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5. 01:00ㆍBerlin
지난 7일, 헤르타 BSC가 토니 라이스트너와 내후년 여름까지 효력이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전에 벨기에, 신트트라위던 VV에서 이 년간 활약한 라이스트너는 이로써, 함부르크를 떠난 지 약 23개월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원소속 구단과 계약이 만료됐으므로,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은 자유 이적입니다. 처음에 라이스트너와 연결이 짙어지고, 그의 이적을 기정사실로 했을 때부터, 베를린 베스트엔트 축구광들의 시선은 사뭇 엇갈렸고, 특히, 그 가운데,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했음이 사실입니다. 몇 년 전, 강철대오, 1. FC 우니온 베를린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베를린 노파 지지자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글을 자기 소셜 미디어에 자주 게재한 라이스트너의 행적 때문입니다. 쾨페니크도 아닌, 드레스덴에서 온 라이스트너가 "베를린은 빨갛고 하얀 색(1. FC 우니온 베를린을 상징)이며, 앞으로도 그렇습니다."라고 쓰거나, 심지어, 벨기에서 계절을 마무리한 지난 5월 말에도 1. FC 우니온 베를린 공식 홍보 소셜 미디어 계정 공유물에 답글을 남기는 등, 도시 내 가장 강력한 경쟁팀과 연결이 비교적 느슨해진 정황이 없는 와중에 헤르타 BSC가 그를 새로운 선수로 맞아들이는 일은 가까스로 면허는 유지했으나, 여전히 엄청난 부채에 허덕이는 클럽이 (이적료가 들지 않는 자유 이적이라는 점에 "현혹돼") 재정 이점, 시장 논리에 자존심을 팔아넘기기와 다를 바가 없다는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사실, 라이스트너를 들이며, 헤르타 BSC는 2. 분데스리가에서 통산 154경기에 출전한, 경험 많은 수비진의 새로운 리더를 확보했습니다. 이는 베를린에서 지난 일 년 반, 좋은 모습과 좋지 않은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준 마크 올리버 켐프와 가능한 작별에 따른 부담을 줄이고, 그보다 적은 급료를 받으면서도 다르더이 마르톤, 리누스 게히터, 파스칼 클레멘스 등, 어린 선수들이 확실히 자리를 잡도록 돕는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라이스트너는 뛰어난 공중 장악 능력을 자랑하며, 상대적으로 느린 발을 적절한 위치 선정으로 보완하는 단단한 중앙 수비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열된 안방 응원석의 분위기가 어쩌면, 훨씬 더 현실적인 그 모든 측면을 흐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S-Bahnhof 안할터에서 열차를 기다리는데, 들어오는 열차의 한쪽 벽으로, 다소 과격한 집단행동도 서슴지 않는 베를린 노파의 지지자 무리, 하우프트슈타트마피아 03(일명 "HM03")의 소행으로 보이는 대형 낙서가 눈에 띄었습니다. "HERTHA"를 크게 써서 창문을 가린 낙서는 "라이스트너, 나가(Leistner Raus)!"라는 문자를 시내 곳곳을 누비는 차에 새겨 두었습니다. HM03는 토니 라이스트너의 헤르타 BSC 이적이 확정, 발표된 뒤,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 중 하나로, 라이스트너가 파랗고 하얀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솅켄도르프플라츠, 훈련장의 잔디를 밟은 지난 월요일 오전, 한쪽 가장자리에 "라이스트너, 우리 클럽에서 꺼져(Leistner, verpiss Dich aus unserem Verein)!"라는 글을 걸어두어서 논란이 됐던 바로 그 무리입니다. 문제의 걸개는 불과 몇 분 만에 제거됐지만, 그날 오후, 클럽은 토마스 헤리히 전무이사의 이름으로 공식 성명서를 내고, "우리는 걸개를 확인했고, 인터넷뿐 아니라, 현장 안팎에서 모든 종류의 적대 행위를 규탄합니다. 이는 선수를 환영하는 우리의 문화와 전혀 맞지 않습니다."라고 썼습니다. 클럽은 팬 대표단과 대화를 통해, 우선, 공감대를 형성했고, HM03 측과도 교환을 위해 연락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선수에게는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따로, 조용히 일러 주었습니다. 대다수가 라이스트너의 과거 발언을 생각하면, 일부 무리의 '분노'에 가까운 오늘 반응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고 하지만, 다시 이 갈등을 애써, 서로 외면하려고만 하지 말고, 진지하고 투명한 대화로, 그 끝에 화해의 장을 마련해야 함이 분명합니다. 라이스트너는 1. FC 우니온 베를린과 얽힌 자기 과거를 감추거나, 부인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다릅니다."라며, 계약 기간 내, 헤르타 BSC를 위해 최선을 다할 뜻을 떳떳하게 밝히고, 바라건대,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으로 '빠르게' 회의론자들을 설득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상황을 과장할 필요도, 축소할 필요도 없이, 오늘, 토니 라이스트너와 헤르타 BSC의 계약,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다툼은 지난 몇 년 사이 격화하며, 뜨거운 사회 논쟁거리로 번진 캔슬 컬처(등돌림 문화)의 맹점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때로, "누구나, 무엇이나 될 수 있는 표적에 대해 모욕적인 말과 행동으로 사회적인 압력, 비난을 가하여, 그 대상에 대한 문화적인 배척을 달성하는 적극적인 행동주의자들의 집단 전략"으로 정의되는 "캔슬 컬처"라는 말을 혹자는 현대 사회가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또 일부 구성원은 그 만연한, 혹은 지나친 사용으로 개념상 혼동이 있다고 하지만, 캔슬 컬처는 어떤 수사학적인 이야기, 한낱 미사여구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지식인들, 사회적인 시험에 필연, 반복해서 직면해야 하는 지위의 이들은 점점 더 자기 발언을 소비하는 집단의 구성원들, 좁게는 동료 지식인, 넓게는 열린 사회로부터 받을 부정적인 평가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민감한 논제에 관해 자기 도덕적인 가치관과 충돌, 갈등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에 자주 놓일 수 있습니다. 그 '민감한 논제'란, 인종주의와 민족 중심주의, 반유대주의, 이슬라모포비아, 성적인 희롱과 폭행, 여성혐오와 노인 차별, 동성애 혐오와 트랜스 혐오 등, 범사회적 문제를 모두 포함하며, 이번 사례처럼, 다소 지엽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꼭 "지식인들"만 시험대에 서지는 않으니,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의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불특정 다수의 비판에 대한 우려 때문에 침해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한 설문에 62%가 자신이 "공유하기 두려운" 정치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을 정도입니다 (Ekins, 2020). 과열된 논쟁에서 정신적으로 공격적인 말의 사용이나, 행위 따위는 갈수록 격렬해지는데, 사회가 변하며, 어떠한 가치가 그 사회에 "적합한지 부적합한지" 평가받는 기준은 결국, 그 '과열된 설전'의 결과에 부쳐지기 마련입니다 (Norris, 2023). 1차 세계대전의 총성이 온 하늘을 덮은 지난 세기 초, 미국에서는 여러 사립 기관이 캔슬 컬처의 확산을 부추겼습니다. 1917년, 컬럼비아 대학교 임원들이 전쟁을 비판한 두 명의 교수를 파면했습니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학교 측을 칭찬하며, "고등교육 기관들이 극단주의와 사회주의의 온상이 되지 않으려면, 학술적 자유의 두 면, '가르칠 자유'와 '해로운 가르침을 없앨 자유'가 상보적인 관계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썼습니다. 이 사건을 "학교라는 작은 사회와 국가에 위협이 되는 견해"를 엄중히 다룬 사건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Mchangama, 2022). 오늘, 여러 지역에서 반전사상의 대우는 그가 사회에 부적합하다고 평가받은 과거 사회에서 대우와 같지 않습니다.
산업화 이후 사회, 진보적인 가치관의 팽창, 확대로 특징지어지는 사회에서는 우익의, 보수적인 지식인이 점점 더 냉소적인 사회의 벽을 실감한다고 보고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제 발전 속도가 더딘 사회, 아직 산업화가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 힘든 사회에서는 그 반대의 경향이 나타나, 주로, 좌익의 지식인이 캔슬 컬처가 심화한다고 토로합니다. 이러한 극명한 대조는 엘리자베트 뇔노이만(1916-2010)이 제안한 "침묵의 나선 이론("Die Theorie der Schweigespirale")"의 연장으로, 어느 집단에서 '주류 가치관'이 점차 성장해, 지배적인 문화가 되면, 그에 반하는 소수의 목소리는 짓밟히고 뭉개지기 쉽습니다 (Norris, 2023). 예를 들어, 전자의 경우, 이전보다 자유주의, 진보주의에 가까운 방향으로 문화적인 전이는 젊은 세대, 고로, 학생들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 교수들 사이에 두드러집니다 (Welzel, 2014). 사회적인 우세 시각이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 집단의 권리, '성'이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라는 관점과 그를 받아들이는 성 정체성, 종교적이기보다는 세속적인 가치, 성평등, 인종의 다양성 등 가치에 친화적으로 바뀝니다. 일례로, 토니 라이스트너와 헤르타 BSC의 계약에 앞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VfL 볼프스부르크에서 22세 미드필더, 펠릭스 은메차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는데,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평소, 자기 종교적 신념을 스스럼없이 밝혀 온 선수가 과거에 게재한 어떤 두 글에 동성애 혐오와 트랜스 혐오의 내용이 담겨 있어, 독일 전역에서 상당한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 성 정체성에 관한 시각 때문에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의 약어; 성전환자를 배제하는 급진적 여성주의자를 지칭)"로 찍힌 <<해리 포터>>의 저자, J. K. 롤링은 더 널리 알려진 사례로 들 만합니다. 이러한 문제(또는 "현상")에 적극적인 활동가들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자칫, 누군가는 '입막음'을 당하기 십상입니다. 지난해, 미국 내 478개의 고등교육 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에 가까운 기관이 "말할 자유"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제한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FIRE, 2023b). 고등교육을 받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62%의 응답자가 반대 견해를 가진 강연자를 강단에서 끌어내는 행위가 허락받을 만하다고 했고, 심지어, 자신을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라고 정의한 25%(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전체의 20%)는 그 과정에 약간의 물리력이 동원돼도 좋다(물리력의 동원과 관계없이, 강연자를 막아 세우기만 하는 행위에는 76%가 긍정 응답)고 했습니다 (FIRE, 2023a).
여러 선진 산업화 사회에서 진보적 자유주의 가치가 확산,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변곡점을 인구 통계학의 전환과 고등교육의 증가가 나타난 1960년대와 1970년대 근방으로 추정하곤 하는데,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의 패권적 지위 상실은 분노와 불안, 사회적 편협성의 고조, 당파적 양극화와 권위주의적 대중영합주의 지도자, 정당을 향한 지지의 증가 등을 촉발했다고 평가됩니다 (Norris, 2023). 지난 세기에 두 명의 교수 파면(전술한 컬럼비아 대학교의 사례)을 정당화했던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한 사설에서 가히, 환골탈태한 관점/통찰을 보여 주었습니다. 저명한 매체는 미국인들이 창피를 당하거나, 기피당할 두려움 없이, 자기 생각을 대중에 이야기할 당연한 권리를 점점 잃어간다며, 이러한 사회적인 뭉개버림과 미국에서 다양한 관점의 상실이 위험한 "세 번째 선로("a third rail": 정치적인 금기를 은유)"처럼 보인다고 했습니다 (The Editorial Board, 2022). 몇몇 적극적인 행동가는 반대 견해의 대상에 대하여, 더는 언어적인 비판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징벌을 요구합니다. 기관에 직에서 해임하거나, 정관에 따라 징계하고, 그 사실을 '알리라고' 압박합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소셜 미디어의 개발은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습니다. 근 40년간 지속된 디지털 기술과 네트워크의 발전, 그들과 전통 매체의 통합은 오늘날, 축적된 데이터가 좌우하는 "알고리즘 기반 미디어"로 절정에 달했고, 이는 각 개인이 매체와 맺는 관계를 재정의하며, 소통의 새로운 장르, 방식을 생산해 냈습니다. 전통적인 미디어 '청중'과 '소비자'는 이제, 미디어와 기술의 '사용자', '참여자'이며, '주요 생산자'이고, '수집되는 데이터의 대상'입니다. 새롭게 조성된 미디어 환경은 지난날의 주류 매스컴 매체나, (심지어는) 십 년 전의 뉴 미디어와 비교해, 행동주의자들이 활동하기에 훨씬 친화적입니다. 하지만, 그가 수평적으로 아이디어를 실어 나르고, 대량의, 집단적인 행위에 이동성을 선물, 억압적인 제도와 권위주의 정권에 대적하게 한다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매체 전문가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중간을 거치지 않는 허위 정보와 편파적 발언, 증오 연설의 확산 등이 자유 발언권이 '무기화'하는 증거라고 설파합니다 (Lievrow, 2023; Mchangama, 2022).
<<뉴욕 타임스>>는 다수의 급진적인 목소리가 오늘날, "캔슬 컬처"라는 말의 사용이 "편협한 인사들이 쏟아내는 혐오 발언을 엄호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상호 단죄의 파괴적인 쳇바퀴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합니다 (The Editorial Board, 2022). 21세기, 마침내 도래한 "자유 발언의 황금기"를 역설적으로, '자유 발언권'이 '트로이 목마'가 돼, 무너뜨리게 두지 않으려면, 누구든지 집단에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자기주장을 펼치고, 질문하고, 실수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사회 문제에 관해 (인기가 덜하더라도) 정직한 태도를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상호 존중이 그 뿌리입니다. 베를린으로 돌아오면, 헤르타 BSC와 1. FC 우니온 베를린 사이의 선수 이동은 이전부터 (특히 유소년팀으로 내려갈수록) 활발했습니다. 만일, 자신도 언젠가 이웃으로 옮겨, 토니 라이스트너처럼, 새 둥지의 지지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오히려,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우수에 잠긴다면, 그 어떤 선수도 클럽을 향한 자기 충성심을 '섣불리' 드러내려 하지 않을 터입니다. 매년, 선수단에 '하나의 정체성'을 요구하는 이들이 바라는 그림과 같은지 자문하고, 아직, 냉전의 잔해로 가득하던 때조차 지켜온 이 도시의 축구 문화와 어울리는지 돌아볼 시점입니다. 인류사에 이보다 발언권과 정보가 편재한 적이 없었지만, 자유롭고, 평등하며, 즉각적인 목소리가 수십억 인구에 주어진 "자유 발언의 황금기"는 쇠락의 길에 접어들 위기에 처했습니다. 누군가의 입이 틀어막히고, (주로 한 의제에 반대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공적인 담론에서 배제되면, 한 사회는 평화롭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공공 폭력의 위험에 직면하기 마련입니다. 도덕적인 행동에 관한 한, 사회적인 합의가 요구됩니다. 결국, 완벽하지는 못해도, 타자의 배경을 알고, 이해하려는 시도, 관용과 실수로부터 배우는 누군가를 용서할 줄 아는 교양이 필요합니다. 덜 민주적이고, 덜 계몽적이며, 덜 혁신적인, 그리고, 덜 재미있는 "미래로의 후퇴"를 않기 위해.
https://baumhaus.tistory.com/455
References
The Editorial Board (2022, March 18). America has a free speech problem. The New York Times. https://www.nytimes.com/2022/03/18/opinion/cancel-culture-free-speech-poll.html
Ekins, E. (2020). Poll: 62% of Americans say they have political views they're afraid to share. Cato Institute. https://www.cato.org/survey-reports/poll-62-americans-say-they-have-political-views-theyre-afraid-share
The Foundation for Individual Rights in Education (FIRE). (2023a). 2022-2023 college free speech rankings. FIRE. https://www.thefire.org/sites/default/files/2023/10/CFSR_2022_editable2_0.pdf
FIRE. (2023b). Spotlight on speech codes 2023. FIRE. https://www.thefire.org/research-learn/spotlight-speech-codes-2023
Lievrouw, L. A. (2023). Alternative and activist new media (2nd ed.). Polity.
Mchangama, J. (2022). Free speech. Basic Books.
Norris, P. (2023). Cancel culture: Myth or reality? Political Studies, 71(1), 145-174. https://doi.org/10.1177/00323217211037023
Welzel, C. (2014). Freedom rising: Human empowerment and the quest for emancip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1017/CBO97811395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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