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25. 08:00ㆍ35mm
프롤로그
"Jeder Mensch hat etwas sehr Wertvolles in sich, das er nicht verstreuen darf. Er muss es in einer Tüte bei sich tragen, damit es ihm nicht verloren geht. Man muss alles bei sich behalten, damit man es zu bestimmten Zeiten anderen geben kann.", Schubert, H. (2025). Luft zum Leben. dtv.

꼼꼼한 장인 정신의 유아킴 트리어르 감독은 극의 정서, 분위기를 전환하는 솜씨가 매우 뛰어납니다. 혹자는 이 노르웨이 출신, 자기 전성시대를 열어 나가는 감독을 "변신, 조율의 귀재"라고 칭합니다. 지난해 5월,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에서 매우 높은 관심을 받은 그의 신작, <센티멘탈 밸류 (Affeksjonsverdi; Sentimental Value)>는 아름답게 얽히고설킨 그림, 한 가족을 사로잡은 과거를 찬찬히, '영화로써' 풀어냅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Verdens verste menneske;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에서 잘 보여준 감각적인 서사를 넘어, 트리어르는 이번에도 사랑과 예술, 그리고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가족'이라는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센티멘탈 밸류>는 칸에서 공개 직후, 심사위원대상(그랑프리 =Grand Prix)을 품에 안았고, 내달,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무려, 아홉 군데 후보(여덟 개 부문; 아그네스 역의 잉가 입스돗테르 릴로스와 레이철 역의 엘 패닝이 나란히 여우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습니다.)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친밀하고도 정교하게 짜인, 감동적인 이야기는 주제와 감정이 복잡하게 꼬여 버린 거미줄 같으면서도, 매우 맑고 또렷한 시각을 끝까지 잃지 않습니다. 가장 가벼운 순간에조차,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감독은 묵직하게 영혼을 울립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 이어, 이번에도 NEON이 작품의 북아메리카 배급권을 가져갔습니다. 감독의 전작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레나테 라인스베는 물론, 할리우드의 인기 있는 배우, 엘 패닝이 합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영화제를 전후로 시장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결국, 칸에서 초반에 서명된 계약으로는 매우 높은 수준에 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지난해 말, 미국 시장에 공개된 <센티멘탈 밸류>는 안정적으로, 준수한 성적을 냈다고 전합니다. 유럽에서도 일찍이, 많은 영화광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영화 도입부, 세상과 작별한 어머니의 추모식을 위해 모인 자매, 노라와 아그네스 앞에 예기치 않게 등장한 아버지, 귀스타브가 정적을 깨뜨리며,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그는 조문객을 챙기느라 분주한 자매에게 단숨에 불편함을 가져다주며, 특히, 장녀인 노라를 동요하게 합니다. 어색하게 오가는 인사, 재회가 섬세하게 연출돼, 그 순간, 관객마저 그 지독하게도 익숙한 긴장감 복판에 놓입니다.
스텔란 스카르시고르드와 레나테 라인스베가 환상적인 호흡으로 빚어낸 귀스타브, 노라는 같은 방에 있기조차 견디기 힘들어하는, 소원한 사이입니다. 유아킴 트리어르는 모든 출연진에게 그 존재감을 드러낼 공간을 부여하지만, 영화의 초점은 주로, 이 두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해묵은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높은 벽을 쳐 버렸습니다. 감정적인 투명도가 매우 높은 두 배우는 빛과 어둠의 농도를 완벽하게 맞춰, 심지어는 관객을 압도하는 순간에도, 단 하나의 동정도 사려 하지 않습니다. 최고 영예가 이미 오래전 과거 돼 버린 영화감독, 귀스타브는 자기중심적이고 형편없는 아버지이지만, 자기 실수를 후회하는 연약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모든 방을, 모든 사람을 압도하다가도, 사적인 공간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끔찍한 과거와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 한계에 봉착했음을 깨닫고, 더는 삶을 속이면서 살아갈 수 없음을 아는 이 남자는 마침내, 두 딸, 노라, 아그네스와 관계를 회복하려고 애씁니다. 영화와 TV를 통해 자주 얼굴을 비추고, 특히, <캐리비안의 해적 (Pirates of the Caribbean)>, <어벤져스 (The Avengers)>, <듄 (Dune)>, <안도르 (Andor)>와 같은 연작에 꾸준히 출연하여, 젊은 관객에게도 친숙한 스카르시고르드는 귀스타브로서 경이로운 연기를 보여주며, 이는 가히, 그의 그 긴 경력을 정의할 만한 수준입니다. 영화의 정서적 중심을 잡아주는 라인스베는 깊은 상처를 간직한 동시에, 놀랍도록 강인한 노라의 얼굴을 보여 줍니다. 극이 전개될수록, 관객은 연극을 통해 우뚝 선 이 배우를, 그의 상처를 더 깊이 알게 되며, 이는 결국, 결말에 다다라, 관객으로서 그를 꼭 안아주고 싶게, 위로하고 싶게 합니다.

추모식 직후에 귀스타브는 노라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각본을 들이밀며, 딸에게 자신의 신작 출연을 제안합니다. 하나, 아버지가 "왜", "하필 이 시점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의문을 품었던 노라는 그를 가열하게 거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의 거절은 극을 끌어가는 중요한 동력 하나를 가동합니다. 귀스타브가 한 영화제에서 미국 출신 배우, 레이철을 만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귀스타브의 옛 영광과도 같은 영화가 특별 상영돼, 좋은 반응을 끌어냈는데, 레이철이 그 현장에 있었고, 이 사건은 두 사람 마음속에 서로 다른 무언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십오 년째 영화를 만들지 못한 귀스타브에게는 그 유물과 대비되는 오늘의 빈손에,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레이철은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고, 그 깊은 감명을 바탕으로 자기 예술적 지평을 넓힐 기회를 찾습니다. 귀스타브는 쉬지 않고 따라붙는 세상의 평가, 감시받는 듯한 일상에 지친 레이철에게 일탈과도 같은 자유의 시간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귀스타브는 노라를 대신하여 레이철에게 배역을 맡겼고, 이때부터 그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 극중극의 서사 구조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는 자기 삶에서 가져온 고통스러운 가족 드라마를 기획했고, 이를 그 역사를 익히 아는 집에서 촬영하려 합니다. 그가 레이철과 처음으로 집 안에 들어섰을 때,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노라와 아그네스가 그를 목격했습니다. 노라는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꽃병을 거의 넘어뜨릴 뻔한 슬랩스틱(Slapstick)을 선보입니다. 가까스로 꽃병을 낚아채서 필사적으로 문을 향해 달려가며, 무심하게 들어오는 아버지의 시선을 피해, 다시, 과거의 유물을 움켜쥐었습니다. 이전까지 과거의 유령에 사로잡힌 이가 주로 귀스타브였다면, 이번에는 노라의 차례였습니다. 귀스타브는 이내, 이 쓸쓸한 장소에서 레이철과 촬영 연습을 시작,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뭉그러뜨립니다. 노라의 거절에도, 새로운 배우를 찾아서 자기 머릿속에 있는 극을 '어떻게든' 현실로 만들려는 그의 시도는 결국, 한 가족을 다른 가족으로 대체하는데, 예술로써 그 현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는 어디까지나 모사에 그칠 뿐인지, 핵심적인 질문을 낳습니다.

"Time is circles within circles. It neither dies nor declines but whirls in epicycles. Like a wheel that continues to spin even after its powers is turned off, family conflicts live on long after the individual members have passed away.", There are rivers in the sky.
<센티멘탈 밸류>의 시작은 사실, 독특합니다. 유아킴 트리어르 감독은 전작,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서처럼, 초월적인 목소리, 사실상, 한 가족의 역사가 깃든 '집'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작품 문을 열었습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끝내 밝혀지지 않지만, 그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그 장소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난 사건을 열거하며, 주관적인 서술을 얹는 대신, 최대한 객관화해서 전달합니다. 조금씩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노르웨이에서 인기를 끈 건축 양식("Dragestil")의 목조 저택은 단순한 물리적 배경을 넘어, 이야기의 중요한 축이 되며, 그 자체로 한 등장인물처럼 인식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안식처였고, 누군가에게는 분노로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린 금고이자 무대이며, 흩어졌던 가족을 다시 불러 모으는 접착제로서 역할도 수행합니다. 장소에 깃든 기억의 소재 활용을 이전에도 여러 작품(예를 들어, 지난해, 독일에서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운드 오브 폴링 (In die Sonne schauen)> 등)에서 봐 왔지만, <센티멘탈 밸류>에서 이 집의 존재감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분명합니다. 이 집을 관념화한다면, 영화 예술, 그 자체를 상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귀스타브의 대본에 따르면, 기도란, 절망을 인정하고, 어쩔 수 없이 바닥에 주저앉는 일인데, 그 끝에는 '집'을 희구합니다. 그렇게 부르짖는 여성, 노라 혹은 레이철, 또는 (이 극중극이 귀스타브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귀스타브의 어머니, 카린에게 바로 이 집을 선물해 주는 매체가 영화입니다. 게다가, 도입부의 목소리는 이 집에 적막함과 북적거림이 끊임없이 교차한 역사를 전했습니다. 그곳에 살던 귀스타브의 전처, 노라와 아그네스의 어머니가 죽음으로써, 또 한 번 고적함이 내려앉은 이 집은 영화의 결말부, 귀스타브의 극중극 촬영과 함께 되살아납니다.
이러한 가운데, 노라에게 이 집은 슬픔과 외로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 깃든 곳입니다. 그에게는 어린 시절, 학교 과제로 제출한 수필이 있습니다. 바로 이 집을 인격화해서 풀어낸 수필로, 그는 그로부터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막상 그를 바탕으로 면접을 보고, 예술가, 배우의 길에 오르려다가, 다시 읽어 본 그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Чайка)>> 속, 니나의 독백 장면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는 면접에 붙었고, 그렇게, 현실에서 예술로의 도피를 시작했습니다.

"An unwavering pendulum swings between day and night. Light and shadow. Good and bad. Perhaps it is the same with past and present - they are not completely distinct. They bleed into each other.", There are rivers in the sky.
일각에서 <센티멘탈 밸류>에 등장하는 인물 간 갈등의 해결이나, 트라우마를 다루는 방식이 이전에 날카롭고, 때로 놀라웠던 유아킴 트리어르의 성향을 기억할 때, 조금은 관습적으로 느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서로 이질적인 조각들이 공학적으로, 너무 매끄럽게 맞물리도록 다듬어졌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모든 등장인물을 중첩하여, 기준이 되는 형태로 구조화해 낸 감독의 능력에는 '어떻게 해도'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도입부의 인상적인 목소리와 더불어, 이 영화의 서사, 망가졌다가 회복하는 듯한 그 관계들을 보편적으로 적용할 여지, 여유를 만들어 주는 핵심 고리입니다. 예를 들어, 노라는 (자신은, 못해도, 극이 특정한 시점에 다다르기까지는 극구 부인하겠지만) 아버지인 귀스타브를 닮아, 까다롭고, 때로 탐욕스러울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면을 가졌고, 그런데도 거부할 수 없는, 대중을 휘어잡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그는 동료 연극배우와 불륜에 해당하는 관계로(그가 귀스타브와 함께 등장하는 몇몇 장면에 그 의도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는 연출이 있지만), 숨겨진 아버지의 옛 연인 자리에 들어갔다가, 생전, 심리상담가로 일한 어머니의 책상에 앉았고, 영화 막바지, 결국, 귀스타브의 영화 주인공으로 카메라 앞에 서서, 아그네스의 아들, 자기 조카, 에리크(외위빈 헤셰달 로벤이 그려냈습니다.)와 모자 관계를 연기, 동생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평소, 각별한 그와 에리크의 관계는 귀스타브의 어린 시절(이를 통해 엿보이듯이 귀스타브와 에리크도 여러 면에서 겹칩니다.), 그와 그 이모의 관계도 연상시킵니다. 레이철은 그 감정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귀스타브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배역을 포기하고 떠나기 전까지, (사실상) 노라로 분해야 했으며, 영화 제작진을 구성하며, 은퇴한 옛 동료를 찾아간 귀스타브는 왕래가 없던 시간, 몰라보게 변해 버린, 약해진 친구와 마주합니다. 아들과 망가진 관계를 토로하는 그 친구의 모습에서 귀스타브는 자신을 발견했고, 충격받았습니다. 마지막 촬영 현장에 이 친구가 촬영감독으로 함께했으니, '비로소' 영화가 완성됐다고 할 만합니다.

<센티멘탈 밸류>를 보다 보면, 노라의 슬랩스틱 외에도, 순수하게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많이 있습니다. 엘 패닝이 연기하는 레이철이 (과하거나 겉돌지 않고) 가벼운 매력과 예술을 앞에 놓고 보이는 진정성(그는 대본을 읽는 연습 중, 기도에 관한 통찰과 집을 구하는 장면 뒤에 잉그리드에게 안겨 울며, 영화 속에서도 어머니가 이와 같이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귀스타브에게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잡으며, 자칫 무거워질지도 모르는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스텔란 스카르시고르드의 귀스타브는 특히, 손자, 에리크와 함께하는 장면에서 극의 완급을 자주, 능숙하게 조절해 냅니다. 노르웨이어가 주로 쓰인 작품이다 보니, 일반적으로 언어의 장벽이 있는데도, 다수 관객의 웃음을 끌어내는 감독의 치밀한 연출이 돋보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넷플릭스(Netflix), 심지어 틱톡(TikTok)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극장에 걸리는 대신,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직행하는, 오늘날, 영화를 둘러싼 현실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적절한 웃음으로 그를 풀어냅니다. 그러나, 이렇게 유아킴 트리어르가 허락하는, 긴장이 다소 느슨해진 순간들은 영화 전반의 정서적인 무게감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센티멘탈 밸류>는 망가진 관계와 세대 간의 트라우마, 그리고 영화 예술의 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극의 상당 부분이 귀스타브의 극중극 만드는 과정을(결국, 영화의 탄생을) 관찰하는 데 할애됩니다. 여전히, 작품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우울함에 젖어 있습니다. 이혼과 소모적인 직업, 부주의한 양육과 같은 단서가 제공되며, 그중 일부는 격렬한 비난을 동반합니다. 노라는 자신과 아그네스가 영화감독으로서 경력을 쌓는 데 혈안이 된 귀스타브에게 버림받았다고 믿으며, 이러한 원망이 그를 향한 독선적인 분노의 연료로 소모됩니다.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주제도 이 영화를 떠돌고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데에 대한 암시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귀스타브의 어머니, 카린이 그랬고, 노라도 그와 같은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카린의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그는 나치 점령기, 저항군으로 활동했고, 체포돼 고문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순간을 트리어르 감독은 비교적 빠르게 지나칩니다.

카린의 이야기는 아그네스를 통해 중요하게 언급됩니다. 극 중에서 아그네스는 언니인 노라와 끊임없이 마주 봅니다. 어려서, 레이철이 보고 눈물을 훔친 아버지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했던 그는 아버지가 집을 떠난 뒤, 역사학자가 됐고, 그렇게, 언니와 정반대로, 예술을 떠나, 현실로 나갔습니다. 노라는 이런 아그네스를 알게 모르게 부러워한 듯합니다. 그는 자신이 들고 뛴 꽃병에 대하여, 이전에 아그네스가 취하려고 했기 때문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자매, 형제 관계에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이라지만, 아버지, 귀스타브와 사이의 관계, 그리고 배우라는 그의 직업이 끼어들 때, 어떠한 감정적인 가치("sentimental value")가 생겨났다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언니보다는 아버지에게 관대한 듯 보이나(실은 그에 못지않게,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컸지만), 감정 표현이 적은 아그네스의 모습을 잉가 입스돗테르 릴로스가 매우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유아킴 트리어르 감독은 <센티멘탈 밸류>를 제작하며 가장 어려웠던 일 하나가 레나테 라인스베가 연기하는 노라의 동생으로 분하여, 라인스베에 견줄 만한 연기자로서 설득력을 보이고, 그와 어느 정도 닮았으며, 노르웨이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배우 찾기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릴로스의 진정성, 진중함이 스며들어, 아그네스라는 등장인물이 한 단계 끌어올려졌습니다. (아버지의 성씨를 따른 가문을 떠나서) 자기 가정을 원한다고 분명하게 말한 아그네스는 역설적으로, 그와 노라, 귀스타브의 세 부녀가 다시 뭉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카린의 역사를 보관된 마이크로필름과 문서로, 두 눈으로 직접 찾아보면서, 이미 다 안다고 생각했던 사실로부터 더욱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길로 귀스타브의 각본을 들고 노라를 찾아갔고, 인기를 끌던 연극의 공연 일정을 모두 취소하는 등, 완전히 무너져 있던 그를 (각본을) 한 번 읽어라도 보라고 설득했습니다. 그가 콕 집은 장면은 다시, 기도에 관한 독백으로 시작하는 그 대목이었습니다.
노라는 예술, 연기에 관한 자신의 태도를 아그네스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연기를 한 인물을 구축해 가는 일로 받아들이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그를 이해하고, 그 삶을 살아냄으로써 현실의 자신을 더 알아가는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결국, 귀스타브의 영화에 출연함으로써, 노라의 예술로 도피는 막을 내립니다. 이미 자기 말대로, 다양한 삶의 자리를 경유하여 돌아온 노라의 얼굴을 귀스타브의 마지막 촬영장, 닫힌 방 문 뒤에서 카메라가 비춥니다. 귀스타브의 극중극을 관람하는 관객이라면, 볼 수 없을, 말 그대로, 현실의 노라를 유아킴 트리어르는 마지막으로 보여 줍니다. <<갈매기>>의 그 유명한 독백 장면에, 예술을 향한 환상이 깨진 니나는 고단한 노동과 인내, 믿음이라는 예술의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노라는, 타인에 의해 파괴된 수동적인 존재("갈매기")에서 벗어나서, 자기 의지로 삶을 개척하는 독립적인 예술가로 거듭났습니다.
에필로그
"Things don't disappear just because we wish them to. Even if we cover them with concrete and build over them and pretend they never existed, they're still part of us, all those ghosts that we thought we'd buried deep inside, and, if we don't face up to them, they'll continue to haunt us.", Shafak, E. (2024). There are rivers in the sky. Viking.
스스로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데,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아픈 구석을 잘 찌르는 면이 있어, 지난 12월 어느 날, 흐르려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켜지는 극장의 조명을 맞았습니다. 영화 막바지, 노라는 어떻게, 같은 유년의 상처를 지고도, 자신과 달리, '잘' 어른이 될 수 있었는지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이에 아그네스는 자신에게 언니가 있었으니, 언니와 자기 어린 시절은 같지 않았다는 답을 돌려주었고, 노라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아그네스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이 장면에 많은 '맏이' 관객이 감동했다고 하는데, 실로, 문을 나서려 일어났을 때, 오열하는 한 관객과 그를 꼭 끌어안고 위로하는 관객을 보았습니다. 비극적이면서도 희망차고, 정제돼 있으면서도 혼란스러운 이 영화의 분위기가 삶의 부조리를 더할 나위 없이 잘 조율해 낸 탓일 터입니다. 영화 제목처럼, 물질의 가치보다도 개인적인, 정서적인 연관성에서 비롯된 가치("sentimental value")가 누구에게나 있으니, 이는 저항하기 쉽지 않은, 특별한 힘을 가진 영화임이 분명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를 보편화해 낸 감독이 초월적인 관객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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