐더러, 경기력도 들쭉날쭉했습니다. 어릴 때 그가 유소년팀을 거의 이끌다시피 하며 보여 준 엄청난 잠재력을 기억하는 이가 아직 많지만, 그 불확실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만 믿고 그에게 자리를 보장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그의 성장을 다시 자극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선수가 그를 베를린에서 찾지 못해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지난달 말, 마침내, 마테우스 쿠냐가 이적했습니다. 여름 내내 그의 거취가 헤르타 BSC를 둘러싼 온 집단에서 제일 뜨거운 화젯거리였습니다. 다르더이 팔 감독은 그와 계속 동행하기를 원했고, 선수도 무조건 떠나겠다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으나, 부임 이후, 줄곧 "강한 정신력과 투지, 팀 정신"을 강조한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는 거기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선수의 이적을 막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쿠냐는 "최고의 클럽"에서 제안이 들어오지 않으면, 베를린에서 계속 충성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그가 제시한 "최고의 클럽" 중 하나였습니다. 3,000만 유로를 조금 넘는 이적료가 오갔고, 쿠냐가 재차 팀을 옮길 시, 헤르타 BSC는 추가 수입을 확보합니다. 클럽 역사상 "제일 비싼 방출"입니다. 선수는 마드리드에서 오 년 계약에 묶입니다. 쿠리치바 FC도 600,000유로가량 연대기여금을 챙겼습니다.
마테우스 쿠냐는 작년 겨울 이적 시장에 헤르타 BSC 유니폼을 입은 뒤로 명실공히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이전에 누구도 주지 못한 "에너지"를 팀에 불어넣었습니다. 조그만 틈이라도 보이면, 여지없이 상대 골키퍼를 시험했고, 공이 있는 곳이면, 어디로든 갔습니다. 왼쪽, 오른쪽, 2선 중앙, 최전방, 어디에든 섰고, 상대가 누구든 늘 자기 몫을 위해 뛰었습니다.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오스트쿠어베가 그와 동향 출신이자, 클럽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사랑받는 마르셀리뉴의 향수를 소환, 이곳에서 그를 향한 기대와 놀라움, 심지어는 자랑스러움이 얼마나 진지한지 보여 주었습니다. 쿠냐는 그러한 관심을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즐겼습니다. 거칠게 상대를 밀어붙였고, 언제나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작년 여름에도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 역사 깊은 클럽들이 그를 원했습니다. 역시 떠날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때 많은 베를린 사람들은 쿠냐가 조금이라도 이곳에 더 머물러 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래서, 선수가 베를린에서 생활에 만족한다며 잔류를 선언했을 때, 그의 인기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찾아왔습니다. 마테우스 쿠냐의 지나친 승리욕은 초기에 침체해 있던 팀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데 엄청난 도움을 주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독으로 다가왔습니다. 급기야는 경기 중에 동료, 마테오 겐두지와 강하게 언쟁하기도 했습니다. 심판의 판정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스위스에서 뛰던 때부터 고질적인 허벅지 문제를 안고 있어서 그런 부분도 있습니다)했으며, 동료의 작은 실수도 그냥 넘기지 못했습니다. 불만을 표출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화를 내다가 전술적인 움직임을 놓쳐서 팀이 실점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3월 이후, 분데스리가에서 골을 넣지 못하며, 그의 '한때 선풍적이었던' 인기도 빠르게 식었습니다. 이 개성 강한 공격수의 이적 소문에 피로감을 나타내는 이도 많았습니다. 올여름에 프레디 보비치가 쿠냐의 이적을 위한 문을 열어 두겠다고 하자, 어차피 보낼 선수라면, 시기라도 앞당겨서 빠르게 선수단을 재편하자는 목소리도 거셌습니다.
1. FC 쾰른과 분데스리가 첫 번째 경기에 다르더이 팔 감독은 마테우스 쿠냐를 선발로 내며, 그에게 수비 시, 상대 "젝서(Sechser; 6번 미드필더)", 엘리에스 스키리를 견제하라는 임무를 주었습니다. 상대가 뒤쪽에서부터 공격을 조립할 때, 경기장 가운데 통로를 쉽게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여, 측면으로 전개를 강제하고, 미리 그곳에 퍼져 있던 선수들이 그다음 공 받는 선수를 괴롭혀, 높은 위치에서부터 역습을 시도하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쿄에서 갓 돌아온 쿠냐는 발이 몹시 무거웠습니다. 다르더이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열심히 걸어 다닌" 그는 팀의 수비적인 실패를 불러왔습니다. 다르더이 감독은 이어진 VfL 볼프스부르크와 경기 명단에 쿠냐의 이름을 적지 않았고, "그가 다시 팀을 위해 뛸 준비가 되면" 그를 기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끝내 선수가 마드리드에서 붉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음에 따라, 결국, 대성당 도시에서 무성의한 수비 가담과 전술적인 움직임으로 받은 숱한 비판, 질타가 슈프레아테너에서 쿠냐의 마지막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달콤하면서 쌉싸름한 일 년 반이 지났습니다. 선수의 앞날을 응원하며, 언젠가 재회의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마테우스 쿠냐가 떠난 뒤, 여름 이적 시장의 문이 닫히기까지 도디 루케바키오, 데이션 레단, 자바이로 딜로순이 차례로 팀을 떠났습니다. 세 명 모두, 새로운 클럽에서 일 년간 유효한 임대 계약을 받았으니, 루케바키오는 VfL 볼프스부르크와, 레단은 PEC 즈볼러와, 딜로순은 FC 지롱댕 드 보르도와 손을 잡았습니다. 루케바키오의 이적은 아우토슈타트의 늑대 클럽이 선수의 급여를 모두 부담하기로 해, 인건비 부담을 줄였다는 의미가 큽니다. 레단은 작년 3월,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대한 우려로 대면 모임을 일시 제한한 네덜란드 정부의 지침을 무시하고, 퀸시 프로머스(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등과 공원에서 집단으로 공을 차, 문제가 됐습니다. 사건 당시, 레단은 FC 흐로닝언과 임대 계약 관계에 있었고, 프로머스는 AFC 아약스 소속이었습니다. 에레디비시 후반기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해, 어린 선수로서 소중한 시간을 잃기도 했지만, 경기장 밖에서 부적절한 행동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괘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베를린으로 돌아와서 지난 시즌을 보냈는데, 분데스리가 일곱 경기에 교체 출전했고, 레기오날리가 노르도스트는 역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조기에 종료됐습니다. 한 번 더 택한 고향으로 임대 이적. 이번에는 정말,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합니다. 끝으로 딜로순은 그 계약 조건에 따라, 프랑스로 완전히 이적할 수 있는데, FC 지롱댕 드 보르도의 재정 상황은 의문스럽습니다. 왼발을 쓰면서 직선적인 돌파에 능해, "베를린의 리로이 자네(FC 바이에른 뮌헨)"가 되기를 기대했는데, 분데스리가에서 잠시 그 재능이 반짝이기도 했지만, 자꾸만 다쳐서 자리를 비우며, 그의 "폭발"에는 무거운 족쇄가 채워졌습니다.
반대로, 여름에 헤르타 BSC와 계약한 선수는 총 여덟입니다. 데이비 젤케와 데니스 야스트쳄프스키는 각자 임대 계약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총 14명과 작별한 올여름, 5,000만 유로 넘는, 두둑한 대가를 챙기면서 클럽은 그 수익 대비, 적게 지출했습니다. 2,500만 유로 남짓 썼으니, 벌어들인 돈의 반 이상을 남긴 셈입니다.
뤼네 야르슈타인이 나이 들고, 닐스 쾨르버는 아직 분데스리가 수준의 골키퍼라고 확신하기 힘들며, 지난해 영입한 알렉산더 슈볼로조차 확실한 안정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또 한 명의 골키퍼 영입을 고민하던 중, 올리버 크리스튼슨을 영입해, 골대 앞 분대를 강화했습니다. 차기 덴마크 대표팀 수문장 후보로도 꼽히는 그는 2021 UEFA 21세 이하 유러피언 풋볼 챔피언십에 인상적인 방어력을 선보였습니다. 아직 공을 잡는 데 미숙함이 보이고, 잔실수도 있지만, 경기를 읽을 줄 아는 어린 선수로, 큰 동작으로 분위기를 띄울 줄도 압니다. 매우 당찬, 외향적인 성격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장 슈볼로를 위협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수비진을 강하게 지휘(지난 시즌에 슈볼로가 계속해서 지적받은 점이기도 한데)할 줄도 알아야 하는 특성상, 언어 장벽이 더 높습니다. 잠재력은 충분하니, 착실히 준비하면, 그의 시대가 열릴 수 있습니다.
FC 샬케 04에서 지난 일 년은 부진했지만, 재작년에 생애 최고의 활약을 펼쳐 보여, 전차 군단 일원으로 데뷔도 한 수아트 세르다는 제일 기대가 큰 신입(반대로 서로 감정이 썩 좋지 않은 클럽에 핵심 선수를 보내야 했던 겔젠키르헨의 축구광들은 분노를 표합니다)입니다. 그의 영입은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가 쏜 중원 개편의 신호탄입니다. 뤼카 투자르, 산티아고 아스카시바르 등과 경쟁하고, 또 상호 보완하며, 베를린 노파의 허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공격적인 경합을 즐기는 세르다는 기술이 뛰어납니다. 투자르나 아스카시바르에게 부족한 재간입니다. 다르더이 팔 감독이 벌써 그의 활용도를 키우며, 경쟁에 불을 지핍니다. 세르다의 이적 대가는 700만 유로로, 올여름, 제일 큰 수준입니다. 한창 좋았을 때의 기량을 찾아야 합니다.
케빈프린스 보아텡의 합류는 사미 케디라가 떠난 뒤, 팀에 새로운 "영향력"과 경험을 더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그가 중원의 핵이 되리라고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으나, 고참이 돼 귀향한 "탕아"는 경기장 밖에서 팀을 하나로 엮고, 선수단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하는 힘을 주어야 합니다. 조던 토루나리가 등이 벌써 그와 활발히 교류하며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존 코르도바가 이탈한 뒤, 레오강 전지훈련 중 새로운 선수의 합류를 기대하지 않던 다르더이 팔 감독에게 스테반 요베티치의 자유 이적은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한때 "제2의 로베르토 바조"로 불리던 요베티치는 기술 좋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최전방에 설 수 있고, 2선 중앙에 서서 처진 공격수로도 활약할 수 있습니다. 동료와 가볍게 공을 주고받은 뒤, 상대 페널티 구역에 대한 타격이 그의 전매특허입니다. 이탈리아, 잉글랜드, 스페인, 프랑스를 거쳐서 독일까지 넘어온 그의 도약은 다만, 자꾸만 다치면서 번번이 막혔습니다. 요베티치는 국가대항전 휴식기를 맞기 직전, FC 바이에른 뮌헨과 분데스리가 세 번째 경기에 '또' 쓰러졌습니다. 전반 20분 만에, 오른쪽 종아리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는 AS 모나코 FC에서 뛰던 때도 이 문제를 자주 보고했습니다. 유독 우려스러운 이유입니다. 그가 잔디에 건강한 모습으로 서지 못한다면, 그가 가진 그 어떤 능력도 당장 쓸모가 없습니다. 선수단에서 제일 많은 골을 넣은 둘을 내보냈는데, 그를 대신하려고 이처럼 불확실성이 큰 선수를 잡았습니다. 온전히 합격점을 받을 수는 없는 이유입니다.
마르코 리히터는 아르네 마이어와 바꿨는데, 명목상 그 과정에 700만 유로 수준의 이적료가 FC 아우크스부르크로 보내졌습니다. 리히터가 다재다능한 선수라지만, 그 대가가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좌우 측면과 2선 중앙, 최전방에서 모두 활용된 그는 사실, 그 모든 위치에서 조금씩 부족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공을 잡은 뒤에 힘으로 상대 수비수와 경합하며 밀고 들어가기를 잘하는데, 대단히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거나 민첩하지 않습니다. 그를 측면에 두었을 때 한계입니다. 가운데로 옮겨오면, 그 물리적인 힘이 여기서는 압도적이지 않으며, 세밀함이 떨어지는 문제가 더욱 도드라집니다. 양발로, 먼 거리에서도 상대 골문을 위협할 줄 아는데, 그렇게 아주 많은 골을 바라기는 주사위를 던져서 늘 큰 숫자가 나오기만 바라기와 같습니다.
AFC 아약스에서 넘어온 위르헌 에켈렝캄프도 있습니다. 마테우스 쿠냐의 "10번"을 물려받은 그는 일찍이 그 잠재성을 인정받은 선수입니다. 젝서와 "아흐터(Achter; 8번 미드필더)", "체너(Zehner; 10번 미드필더)"로 모두 뛸 수 있으며,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뛰어납니다. 그보다 두 살 어린 라이언 흐라번베르흐와 암스테르담에서 '어쩔 수 없이' 자주 비교됐는데, 에켈렝캄프가 중앙선 위를 반으로 나누었을 때, 아래쪽에서 위쪽의 틈을 찾아 들어가며 훌륭한 보조 득점원으로 몫을 해줄 수는 있어도, 전체적인 완성도나 전술적인 쓰임새가 흐라번베르흐보다 떨어집니다. 그 위치가 밑으로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위력이 떨어지며, 수비에서 기여도도 부족합니다. 큰 키에 비해서는 공을 부드럽게 다룬다는 평가지만, 가운데서 강한 압박을 홀로 벗겨낼 정도는 아닙니다. 발도 그리 빠르지는 않습니다. 결국, 아주 세밀한 전술 지시로 그의 능력을 살릴 수 있는 지도자 아래서, 그를 중심으로 하는 공격을 짜는 환경이라면, 매력적인 선수가 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쓰기 까다롭다는 인상도 줍니다. 아직 최고의 프로 무대에서 그의 가장 적합한 활용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다르더이 팔 감독과 그의 조수들이 그를 얼마나 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숩니다. 신체적인 강함을 강조하는 다르더이 감독의 선호와 조금은 결이 다른 듯하기 때문입니다. 300만 유로가량 이적료가 그의 영입에 들었는데, 그 평가는 (누구보다도)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에 내려야 마땅합니다. 그나마 이적 대가는 AFC 아약스와 선수의 이전 계약 기간이 일 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이만큼 떨어졌습니다. 아직 어린 선수이니, 이론적으로는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가 "추가 가치"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베를린의 토마스 뮐러(FC 바이에른 뮌헨)" 발굴이 될 수도 있고, 실패한 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카이 하베어츠(첼시 FC)를 거론하는 분석도 보이는데, 두 선수가 공유하는 속성이 여럿 있고, 전체적으로 창의적인 아흐터 또는 체너보다 처진 공격수(또는 가짜 공격수)의 옷이 조금 더 어울리는 장신의 미드필더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다만, 에켈렝캄프가 하베어츠보다 열 달 정도 어릴 뿐이라, "천장"으로서 그와 비교가 적절한지 의문이 들며, 에켈렝캄프와 달리, 하베어츠의 속도는 최고 수준입니다. 하베어츠는 그를 바탕으로 측면에 설 수도 있지만, 에켈렝캄프를 그곳에 두면, 어색합니다. 물론, "베를린의 하베어츠"가 돼 준다면, 아무래도 좋습니다.
50만 유로가량 대가에 진스하임에서 올라온 이스하크 벨포딜은 율리안 나겔스만(현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의 지도로 세 시즌 전, 분데스리가 28경기에 16골을 넣고 "최고의 한 해"를 만끽했지만, 지난 이 년간은 단 한 골도 더하지 못했습니다. 무릎을 수술받아서 오래 쉬기도 했고, 코로나19에 걸려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제바스티안 회네스, TSG 1899 호펜하임 감독이 일라스 베부를 그보다 신뢰하여, 기회도 거의 못 잡았습니다. 기술이 나쁘지 않고, 상대 최종 방어선의 높이를 읽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즐기며, 필요할 때는 거친 힘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공격수지만, 속도는 무릎을 다친 뒤로 조금 떨어진 듯한 인상을 줍니다. 당장 최전방에 설 선수 숫자를 늘려야 했던 클럽이 "모셔가려는 경쟁"이 거의 없는 선수에게 손을 뻗었습니다. 단년 계약이나, 벨포딜의 연봉은 만만치 않은 수준입니다. 위험성 큰 영입으로, 역시, 물음표를 던지는 이가 많습니다. 그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그에게 무언가 큰 역할을 기대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역시, 반전을 일으킨다면, 더할 나위가 없이 좋겠지만.
미지안 마올리다는 잠깐이나마 앙토니 마르시알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그런대로 괜찮은 활약을 펼치던 때, 프랑스에서 그와 비견되던 재능입니다. 큰 기대를 모으던 선수지만, OGC 니스에서는 그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습니다. 크리스토프 갈티에 감독이 부임한 뒤, 몽펠리에 HSC로부터 앙디 들로르까지 합류한 그곳에서 더는 마올리다가 차지할 자리가 없었습니다. 헤르타 BSC는 400만 유로가량 대가를 지급하고 그와 계약했습니다. 기술이 제법 뛰어나고 발이 빠르며, 공격 진영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나, 역시, 지난 몇 년간 크고 작은 부상에 신음(이조차 마르시알과 닮아 버렸습니다)했습니다. 결국, 항구 도시의 클럽이 1,000만 유로 넘는 비용을 들여서 선점했던 선수를 불과 삼 년 만에,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값에 포기한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와 관계자들은 환경의 변화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걸지만, 경기장 밖에서 다소 소극적인 성격으로 묘사되는 선수의 적응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마테우스 쿠냐의 그림자를 걷어내기에 지금의 마올리다가 차고 넘치는 선수인지 의문입니다.
여름 이적 시장의 문이 닫힌 분주한 여름밤, 베를린에서 상황도 남부럽지 않게 바쁘게 돌아갔지만, 막상 아무런 실속도 챙기지 못한 채, 비웃음만 사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말이 말을 만들고,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의 자질을 의심하는 눈초리가 어느 때보다 많아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마감일 전까지 헤르타 BSC는 매슈 레키와 네마냐 라도니치, 마테우스 쿠냐, 도디 루케바키오까지, 네 명의 날개 공격수를 잃었습니다. 특히, 루케바키오의 이적은 비교적 조용히 진행돼, 마감 시한 돌입을 하루 앞둔 아침에 발표됐습니다. 슈프레아테너 선수단에는 원래, 떠난 넷에 자바이로 딜로순까지, 좌우 측면에서 활개를 칠 수 있는 선수 다섯이 있었습니다. 지난 시즌 활약상이나 기여도는 천차만별이었지만, 기본적으로 각자 강점이 다르고, 성향도 다른 집단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라도니치와 쿠냐는 오른발을 주로 쓰지만, 양발을 거의 자유자재로 쓸 줄 아는 선수이고, 루케바키오와 딜로순은 왼발잡이, 레키는 오른발잡이입니다. 올여름, 데니스 야스트쳄프스키("D.J.")가 SV 발트호프 만하임과 임대 계약을 마치고 돌아왔고, 마르코 리히터가 합류해서 숫자를 다시 늘리기는 했습니다. 단, 야스트쳄프스키는 나름 잠재력이 엿보이는 순간들이 있었으나, 아직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리히터도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한 뒤라, 베를린에서 다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미지안 마올리다 영입 발표가 마감일 아침을 열었습니다. 며칠 간 언론에 오르내린 이야기로만 보면, 도디 루케바키오의 이탈보다도 그의 합류가 가까워 보이기도 했던 터라, 이 소식까지는 뭇사람이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경력을 뜯어 보면, 원체 마올리다가 자주 다쳐서 자리를 비우는 선수이기도 하거니와, 프랑스에서 성장세도 급한 기울기로 꺾인지라, D.J., 마르코 리히터에 그까지, 누구 하나 확신을 주지는 못하므로, 한 명 정도 이 자리에 더 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습니다. 자바이로 딜로순의 이적 협상 과정까지는 아직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와 아르네 프리드리히 슈포트디렉터의 생각도 아주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날개 공격수 추가 보강의 필요성에 공감했다는 뜻입니다. 사실, 올여름에 헤르타 BSC가 가장 원한 선수가 네마냐 라도니치라는 점은 더는 비밀이 아닙니다. 지난겨울에 클럽과 반년 임대 계약에 서명한 라도니치는 분데스리가에서 빠른 발과 출중한 기술로 나름의 경쟁력을 보였습니다. 양발로 모두 득점한 점도 높이 살 만했습니다. 라도니치는 여러 매체를 통해 베를린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까지 했습니다. 관계자들도 기왕이면, 팀을 잘 아는 선수와 함께하기를 바랐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후보였습니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가 요구한 이적 대가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초장부터 1,000만 유로 이상 이적료를 불렀는데, 오랫동안 불어난 부채와 코로나19 여파로 쪼그라든 총수입 따위로 지갑에 여유가 전혀 없는 헤르타 BSC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라도니치는 SL 벤피카 유니폼을 입으면서 800만 유로 규모의 "조건부 이적 조항"이 포함된 일 년 임대 계약을 맺었습니다. 정해진 숫자보다 많은 경기에 뛰면, 포르투갈에서 그의 계약서는 완전한 형태로 다시 쓰입니다. 단순 계산으로, 수아트 세르다를 들이면서 투자한 정도의 묶음 다발이 필요했던 셈인데, 그 정도 투자를 두 번이나 할 여력은 없었습니다. 결국, 보비치 전무이사는 세르다 영입을 더 우선으로 두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네마냐 라도니치를 둘러싼 주변에서 "기차가 떠난 뒤로", 리스 넬슨과 필리프 코스티치의 이름이 끝까지 매스컴에 오르내렸습니다. 넬슨은 올여름, 아스널 FC를 떠나, 페예노르트 로터르담과 일 년 임대 계약을 체결했고, 코스티치는 이적 시장 마감일에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남았습니다. 도디 루케바키오를 품은 재작년 여름, 헤르타 BSC가 넬슨을 살피기는 했지만, 올해는 런던의 클럽과 아주 진지한 접촉이 없었습니다. 코스티치를 위해서도 마찬가집니다.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가 아주 잘 아는 선수이고, 분데스리가를 넘어, 유럽 최고 수준에서도 "제일 날카로운 왼발"을 가진 선수 중 하나입니다. 누구라도 그를 품었다면, 측면에서 중요한 전력 상승효과를 목격했을 테지만, 애당초 헤르타 BSC가 그를 영입할 수는 없었습니다. 첫째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가 그의 이적을 막지 않는 조건으로 요구한 대가를 감당할 수 없었고, 둘째로 코스티치는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을 떠난다면, 아예 국경선을 넘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자 했습니다. 하노버에서 린톤 마이나에 관한 소문도 무성했지만, 베를린으로 이적을 향한 선수의 강한 의지와는 별개로, 헤르타 BSC는 그를 영입하기 위한 제안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바이로 딜로순의 협상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베를린 노파의 최고 책임자들은 처음부터 "긴 여름"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후보를 올려놓고 마지막까지 기회를 찾았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충분히 흘렀지만, 시장에서 날개 공격수의 가치는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값은 시장이 매긴다는 경제 논리를 이제는 많은 축구광이 잘 알고 있습니다. 너도나도 큰 이적 대가를 요구하는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와 아르네 프리드리히 슈포트디렉터는 포기하고 돌아서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문이 닫히던 막판, 이들이 생각한 "마지막 한 발"은 사무 카스티예호였습니다. 마감 시한을 세 시간 정도 앞두고 처음으로 접촉이 이루어졌습니다. AC 밀란에서 활약상이 썩 좋지 않았던 카스티예호는 일찍이 밀라노를 떠날 후보로 지목돼, 여름내 수도 없이 많은 소문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스페인 복귀 가능성이 제일 크게 점쳐졌지만, 최근에 협상 대리인을 바꾸는 과정에서 그와 멀어졌다고 전합니다.
헤르타 BSC는 "구매 조항"을 제외하고, "순수한" 일 년 임대 계약을 사무 카스티예호에게 제안했습니다. 선수와 일정 수준 교감은 이루어졌다고 보고됐는데, 8월의 마지막 날 오후 여섯 시, 분데스리가 이적 마감 시한까지 AC 밀란과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습니다. 발표를 조금 늦추더라도 큰 틀의 작업은 그 전에 끝내야 했지만, 시간에 쫓겨 진행한 일을 완수하지 못하는 촌극을 벌였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로 망신살이 뻗친 데 대하여 프레디 보비치와 아르네 프리드리히 모두,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결국, 미지안 마올리다를 끝으로 날개 보강은 실패했습니다. 30일에서 31일로 넘어가던 밤사이, 클럽 안팎으로 별다른 "진전"이 포착되지 않았으니, 선수단 구성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기에 지나치게 안일하게 행동하지는 않았는지 의심마저 삽니다. 프리드리히는 모든 일이 끝난 뒤, 클럽이 목표했던 전부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다만, 그는 자신과 책임자들이 이번 이적 시장 중 단 한 번도 확신 없이는 움직이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만큼 신중하게 접근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말인데, 그로부터 재차 파생되는 비판을 피할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결국, 주어진 시간 내에 일을 처리할 능력이 부족했는데, 구차한 변명은 아닌지, 그렇게 "확신"을 갖고 영입한 선수 면면에는 왜 그토록 큰 불확실성이 보이는지 등.
마감 시한이 다가오며, 자바이로 딜로순의 인기는 꽤 뜨거워졌습니다. 지난 몇 년, 베를린에서 골과 마루의 차이가 큰 경력을 쌓았다지만, 그가 아직 스물셋의 어린 선수라는 점에, 만인이 그 반등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FC 지롱댕 드 보르도는 1,000만 유로 안쪽의 이적료에 선수를 완전히 데려가려고도 시도했는데, 황의조 선수 등을 내보내지 못하고 그 재정 건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에서 결국은 "영입 조항을 단 임대 이적"이 최선의 합의점이었습니다. 딜로순 이적은 사실, 분데스리가 이적 시장의 문이 완전히 닫힌 뒤에 공식 발표됐습니다. 이미 사무 카스티예호 영입에 실패한 뒤, 딜로순까지 국경선을 넘으면, 그 대체자조차 찾을 수 없어, 꼼짝없이 D.J.와 마르코 리히터, 미지안 마올리다 등, 세 명의 날개 공격수만으로 최소 반년을 버텨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프레디 보비치와 아르네 프리드리히는 딜로순의 이동을 최종 승인했습니다. 그 큰 위험과 빗발치는 비판을 모두 감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지에 대한 회의를 물론, 급히 열었지만, 시장에서 신용에 대한 걱정도 있었고, 무엇보다, 일찌감치 짐을 싸서 떠나기로 한 선수를 다시 붙잡는다고 해도, 그에게 필요한 동기를 부여하기는 어려우므로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딜로순, 아웃(Out).
이적 시장 마감일에 헤르타 BSC는 베를린 축구광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색다른 재미를 주고자, 진행 상황을 보기 좋게 나타내는 막대, 일종의 "게이지"를 공식 소셜 미디어 계정에 뿌렸습니다. 지난겨울에도 이 같은 전략으로 호평받았던 클럽입니다. 미지안 마올리다 영입이 발표된 직후, 그가 22%까지 차오르자, 아직 몇 건이 뒤따르리라는 분명한 표시로, 흥분감을 자극했습니다. 하지만, 마감 시한, 오후 여섯 시가 지나서까지 변동이 없던 그래프는 저녁 늦게서야 갑자기 86%로 뛰었고, 자바이로 딜로순, 데이션 레단 등의 방출이 완료된 뒤에 최고치, 100%를 찍었습니다. 사실상, 이 그림만 없었어도 (사무 카스티예호와 협상 등이 알려진 뒤에)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오스트쿠어베의 자조와 그에 대한 조롱이 덜 했을 터입니다. 프레디 보비치 등 실무 책임자들과 클럽 미디어 홍보 부서 사이 "불통"에서 비롯된 이 또 하나의 사건은 그들의 상처만 후벼팠습니다. <<베를리너 모겐포스트>>는 "쓰라린 자책골"이라고 표현했고, <<타츠>>는 이 기획이 의도치 않게, 팬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실망감과 좌절감, 분노를 가져다주었다고 썼습니다. 여러모로 "분데스리가 클럽"에서 하루 만에 나온 온갖, "여러 부서가 책임을 나눠 가진" 실책의 연속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또는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전문적이지 않은 모습만 보인 슈프레아테너입니다. 창피합니다.
헤르타 BSC가 매우 바쁜 여름을 보냈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클럽 운동 부서 실무를 이끄는 "머리"에 먼저 큰 변화가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조직도가 빠르게 개편됐습니다. 어쩌면, 후에 잡음이 새어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이적 시장에서 선수들이 드나드는 회전문은 쉴 새 없이 돌았는데, 들어온 선수보다는 나간 선수가 많았습니다. 이는 양적인 비교의 결과일 뿐 아니라, 그 면면을 살필 때, 질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마테우스 쿠냐와 존 코르도바, 도디 루케바키오 등을 내보내며, 헤르타 BSC는 앞선 일이 년 동안 팀 공격의 핵심으로 세웠던 "얼굴들"을 잃었습니다. 기대 득점(xG)과 기대 도움(xA)의 합으로 나타나는 "기대 공격 포인트" 상당수가 빠져나갔습니다. 이들이 선수단 내 각자 1위, 2위, 3위를 차지했기에 그렇습니다. 물론, 그 반대급부로 챙긴 이적 대가를 기억하면, 특히 쿠냐와 코르도바를 이번 여름에 지키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라스 빈트호스트와 테너 홀딩 B.V.의 자금 조달과는 별개로, 장부를 열어 보면, 클럽 전체 수입의 너무 많은 부분이 "인건비" 명목으로 지출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건강한 재무 구조를 만들려면, 여기서 반드시 변화가 필요합니다. 루케바키오를 볼프스부르크로 보내면서 250만 유로 가까운 그의 연봉 대부분을 덜어내기로 한 결정도 이 같은 이유로 충분히 설득력 있습니다.
그러나, 선수단 전략이 급격하게 떨어졌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선수들의 활약을 기대한다지만, 거의 모든 영입에 우려 점이 많이 보입니다. 수아트 세르다는 지난 시즌, FC 샬케 04가 분데스리가 최하위로 강등당하는 와중에 개인적으로도 몹시 부진했습니다. 올리버 크리스튼슨이 당장 알렉산더 슈볼로를 경쟁에서 제칠 선수는 아니며, 등 근육 문제로 FC 바이에른 뮌헨과 경기에 결장한 케빈프린스 보아텡은 최고 수준의 압박, 경기 속도를 (역시나) 따라가기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마르코 리히터 영입에 지나치게 과한 투자를 감행했다는 지적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으며, 아직 다듬을 구석이 많은 위르헌 에켈렝캄프가 빠져나간 선수들을 곧바로 대신하기도 무리입니다. 스테반 요베티치, 이스하크 벨포딜, 미지안 마올리다 등은 일 년 내내 건강하게 잔디 위에 서는 과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마감일에 벌어진 우스꽝스러운 한바탕 소동으로 날개까지 꺾였으니, 셈만 하면, "낙제점"을 받더라도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 등은 유구무언이어야 마땅합니다.
다만, 무엇이든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덜어내야 하는 법입니다. 프레디 보비치 전무이사의 부임 후 첫 번째 이적 시장에는 그 덜어내는 과업에 더 집중했다고 변호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다르더이 팔 감독과 그의 조수들이 다가올 두어 번의 이적 시장에 그 부대가 완전히, 새롭게, 채워지기까지, 분데스리가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버텨 주어야 합니다. 헤르타 BSC는 좋은 계약 조건에 이끌려 떠밀리듯 베를린으로 오는 선수가 아니라, 이 도시와 클럽이 특별하다는 점을 이해하여 오는 선수를 찾습니다. 매우 난도 높은 모험이 시작됐습니다. 뒤에 남겨지는 이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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