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동화는 없었다지만

2024. 7. 20. 16:00Berlin

 "우리는 더 강하게 뭉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의 국가로서 단결하면, 더 많은 이의 삶이 나아질 수 있습니다." - 율리안 나겔스만, 독일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

 

 "'새로운 세대 축구 애호가와 다양성'을 대표한다던 유니폼 제작의 취지에 이보다 어울리기도 힘들었겠는걸요?" - 예니, 22세, 베를린 미테, 모델.

 

 "UEFA 유로 2024는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사실상, 매일이 축제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정체성의 선택을 강요받기도 했는데, 축구가 정쟁의 수단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에레즈, 27세, 베를린 노이쾰른, 그라피티 아티스트.

 

 "핵심은 우리가 '함께' 지고, '함께' 이기는 '이야기'입니다." - 다그룬 힌체, 작가.

 

 "왜 이 공놀이에 사람들 희비가 엇갈리는지, 왜 친구들이 축구에 그리 열광하는지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 보니, 18세, 베를린 샬로텐부르크.

 

대회가 마무리된 뒤, 일상으로 돌아가려, 철거 작업에 돌입한 프랑크푸르트암마인 팬 존의 모습. [ⓒ jgseins__jh]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을 가득 메운, 공식 65,600명의 만원 관중 앞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을 2 대 1로 물리치고 통산 네 번째 영광을 거머쥔 스페인 대표팀의 우승과 함께, 지난 일요일 밤, UEFA 유러피언 풋볼 챔피언십이 성공리 끝났습니다. "개최국" 독일이 준준결승서 다소 이르게 탈락한 뒤로도 1,500만 이상의 시청자가 ARD를 통해 송출된 네덜란드 대표팀과 잉글랜드 대표팀의 준결승 경기 중계를 시청(독일 대표팀 경기를 제외하고 최고 기록)할 만큼, 그 열기가 꺾이지 않은 UEFA 유로 2024는 이 여름, 독일 전국 방방곡곡을 뜨겁게 달구고,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FIFA 월드컵을 열었던 지난 2006년과 같은 "여름 동화(Sommermärchen)"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인을 다시 축구와 사랑에 빠지게 한 2024년의 축제는 그에 근접했으며, 무엇보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양극화하여, 환기가 시급했던 사회를 잠시나마, 조금이나마, 한마음 한뜻으로 한데 뭉치게 했습니다.

 <<타게스슈피겔>>의 한 기자가 서울을 방문해서, 닷새 연속, 제시간에 다니는 대중교통과 지하철역에서 실시간으로 외국어 문의 사항에 답을 주는 "첨단" 인공지능 로봇, '미리' 마련된 노약자석, 깨끗한 공중화장실 등을 경험하고 "기능하는 도시를 향한 꿈"을 역설(도시 구석구석의 폐쇄 회로 텔레비전이 보행자를 감시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 오류도 있지만)할 만큼, 독일인들은 18년 전과 비교해, 많이 달라진, 또는 거의 바뀌지 않은 일상에 지쳐 있습니다. 그 이십 년 남짓한 기간, 코로나 범유행 시대를 통과했고, 난민 위기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 전쟁, 중동에서 또 다른 위기, 가파른 물가 상승 등을 모두 겪었습니다. 지난 유럽 의회 선거에는 옛 동독 지역 거의 전체에서 우익 극단주의의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이 제일 강력한 세력으로 떠올라, 분열하고, 서로 자꾸만 더 멀어지는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슈피겔>>은 사회 곳곳이 더는 예전처럼 기능하지 않는, 제풀에 지친 국가로서 독일의 오늘, 의료 체계가 과부하하고, 교육 체계도 수용 능력이 포화했으며, 기차는 (늘 그렇듯)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UEFA 유로 2024는 이렇듯, 사회 응집력이 떨어지고, 사소한 일에도 다툼이 발생하여, 서로 화해하지 못하는 국가에서 "시의적절하게" 열렸습니다. 쾰른 스포츠 대학교의 정치학자이자, 스포츠 역사가인 위르겐 미타크는 국내 분위기가 대회 이전과 비교해, "확실히" 긍정적이라며, 독일 인구를 이전보다 서로 조금은 더 가까워지게 한 "작은 여름 동화"의 역할을 이야기합니다.

 

 

전차 군단의 지휘관으로서 우리 사회에 더 많은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율리안 나겔스만은 여러 언론의 찬사를 받습니다. [ⓒ Alexander Hassenstein/ Getty Images]

 

율리안 나겔스만, 36세(사흘 뒤 37세), 독일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 "만약 제가 제 이웃의 울타리 정리를 돕는다면, 그가 혼자 일할 때보다 빨리 끝납니다."

 팀과 팬들에게 매우 감동해서, 가까스로 눈물을 참고 있습니다…

 그 풍경으로 보나 문화적으로나,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에 살고 있는지 깨닫기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뭉쳐서 전부 극단적으로 검게 칠하지 않고, 이웃에게 아무런 원한도 품지 않으며, 시기심에 잠식당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이 열릴까요?

 만약 제가 제 이웃의 울타리 정리를 돕는다면, 그가 혼자 일할 때보다 빨리 끝납니다. 저는 아직 모든 일을 혼자 해서 누군가와 함께할 때보다 저절로 더 빨리, 더 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빠르게 팬들을 하나로 묶었고, 그들에게 무언가를 돌려줄 수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위르겐 미타크는 축구가 사회적 토론의 중심으로 이동했다며, 이는 국가대표팀 감독조차도 이제는 좁은 스포츠의 경계를 넘어, 그의 위상을 활용해, 특정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질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독일에서 "여름 동화"가 쓰인 2006년에 펜을 잡은 위르겐 클린스만은 틈만 나면, 대서양을 건너, 캘리포니아주 헌팅턴비치로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그가 십여 년 뒤, 대한민국 남자축구 대표팀 사령탑에 앉아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했을 때, 사실, 이곳에서 그리 큰 놀라움은 불러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의 조수로서 클린스만을 보좌했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는 수장으로서 조국에 네 번째 별을 선사한 요아힘 뢰프는 종종 슈바르츠발트로 "잠적"했습니다. 그 또한 언론이 접근하기 쉬운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뢰프의 후임으로 전차 군단 지휘봉을 인수했으나, 사상 처음으로 중도 경질된 감독이라는 오명을 남기고 쓸쓸히 퇴장한 한지 플리크는 클린시나 그의 전임보다 기자들과 가까웠지만, 그는 맨 뒤 수비선의 선수 숫자를 매 경기 저울질하는, "순수한" 축구 지도자 정도의 인상만 주었습니다. 그가 FC 바르셀로나에서는 그 실험의 값을 더 잘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모로 삼십 대 젊은 감독, 율리안 나겔스만은 "작은 여름 동화"의 지은이로 적절해 보입니다. 안방에서 열린 UEFA 유러피언 풋볼 챔피언십에 아쉽게 8강서 좌절했지만, 다수가 그 사실에 슬퍼했지, 분노를 쏟지는 않았습니다. <<슈테른>>은 그가 올 초 타계한 "황제" 프란츠 베켄바우어(1945-2024) 이후 처음으로 잔디 위를 넘어서까지 빛을 발한 대표팀 감독이라고 극찬했습니다. 독일 사회에 더 강한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고, 우리가 하나의 국가로서 단결하면, 더 많은 이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고 연설한 나겔스만이 있었기에 올여름의 축제가 더 특별했음은 분명합니다.

 

보라색과 분홍색이 섞인 원정 유니폼은 독일 축구 사상 최고 수준의 매출을 기록하며 잘 팔렸습니다. 노이쾰른 출신인 "간판 수비수", 안토니오 뤼디거는 스페인 대표팀과 8강전까지, 이번 대회, 모든 경기에 출전해서 활약했습니다. [ⓒ Lars Baron/ Getty Images]

 

 우익 극단주의 세력이 사회적인 통합에 훼방을 놓고, 경기장에서 그들 세력의 확장을 위한 기회를 엿보았지만, 하나로 뭉친 건강한 팬 문화에 그들이 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공개 직후, "남성적이지 않으며, 다문화 다양성을 선전하려는 수작"이라고 공격당한 보라색과 분홍색이 섞인 전차 군단의 원정 유니폼은 잘 팔리는 상품이 됐고, 독일 축구 사상 최고 수준의 매출을 기록한 원정 유니폼으로 떠올랐습니다. 입고되기만 하면, 도시마다 아디다스 매장 앞에는 이 옷을 구입하고자 하는 대기자가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과격하게 "파시스트"라고 불리기도 하는 막시밀리안 크라와 비예른 회케 등, AfD 유력 정치인들이 "정체성을 상실한 용병 집단", "외국인 군단" 같은 표현을 써 가며 잔뜩 모욕한 독일 대표팀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주로 표적이 된 자말 무지알라(FC 바이에른 뮌헨)는 플로리안 비르츠(바이어 04 레버쿠젠)와 "부지알라(Wusiala) 듀오"를 결성하고, 가진 재간을 유감없이 발휘, 대회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안토니오 뤼디거(레알 마드리드 CF)는 스페인 대표팀과 마지막 경기까지, 이번 대회, 전차 군단의 모든 경기에 출전해서 "간판 수비수"라고 불릴 만한 활약상을 보였으며, 율리안 나겔스만이 신뢰하는 일카이 귄도안(FC 바르셀로나)은 당당히 주장 완장을 차고, 역시, 매 경기, 입장했습니다. 심지어는 에센에서 열린 AfD 정당 전당 대회에도 덴마크 대표팀과 16강전 시청을 위해 회의를 잠시 중단하자는 안건에 압도적인 찬성표가 모였으니, 그들의 원색적인 공격은 무참히 실패했고, 그들은 패배했습니다.

 

예니, 22세, 베를린 미테, 모델: "이야말로 '선풍적인 인기'가 아닐까요?"

 분홍색 유니폼이 처음 공개됐을 때 반응을 기억하시나요? "전혀 독일답지 않은 옷이다."라거나, "사회정치적으로 대중에 전달하려는 내용이 너무 노골적인데,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라거나, "여성용 유니폼인가?"라거나, "아무도 그런 옷은 원하지 않는데, 그걸 입어야 하는 선수들이 안타깝다."라거나. 감정적이고 공격적인 말이 가득했어요. 지금 그때를 돌아보며, 또 발표되는 유니폼 판매 실적을 살피면, 이야말로 "선풍적인 인기"가 아닐까요? 누구나 처음 경험하는 일에 대해서는 자기방어적일 수 있다지만, 아마도 그때 원색적으로 비난을 쏟아냈던 많은 사람에게 오늘은 그 일이 창피할 거예요.

 분홍색이 남성적이지 않다고 말할 시대는 지났어요. 분홍색 남자축구 유니폼은 이미 자주 보였고, 재작년 가을/겨울 시즌(Fall/Winter 2022)에는 여러 고급 패션 브랜드에서 분홍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요.

 "블록코어(Blokecore)" 열풍을 보세요. 축구 유니폼을 경기장에서만 입는 시대도 더는 아니에요. 오히려, 젊은 친구들이 자기 개성을 뽐내려고 옛날 유니폼을 찾는 시대죠. EM(Europameisterschaft =UEFA 유로 2024) 열기가 뜨거운 덕도 봤고, 독일 대표팀 인기도 한몫을 했지만, 패션도 "분홍색 유니폼"이 불티나게 나가는 데 도움을 줬어요. 그건 분명해요.

 이렇게 보니, "새로운 세대 축구 애호가와 다양성"을 대표한다던 유니폼 제작의 취지에 이보다 어울리기도 힘들었겠는걸요?

 

메리흐 데미랄은 이번 대회, 튀르키예 대표팀을 준준결승에 올린 "영웅"이 됐지만, 동시에, "늑대 경례"를 펼쳐 보임으로써 이어진 정치 외교적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 dpa/ Zuma]

 

 대회 중, 오스트리아 대표팀과 16강전에 '홀로' 두 골을 넣고 조국을 16년 만에 처음으로 UEFA 유러피언 풋볼 챔피언십 준준결승에 끌어올린 메리흐 데미랄(알 아흘리 SFC)이 독일에서 연방헌법 수호청의 감시를 받는 튀르키예 초국가주의 "윌퀴쥐(Ülkücü)" 운동을 지지하는 세력, 일명 "회색 늑대들(Graue Wölfe =Bozkurtlar)"의 "늑대 경례"를 보여 주어, 그 행동에 대한 짙은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늑대 경례"는 윌퀴쥐 운동과 그 이념에의 소속감이나 지지를 표현하는 몸짓으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정의개발당의 중요한 정치적 동반자인 민족주의운동당이 그를 주로 활용하므로, 독일 연방 보안 당국이 데미랄의 행동을 우익 극단주의, 정치적인 배경에서 해석함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에르도안 대통령이 네덜란드 대표팀과 준준결승 경기에 맞춰서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을 방문하고, 일부 극성 튀르키예인 집단이 "늑대 경례"가 인종차별적인 의미가 담긴 몸짓이 아닌, 자국의 상징 중 하나라고 주장하며, 경기 중에 (독일 정치권의 비판과 데미랄에 대한 UEFA의 두 경기 출전 정지 징계에 항의하는 의미로) 그 단체 행동에 나서겠다고 위협(실제로 수천의 튀르키예 관중이 그를 실행에 옮겼습니다)해, 독일과 튀르키예, 양국 간 외교적인 위기감이 고조했습니다.

 이는 대회를 앞두고 개최 도시 등, 전국에서 터져 나왔던 보안 유지에 대한 우려를 진정한 시험대에 올렸는데, 메리흐 데미랄의 행동으로부터 촉발, 심화한 일련의 갈등이, 다행히도, 우리가 이번 대회, 2024년 여름을 기억할 "밝은 얼굴들"을 검게, 완전히 덮어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독일 연방 보안 당국은 매일, 22,000여 경찰관을 투입(역대 최고 수준의 동원 계획)해, 국경과 공항, 철도 교통 등을 보호하려 힘을 다하고, 경기마다 위험도를 예측 평가하여, 그 수준에 따라, 다른 강도의 보안 지침을 적용하는 등,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위험도 최고 수준"으로 설정된 네덜란드 대표팀과 튀르키예 대표팀의 경기에는 알코올 성분이 들지 않은 맥주만 현장에서 판매됐을 뿐 아니라, 삼천 명 넘는 경찰 인력이 배치돼, 잠재적인 위협과 사고에 대비했습니다. 경기를 마친 뒤, "늑대 경례"의 정당성과 앞으로 독일에서 그 행위를 처벌해야 할지를 두고 언쟁이 계속되지만, 물리적인 충돌과 폭동 등, 가능했던 가장 심하게 나쁜 경우까지 현실화하지 않은 점은 그나마 달갑다고 할 만합니다.

 

 

 2006년의 FIFA 월드컵 개최가 재통일 이후 독일을 다시금 "친절한 이웃"으로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면, 사실, 이곳에서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하고, 그들과 웃고 즐기는 일이 2024년에는, 더는, (십팔 년 전처럼)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압도적으로' 다양한 문화가 동시에 집중되다 보니, 매일 접하는 일상과는 조금 다른 광경도 있었습니다.

 공식 집계 결과, 총 51경기에 268만 349명이 아홉 개 도시의 거대한 경기장을 찾았으니, 이는 대회 전에 독일 관광청이 예상한 270만 관중에 거의 근접한 숫자입니다. 경기장 밖에서 개최 도시는 훨씬 엄청난 인파로 북적였습니다. 그곳에서는 지난 5월에 막을 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비공식 연장전"이 펼쳐졌습니다. 상징적인 오렌지색 옷으로 무장한 네덜란드 팬들이 스놀레볼레커스의 <Links rechts>에 맞춰, 좌우로 방방 뛰면서 기선을 제압했고, 잉글랜드 팬들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Dancing in the Dark>를 부르며 필 포든(맨체스터 시티 FC)을 응원했습니다. 포르투갈 팬들에게는 (그들이 포르투갈에서 왔다고 선언하는) <De Portugal eu sou>가 있었습니다. 그런대로 각축이 치열했지만, 이 대결의 승자는 닉 모건의 <No Scotland, No Party>를 들고나온 스코틀랜드 팬들이었습니다. 35,000여 명이 그 노래를 부르며 쾰른 도심을 행진하는데, 집마다 시민들이 발코니로 나와서 박수갈채를 보낸 장면이 경기장 밖에서 그들의 승리 이유를 증명합니다. 대회 공식 개막전, 전차 군단에 1 대 5로 참패한 스코틀랜드 대표팀은 끝내 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조기에 짐을 챙겨 돌아갔지만, 그 축구광 집단의 열정만큼은 독일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이 독일축구협회에 스코틀랜드 대표팀과 매년 친선 경기 유치를 시도하라고 요구하게 했습니다.

 단, 올여름, 일약 독일 거리 최고의 인기인으로 등극한 이는 "EM 색소폰 연주자", 안드레 슈누라입니다. 슈누라는 음악 교사이자, 결혼식에 찾아다니며 공연하는, '완전한' 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회 기간, 그가 루디 푈러(현 독일 축구대표팀 디렉터)의 이름과 숫자 9를 새긴 유니폼을 입고, 도심, 행진하는 군중 복판에서 색소폰을 불며 분위기를 띄우는 영상 여럿이 소셜 미디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이제 그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차이트>>, <<슈테른>> 등, 유력 언론들이 주목하는 음악인이 됐습니다. 그가 연주하는 곡이 $oho Bani의 새로운 해석으로 재탄생한 <ZEIT, DASS SICH WAS DREHT>인지, <Pyrotechnik ist doch kein Verbrechen>인지, <Diese EM>인지, 심지어는 샤키라가 부른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주제가, <Waka Waka (This Time for Africa)>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독일 대표팀이 스페인 대표팀에 패해서 탈락하고도 슈누라는 인기리에 활동했으며, 대회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뒤에는 순회공연 계약, "잊지 못할 여름"을 완성합니다. 만인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로부터 더한 놀라움을 돌려받을 수 있는 곳이 UEFA 유로 2024였습니다.

 

네덜란드 대표팀과 튀르키예 대표팀이 맞붙은 당일, 베를린 중앙역. [ⓒ jgseins__jh]

 

 "늑대 경례"를 둘러싼 논란과 다툼으로 일부 얼룩이 지기도 했으나, 300만에 육박하는 독일 내 튀르키예 이민 배경 인구를 근거로, 이번 대회를 "우리 안방에서 열리는 UEFA 유러피언 풋볼 챔피언십"이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한 튀르키예 팬들의 열기는 실로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들 대표팀이 오스트리아 대표팀을 물리치고 준준결승 진출을 확정한 날, 젠크 토순(대회 중 무적 신분; 현 페네르바흐체 SK 소속 공격수)의 지휘로, 라이프치히에서 수만의 튀르키예 축구광이 잠시 숨을 죽였다가, "하나, 둘, 셋(Bir, iki, üç)!" 외침 이후, 일제히 춤을 추고 노래한 장면은 가히 압권이라고 할 만했고, 그들이 이길 때마다, 늦은 밤에 쿠담(Kurfürstendamm (Ku'damm))에서 그들이 울려 댄 자동차 경적은 여러 베를린 사람의 잠을 깨우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독일에 거주하는 튀르키예인들은 때로 베를린이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와 함께, 튀르키예의 네 개 대도시 중 하나(최근에는 쾰른이 다섯째로 합류하기도 합니다)라고 농담하는데, 쿠담과 이들이 특히 많이 사는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노이쾰른 등지에서는 자정 넘어, 경찰들이 지나치게 과열된 무리를 해산시켜야 했습니다.

 

에레즈, 27세, 베를린 노이쾰른, 그라피티 아티스트: "축구가 정쟁의 수단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튀르키예 이즈미르에서 오셨습니다. 나는 베를린에서 나고 자랐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축구선수는 안토니오 "토니" 뤼디거입니다.

 UEFA 유로 2024는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독일 대표팀 경기에는 내 고향을 응원했고, 튀르키예 대표팀 경기에는 내 부모님의 모국을 응원했습니다. 사실상, 날마다 축제였던 셈입니다.

 부끄럽게도, 몇 차례, 늦은 밤에 튀르키예 대표팀의 승리를 축하하다가 이웃과 갈등을 빚었고, 한 선수의 멍청한 "늑대 경례" 이후로는 더 난처해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독일과 튀르키예 사이에서 내 정체성의 선택을 강요받기도 했는데, 나는 경기마다 두 대표팀을 응원했을 뿐, 이국의 민족주의자는 단언컨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뿌리까지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축구가 지나치게 정쟁의 수단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도 이와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전차 군단과 초승달과 별(Ay Yıldızlılar), 양측 모두를 응원하겠습니다. 너무 늦게 거리에서 소란을 피운 점은 죄송합니다.

 

 

대회 기간, 라이프치히 중앙역에 전시된 UEFA 유로 2024 트로피. [ⓒ jgseins__jh]

 

 사실, 경기장에서 UEFA 유로 2024는 "지루한 대회"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삼 년 전에 치러진 대회(UEFA 유로 2020;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예정보다 일 년 늦게 개최)와 비교해, 25골이나 줄어든 전체 득점(117골 =경기당 2.30골 수준)이 그 근거로 자주 제시됐습니다. 우승권 전력으로 분류된 프랑스 대표팀과 잉글랜드 대표팀 등이 "매력적이지 않은 축구"로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을 보였다고 비판받았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공격 위주의 전술을 구사한다고 평가받은 스페인 대표팀이 잉글랜드 대표팀을 결승에서 꺾자, 통쾌하다는 반응도 일부 있었습니다. 단, 누가 "더 좋은 축구"를 했는지에 관한 토론은 사실, 무의미합니다.

 

"핵심은 우리가 '함께' 지고, '함께' 이기는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적잖은 불평에도, 독일에서 '축구'는 다시금 많은 이를 홀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ARD와 ZDF TV 중계로만 평균 2,400만~2,600만 명이 전차 군단의 UEFA 유로 2024 경기를 봤습니다. 도시마다 팬 존에 설치된 거대 화면을 보고 울고 웃은 이의 숫자와 마겐타TV(MagentaTV)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자 수를 제외한 계산으로, 지난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보다 많은 사람이 그를 시청했습니다. 물론, 이번에는 안방에서 열린 대회고, 비교되는 대회에는 독일 대표팀이 제대로 힘을 써 보지도 못하고 조별 단계에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는 점을 참작해야 하지만, 올여름, 두 공영 방송사의 시장 점유율이 80%를 넘긴 점(약 80.9%)은 엄청난 성과임이 분명합니다. 2,612만 9,000명가량이 ARD에서 전차 군단의 탈락을 목격했고, 니클라스 퓔크루크(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극적인 동점 골로 대표팀이 조 선두를 확정한 스위스와 경기에는 2,556만 6,000명 정도가 ARD 방송 화면 앞에 앉았습니다.

 이 여름의 축제에 경기 승패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뭇 인구가 깨달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독일의 유명 작가인 다그룬 힌체는 전차 군단이 준준결승에 탈락한 뒤, "핵심은 우리가 '함께' 지고, '함께' 이기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우리는 잔디 위의 팀만이 아니라, 팬들도 같이 졌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다시 팀을 중심으로 응집할 수 있음을 깨닫고, 이 선수들과 현장 지도부를 사랑하기 시작한 점도 중요합니다."라고 썼습니다.

 

보니, 18세, 베를린 샬로텐부르크: "왜 이 공놀이에 그리 열광하는지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평소에 축구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대회가 개막할 때만 해도, 솔직히, 별 생각 없었어요. '아, 기차역이 붐비겠구나' 정도 생각만 했죠.

 그러다가 처음 본 경기가 스위스 대표팀과 이탈리아 대표팀의 16강 경기였어요. 동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어머니와 저녁을 먹는데, 큰 화면으로 중계방송을 틀어줬어요. 공교롭게도 그 경기에 이탈리아 대표팀이 지는 바람에 가게 분위기가 묘했지만, 왜 이 공놀이에 사람들 희비가 엇갈리는지, 왜 친구들이 축구에 그리 열광하는지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이후로는 가능한 한 많은 경기를 챙겨봤어요. 사실, 전술은 고사하고, 규칙이 조금만 복잡해져도 잘 모르지만, 궁금한 내용은 형에게 물어서 답을 구할 수 있었고, 분위기를 즐기기만으로 충분하기도 했어요. 물론, 모든 경기가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예를 들어, 포르투갈 대표팀과 프랑스 대표팀의 8강전은 기대보다 재미없었어요. 반면, 심판 판정이 자주 이해가 안 됐지만, 스페인 대표팀과 독일 대표팀의 8강전은 무척 재미있었고, 이번 대회, 조지아 대표팀과 튀르키예 대표팀 경기도 인상적이었어요.

 UEFA 유로 2024 때문에 앞으로 매주 축구 경기를 챙겨보겠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처음 흥미를 들였으니, 아무래도 이전보다는 관심을 두지 않을까요?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 UEFA 유로 2024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동안, 프랑스에서는 조기 국민의회 선거가 시행됐습니다. 올여름의 축제는 어느 때보다 스포츠와 정치의 경계가 흐릿해진 시기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 jgseins__jh]

 

 '내일', UEFA 유로 2024는 스포츠와 정치의 경계가 어느 때보다 흐릿해진 대회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본인이 끊임없이 강조한 '사회적 단결'의 메시지와 관계없이, 율리안 나겔스만은 독일 대표 선수들이 정치적인 싸움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그가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개막 전에 발표된 한 설문 결과에서 응답자의 오분의 일 정도가 전차 군단에 "더 많은 백인 선수"가 필요하다고 답해서 독일 사회와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고, 요주아 키미히(FC 바이에른 뮌헨) 등이 즉각 "처음부터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았나?"라고 그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마지막으로 축구화 끈을 조인 토니 크로스는 AfD를 꾸준히 때렸는데, 막상 ZDF의 유명 팟캐스트, "란츠 & 프레히트(LANZ & PRECHT)"에 출연해서는 독일에서보다 스페인에서 어린 딸이 밤늦게 외출한다고 할 때 덜 걱정된다고 발언해, 우익주의자들에게 박수를 받고, 반대편에서는 공격당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유럽 의회 선거 결과, 극우 정당인 국민 연합(Rassemblement National)이 득세하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국민의회 선거 시행"이라는 패를 던졌으니, 그 선거 기간이 독일에서 스포츠 대회 기간과 겹쳤습니다. 일차 선거 결과, 또 한 번 국민 연합이 세력을 얻었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마르퀴스 튀람(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쥘 쿤데(FC 바르셀로나) 등이 투표를 독려하고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굳이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던 '그' 킬리안 음바페(레알 마드리드 CF)도 "국민 연합의 손에 권력을 쥐여주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결국, 결선 투표 대상이 된 501개 선거구 대다수에서 신인민전선(Nouveau Front populaire) 후보와 앙상블(Ensemble pour la République)을 주도하는 르네상스(Renaissance) 후보가 단일화하는 노력 끝에, 프랑스는 극우 정당을 최종 3위로 밀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프랑스 한 정론지가 "마린 르펜(국민 연합 대표) 대 킬리안 음바페: 0 대 1"이라고 실은 면이 후에 UEFA 유로 2024가 기억될 여러 얼굴 중 하나입니다.

 

"천둥 치는 여름 동화?" [ⓒ Federico Gambarini/ dpa]

 

 많은 사람이 간직한 향수 덕분에 2006 FIFA 월드컵 독일의 "여름 동화"는 완벽해졌습니다. 사회 각지의 갈등이 훨씬 덜 치열하게 풀린 시기,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낭만"이 깃든 시기로 그해를 기억하곤 합니다. 신비적이고 공상적인, 또 감동적이며 달콤한 분위기가 있는 기억의 왜곡은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 축복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 얽매여서 올여름의 축제를 깎아내려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뮌헨시와 베를린시, 함부르크시 등에서 기대에 못 미친, 썩 좋지 않은 산매업 대차 대조표가 알려졌지만, 전체 관광업 부가 가치에 관한 결과 자료에는 공직자들이 퍽 만족하는 눈칩니다. 경기가 열린 대도시에 가까이 있는 마을들도 나름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뮌헨에서 가까운 뉘른베르크의 한껏 달아오른 공기가 대표적입니다. 대회 중 유독 날씨가 변덕을 심하게 부려서, 우리가 알던 독일의 '여름'이 아니었다는 말도 나오지만, 경기장 지붕에서 폭포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맨몸으로 그를 맞으며 춤을 추고 포효한 덴마크 팬들의 사진은 오히려, 이 축제의 가치, 매력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결국, 또 다른 십팔 년, 이십 년이 흐른 뒤에는 '오늘'에 관한 평가가 다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적어도 그 여지를 남겼기 때문에, 올여름의 거대 행사가 '실패'하지는 않았습니다.

 한편으로, 쾰른 스포츠 대학교의 위르겐 미타크는 축구가 장기적으로, 또는 영구히, 사회적인 실패를 바로잡거나, 정치적인 목표를 지키거나, 한 국가를 새로운 방향/차원으로 끌고 갈 수는 없다고 지적합니다. 지난 한 달을 "동화" 속에 살았든 "꿈" 속에 살았든, 재확인된 독일 사회의 한계는 앞으로 '의식적으로, 힘을 다해' 개선해야 할 과제입니다.

 대회 내내 손가락질을 받은 도이체 반(Deutsche Bahn)부터 변화가 필요합니다. 스페인 대표팀과 프랑스 대표팀의 준결승전 중 마르크 쿠쿠레야(첼시 FC)가 공을 잡을 때마다 일부 몰상식한 독일 관중이 불어댄 휘파람 정도를 제외하고는 올여름에 독일이 그보다 창피를 당한 일도 없습니다. 조별 단계부터 겔젠키르헨의 "엉망진창 대중교통"은 도시를 찾은 잉글랜드 축구 애호가들에게 집중포화를 당했고, 네덜란드 대표팀과 잉글랜드 대표팀의 준결승을 앞두고는 볼프스부르크와 루어 지역을 잇는 선로의 문제로 오렌지 군단이 네 시간 정도 늦게 결전지인 도르트문트에 도착, 공식 기자 회견이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제대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독일 내 철도와 도로, 교량 등이 황폐해졌습니다. 향후 십 년간 운송 부문에 대한 투자 수요는 1,300억 유로에 이르리라고 추산되며, 그중 철도 보수에만 600억 유로 가까이가 필요합니다. 연방 교통부에 따르면, 조속히 개조되거나 재건돼야 하는 철도의 총길이는 17,600㎞ 이상, 고속도로는 7,000㎞ 이상이며, 고속도로 교량과 철도 교량 각 8,000개와 1,200개가량도 대상이 됩니다. 자금 조달이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 없는 듯 넘겨서도 안 됩니다.

 오스트리아 대표팀과 튀르키예 대표팀의 16강전을 계기로 논란이 불거진 마겐타TV의 안정적인 스트리밍 환경 구축도 필요합니다. 마겐타TV는 국가 기관이 30%를 소유하는 도이체 텔레콤(Deutsche Telekom)의 자회사입니다. 구독을 위한 "지겹도록 긴" 주문 과정으로 소비자들을 "끝이 보이지 않는 인내심 시험"에 밀어 넣고는 순간적으로 오만 명을 대기 줄에 가두어 버리는 수준으로 다음 대형 스포츠 행사의 중계까지 독점하려 했다가는 공격의 수위가 떨어질 리 만무합니다. 오랫동안 독일은 "정보 기술 강국"의 인상과는 담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산업 강국"으로서 자리를 지키려면, 달라져야 합니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장을 닫으며, 우리는 더 나은 곳에 살기 위한 계획을 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혐오를 품기에는 우리 심장이 너무도 작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 인정하며 뭉쳐야 하며, 물론, 약간의 기술적인 발전도 필요합니다. 당장 "여름 동화"는 없었다지만, 미래에는 우리가 이 여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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