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8. 16:00ㆍInternational
위르겐 클로프가 (적어도) 독일 축구계의 '악'과 동의어인 조직에 합류, 곧바로 어마어마한 분노를 삽니다. 클로프는 독일 프로 스포츠판에서 "제일 감성이 충만한 인물", "제일 낭만적인 인물"로 그려져 왔습니다. 지금껏 1. FSV 마인츠 05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리버풀 FC를 위해 일하며 인기를 얻은, "군중을 끌어들이는 사람"입니다. 그가 거쳐 간 클럽마다 그가 지난 자리에는 언젠가 그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남았습니다. 그가 늘 안방 응원단과 연고 도시와 유대를 쌓는 데 충실했던 덕입니다. 클로프는 여러 대회에서 성공뿐 아니라, 가득한 열정과 정직함, 클럽을 향한 충성심이라는 가치의 상징입니다. <<11 프로인데>>의 미아 귀테와 펠릭스 라트펠더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인 콘타크트 블라이벤(In Kontakt bleiben)>에서 미아와 펠릭스가 만일, 클로프가 한 정당에 들어가서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다면, 20% 정도 지지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농담할 만큼, "클로포"보다 사랑받는 인사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와 계약한 레드불은 그 반대편 극단에 서 있는 "악의 집단"으로 자주 묘사됩니다. 의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투표권을 가진 회원 숫자가 24명에 불과한 RB 라이프치히는 온갖 논란의 중심에 있는 "플라스틱 클럽(Plastik-Club)"일 뿐입니다. 골과 승리, 우승만이 축구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요소가 '이야기'입니다. 2009년에 창단한 RB 라이프치히는 제대로 된 역사가 없다는 점에서 매력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본 적 없는 속도로 분데스리가까지 도달하고, 그 최상위 대회와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을 내도, 작센 안팎의 많은 축구광에게, 클럽은 여전히 거대 자본의 차갑고 인위적인 홍보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직 내 세 명의 CEO 중 하나로 승진하기 전까지, 2014년부터 2022년까지 RB 라이프치히 실무 최고 책임자로 재직한 올리버 민츨라프는 클럽이 매우 빠르게 "최고 수준"에 도달하는 모습을 봤지만, 아직 마이스터샬레를 들지는 못했습니다. 레드불 제국의 관계자들은 특정 공백이 발생하며 위기를 마주했을 때, 아직 그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여, "마지막 결과"를 번번이 놓쳤다고 말합니다. 위르겐 클로프와 함께라면, 독일 축구 "악의 축"은 그가 바뀔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레드불은 클로프가 "잔인하리만치 뛰어난 장악력"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오스트리아인들이 여러 방면에 활용하고 싶어 하는 힘입니다.
레드불은 그림과도 같은 알프스 산기슭을 배경으로, 잘츠부르크에서 동쪽으로 20㎞ 정도 떨어진 잘츠카머구트의 전원시, 푸슐암제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지난해, 에너지 음료로 전 세계 106억 유로가량 매출을 올린 이들은 스포츠를 통한 홍보에만 해마다 5억 유로 정도를 지출합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코카콜라만이 그와 견줄 만합니다. 하지만, 레드불은 이들과 상당히 다른 접근 방식을 채택합니다. 설립자인 디트리히 마테시츠는 자신들이 기업 문장이나 의류품 겉면에 붙이려고 권리를 사지 않고, 자체 팀을 운영하며 훨씬 직접적인 책임을 진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즉, 레드불은 축구팀 유니폼 전면에 붉은 황소 두 마리를 붙이기보다 클럽을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이에 따라, 푸슐암제의 조직은 다섯 개 대륙의 축구 클럽을 그들 포트폴리오에 가졌습니다. 2005년에 SV 아우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인수하여 탄생시킨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이전에는 뉴욕 메트로스타즈로 불렸던 뉴욕 레드불스, RB 라이프치히와 브라질의 레드불 브라간치누, 일본 사이타마의 오미야 아르디자, 잉글랜드 프로축구 차상위 무대의 리즈 유나이티드 FC 지분 일부, 그리고 지금은 종료된 레드불 가나 사업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에는 재능 육성에 집중하는 FC 리퍼링도 존재하며, 조만간, 파리 FC까지 집어삼킬 기셉니다. 이 긴 목록에서 제일 큰 논란을 낳은 클럽은 두말할 필요 없이, 레드불 제국의 축구를 통한 홍보 활동 중심지로 낙점된 RB 라이프치히입니다.
조직은 2006년부터 독일에서 잘츠부르크에서와 유사한 사업을 시작하려고 애썼습니다. FC 장크트 파울리, TSV 1860 뮌헨,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등에 연락, 과반수 지분을 요구하며, "50+1 규정"에 어긋나는 일을 피하려고 프로축구 선수단 부서를 법인화, 무한책임회사와 경영권 분리를 주장했습니다. 독일 내 프로축구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면허를 받으려면, "모회사"가 주주총회에서 "50%, 그리고 한 주"의 표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한 통칭 "50+1 규정(법령 절차 규칙 DFB/ DFL/ 기본계약서 § 16c Abs. 3)"의 우회 방식을 오늘날에는 왕왕 찾아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아직 TSV 1860 뮌헨만 이 같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레드불은 클럽 이름과 문장, 상징색 등의 변경도 당연히 제안했는데, 결과적으로 세 클럽 모두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디트리히 마테시츠의 제국은 라이프치히에서 다른 발판을 찾았습니다. 지독한 재정난에 허덕이던 오버리가의 FC 작센 라이프치히가 표적이 됐습니다. 인수 후에 레드불 라이프치히로 이름을 바꾸기로 계획했는데, 빗발치는 축구광들의 항의와 투자자가 너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DFB의 우려, 기업 홍보 목적으로 클럽 이름이나 문장을 변경, 추가하는 등의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 15 Abs. 2)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한 차례 DFB로부터 "승인 불허" 철퇴를 맞은 레드불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08년에 3. 리가가 출범하며 레기오날리가가 독일 축구 피라미드의 넷째, 오버리가가 다섯째 대회로 재편되고, 레기오날리가 밑으로는 DFB로부터 클럽 면허를 발급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이용했습니다. 2009년 5월 19일, 라젠발슈포트 라이프치히 e. V., RB 라이프치히가 '설립'됐고, 인수 계약으로 SSV 마크란슈테트가 가졌던 오버리가 노르도스트 출전권이 넘어왔습니다.
닻은 올렸으나, 대다수 축구광에게 RB 라이프치히는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없었습니다. 아예, 유력한 언론 매체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클럽"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돕니다. 직설적으로 말해, 클럽은 독일에서 "축구를 수단으로 하는" 레드불 GmbH 홍보 부서로 설립됐습니다. 여느 클럽처럼 지역 사회 공익의 가치를 수호하는 대신, 기업의 경제적인 이익에 목표를 두고 있으며, 이는 독일인들이 기대하는 스포츠 경쟁 정신에 대놓고 어긋납니다. 물론, 독일 재통일 이후 "다시 깨어나는 도시"로서 라이프치히라는 도시에 RB 라이프치히가 꼭 어울리는 구단처럼 보이기도 하며, 마침내 도시를 대표해 최고 무대에서 싸울 수 있는 팀을 가진 축구광들이 "플라스틱 클럽"이라는 세간의 비판에 애써 무관심한 듯 행동하기도 한다지만, 작센에서조차 모두가 레드불 제국의 행태를 묵인하지는 않았습니다. 2009년 8월 8일, RB 라이프치히가 FC 칼 차이스 예나 II와 역사적인 첫 경기에 나섰는데, 작센주 축구 협회가 기업 상표와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이유로 클럽 문장을 문제 삼았습니다. "RB"로 줄여지는 "라젠발슈포트(RasenBallsport)"라는 이름도 교묘하게, 그러나 대담하게 "레드불(RB)"을 머릿속에 떠오르게 했습니다. 1996년에 TuS 아렌과 블라우바이스 아렌이 합병하여 탄생한 오늘의 로트바이스 아렌(2006년 6월에 이름이 바뀌었습니다)이 이러한 편법의 "시초" 격으로, "라이히트아틀레티크 라젠슈포트 아렌 e. V.(Leichtathletik Rasensport Ahlen e. V.)", 줄여서 "LR 아렌"이라는 이름과 함께, 그 자금을 조달한 헬무트 슈피커의 LR 인터내셔널을 나타냈으나, 클럽 문장에 새겨진 황소 두 마리, 해외에서 비슷한 행적 등이 RB 라이프치히를 향한 시선을 더 곱지 않게 했습니다. 2010년에는 1. FC 로코모티베 라이프치히의 회장을 맡고 있던 슈테펜 쿠발트와 카트린 팔호른, 당시 재무 부서 전무이사가 1,800여 클럽 회원과 감독위원회에 알리지 않고, 삼 년 동안, 매해 10,000유로씩 지원받는 조건으로 RB 라이프치히와 협력 계약에 서명해 소동이 일었습니다. 클럽 내 여러 고위 관계자가 그를 비판하며 사임했고, 쿠발트 회장 역시, 이듬해 2월에 자리에서 쫓겨나듯 물러나야 했습니다.
한때는 독일에서 자신이 지원하는 축구 클럽에 돈을 내고 회원으로 활동하기가 매우 복고적이고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여겨졌습니다. 클럽 관계자들과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지루하게 긴 정관과 보고서에 짓눌리는데, 막상 반짝거리는 보상을 매일 기대할 수는 없으니, 덧없는 일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하지만, 라이프치히에서 레드불 제국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던 때는 이 흐름에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클럽 회원이 되는 일이 오히려, 유행했습니다. 자기 인생의 크고 지속적인 사랑을 고백하는 수단으로서 역할과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하여 갖는 발언권 따위가 중요해졌습니다. RB 라이프치히가 창단 사 년 차를 맞은 2013년, FC 바이에른 뮌헨이 당시 최고 기록이던 223,985명(올해 7월 기준으로는 그 숫자가 무려, 36만 명까지 늘었습니다)의 회원 수를 발표했고, 재정난에 허덕이던 3. 리가 FC 한자 로스토크조차, "Du bist Hansa" 운동을 시작한 지 이레 만에 오백 명 가까운 신규 회원을 유치했습니다. 그러나, 레드불 축구 조직의 중심은 이러한 추세를 확실히 거슬렀습니다. 그해, 클럽은 고작 아홉 명의 회원을 두었을 뿐이며, 그 모두가 푸슐암제의 에너지 음료 회사 직원이기도 했습니다. 회원 가입 비용이 800유로였는데, 이사회에 미심쩍은 거부권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어느덧 십 년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민주적인 공동의 의사 결정 구조나 지배 역학은 RB 라이프치히의 관심 대상이 아닙니다. 스태티스타(Statista)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월까지 클럽 총회원 숫자는 750명, 그중 투표권을 가진 숫자는 DFB 최소 요구 조건을 살짝 넘는 스무 명 정도였습니다. 올해 7월 기준으로는 총 1,130명의 회원이 있다지만, 다시, <<슈피겔>>은 24명에게만 투표권이 있다고 씁니다. 결국, 레드불에 "거부권"이 있으므로, 나머지, 대부분은 총회에 참석하고 질문할 수 있지만, 정작 의사 결정에 참여할 권리는 허락받지 못한 "후원 회원"에 불과합니다. 현재, RB 라이프치히는 회원 등급제를 시행하는데, 제일 유인책이 적은 "동" 등급에는 기본 100유로(연간)에 들 수 있고, 최고 "금" 등급에는 1,000유로(연간)의 값이 매겨져 있습니다. 물론, 투표권의 포함 여부는 "불분명"합니다. 비교를 위해, 스물다섯 살 넘는 헤르타 BSC 일반 회원은 분기마다 21유로를 냅니다.
위르겐 클로프는 새해 첫날(2025년 1월 1일)부터 레드불 조직의 축구 부문 전략가, "글로벌 축구 수장"으로 활동합니다. 이는 올리버 민츨라프의 말을 빌려, 레드불 제국사에 하나의 전환점으로 남습니다. 클로포는 세상에 익숙한 모습과 조금 다르게, 무대 뒤에서 일합니다. 오늘, 오스트리아 남자축구 대표팀을 지휘하는 랄프 랑니크가 푸슐암제에서 맡았던 역할과 비슷합니다. 그는 세계 각국에 흩어진 레드불 클럽을 하나로 묶어야 합니다. 레드불 조직의 성공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광범위한 연결망을 바탕으로, 미래의 인기 선수를 2,000만 유로 이상 비용이 들기 전에 찾습니다. 클로포가 리버풀에서 지도한 사디오 마네(현 알 나스르 FC 소속 공격수; 2012년부터 2014년까지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활약)와 이브라히마 코나테(2017년부터 2021년까지 RB 라이프치히에서 활약)가 그랬고, 엘링 홀란(현 맨체스터 시티 FC 소속 공격수; 2018년부터 2019년까지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활약)이 그랬고, 잘츠부르크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특정 시점에 라이프치히로 옮긴 다요 우파메카노(현 FC 바이에른 뮌헨 소속 수비수), 소보슬러이 도미니크(현 리버풀 FC 소속 미드필더)가 그랬습니다. 우파메카노와 소보슬러이는 독일에서 더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냈습니다. 클로포는 그의 조직망뿐 아니라, 협상 의자에 앉아, 그의 이름으로도 중책을 해 주어야 합니다. 같은 원리가 지도자 시장에도 성립하니, 로거 슈미트(2012년부터 2014년까지 FC 레드불 잘츠부르크를 지휘했습니다), 마르코 로제, 레네 마리치(현 FC 바이에른 뮌헨 수석 코치; 2016년부터 2019년까지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활동했습니다) 등이 더 큰 클럽에서 책임을 맡기 전에 발굴됐습니다. 이들은 지금의 독일 축구를 지탱한다고 말하는 "랑니크로부터 계보"에 들었습니다. 레드불은 젊은 지도자들의 동경의 대상으로서 클로프가 이를 더 강화해 주리라고 기대합니다. 글로벌 축구 사업에서 뉴욕과 라이프치히, 오스트리아, 브라질의 감독과 책임자들은 경험을 한데 모으고, 서로 지원하며, 선수 훈련과 개발을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개발합니다. 클로포는 그 새로운 구심점으로서 역할이 뚜렷합니다. 여기에, 그는 궁극적으로 "독특하고 혁신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조직의 일원"이라는 광의에서 자신을 찾습니다. 그는 회사 이름으로 나온 공식 성명문에 "이런 사업에 참여하게 돼, 이보다 신날 수 없습니다."라며 흥분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위르겐 클로프의 대리인인 마크 코지케가 한 직원의 말마따나 "레드불 우주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준" 이 거래의 주역이라고 알려졌으니, 한때, 라스 빈트호스트가 헤르타 BSC GmbH & Co. KGaA 감독위원회 위원으로 앉히려고 했던 그는 올리버 민츨라프와 수년간 긴밀한 거래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RB 라이프치히를 분데스리가 꼭대기로 이끌었던 랄프 랑니크, 2019년부터 2021년까지 RB 라이프치히를 지휘한 율리안 나겔스만(현 독일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 등을 코지케가 대리했고, 심지어는 RB 라이프치히 운동 부서 전무이사를 지낸 막스 에벌, 현 FC 바이에른 뮌헨 운동 부서 이사도 그의 고객입니다. 클로포는 뉴욕 레드불스의 잔드로 슈바르츠 감독, RB 라이프치히의 마르코 로제 감독 등과 두루 친한데, 베를린 베스트엔트에서 직장을 잃은 뒤, 뉴욕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은 슈바르츠도 클로포와 같은 대리인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레드불과 코지케의 연결이 클로프에게까지 닿았다고 할 만도 합니다.
혹자는 이 사건이 레드불 축구 조직뿐 아니라, 분데스리가 생태계 전반을 재편할 잠재력을 가졌다고 평합니다. RB 라이프치히는 우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여러 해 동안 "FC 바이에른 뮌헨의 위대한 추격자/도전자"로서 누려 온 지위를 빼앗아 오고자 합니다. 독일 축구에서 제일 큰 상징으로 대표되며, 가장 인기 없는 클럽이 가장 인기 있는 지도자와 같은 편에 서는데, "확실한 선전포고"를 받은 바이에른에는 그를 물리칠 만한, 경기장 밖에서 클럽 구조와 축구광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강력한 구심점이 없습니다. 뱅상 콩파니는 세계적인 수비수였지만, 지도자로서 평판은 아직 너무 낮습니다. 막스 에벌과 슈포트디렉터인 크리스토프 프로인트는 연초, 토마스 투헬(현 잉글랜드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을 대신할 사령탑(콩파니)을 찾는 과정에 힘든 노력과 수많은 "거절 세례"로 체면을 구겼으며, 충분한 장악력이 없습니다. 얀크리스티안 드레센, 이사회 의장과 헤어버트 하이너 회장은 비교적 점잖은 사업가로 그려집니다. FC 바이에른 뮌헨이 "클로프의 레드불 축구 사업", 특히 "클로프의 RB 라이프치히"를 경계하는 이유는 클로프의 전문성과 당장 그들에게 결여한, 청중을 감정적으로 휘어잡는 힘에 있습니다.
업계 동료 일부는 위르겐 클로프와 "레드불 쿠데타" 직후, 클로포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독일 대표 선수로 역대 가장 많은 150경기를 소화한 로타어 마테우스는 그가 축구계에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클로프의 오랜 절친인 다비트 바그너, 전 노리치 시티 FC 감독은 <<슈포트1>>와 인터뷰에서 자신은 클로프의 이직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며, 이 결정에 대하여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규탄한다고 했습니다. 율리안 나겔스만도 독일 축구의 발전을 위해 클로프와 레드불 축구 조직의 협업이 상호 이로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복잡한 마음으로 행운을 빌어줄 수밖에 없었던 인물도 있으니, 한스요아힘 바츠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최고 경영자입니다. 위르겐 클로프의 푸슐암제 이적은 두말할 필요 없이, 베파우베에 유독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십 년 전에 클로프가 눈물을 닦으며 클럽과 작별한 뒤로, 도르트문트의 축구광 집단은 그들이 제일 좋아한 감독이 "어떻게든" 복귀하는 날이 오기를 바랐습니다. 개인적으로 바츠케는 클로프와 친합니다. 두 사람은 2011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FC 바이에른 뮌헨을 앞지르고 '구 년 만에' 독일 프로축구 최고 자리에 올랐을 때, 함께 밤새도록 잔을 비웠습니다. 기진맥진한 클로프가 선수단과 관계자들이 늘어선 축구광 무리를 따라 도시를 행진하는 데 쓰인 트럭 한 대에서 잠이 들었고,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도시 외곽 한 공장 건물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바츠케와 상봉한 클로프는 차를 한 대 잡아타고 부랴부랴 시내 중심가로 돌아왔지만, 계속된 축하 행사는 이미 절정을 지난 뒤였습니다. 레드불 제국이 수년째 놓치고 있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이후로도 바츠케는 클로프와 긴밀한 사이를 유지했고, 클로프가 리버풀에서 여러 해 동안 성공적으로 일하는 와중에도, 언젠가 그를 도르트문트로 다시 데려오려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역할은 감독일 수도, 전무이사일 수도, 회장일 수도 있었고, 클로프는 그를 고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에너지 음료 회사의 손을 잡으며, 이제 그는 스스로 그 다리를 끊어 버렸습니다. 베파우베 팬들의 공간인 슈바츠겔프(schwatzgelb)는 지난 며칠, 분노와 안도의 양극을 오갔습니다. 일부는 이 사건에 대한 "역겨움"을 토로(더군다나 지난달 초, 축구화를 벗은 우카시 피슈쳬크와 야쿠프 브와슈치코프스키의 고별전을 위해 지그날 이두나 파크를 찾았을 때쯤에는 이미 레드불 합류가 거의 확정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했고, 또 누군가는 안도감을 표했습니다. 적어도, 더는 "명예를 아는 사람"이 지그날 이두나 파크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랄 필요가 없음에. 바츠케는 클로포를 향한 따뜻한 축하의 말을 건넸지만, 사실 그는 아마, 오랫동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클로프와 다시 같이하겠다는 자기 계획이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의심해 왔을 터입니다. 고로, 미련 없이 클로포를 놓아 줄 수 있다는 데 일부 축구광만 안도하지는 않았을 수 있습니다.
미하엘 가브리엘은 35년 넘게 위르겐 클로프와 알고 지냈습니다. 1987년에 클로프에게 처음으로 "지도자의 길"을 소개한 이가 바로, 그라고 합니다. 당시, 약관에 불과했던 클로프는 슈바르츠발트에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II로 이적해, 스물셋의 가브리엘을 만났습니다. 가브리엘을 따라, 그의 폭스바겐 비틀을 타고 바트 필벨, 카벤으로 C2 청소년팀 방문 경기를 다녔습니다. 가브리엘은 클로프가 재능이 조금 덜한 소년들에게도 경기마다 기회를 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합니다. 니더에시바흐의 3인 공동 아파트에 살던 클로프는 일 년 뒤, 지역 내 다른 클럽인 빅토리아 진트링엔으로 이적했고, 후에는 다시, 당대에 이름을 날린 드라고슬라브 스테파노비치 감독의 로트바이스 프랑크푸르트로, 끝내는 1. FSV 마인츠 05로 옮겼습니다. 모두가 그다음, 그 위대한 경력의 시작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위르겐 클로프와 미하엘 가브리엘은 역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한 명은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감독이 됐고, 다른 한 명은 KOS(Koordinationsstelle der Fanprojekte) 책임자가 됐습니다. 가브리엘은 클로포의 레드불 조직으로 이적 소식을 접하고는 이 모든 일이 있고 난 뒤에도 자신은 그를 지지할 테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건이 "환멸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클로프가 그간,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축구 세계에서 그 정상에서 사업과 풀뿌리 사이 연결이 존속할 수 있다는 희망에 다른 누구보다도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해 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하나의 모순을 지적하는데, 바로, 정치적인 차원의 문제입니다. 영국에서 클로프는 우익 대중영합주의 선동과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브렉시트) 등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고, 그로부터 리버풀에서 좋은 반응을 끌어냈습니다. 그런데, 레드불 제국은 그와 반대되는 세계관을 보여 줍니다. 설립자인 디트리히 마테시츠는 엄격한 국경 폐쇄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가브리엘은 그가 우익 극단주의의 정상화, 일반화에 이바지했다고 꼬집습니다. 레드불 미디어 하우스 GmbH 소유의 세어부스TV(ServusTV)에는 정체성 정치 대표자들이 꾸준히 초청되기도 했습니다. 이 양극단이 클로프의 전기에서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 클로프의 오랜 동반자는 그가 스스로 그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년 전, 아직 리버풀 FC 감독으로 일하던 때, 위르겐 클로프는 DFL 인터뷰 중 레드불에 관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클로프는 당시, 레드불 제국과 RB 라이프치히가 전통주의자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비판을 받는지 안다고 말했고, 자신도 그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RB 라이프치히가 전통적인 클럽들로부터 그 무엇도 빼앗지 않았으며, 그저 새로운 길을 보여 주고 있다고 덧붙여, 의아함을 샀습니다. RB 라이프치히가 경쟁자들보다 많은 돈을 갖고 있지도 않다는 사족과 함께. 클로프는 그때나 지금이나, 레드불의 원칙은 어린 선수들을 육성하는 데 있을 뿐, 전체 발상은 하나의 축구에 관한 발상이지, 돈에 관한 발상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미 이때부터, "갑자기 RB 라이프치히의 헌신적인 변호인이 된" 클로프에게 "돈에 영혼을 팔았다."라는 비판이 조금씩 새어 나왔습니다.
레드불 모터스포츠 수장인 헬무트 마르코가 <<tz>>와 만난 자리에서 이 정도 대형 계약이 어떻게 그리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질 수 있었는지 놀랍다, 포뮬러 1에서는 그와 같은 일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발언하고, <<tz>>가 이미 2022년 9월에 디트리히 마테시츠와 위르겐 클로프가 2025년 초부터 힘을 모으기로 구두 약속했다고 폭로한 뒤로는 분위기가 그야말로 험악해졌습니다. 클로포가 "어딘가 이상해 보였던" DFL 인터뷰를 하던 시점에 한창 푸슐암제의 거두들과 사전 논의를 하지는 않았냐는 의심이 번지고,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매도하는 이가 많습니다. 리버풀에서 말미에 클로프는 감독으로서 피로감을 심심치 않게 드러냈고, 자신에게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영국에서조차 그에게 리버풀 FC를 향한 충성심보다는 레드불 제국의 돈이 우선은 아니었는지 반문하는 일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배경입니다. 클로프는 어느날, 리버풀에서 자기 시간이 끝나면, 일 년을 쉰다고 말했지만, 또 일 년 뒤 자기 기분을 누가 알겠냐며 문을 열어 두고 싶다고, 그 반대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그의 휴식은 반년간 지속됐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레드불 제국 안에 발을 들이기 전에 프로축구 최고 무대에서 자기 자리에 대하여 "지친 심신"을 드러낸 이가 클로프가 처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2011년에 소진, 번아웃 증후군으로 FC 샬케 04를 떠난 랄프 랑니크는 열 달여 만에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의 슈포트디렉터로 앉았습니다. 재작년 초에는 같은 이유로 막스 에벌이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운동 부서 전무이사직에서 내려왔고, 클럽과 계약을 조기에 종료한 지 석 달 만에 RB 라이프치히로 이직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FC 샬케 04를 떠났던 루벤 슈뢰더가 에벌을 보좌했습니다. 랑니크, 에벌, 슈뢰더, 그리고 클로프까지, "악의 축" 일원이 직전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하나의 규칙이거나, 얕은 눈속임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위르겐 클로프를 향한 숱한 비판은 독일의 수많은 축구광이 부르짖는 "낭만주의적 축구 세계관"에서 비롯됐습니다. 구조적으로 보수적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클럽이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최선 다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전부,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합니다. 레드불에 합류하기로 한 이상, 클로프는 그가 수년간 그런 '체'했지만, 그는 진실되고 성실한 낭만주의자가 절대 아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여러 신화적인 해무를 걷어내고 보면, 축구를 향한 '그의' 열정이나 "낭만"이 변했다고 할 만한 근거가 부족합니다. 돈을 향한 책임도 그렇지만. 최근 몇 년, 클로포는 열다섯의 광고주와 일했습니다. 그는 이전부터 그에게 부여된 상징을 경제적으로 활용할 줄 알았습니다. 자동차 제조업체인 오펠을 먼지 쌓인 소브루주아 덫에서 해방했고, 에어딩어 바이스비어, 펠로톤, 니베아 멘, 스니커즈, 독일 자산 컨설팅(Deutsche Vermögensberatung), 향후 메디아마크트자툰 등, 다양한 상품을, 꾸준히 광고했습니다. 이는 클로포가 광고하는 제품은 '최소한' 완전히 나쁘지는 않다는 소비자의 믿음에 기초했으며, 오십 줄의 "할아버지"에게는 자녀와 손주들을 위한 "든든한 부업"이었습니다. 상업에 반대하는 축구 낭만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때로 망각합니다. 클로포가 헌신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리버풀 FC도 오랜 역사와 탄탄한 지지층, 뜨거운 열정과 큰 감동을 주는 클럽이지만, 사실, 베파우베는 증권 거래소에 상장된, 지난 회계연도에 매출액 5억 유로를 조금 넘긴 기업이고, 리버풀의 클럽은 미국의 거대 스포츠 투자 회사, 펜웨이 스포츠 그룹 소유입니다. 클로프는 드디어, 지난 20년과 비교해, 스트레스가 비교적 적은 자리로, 조직으로 이동합니다. 잉글랜드에서 돌아온 뒤에 그가 한동안 휴식을 취할 줄 알았던 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시점이라 당황스러울 수는 있지만, 이 자체가 너무도 놀라운, 혹자가 말하는 "낭만주의에 대한 배신"은 아닙니다. 만일, 율리안 나겔스만이 2026년에 FIFA 월드컵을 마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면, 클로프는 독일 축구 협회의 후보자 중 하나가 될 텐데, 매일의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 국내 제일 존경받는 감독직을 그가 받아 든다면, 그는 또 어떻게 해석할지, "낭만주의로의 금의환향"이 될지, 자문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제는 언젠가부터 "낡은 그리움"에 매달려 있는 듯한 그 낭만주의를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됐습니다. 이적 시장 문이 열리면, '피고용인'으로서 선수들이 각자의 가치를 좇아 활발히 이동하고, FC 아우크스부르크와 1. FC 하이덴하임, 홀슈타인 킬, 심지어는 TSG 1899 호펜하임이나 RB 라이프치히가 분데스리가에서 경쟁하는데, FC 샬케 04, 1. FC 쾰른, 함부르거 SV는 거기 없습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본선에 36개 클럽이 오르고, FIFA 클럽 월드컵에도 32개 클럽이 나서며, FIFA 월드컵에는 무려, 48개 국가가 출전합니다. 클로프는 늘 더는 멈출 수 없는,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현대 축구의 일부였으며, 앞으로도 그러합니다. 축구광들은 클럽을 사랑하고 돈과 관심, 여가 시간을 희생하며, 그 대가로 헌신과 충성을 요구하는데, 클로포와 같은 "배신자", "위선자"가 나올 때마다 그를 비판하다 지치기보다, 왜 이토록 많은 축구광이 클로포에 의해 그려진 "낭만주의자"를 갈망하는지, 그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고, 그 가치를 알되, "선악의 저편(Jenseits von Gut und Böse)"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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