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무얼 보여 주고, 무얼 보여 주지 않을지 아는 카메라

2025. 10. 11. 05:0035mm

ⓒ Giorgio Zucchiatti/ La Biennale di Venezia/ Foto ASAC

 

 10월 첫 번째 주말, 베를린에서 MUBI(영국의 영화 스트리밍 플랫폼, 제작사, 배급사)의 연례행사, "MUBI Fest"가 열렸습니다. 베딩의 옛 화장터에 십 년 전, 문을 연 복합 문화 공간, 사일런트 그린(silent green Kulturquartier)을 무대로, 사흘간, 여러 영화가 관객을 만났습니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미국의 켈리 라이카트 감독이 지난 5월, 칸에서 처음 상영한 신작, <마스터마인드 (The Mastermind)>를 들고 베를린을 찾으며 주목받은 가운데, 4일, 토요일 낮에는 조지아의 주목받는 신예, 데아 꿀룸베가슈빌리가 <April (აპრილი)>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지난 2020년, 산 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San Sebastián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 4관왕을 차지한 <Beginning (დასაწყისი)>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장편(산 세바스티안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은 루카 구아다니노의 눈에 들어, <April> 제작에 나섰습니다.)으로, 지난해 9월 초, 제81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81ª edizione della Mostra internazionale d'arte cinematografica)에서 첫선을 보였습니다. 조지아 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성장한 감독은 뉴욕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공부했지만, 영화를 만들면서는 끊임없이,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식구들이 살고 있으며, '집'이라고 느끼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감독은 누구나 경험하지만,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힘이 자신을 조지아로 이끈다고 말하는데, 역설적으로, <April>은 아직 그의 고국에서 상영되지 못했습니다. 감독은 십여 년째 집권하며, 이제는 그 존재 이유를 하루하루 증명해야 하는 여당(ქართული ოცნება – დემოკრატიული 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에 의해 사실상 경찰국가가 돼 버린 조지아에서 이 영화가 가까운 미래에 상영되는 일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며, 정부에 동조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그곳에서 (특히 정부나 그 일상을 비판하는) 예술적인 창작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고(여전히 뛰어난 감독들이 이란에서 영화를 만들며, 심지어는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서도 그렇게 했지만) 고발했습니다. 어떠한 사적인 모금 활동도 벌이지 않으며, 삼엄한 감시망을 피해, "보이지 않게" <April>을 제작하는 행운을 보았지만, 이제 자기 존재가 알려진 이상, 더 힘든 환경이 기다린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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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ril>은 조지아 동부의 한 시골 마을에서 비밀리 임신을 중단하는 수술을 집도하는 여성 의사, 니나(이아 수히따슈빌리가 분했습니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데아 꿀룸베가슈빌리는 늘 오랫동안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영화 각본을 씁니다. 영화가 특정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지금 주목받는 사건, 사안을 열거하는 그 수준보다 크므로, 주어진 문제뿐 아니라, 그 역학, 그를 둘러싼 채로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 그를 구성하는 영화 안팎의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April> 작업을 위해서는 일 년간 병원을 드나들며 뭇 임산부를 만나, 그 식구들, 남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의사들이 임신 중단 수술을 하거나 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고, 때로 홀로 병원을 찾은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감독 자신도 이즈음, 임신 중이었고, 촬영을 마치고 편집하던 시점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산부인과를 찾는 많은 여성이 자신과 같은 또래라는 점에 놀란 그는 다만, 아이를 낳을지 말지 결정권이 그들에게 거의 없으며, 심지어 때로는 경찰이 개입하기까지 하는 실상에 분노했고, 제작 과정에 가득했던 그 분노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조지아에서 임신 중단은 법적으로 허용됩니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상, 여전히 금기시되며, 여성들이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청소년기까지 극단적인 정교회 신앙을 경험한 감독인지라, 그 영향을 받은 전통적인 여성상이 그의 창작 활동에도 묻어납니다. <April>의 여성들은, 심지어는 의사이며, 주인공으로 세워진 니나조차, 경찰을 비롯한 남성들의 결정에 종속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니나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조지아 사회의 주류 이상에 따라 받아들여지기 힘든, 아이를 낳지 않고, 독신이며, 일에만 몰두하는 여성입니다. 꿀룸베가슈빌리는 이를 하나의 거대한 악순환이라고 표현합니다. 영화를 통해 권력을 독점하고 사회, 조직을 지배하는 남성이 나쁘다고 고백하기보다, 그 이면의, 희망이 보이지 않고,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여성들의 모습을 조명하고 싶었다고 설명합니다. 가정이야말로 자신의 가장 큰 정치적 격전지라며, 자신이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소하고, 변화는 미미하며, 비극조차 때로는 너무 사소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고, 거실이나 부엌에서 일어나는 그 작은 비극들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전합니다.

 

 

 <April>을 관람하는 뭇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장면은 단연,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촬영된 여성들의 출산 장면입니다. 초반부에는 오버헤드 숏(overhead shot)으로 병원에서 한 여성의 자연분만 과정이 그려지며, 후반부에는 제왕 절개술(C-section)이 행해집니다. 여성들과 매일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데아 꿀룸베가슈빌리는 아이를 낳을 때, 그 장면이 촬영되기 바라는지 물었고, 실제로 카메라 앞에서 아이 낳기를 원하는 산모를 여럿 만났습니다.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며, 그와 같은 장면을 삽입할 경우, 제한적인 상영(R-rated)만 할 수 있다는 제작자들의 반대 목소리가 컸지만, 감독은 이내, 이 촬영에 그야말로 집착하게 됐습니다. 처음에 촬영을 거부하던 촬영감독(꿀룸베가슈빌리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아르세니 하차투란이 이 영화에도 함께했는데, <Beginning> 이후, 루카 구아다니노가 <본즈 앤 올 (Bones and All)> 촬영에 그를 기용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점차 이 작업에 같이 빠져들었습니다. 감독은 우리가 때로 있는 그대로 보기 불편해하는 출산, 출생 장면이 실은 우리가 이곳에, 이 순간, 존재하는 이유의 시작점이니, 그러한 거부감을 느끼기가 한편으로 이상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임신과 관련한 영화적 통념과 '이상'에서 벗어난 그 어두운 낙인을 드러내기가 그의 목표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에 근거해, <April>을 "페미니스트 영화"라고 수식하는데, 이러한 촬영에서 알 수 있듯이, 감독은 여성들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순간들, 사건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싶어 했고, 그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때로 중심이 되는 이야기와 관련성이 작은 마을의 풍경들을 보여 줍니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4월, 봄이 대개,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계절로 여겨진다는 점을 떠올리면, 출생의 아름다움과 맞물려, 의미심장함을 더하고, 따뜻하며 평화로운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봄은 변덕스럽습니다. <April>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자동차 바퀴를 집어삼키는 논두렁의 모습을 비춥니다. 이곳에서 니나, 여성들의 삶 또한 평탄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영상의 강렬한 음향은 대번에 관객을 사로잡으며, 압도적인 경험을 선물, 당장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그 시선을 인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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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니나가 배경이 되는 시골 마을, 한 가정집에서 임신 중단 수술을 집도하는 장면입니다. 매우 긴 호흡으로 촬영(long take)된 이 장면에 유일하게 다른 렌즈(<April>은 두 종류의 렌즈로만 촬영됐습니다.)가 쓰였습니다. <April>의 미학은 모두가 숨죽이고 화면에 몰입하게 되는 이 장면의 핵심적인 모든 행위가 렌즈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니나는 분명, 수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정된 카메라는 니나의 모습은 물론이고, 수술받는 여성의 얼굴이나, 그를 옆에서 붙들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잠시도 비추지 않습니다. 대사조차 거의 없습니다. 앞선 출산 장면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취한 셈인데, 현대 사회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그리고 (두말할 필요도 없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너무도 쉽게, 과잉의 시각적인 형상을 소비할 수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보여 주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이 장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관객은 다시 한번, 거친 소리와 절대 누그러지지 않을 듯, 시종 팽팽하게 유지되는 화면의 긴장감, 분위기로 이 장면을 경험합니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견디기 힘든, 충격적인 경험을 합니다.). 카메라가 보여주고 있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거대한 문제에 관해 생각합니다. 데아 꿀룸베가슈빌리는 이 장면을 어떻게 그릴지, 얼마나 길게 그릴지에 대해서도 제작 현장에서 논쟁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 영화의 장면마다 어디에 카메라를 두고, 무엇을 화면에 담을지 정해서 각본을 쓰는 그는 이 영화가 구사하는 독특한 언어에 근거하여, 출산, 출생보다도 훨씬 감추어진 문제를 묘사하고자 하는 방식에 확고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이미 지극히 은폐된, 여전히 주류 사회에서 지탄받는 수술을 이 장면에 그리면서 그는 이에 대하여 관객이 각자 의견을 만들어갈 여지를 두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관객이 가진 지식이나 관념이 화면 밖의 일, 주어지지 않은 장면에 관심을 두도록 하며, 그를 상상할 수 있게 하고, 바로 거기서 영화의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고 감독은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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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나는 '주는 자'와 '빼앗아 가는 자'의 경계에 있습니다. 그는 수많은 아이를 받은 유능한 산부인과 의사이며, 들개들을 먹이는 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반부에 나자마자 죽은 한 아이의 아버지는 니나가 마을에서 여성들에게 임신을 중단하는 수술을 제공한다는 소문까지 들추어, 그를 비방합니다. 그의 얼굴에 침까지 뱉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다시, 남성들에 의해 진행되는) 조사는 영화 속에서 니나가 받는 (적어도 마지막에, 마을에서 벌어졌다고 그에게 전해지는 사건 이전까지는) 경력, 심지어 실존적인 압박감의 (못해도 표면적인) 원천인데, 방 안에서 그를 매우 강하게 몰아붙이는 구간 직후에 마을에서 그를 따르는 개들의 모습으로 극적인 화면 전환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사실, 니나가 '그 일(마을에서 임신 중단을 위한 수술을 집도하는 일)'이 '즐거워서' 봉사하듯 행하지는 않습니다. 아버지 모를 아이를 가진 딸의 어머니가 처음으로 수술을 부탁했을 때, 이 수술이 아이의 엄마가 될 권리를 헤치고(도중에 아직 한 아이의 엄마가 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가족의 압박에 시달리는 어린 외래환자가 찾아오자, 그의 이야기, 그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고, 경구 피임약을 은밀히 건네는 모습으로 비추어, 니나에게는 당사자의 마음이 결정적인 기준입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청각 장애를 가졌고, 말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결국, 결말부에 이르러, 니나는 마을에서 이 아이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책합니다.)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재고를 요구했습니다. 한때 교제했으며, 병원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료 의사, 다비드(까하 낀쭈라슈빌리가 연기했습니다.)에게는 한층 구체적인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그는 이 수술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으나, 간호사는 수술 중에 일이 잘못되면, 환자(산모)를 살릴 수 없고, 이 시골 마을에는 합법적인 수술을 위해 트빌리시까지 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며, 대안적인 약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매, 꼭 자기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조지아는 세계에서 "의사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재작년, 조지아의 인구 일만 명당 의사 수는 56.4명, 세계 여덟째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April>은 이러한 통계가 미처 담지 못하는 상반된 현실을 보여 줍니다. 숫자상으로는 의사 공급이 충분할지 모르나, 농촌에서, 특히 여성은 현대적인 의료 서비스를 소비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영화 내내 관객은 니나의 시간을 초월한 듯한 외딴 마을 가정 방문에 동행하며, 공구함처럼 의료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의사의 모습과 때로 부엌 식탁에서 이루어지는 검진, 수술 장면을 목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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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도덕적인 잣대로 판단하기 모호한 니나의 행동들을 보여 줍니다. 그는 밤의 어둠이 깔린 길 위를 차 끌고 방황하며, 길 걷는 아무나 태워서 목적지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하고, 이후, 성적인 접촉을 제안하여 일탈을 벌이는, 그 자체로 어떠한 (때로 금기시될 만한) 욕망을 가진 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니나를 두고, 다비드는 그가 언제나 비이성적이었다고 말합니다. 데아 꿀룸베가슈빌리는 계속해서 니나를 도덕의 회색지대로 끌고 들어갑니다. 사건을 조사하던 다비드는 임신 기간이 일반적이지 않았고, (나자마자 죽은) 아이의 호흡계통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그는 아이를 살리려면, 제왕 절개술을 (거의 대안없이) 행해야 했다고 니나를 다그칩니다. 니나는 이전에 등록되지 않은 임신이었고, 출산 전에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검사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변호합니다. 산모가 제왕 절개술을 원하지 않았다고 둘러대듯이 말하며 자기 결정을 정당화하기도 하는데, 사실, 자연분만을 택하면, 아이가 살 수 없다는 점을 그 또한 잘 알았다고 보는 편이 옳습니다. 정황상, 산모가 이전에 니나를 찾아, 자신은 지금 임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수 있습니다. 다비드는 그가 긴박한 중에 제왕 절개술을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자연분만을 고집할 정도의 정신(혹은 이해)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여기서 아이가 살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니나가 '잘못된' 방식을 택하여 아이가 죽었다면, 조사 결과, 그를 '(생명을) 빼앗아 가는 자'라고 공격한 아이 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었고(결과적으로 니나의 책임은 입증되지 않았지만), 마을에서 그가 벌이는 일, 일탈까지 하여, 대부분 상황이 그에게 매우 불리하게 보였습니다. 이는 다시, 이 영화가 단순히 남성이 힘을 가진 사회, 조직의 모습이 나쁘다고 고발하려고만 하지 않는다는 점을 방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꿀룸베가슈빌리는 단 한 순간도 니나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April>은 그의 도덕관을 설파하는 매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조지아 시골 마을의 열약한 의료 환경을 (초반) 십오 분 만에 전달했고, 니나의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충분히 소개했습니다. 주인공을 흑백논리의 바깥으로 빼냈으니, 그에 관한 최종 판단은 각 관객의 몫으로 남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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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중간,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초자연적인 형상이 나타납니다. 감히 생명체라고 정의하기조차 두려운 이의 정체를 영화는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여러 제작자가 그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지만, 감독은 이를 거부하고, 영화를 편집하며 그를 그대로 두었습니다. 단, 그가 니나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점만은 설득력 있게 전달됩니다. 그를 둘러싸고 소문이 무성한 데 반하여, 니나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과묵하고, 실용적이며, 냉정해 보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든 업무 환경에 굳세게 맞서 싸웁니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의 의사로서 짊어진 의무와 자기만의 방식으로(그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은 뒤로하고) 여성들을 돌보면서 마주하는 손가락질이 때로 그에게 버거운 압박이 됨은 분명합니다. 이 초자연적인 변태는 그 감추어진 이면의 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니나가 마을을 떠나, 심지어는 인간의 모습을 벗어던짐으로써,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다리로 볼 수 있습니다. 안제이 주와프스키 감독의 1981년 "문제작", <포제션 (Possession)>, 아마트 에스칼란테의 <La región salvaje>, 코랄리 파르자의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등, "괴물"이 등장하여 시선을 사로잡는 영화는 많이 있었지만, 이 영화, 니나의 변태는 오로지 데아 꿀룸베가슈빌리만의 독특한 장치로 평가할 만합니다. 그나마 영화 속 현실의 구축 방식이 자연적인 신비주의와 초자연적인 존재의 개입에 항상 열려 있고, 마술적 사실주의와도 직교한다는 점에서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작품들과 닮았다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이쯤에서 영화 속 그 초자연적인 존재가 작업 중, 처참한 현실을 보고 들으며 그 내면의 분노에 짓눌린 감독이 그를 표출해 낸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어야 합니다. <April>의 첫 번째 장면부터 비추는 이 존재의 특징으로 그 겉을 감싸고 있는 피부층이 한참 전에 탄력을 잃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도중에 어둠이 깔린 마을에서 카메라가 소들을 잡는데, 니나는 그중 병든 듯 축 늘어진 소에게 시선을 빼앗깁니다. 니나는, 감독은, 그 순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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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ril>이 보여 주는 각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였든, 니나의 행동들을 어떤 시각에서 보았든, 뭇사람이 이 영화를 매우 강렬하다고 평합니다. 단순한 서사만 놓고 보면, 동유럽 사회사실주의적 허무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로 오해할 수 있지만, 형식적으로 그 틀을 완전히 깨고 나온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April>의 진정한 화자는 카메라입니다. 첫 번째 출산 장면(아이가 울지 않은 사산 장면)에서처럼, 공중에 떠서 무자비하게 사건을 드러내다가, 가정집에서 임신을 중단하는 니나의 수술 장면에서처럼, 노골적이거나 착취적인 무엇이든 과감하게 화면 밖으로 빼버리고, 때로는 주인공조차 화면 밖으로 밀어내서 자율성을 주장하며, 거리를 두고 사건을 파헤치거나, 물러나서 전경에 머물고, 숨어 버립니다. 카메라가 작가의 권위를 행사하며, 장면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모두를 숨죽이게 합니다. 그 화면 속 변화는 종종 알아채기 어렵고, 배경과 함께, 멀리서 피사체를 비추는 장면(long shot)은 매우 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또 어떤 장면에는 끊임없이 진동하고 흔들리는 화면(이는 자명하게도, 니나의 심리적인 불안정성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이 담겼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의 모든 장면이 실은 이 진동, 관객이 간신히 인지할 만한 미세한 떨림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숨소리는 점차 거세집니다. 때로는 대단히 거칠어져서, 신경질적인 떨림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음향은 공포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까지 줍니다. 그의 장편 데뷔작, <Beginning>은 이미 충분히 인상적이었고, <April>은 그만의 강력한 영화적 언어를 괄목할 만큼 발전시켰습니다. 보여줄 장면과 보여 주지 않을 장면을 명확히 구분하여, 상징주의도 사실주의도 아닌 방식으로 해체, 서사와 수수께끼의 층위를 매우 독창적으로 엮어냈습니다. 전통적인 영화 문법을 대거 파괴하면서 장르의 경계를 뭉개버린 데아 꿀룸베가슈빌리는 익숙한 기준에 따라 깔끔하게 정의되는 영화보다, 몇 년이 지나서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영화를 만들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또한 그런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는 미소를 지을 자격이 있고, 이제 관객들은 이 흥미로운 감독의 다음 작업물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