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티리얼리스트>: 사랑이 자본 가치로 환원되는 시대에 대하여

2025. 8. 8. 07:0035mm

 

 

 결혼 중개인으로 일하는 루시(다코타 존슨이 분했습니다.)는 자기 수입이 8만 달러라고 말합니다. 해리(페드로 파스칼이 분했습니다.)를 자극해서 그 스스로 연봉을 공개하게 압박하려 꺼낸 말이지만, 해리는 자신이 그보다 많이 번다고만 말합니다. 그의 생각에 숫자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에 관해 말하기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모 펀드에 몸담는 금융인이며, 1,200만 달러짜리 집에 혼자 사는 그가 루시보다 큰돈을 만진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장면은 가히, <머티리얼리스트 (Materialists)>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숫자가 눈앞에 제시되는 순간, 오늘,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는 머릿속으로 복잡한 셈법을 시작합니다. 루시가 입고 다니는 맵시 있는 옷값을 계산하고, 내부가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겉보기에 '비싸 보이는' 루시의 집 월세도 대차대조표에 적어 넣습니다. 영화 미술을 담당한 디자이너는 한 인터뷰에서, 루시가 브루클린 하이츠 외곽, 한 작은 스튜디오형 주택에 사는데, 그의 수입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수준의 월세를 부담한다고 귀띔했습니다. 루시는 '부유함'에 둘러싸인 채로 살고 싶어 하지만, 그 삶의 모습이 주머니 사정에 비하여 '현실적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금액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영화 주인공이 구체적인 숫자를 들어서 자기 수입을 밝혔다는 그 자체로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합니다. <머티리얼리스트>가 표방한 로맨틱 코미디 갈래는 물론, 그 어떤 영화에서도, 누구도, 연봉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영화 배경을 특정해서 제약하지 않고, 관객의 주의를 돈에 빼앗기지도 않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머티리얼리스트>는 거의 모든 장면에 '돈'을 등장시키면서 현대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깨뜨립니다('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로맨틱 코미디의 렌즈를 빌렸을 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르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90년대로 돌아가,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노팅 힐 (Notting Hill)>이나, 줄리아 로버츠, 리처드 기어가 호흡을 맞춘 <귀여운 여인 (Pretty Woman)> 등에도 서로 형편이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이 영화들의 핵심은 경제적인 여건 자체에 있지 않고, 대신, 서로 다른 사회적 지위에서 오는 갈등이 주가 됩니다. 말하자면, 서로 다른 수입 수준은 사회적 배경을 다르게 설정하면서 따라온, '부수적' 차이에 불과합니다. 갈등이 사랑을 빚었고, 사랑은 어떠한 문제라도 '정복'해 냅니다. 관객은 두 주인공의 사랑이 종국에 결실을 볼지 관심을 두는데, 적어도 '소득 격차' 탓에 그들이 헤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결국, 그들 사이가 이어지리라고 잠정적으로 확신합니다. 조금 다른 성격의 사례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 (Anora)>에도 애니(마이키 매디슨이 연기했습니다.)와 이반(마크 아이델슈타인이 연기했습니다.)의 '거래'에 구체적인 금액이 제시되나, <귀여운 여인>의 안티테제(Antithese) 같은 이 영화에서조차,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최소한, '돈'이 성 노동자인 애니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지는 않았습니다.

 

ⓒ Atsushi Nishijima/ A24

 

 "It is 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d, that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good fortune must be in want of a wife.", Austen, J. (1817). Pride and prejudice (3rd ed.). T. Egerton.

 

 로맨틱 코미디 갈래의 뿌리를 제인 오스틴에게서 찾는다고 하면, 사실, 사랑을 향한 열정적인 탐색과 자율권을 향한 갈망이 녹아든 그의 문학에서는 대부분 등장인물이 서로의 정확한 소득을 알고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속, 피츠윌리엄 다시가 주로, 지대를 통해 연 1만 파운드를 벌어들인다면, 엘리자베스 베넷은 (작중, 윌리엄 콜린스 씨에 따르면) 양친 사후에 연 40파운드 정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터무니없이 적은 이 금액은 제인 오스틴이 작품을 쓰던 시대, 미혼 여성들의 불안정한 재정 상황을 반영하며, 그들의 재정 안정이 가정 상황, 궁극적으로 혼인에 달렸음을 암시합니다. '계산법'은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합니다. 이기적이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이성과 감성 (Sense and Sensibility)>>의 존 월러비는 600파운드에 불과한 연 수입을 다섯 곱절 올릴 요량으로, 메리엔 대시우드를 두고, 훨씬 부유한 여성과 약혼했습니다. 오스틴이 묘사한 제일 복잡하고, 때로 극단적이기까지 한 여성, <<에마 (Emma)>>의 에마 우드하우스는 (<머티리얼리스트> 루시처럼) 중매 서기를 즐기는데, 그가 동전 한 닢 없지만, 예쁘고 상냥한 해리엇 스미스를 여러 사람과 연결하려 하는 시도가 소설 줄거리의 뼈대를 형성하고, 익살스러운 요소와 갈등, 이후 주인공 성장을 위한 밑거름을 마련합니다. 우연을 가장한 각종 연출로 해리엇과 젊고, 유능하며, 다소 허영심 많은 목사, 필립 엘튼 씨를 이어주려던 시도가 에마에게 깊은 굴욕감을 선사하며, 그 스스로 맹목적인 시선과 잘못된 판단의 대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엘튼 씨는 해리엇과 혼인이 자신의 격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에마에게 약속된 유산을 취해, 자신의 사회적 신분 상승을 노렸습니다. 해리엇은 결국, 처음에 에마가 업신여겨 무시했던 농부, 로버트 마틴 씨와 맺어져, 행복한 결말을 맞습니다. 시대가 변했고, 사회가 변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여전히 암암리, 계급에 집착하는 영국에서도 제인 오스틴이 보여 준 이 같은 논리가 어느 순간, 힘을 잃었습니다. <<오만과 편견>>에서 영감을 얻어, 그를 느슨하게 각색한 2001년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Bridget Jones's Diary)>를 보면, 마크 다시(콜린 퍼스가 연기했습니다.)의 부를 알 만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추상적으로 그려질 뿐, 관객은 구체적으로, 그가 해마다 얼마를 벌어들이는지 알 수 없습니다.

 

ⓒ Ryan Pfluger/ New York Times

 

 구체적인 숫자는 극이 가진 환상성을 깨뜨립니다. 영화가 한 허구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관객의 집중력을 붙잡아 두려면, 어느 정도 이 '환상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적어도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머티리얼리스트>를 두 번째 장편으로 들고나온 셀린 송 감독은 더욱 현실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공식을 뒤집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돈에 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합니다. 의도적으로 구체적인 숫자를 드러냄으로써, 비록,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그가 다소간 무례하게 여겨진다고 할지라도, 관객이 돈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데뷔작인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를 집필하고 연출하기 훨씬 전에, 이십 대 때, 그는 뉴욕에서 반년가량 결혼 중개인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해가 지고 그와 맥주를 나누던 대부분의 예술가 친구는 그가 상대하는 고객의 기준에서 곧바로 거절당할 후보였고, 이에 두 세계의 괴리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머티리얼리스트>는 90년대 이후, 사람과 연애가 맞춤형 상품처럼 판매되는 현상을 파고듭니다. 루시의 직업이 바로 그 '결혼 중개인'으로 설정된 점도 일맥상통합니다. 스프레드시트에 나이와 키(감독은 굽 높은 구두를 신은 다코타 존슨이 존 역을 맡은 크리스 에번스와 얼추 키가 비슷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합니다. 주인공의 연봉과 마찬가지로, 때로 로맨틱 코미디에서 키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데, 사실, 결혼 중개업에서는 그가 가장 기초적인 정보 중 하나로 여겨지니, 이 영화에서는 루시의 월세와 수입만큼이나 배우들의 키를 고려해야 했습니다.), 수입, 몸무게 따위 '정보'가 숫자로 입력되고, 그를 바탕으로 후보자가 걸러지며, 운이 좋으면, '연결'됩니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무언가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문자 그대로 번잡한 시장에서 자신과 서로에게 끊임없이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초반, 루시의 고객은 루시가 소개해 준 상대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게 해주어서 결혼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 이야기는 흔히 봐 온 "황금기" 로맨틱 코미디보다 제인 오스틴 문학(유달리 명시적으로는 <<에마>>)과 더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의 수입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고, 그를 바탕으로 '미리', '적합'한 상대인지 판단을 세웁니다. 친절하게도, 관객이 이 잠재적인 관계를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데 참여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받았습니다. 영화의 달콤함은 빠르게 사라지고, 감정에 치우치기보다는 사리에 밝은, 어딘가 잔인해 보이는 사실주의가 그 자리를 채웁니다. 이렇게 갈래의 모체로 돌아갔다고 할 수 있는데도 이 이야기가 새로운 까닭은 영화관을 찾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좌절, 고민과 (씁쓸하게도) 관련이 있습니다.

 

ⓒ Atsushi Nishijima/ A24

 

 "Every single one of our acts is ruled by the laws of economy. When we first wake up in the morning we trade rest for profit. When we go to bed at night we give up potentially profitable hours to renew our strength. And throughout our day we engage in countless transactions.", Trust.

 

 몇몇 특정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 한, 물려받을 유산이 화려하지 않은 한, (으레 그렇듯) 90년대 이후로 삶은 더 어렵고 비싸졌습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배경으로 자주 세워지는 대도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울에서 조건에 알맞은 집이 없다고 한탄하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베를린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공부는 이제 평생 계속해야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바꾸어 적응해 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루시처럼 삼십 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는(더구나 그곳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면, 더욱이) 무턱대고 직종을 바꾸기도 어렵습니다. 주변에서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떨어졌을 때 충격을 흡수해 줄 매트리스도 없으니,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합니다(그마저도 용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인생 역전"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고, 갑자기 수중에 엄청난 부가 떨어지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이 무력하게 느껴지기 십상이며, 쉽게 책임을 떠넘길, 탓할 상대를 찾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부유한 사람과 결혼하기가 나의 순자산을 늘리는 가장 빠르고, 접근할 만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랑은 쉽지만, '실리적인 선택'에 가까운 결혼에 이르기까지는 어렵습니다. 겉으로 내색하든 내색하지 않든, 뭇사람이 이를 압니다. 소셜 미디어를 매개로, 젊은 여성이 그에게 열심히 선물 공세를 벌이는 중년 남성을 찾는 방법에 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순정"을 찾기 어렵습니다. 돈을 지금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면, 수도 없이 내적인 갈등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기도 합니다. 언제나 그랬듯, 래퍼들은 돈과 번쩍번쩍한 신형 최고급 자동차에 관해 떠들어 대고, TV에 나오는 유명인들은 그 또래가 쳐다보기도 힘든, 넓은 집을 장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급여와 생활비를 분석하는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새천년 세대와 Z세대 소위 "영향력자(Influencer)"가 투자법에 관해, 통장에 얼마를 갖고 있어야 하는지, 금융 시장에서 어떤 종류의 고수익 예금 계좌와 상장 지수 펀드가 어렵게 번 돈을 효율적으로 쓰게 해주는지 영상을 만들어서 설명합니다. 모두가 가능한 한, 쉽고, 빠르게 재정적인 자유를 얻고 싶어 합니다. 사치를 충당하기 위해서만도 아니고, 때로는 자기 길을 선택해서 성차별적이고 고루한 상사가 있는 직장을 벗어나, 이성에게, 혹은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기 위한 돌파구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영화 주인공이, 로맨틱 코미디의 중심에 선 사람이 스스럼없이 자기 연봉을 공개하는 장면은 발칙한 신선함을 주면서도, 실로 시의적절하다고 하겠습니다. 극의 환상성이 바래게 하더라도, 등장인물들을 우리 일상과 훨씬 가까운 곳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루시의 일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느 쪽을 택하든, 현실적으로 자기 삶의 일부를 투영하여 갑론을박할 수 있고, 바로 그가 셀린 송 감독이 의도한 바입니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마지막 이별 장면. 셀린 송 감독은 <머티리얼리스트>의 "지극히 현실적인 여성", 루시라면, 차에 따라 타지 않은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말했습니다. <패스트 라이브즈> 바로 다음 작품이 현실성을 가미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사실은 제법 많은 영화광에게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 A24]

 

 큰 기대감을 품고 <머티리얼리스트>를 기다린 대부분 관객은 (틀림없이) 셀린 송 감독이 '인연'을 소재로 애절하게 그려낸 전작, <패스트 라이브즈>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화려한 꾸밈 없이 소박한 이 영화는 평범한 공간에서 전개하는 이야기로 관객이 주인공, 노라(그레타 리가 분했습니다.)의 삶에 몰입하도록 도왔습니다. 노라와 해성(유태오 배우가 연기했습니다.)이 유년기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12'라는 숫자를 반복적으로, 어떤 주기의 끝과 다음 주기의 시작으로 삼아(해석하기에 따라, 불교 세계관의 '십이연기'와 맞닿은 이 숫자는 '전생'이라는 영화 제목으로 연결돼, 의미를 더합니다.), 여러 번 다시 만나고, 또 헤어지는 중에 '만약'이라는 가정과 극을 끌어갑니다. '그리움'과 '사랑'이 핵심적인 주제로 나타나는데, 노라가 아서(존 마가로가 분했습니다.)와 함께하면서도 자꾸만 해성을 돌아보는 이유는 그와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간직해서라기보다, 기억 저편의 해성이 마음을 다해, 마땅한 격식을 갖춰서 떠나보내지 못한 시절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막판에야 노라는 그 시절을 향해, 어린 자신을 향해 손 흔들어 줄 방법을 찾고, 뜨겁게 눈물 흘렸습니다. <패스트 라이브즈> 마지막 작별 장면에 노라는 해성을 우버에 태워 배웅하겠다고 따라나섰습니다. 도착한 차를 두고, 해성과 포옹을 나눈 "나영(노라)"은 아서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지(미국에 남을지), 어린 시절의 사랑인 해성을 따라서 올라탈지 갈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셀린 송 감독은 <머티리얼리스트>의 루시라면, 같은 장면에서 '어차피 서울로 돌아갈' 해성임을 알기에, 차에 따라 타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으리라고 말합니다. <패스트 라이브즈> 바로 다음 작품이 현실성을 가미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사실은 제법 많은 영화광에게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두 작품 온도가, 채도가 너무도 다른 듯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반응을 모를 리 없었던 감독은 이 세상 누구도 사랑과 얽히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며,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 장르의 힘을 새로운 도전의 이유로 들었습니다. <머티리얼리스트> 각본은 <패스트 라이브즈> 공개가 다가오던 시기에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 Atsushi Nishijima/ A24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좌절감의 일부인 '가치'가 <머티리얼리스트>를 끌어가는 중요한 동력입니다. 돈으로 자동차를 사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어도, 심지어 더 나은 외형을 가지려고 '투자'할 수 있어도, 다른 사람과 사랑으로 통하는 "신비한 경험"을 살 수는 없습니다("완벽한" 해리는 사랑이 제일 어렵다고 루시에게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 자기 계발에 공을 들이도록 압박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상품'으로서 자기 가치를 높이면, 그 신비한 경험에 근접하리라는 생각이 파다한 까닭입니다. 하지만, 감독은 세상 무엇이 사랑보다 '더' 중요하냐고 묻습니다(해리는 루시의 "무형 자산"에 투자했지만, 결혼이 사업이라고 굳게 믿는 루시에게도 관계를 지속하려면, 그 바탕에 사랑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극장에서 다코타 존슨, 페드로 파스칼, 크리스 에번스가 연기하는 환상의 세계로 발을 들인 관객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전 애인, 지금 만나는 사람, 또는 앞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머릿속에 그리기를 바랍니다. 고 노라 에프런(1941-2012)이 각본을 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 직접 연출도 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Sleepless in Seattle)>, 제임스 L. 브룩스의 <제리 매과이어 (Jerry Maguire)>,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As Good as It Gets)> 등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현대 사회의 정신적인, 낭만적인 상황에 깊은 관심을 두면서도, 장르에 내재한 도피주의적 성격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셀린 송 감독은 사랑에 관한 어떠한 이야기도 사랑의 실재를 전제로 하므로, 이 아름다운 도피주의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믿습니다. <패스트 라이브즈>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쌍은 헤어지고, 또 어떤 쌍은 다시 관계를 시작합니다. 틴더(Tinder)를 지우는 사람이 있으면, 또 누군가는 콘텐츠 시장에서 그를 찾습니다. 사랑 앞에서, 때로는 "어리석어져야" 합니다. 감독은 누군가와 함께하기란, 매일 절벽에서 뛰어내리기와 같다고 말합니다. '오늘' 당신을 사랑하고, '내일'도 그렇게 하리라고 결심하기와 같다고 말합니다. 언젠가 두 눈을 감으며, 상대를 보고, 믿을 수 없지만,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는 환상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데, 함께 늙어가며 어딘가에 나란히 묻히기를 바라는 생각(결혼 중개인으로서 루시에게는 "요양원에 같이 들어가고, 무덤에 같이 묻힐 동반자"를 찾아준다는 특이한 판매 전략이 있습니다.)에 매우 낭만적인 성격이 있으며, 그야말로 '물질적(material)'이라고 확신합니다.

 

ⓒ Charlie Clift

 

 루시의 삶은 관객에게보다도 그 자신에게 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그를 서로 다른 두 남자가 얽힌 삼각관계에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빈털터리, 구멍 난 배와 같은 옛 애인, 존과 "유니콘", 머리숱 많고 키도 큰데, 돈까지 많은, 최고급 유람선, 쾌속선과 같은 해리가 그를 두고 마주 섰습니다. 루시가 주선한 아홉째 쌍 결혼식 피로연에서 이들이 처음 대면했습니다. 신랑의 형제로 등장하는 해리를 루시는 예비 고객으로 눈독 들이지만, 해리는 그에게 더 관심을 보입니다. 서로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깜빡거리고 매력을 흘리며 시시덕거리는데, 존이 루시가 제일 좋아하는 콜라와 맥주를 큰 소리로 놓으며 끼어들었습니다. 존은 출장 뷔페 서비스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후, 감독은 줄곧, 해리와 사랑을 싹틔우면서도 아직 소진되지 않은 존을 향한 감정에 흔들리는 루시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그들의 관계, 감정은 따뜻하고, 필요한 만큼 진실하며, 때로는 즐겁습니다. 존은 해리와 루시의 관계를, 해리는 존과 루시의 관계를 절대 방해하지 않고, 선을 지킵니다. 루시는 '주차비' 때문에 존과 싸우고 헤어져야 했던 과거를 떠올리면서도, 자기 앞에 나타난 "완벽한" 해리가 왜 "급이 안 맞는" 자신과 시간을 보내려 하는지 캐묻습니다(결국, 계산적인 해리에게 루시는 하나의 "사치품"이었을지 모릅니다.). 다코타 존슨의 매혹적인 존재감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그의 냉랭한 연기가 루시 배역과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그는 의미심장하게도 거울에 비친 얼굴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화장하고 출근 준비에 열중하며, 읽기 힘든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그가 고객을 찾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뉴욕 시내를 활보하는 산뜻한 장면에 경쾌한 음악, 공들인 음향을 더해, 셀린 송 감독은 그가 몸담는 직장, 그의 일을 순조롭게 관객에게 소개했습니다. 페드로 파스칼은 엉큼하고 능청스러우면서도 어딘가 기름기가 많은 특유의 매력으로 관객을 대번에 사로잡습니다. 그의 반드러움은 토라지고 심술궂은 존의 성격과 대비를 이룹니다. 우리에게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로 익숙한 크리스 에번스는 상처 입은 존의 얼굴을 그려냅니다. 낭만적인 외모와 태도를 갖췄지만, 삶이, 사랑이 그를 거칠게 만들었습니다. 이 남자는 이제, 자기연민과 어쩌면, 가득한 열등감을 감추고 싶은 나머지 뒤집어쓴 가면으로, 매우 방어적이고 예민한 자세를 취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머티리얼리스트>의 감정이 심하게 멍듭니다. 루시에게, 또한 그에게 몰려드는 40대 혹은 그 이상, 겉보기에 독립적인 고객들에게, 연인끼리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은 승자와 패자 대신, 구매자와 판매자를 두는 시장의 거래이자, 가치 교환의 문제일 뿐입니다. 낯익은, 귀여운 희망과 꿈을 노래하지만, 그들은 또한, 상대방의 약력을 장바구니에 담은 까다로운 소비자입니다.

 

ⓒ Atsushi Nishijima/ A24

 

 어느 순간, 루시의 갈망이 관객에게 덜 분명하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습니다. 자신이 상대하는 고객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속물성"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않지만, 그 욕망에 마냥 충실하지도 못한 루시의 갈팡질팡이 나머지 극의 서사와 온전하게 결합하지 못하여, 작은 '틈'을 만듭니다. 셀린 송 감독은 능숙하고도 분석적인 방법으로 고전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끌어왔고, 결혼 중개업과 결혼에 대한 냉소적인, "더 현실적인" 견해를 더해, 현대적인 구성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불만 많은 한 남성 고객이 영화 초반, 루시에게 자기 짝이 사십 대에, 뚱뚱하다며, 자신은 절대 그런 여성을 보고 오른쪽으로 화면을 밀지(swipe right; 틴더에서 제시된 상대가 마음에 들면, 오른쪽으로 화면을 밀고, 그 반대이면, 왼쪽으로 밀어 거절 의사를 밝힐 수 있습니다.)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특정 인종을 기피하는 고객도 있습니다. 대단히 노골적인 이 대사들은 하나의 문장으로 강력한 정신을 압축해 내는 (이미 <패스트 라이브즈>를 통해 입증된) 감독의 장기를 잘 보여 줍니다. 경멸 섞인 남성의 목소리가 루시를 멈칫하게 하고, 왜곡됐을 가능성이 농후한, 이성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에 의문을 품도록 하며, 극 전반에 어렴풋이 도사리는 위협적인 분위기를 뿌리기도 합니다. <머티리얼리스트>에 등장하는 충격적인 성폭력 또한, 이 갈래 영화에는 흔히 드러나지 않는 요소입니다(서사적으로 그가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수도 있습니다.). 감독은 연애, 낭만, 결혼까지 그 전부가 거래의 성격을 지니면서 시장 가치로 환원되는 시대에 사랑이 진정 무엇인지, 숫자로 판가름 나는 우리 삶의 의미란 진정 무엇인지, 효과적으로 큰 질문을 제시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을 설득력 있게 엮어내는 데는 서툴렀다는 아쉬운 평도 들립니다. 제인 오스틴 문학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이 갈래를 향한 그의 분명한 애정과 솔직한 현실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대담한 시도를 펼쳤는데, 현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극에 드리운 그림자가 다소 버겁게 느껴진다면, 그리 생각할 만도 합니다(그래서 이 영화를 로맨틱 코미디라고 부르는 대신, 로맨스가 섞인 드라마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일각에서는 폅니다.). 어쩌면, '필요했던' 화두를 던진 <머티리얼리스트>는 다만, 사랑스럽게도 도발적인 작품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사랑 앞에, 더 넓게는 세상 앞에 자신은 어떤 모습인지 곱씹어 보게 하기 충분하므로.

 

ⓒ Atsushi Nishijima/ A24

 

 해리와 관계에서 피상적인 성격을 포착한 루시는 결국, 존의 손을 잡습니다. "부유한 구혼자"와 "가난한 구혼자"가 대립각을 세우는 작품에서 자주 봐 온 결말이니, 물질적인 안정과 사회적인 신분, "급"의 상승 기회를 뒤로하고, 공유하는 사랑의 기억과 뜨거웠던 만큼 서툴렀던 경험에 끌린 이 "뻔한 결말"이 극 전반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가 받아들여지는 방식을 조사하려 조금만 돌아다녀 보면, 훨씬 극단적이고, 우려스러운 일부 반응이 틱톡(TikTok)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달구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가 "가난한 남성을 위한 선전"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리는가 하면, 여성이 극심한 빈곤층부터 값비싼 외식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남성까지 스펙트럼에서 타협하도록 부추긴다고 힐난하며, 여성들은 재정적인 안정과 사랑 모두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말로 포장합니다. "트라우마와 낮은 자존감이 여성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원하는 바를 제공하지 못하는 전 애인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현실 공포 영화"라고 주장합니다. 사회적, 경제적 불안정성과 미래를 계획하는 일에 대한 회의는 헤아릴 만합니다. 한데, 그 이면에 읽히는, 하위적으로 확산하는 젠더에 대한 반동적인 이념은 당혹감을 키웁니다. "걸 매스(Girl math; 지갑에서 꺼낸 현금으로 물건을 사면,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으므로 무료라거나, 미리 결제한 재화를 몇 달 뒤에 찾으면, 이전의 지출을 잊어버려, 공짜로 구한 듯이 느껴진다는 등, 몇 가지 규칙을 적용해서 젊은 여성의 소비를 합리화하는 현상인데, 소비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나 죄책감을 가볍게 승화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여성의 재정 관념이 부족하다는 잘못된, 차별적인 선입견을 강화한다는 비판 의견도 있습니다.)" 유행이나, "일하기엔 너무 예쁘다(Too Pretty for a Job)."라는 문구가 박힌 티셔츠를 사고파는 수준을 넘어, "고가치 여성(High-Value Woman)"을 이상향으로, 집착에 가까우리만치 관계를 상품화하고, 때로 수동적인 태도를 강요하는 흐름을 소비하며, 비용은 남성이 부담해야 하고,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대신, 집에 머물던 시절이 나았다는 등, 젠더 본질주의가 최근, 다시 성행합니다. '돈 많은' 해리가 루시에게 명백히 나은 선택이고, 존의 변변찮은 수입은 차갑고도 단호하게 그를 향한 사랑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주장이 섬뜩한 이유입니다.

 

ⓒ Atsushi Nishijima/ A24

 

 정반대로, 영화의 시각이 지나치게 자본주의적이며, 해리의 세계를 필요보다 매력적으로 그려, 루시의 속물적인 우선순위에 공학적인 당위성을 부여했다고 말하는 비평가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해리 역을 맡은, 현재,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페드로 파스칼의 매력은 과한 독이었습니다. 다시 이 논쟁의 구렁텅이에서 한 발짝 물러서 영화를 연출한 셀린 송 감독에게 조명을 돌리면, 이러한 양극단 토론의 장을 열었다는 자체로 그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하겠습니다. 오래된, 사랑이냐 돈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원리를 생경하게 만들었습니다. 해리의 세상이 충분히 매력적이었기에, 숫자에 집착하던 루시가 본질을 떠올려 보고, 그 내면의 변화를 더 분명하게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감독은 혼인 신고와 결혼이 어떤 식으로도 루시와 존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둘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묻는다면, "잘 풀릴" 가능성과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반반, 팽팽하게 맞섭니다. 루시는 직장에서 더 높은 자리를 제안받았고, 고민해 보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그가 그를 받아들여서 승진하거나, 반대로, 종업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연기자의 꿈을 버리지 못한 존에게 운 좋게 더 큰 기회의 문이 열린다면, 이 관계의 역학이 또,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루시가 해리의 부를 존에 대한 대안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인수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기적이 일어나서", "사랑의 힘으로" 그를 극복해 낼 수도 있지만, 끝내 두 사람이 갈라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감독은 사랑과 낭만에 믿음을 품었습니다. 하나, 이혼이 (최소한 과거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세상,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루시와 존의 결혼은 감독에게 이 로맨틱 코미디의 닫힌 결말이 아니라, 또 하나의 열린 결말입니다. 그렇다면, 루시의 어떠한 선택도 "당연"하지는 않았습니다.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작품은 때로, 현대 연애와 사랑의 최전선에서 온 속달과도 같다고 말합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머티리얼리스트>가 바로 그런 영화로 남습니다.


에필로그

 

 "Money says nothing about its owner. As opposed to having, I don't know, talent, which defines a person. Money's relationship to the individual is completely accidental.", Diaz, H. (2022). Trust. Riverhead Books.

 

 결말부, 센트럴 파크, 가로로 길게 놓인 의자에 앉아, 존은 꽃으로 반지를 만들어서 루시에게 청혼합니다. 보석의 화려함 없이, 어떻게 하면, 재정적으로 아주 나쁜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묻는 그의 모습이 표면적으로는 웃길지 몰라도, 극을, 루시의 감정선을 쭈욱 따라온 관객이라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몹시 애처롭고, 어딘가 슬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돈과 개인이 맺은 관계는 시종 우발적이며, 돈은 그 소유주에 관한 어떠한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대도, 살아가며 '조건'이나 '배경'을 무시할 수 없는 우리네 현실이 한순간, 기운이 풀리게 합니다. '그래도' 루시와 존의 미래를 응원하고 싶은 이유는 허구 속에서라도, '아직', 신비롭고 공상적인 사랑이 실리에 우선할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이리라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이 구간은 영화의 시작점으로 돌아갑니다. 고요 속에 비치는 네안데르탈인 한 쌍, 남자가 꽃반지로 청혼하는 장면(막이 내리고, 감독이 숨겨 놓은 재미있는 화면에 이 네안데르탈인들도 루시와 존이 혼인 신고를 위해 찾은 관서에 모습을 드러냅니다.)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수미상관을 이루는 이 장면들은 물질주의를 초월하는 사랑의 오랜 역사와 영원하다고 믿는 힘을 상징합니다. <머티리얼리스트>는 그 꽃반지처럼 완전히 덧없는 무언가, 정신적이고 비물질적인 무언가와 형태와 모양이 있고, 물질적인 무언가의 틈새를 아리게 띄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