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완벽함"의 환상을 파는 도시

2025. 10. 3. 16:00Berlin

ⓒ jgseins__jh

 

 올 초, 빈첸초 라트로니코의 <<Perfection>>이 국제 부커상 최종 후보(지난 5월 20일, 디파 바스티가 번역한 바누 무슈타크의 <<Heart Lamp>>가 수상했습니다.)에 오르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이탈리아어 원제 "Le perfezioni"의 이 소설은 "Die Perfektionen"이라는 이름으로 재작년 겨울(원본은 2022년 작입니다.), 독일에서 출판됐습니다. 이 소설이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의 취향이나 태도, 허영심, 맹점을 다루면서, 기본적으로 조르주 페렉의 1960년대 소비문화 비판을 현대로 옮겨와, 다듬었다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로마 출신인 작가가 창의적, 창조적인 면에서 유럽의 심장이라고 할 만한 베를린을 무대로 삼은 까닭에, 어쩔 수 없이, 도금 시대, 헨리 제임스가 노래한 코스모폴리탄 드라마의 향기도 풍깁니다. 후자의 관점에서, 작가는 표면적으로 현대 베를린에 모여든 이주자의 삶을, 그리고 더 깊숙이는 병들어 버린 도시의 일상을 놀랍도록 신랄하게 묘사했습니다. "창조적인 전문직" 안나와 톰 부부가 남부 유럽 변두리의 도시를 떠나, 앙겔라 메어클 두 번째 임기 중, 베를린 노이쾰른의 아파트로 이주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베를린이 막 유럽의 주요 대도시로 부상하던 시기이며, 노이쾰른은 그 가운데서도 유행의 최전선에 선 지역입니다. 그래픽 디자인과 온라인 브랜드 전략 수립 등을 일거리로 하는 안나와 톰이 단기 임대, 전대를 위해 그들의 생활 공간을 찍은 사진을 묘사하는 도입부에 작가는 한정판 라디오헤드 레코드, 베르베르 러그 위, 덴마크식 안락의자 등, 이들이 소유한 모든 물건(국제적인 베를린 미학을 반영합니다.)이 이들의 인공적인 자아로서 기능한다고 명시합니다. 베를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터를 잡은 이 도시야말로 이들의 주된 심심풀이, 취미로 여겨집니다. 여러 면에서, 베를린은 그들이 돈을 벌려고 하는 일보다 훨씬 더, 그들을 '정의'하고 있으며, 그들이 자아를 가꾸어서 소개하는 데 핵심 요소입니다. "창조적인 전문직"으로서 그들의 지위는 베를린이라는 도시, 특히, 노이쾰른 주민이라는 그들의 지위보다 부차적입니다.

 

 "It wasn't order they so desperately craved, but something deeper and more essential. They lived in a country whose language they didn't speak, in a job with unclear boundaries and no fixed hours or base, to a great extent, subject to the whims of their clients and social media contacts. The environment where they slept and worked, and which they themselves had chosen and shaped, was the one tangible manifestation of who they were. That apartment and those objects weren't merely reflections of their personalities: they provided a foothold, in their eyes proof of a grounded lifestyle, which, from another perspective (that of, say, their parents' generation) appeared loose. In itself, chaos could be joyful, creative; but in that context, it only seemed to signal impermanence."

 "The first winter that piercing, unimaginable cold which would bring tears to their eyes as they waited for the M29, and made the bottles they left chilling in the snow on the balcony explode in a matter of minutes. The open-end lease for the two-bed apartments in Reuterkiez secured by forging an employment contract they found online. The Google Translate German patchily memorized whenever they were confronted with the city's realities: Kurzstrecke. Krankenkasse. Rohrreinigungsspirale. Vorderhaus. Steuernummer. Ich hätte gerne. Steuer-ID. Schlüsseldienst. An die Ecke. Schwangerschaftsverhütungsmittel. Vielleicht. Ebenso. The warehouse parties. The house parties at Jugendstil apartments in Prenzlauer Berg with bay windows and period mouldings. Berghain. The gallery parties. The barge parties on the Spree. The blurry journeys home on the U-Bahn, which ran all night. Visionäre. Renate. The illegal parties in Wedding sought but never found, when they would wander from one abandoned warehouse to the next, clinging to an SMS message containing directions. Rodeo. Tresor. The blood-red light of northern sunsets. The pearly white dawn bursting unexpectedly through the huge glass walls at Panorama Bar, but which everyone there knew that was an illusion, because on the other side of that dawn, the night would go on."

 "Their move to Berlin was frankly incomprehensible. It would have been understandable if Anna and Tom had been offered jobs there, which was why previous generations had put up with the cold climate and terrible food in West Germany. But this seemed more like a whim, like a delayed study-abroad year. They suspected, correctly, that Anna and Tom topped up their income from the modest inheritance Anna's grandfather had left her to be used as a down-payment on an apartment. At their age they were supposed to be building towards a future, and what were they doing? Throwing their time and money away."

 

알바, 20대, 스페인인, 그래픽 디자이너: "뼈를 얼리는 고통이었어요."

 언젠가 저만의 갤러리를 열고 싶다는 꿈을 안고, 작년 이맘때, 베를린에 왔어요. 미술과 음악, 패션을 사랑하는 제게 베를린보다 완벽한 도시는 없으니, 운명적인 이주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을 비롯해, 도움을 주는 좋은 친구를 여럿 만났지만, 현실의 어려움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머리 위의 지붕을 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았고, 언어의 장벽은 제가 어울리는 무리를 심하게 제한하죠. 당신처럼 베를린에서 나고 자라서, 독일어를 하는 친구는 주변에 많지 않아요. 네, 그런 면에서는 이곳에 산 지 일 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이 도시를 완전히 이해하고, 안다고 못 하겠네요.

 모두가 베를린에서 첫 번째 겨울이 어렵다고 말하죠. 그리고, 제게는 정말 그랬어요.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시작이 언제나 쉽지 않지만,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주는 특별한 압박감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했어요. 언젠가 저는 제가 예술 작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박물관에 갇혀서, 그곳을 험담하기 바쁜, 방황하는 영혼에 불과하다고 쓴 적이 있어요. 베를린에서는 그를 더 분명하게 실감할 수 있었어요. 차디찬 겨울이었고, 뼈를 얼리는 고통이었어요. 계속해서 시를 쓰며, 제 정신적인 고통과 친해져야 했고, 육체적인 고통으로 그가 전이되는 경험을 했어요. 그다음에는 그를 그림으로 그렸죠. 두 번째 겨울이 다가와요. 여전히 두렵지만, 그래도 첫 번째보다는 덜하기를 바라요.

 

 안나와 톰 부부는 또한, 외국인 거주자들의 "만들어진 공동체"를 대표하는 집합 대명사("they")로 꾸준히 언급됩니다. 이들 사교계는 대륙 전역에서 온 이주민으로 구성되는데, 24시간 쉬지 않고 계속되는 향락과 문화 행사, 자유로운 분위기의 베를린 생활 양식, 예술계, 그리고 유동성을 공유하는 경험으로 정의되며, 이 도시가 그들의 다양한 국적을 대신하여 공통의 기반을 제공하나, 독일 사람은 눈에 띄게 배제됩니다. 여느 만들어진 공동체가 그러하듯, 구조적으로는 매우 불안정합니다. 베를린에서 황량한 첫 번째 겨울을 나고, 많은 사람이 떠납니다. 다른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거나, 학업을 이어가기로 합니다. 약물 중독에 빠지기도 하고, 아이를 낳기도 하며, 각오했던 이상으로 향수병을 앓습니다. 그리고 매년 봄, 그에 못지않게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새로운 이주민들이 그들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일요일에 문 닫은 슈퍼마켓", "월요일로 예정된 고객과 통화", "금요일까지 마쳐야 할 일들" 등, 숱한 조건문이 이들의 활동을 그리는데, 하나같이 '그들'의 보편적인 성격이나 덧없음을 강조합니다. 이들은 안정적이고 독특한 삶을 구축해 나가기보다, 베를린에 모여든 이주민의 삶, 반복되는 그 정해진 '관념'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들의 직업조차, 전통적인 경력이라기보다는 여가라는 가락과 조화를 이루고, 풍성함을 일부 더하는 역할에 그칩니다. 도시 자체가 그들의 거대한 프로젝트라지만, 결국, 베를린을 정체성으로 삼으려는 그들의 시도는 특히 정치적으로 공허합니다. 유럽 국가 부채 위기가 닥치고, 2015년에는 시리아 내전 등으로, 유럽으로 대규모 난민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순전히 미학적인 도시에 대한 참여 방식은 새로운 도전 과제와 마주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세계시민적인 의제에 적극적으로, 진정, 참여하려면, 정치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확실한 기반이 있어야지, 그가 없이는 막다른 골목일 뿐이라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습니다. 그들의 어설픈 독일어나 그래픽 디자인 기술은 인도주의적인 구호소에서 도움이 되기보다, 걸리적거리고, 성가십니다. 게다가, 그들 공동체의 공통된 문화도 독일이 아니라,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만들어졌으니, 일에는 인스타그램을, 지인들과 연락하는 데는 페이스북을, 오락거리 탐색에는 트위터를 썼습니다. 이러한 소셜 미디어에서 본 내용이 대화의 주된 의제가 됐으며, 영어권 언론의 기사가 간간이 지적 지평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버락 오바마의 연설과 미국에서 일어난 고등학교 총격 사건이 지하철로 고작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통과된 법률이나, 공로로 두 시간여 떨어진 남쪽 바다에서 익사한 난민들보다 그들의 머릿속에 훨씬 생생하게 존재하는 변위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곧, 그들보다 먼저 떠난 지인들처럼, 안나와 톰은 탈출구를 찾고, 처음에는 리스본으로, 그다음에는 시칠리아로 향합니다. 하나의 이상화한 그릇, 베를린을 다른 그릇으로 교환하려는 시도인데, 이는 그들에게 도시 자체가 실로 모든 행위의 목적이었음을 다시금 방증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이미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 됐습니다. 리스본에서 안나와 톰을 기다리는 사실은 그곳 역시 베를린처럼 변했다는 점입니다.

 

 

 "An obsession with real estate - imported by the New Yorkers, together with the bedbugs - dominated conversation. Everyone was looking for a better apartment and a fairer deal, or they wanted to know how much others were paying and the terms of their contract. All this would have seemed utterly irrelevant just a few years earlier, when the choice for renters was between vast apartments for six hundred euros a month and tiny ones for two-twenty. The injection of dollars, which could buy more meters in Berlin than feet in San Francisco, only fuelled the chaos in the city's housing market."

 

 난민 위기 이전에는 미국인과 영국인의 첫 번째 대규모 유입과 함께, 전반적인 임대료 상승과 퇴거, 주택 부족, 물가 급등, 사회적 동질화, 젠트리피케이션 등, 익숙한 불만 사항들이 찾아왔습니다. 안나와 톰, 그들의 지인들을 위한 예술 공간이 새로운 이들에 의해 채워졌습니다. 애초에 문화적 자본과 저렴했던 임대료를 통해, 온라인에 내놓을 상에 부합하는 "완벽성"의 환상을 조직하려 했지만, 그 뒤에 감추어진 단조로움과 소외는 어쩌지 못했습니다. 우버 불매 운동을 벌이거나, 가급적, 현금으로 봉사료, 사례금을 내 온 그들의 진보적인 정치적 신념이 실은 상징적인 행위에 그쳤고, 훨씬 현실적인, 거대한 문제들 앞에는 한낱 무력했습니다(그래서 이 소설은 젊고 좌파적인 유럽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유럽 문화 통합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회 변화에 이바지할 능력이 전혀 없었으니,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그들에게 예술과 문화의 피난처를 제공했지만, 시민으로서 책임 앞에 그들은 텅 비었습니다. 빈첸초 라트로니코는 이 순환을 매우 냉철하게 관찰하여, 세련된 코스모폴리터니즘 표면 아래, 지배적인 경제적, 사회적 힘에 대한 젊은 계층의 취약성을 드러냅니다. 통제하지 못하는 거시적인 흐름에 의해 끊임없이 재배치되는 이들은 마치, 체스판 위의 말과도 같습니다. 그들의 정교하게 배치된 생활 양식은 지속하는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소비되는 경험에 머무릅니다. 그러나, 작가는 안나와 톰을 웃음거리로 남기지 않습니다. 그들의 허영심을 드러내지만, 개인적인 결함으로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베를린에 살든 살지 않든, 많은 독자가 그들과 같은 계층, 같은 세대에 속합니다. 노골적인 경멸이 날카롭고 재치 있는 관찰보다 인식의 불편함을 유발하는 데는 덜 효과적입니다. 결국, 적잖은 독자가 소설 속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불편해하겠지만, 어느 정도 공감적 거리를 두고, 등장인물들을 관찰합니다. 완벽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 안나와 톰이 영위하는 세련되고 도시적인 삶에 아주 매력이 없지도 않습니다. 환상적이지만, 이상을 나타냅니다. 그들이 겪는 권태와 환멸은 "어른이 돼 가며" 겪는 젊은 시절 환상의 상실인 동시에, 자신들보다 큰 자본 흐름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물결 속,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진 말로서 겪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베를린은 여전히, 망명자와 자유분방한, 개성 넘치는 사람, 예술가의 도시라는 오래된 구호를 내세웁니다. 정치인들이 때로 선거 유세 중, 지금의 이주민들을 대중 영합적 문화 투쟁에 대한 상상의 괴물 정도로 취급하는데,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에서 들어온, 더욱 취약한 이민자들이 주된 표적입니다. 어쩌면, 몇 년 후에는 안나와 톰의 베를린에 대한 라트로니코의 미묘한 풍자가 또 다른 실낙원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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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첸초 라트로니코는 지난 몇 년간, 문학이 디지털 미디어의 전체적인 무게와 영향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꿈속에서도 기술화한 세상에 사는 현대인의 모습, 소셜 미디어가 지배하는 완전히 새로운 현실을 이 소설을 통해 그리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이탈리아 출신이라고는 하나, 어디서 왔는지가 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안나와 톰 부부는 그들 부모 세대에게 "제대로 된 직업"과 주택이 있었던 점과 달리, 맥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으나, 또한 어디서도 깊은 행복을 찾지 못하는 한 세대를 대표합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인터넷에서 스트리밍하고, 희소성 높은 레코드를 갖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지 않습니다. 어딘가를 여행하며, 신비롭고 마법과도 같은 '우연한 발견'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구글 지도가 훨씬 쉬운 길을 '미리' 준비해서 안내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안나와 톰이 난민들을 환영하는 문화를 홍보하고, 난민과 현지 주민 사이 중개를 돕고자 머리를 굴려 만든 전단이 휴대전화라는 훨씬 효과적인 수단에 가려, 금세 바닥에 버려집니다. 라트로니코는 '날아가는' 시간을 강조합니다. 다섯 시간 동안 인터넷, 소셜 미디어를 돌아다녀도, 그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계속 돌아가는 세상 일부가 되지 못하고, 그를 또한 체감하지 못합니다. 흘러가는 시간, 그를 인지하는 감각과 속도에 관한 이 소설의 배경이 구태여 베를린으로 설정된 까닭은 다시, 베를린에서 마흔이 다 되도록 에라스무스 프로그램(현 ERASMUS+)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 다르게 흘러가는 듯한 시간 감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공간적인 배경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많은 독일의 평론가는 기꺼이, 이 소설을 현대 독일 문학에서 가장 활력 넘치는 "베를린 문학"으로 분류합니다. 라트로니코가 베를린에 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가 이 소설에서 도시를 깊이 관통하며, 시류를 따르는 그 잠재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젊은 이주민들의 생활 방식, 자본과 사회적 유대 측면의 심층 탐사를 제공하는데, 무척 사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유명 작가, 토마스 브루시히는 라트로니코가 베를린에 관하여 쓴 하나하나, 특히, 이곳에서 삶이 비싸다는 점이 모두 사실이며, 다시 그가 자신을 화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베를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려면,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AK, 50대, 독일인, 사회복지 공무원: "영어 공부를 해야 해요."

 요즈음, 베를린에서 독일어는 거의 쓸모가 없어요. 독일어보다 영어, 심지어는 스페인어가 더 큰 자산일지 몰라요. 이전에는 도시 서쪽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졌다면, 요새는 제가 일하는 동베를린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센터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찾아오는 사람 중에도 독일어를 이해하거나, 직접 쓰지 못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서, 그에 맞춰, 다양한 언어를 할 수 있는, 이민 배경의 직원을 더 뽑고 있어요.

 이곳에 수십 년째 뿌리를 내린 이민 배경 가정의 후세들은 어려서부터 독일어를 배워,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이제 막 새로운 기회나 도전을 찾아서 이곳에 온 외국인이 그렇게 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워요. 독일어가 쉬운 언어는 아니잖아요? 이에 대해 불만을 품는 사람도 있겠지만, 글쎄요. 우리가 사는 세상인데, 또 거기 적응해야 하지 않을까요? 영어 공부도 하고. 적어도 그들에 대한 원색적인 공격은 하지 말아야 해요. 함께 나아갈 방법을 고민해야죠.

 

 "A new spirit seemed to manifest itself in a thousand tiny details. Gourmet hamburger joints were popping up everywhere. Bedbugs, previously only a problem in the US, were on the rise in neighbourhoods all over the city, with dermatologists mapping spikes in cases on streets with a higher concentration of short-term lettings. New restaurants were staffed by Scottish or Australian bartenders and only had menus in English. The old regulars would remark bitterly that no one even attempted to learn German anymore. Anna and Tom, on the other hand, loved that vague Anglophone displacement. It was precisely what made them feel at home."

 

 안나와 톰이 겪는 언어 문제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재작년 9월 말에 발표된 2022년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민 배경을 가진 베를린 시민의 절반가량이 가정에서 독일어 외 다른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영어나 러시아어, 튀르키예어를 대신 사용하는 경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올해 나온 한 연구 결과는 더 충격적입니다. 시내 등록된 초등학생들에게 가정에서 주로 독일어를 쓰는지, 식구들의 발음이 유창한지, 문법은 정확한지 물었는데, 부정 응답 비율이 48.4%(오 년 전 조사에는 45%였는데, 또 늘었습니다.)에 달했습니다. 미테와 노이쾰른, 크로이츠베르크에서 이러한 문제가 만연했고, 특히 크로이츠베르크와 노이쾰른의 두 학교는 거의 모든 학생이 가정에서 독일어를 거의 또는 전혀 쓰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사실, 베를린에서 독일어를 하지 못하더라도 일상에 큰 어려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거의 모든 가게 종업원이 영어를 하며, 특정 이주민 인구(예를 들어, 튀르키예예계 이민자)가 압도적인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독일어가 소통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공서에서 독일의 악명 높은 관료주의를 상대하거나, 중요한 계약을 맺을 때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에 서명해야 하는데, 영어로 모든 내용이,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으며, 이는 이후에 불리한 오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Perfection>>의 등장인물들이 어려움을 토로한 바로 그 지점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주민들이 독일어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품는 독일인들도 있습니다. 의회를 이끌어가는 우니온(독일 기독교 민주 연합 =Christlich Demokratische Union Deutschlands (CDU), 그리고 바이에른 기독교 사회 연합 =Christlich-Soziale Union in Bayern (CSU)) 원내 대표, 옌스 슈판이 수많은 베를린 카페와 선술집에서 종업원이 독일어보다 영어를 쓰는 경향이 있다고 불평했고, 과거, 연방의회 의장을 역임한 볼프강 티어제(독일 사회민주당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SPD))는 한 베를린 빵집에서 슈리펜(Schrippen; 베를린식 빵)을 주문했는데, 베켄(Wecken; 남부 독일식 빵)을 제공받은 일화를 전하며 짜증을 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 안나와 톰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현실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빠르게, 넓게 퍼져, 상당한 반향을 일으킵니다. 배려가 부족하고, 차갑다는 이들의 불만과 이해하지만, 마냥 맞춰줄 수만은 없다는 이들의 불만이 팽팽하게 갈등합니다. 간단한 답을 찾을 수 없는 이 문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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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9세, 영국인, 영화 제작자: "한마디로 미쳤어요!"

 런던에도 있어 봤고, 파리에도 있어 봤지만, 베를린은 정말 미쳤어요. 부모님께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할 때마다, 두 분을 이해시키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월세로 집을 찾기는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렵고, 심지어는 돈을 모아도, 빈방, 오랫동안 '집'으로 삼을 곳을 찾을 수 없어요. 어떤 날은 야외 촬영을 하다가, 큰 판자에 방이 필요하다고 써서 들고 다니는 사람까지 봤다니까요? 언제든 떨어지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널렸으니, 전대 계약을 하면서도 임차인을 믿을 수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볼 여유를 찾기 힘들고, 그렇다고 덜컥 계약하면, 일이 년 뒤에 불투명한 이유로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어요. 지금 제 상황이 그렇거든요.

 

 "Two or three times a year they would put more energy into their interventions. On those occasions - whenever they flew home to their southern European city for the holidays, or to escape the harsh northern winters - they would sublet the apartment for that was, even to them, an extortionate price. It was usually rented by tourists looking for an authentic experience of the city, many of them visiting from Anna and Tom's own country. In addition to the house keys, on arrival they would receive a note both friendly and exuding savoir vivre, listing farmers' markets and neighbourhood dining spots. Other times, though, it would be new arrivals to the city needing a base while they searched for more permanent accomodation. Dealing with these guests never failed to remind them that they had made the right choice: in their email exchanges, Anna and Tom would warn the newcomers that prices in the city had risen sharply. If it was a permanent lease they wanted, they would need a decent level of German to wade through the complicated paperwork. Anna and Tom would put them in touch with online expat communities and occasionally invite them out for drinks, once they had found their own place. Some of them would end up joining the circle of friends - if they settled, if they survived the string of short-term sublets and their first winter."

 

W, 26세, 독일인, 영화 제작자: "혼자서 새로운 시작을 해보고 싶었어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물가가 오르고, 살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만 들려요. 그리고, 네, 베를린에서도 마찬가지죠. 감당할 수 있는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예요. 저는 프렌츠라우어 베르크에서 태어나, 쭈욱 베를린에 살았어요. 성인이 된 오 년 전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혼자서, 새로운 시작을 해보고 싶었어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이전이었지만, 코로나 대유행으로 이미 어려움이 따르던 시기예요. 시내에서는 도저히 조건에 맞는 집을 찾을 수 없었죠. 그렇게 외곽으로 밀려, 슈테글리츠 끝자락까지 오게 됐어요. 처음에 친구들은 중심에서 너무 멀어진다고 걱정했고,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부모님도 그러셨어요. 그래도 저만의 공간을 얻었다는 점이 제게는 중요했고, 지금 돌아보면, 그때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삼 년 넘게 월세와 공과금이 오르지 않았으니, 매우 이례적이죠. 하지만, 원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면서, 집 크기가 작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은 위치가 아쉽다고 느끼는 순간들도 왔어요. 글쎄요, 시 중심에 가깝게 이사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겠죠. 그런데, 제게도 그런 기회가 올까요? 지금 집과 제가 가진 삶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으로 보여요. 또 누군가에게는 이조차 배부른 소리로 들릴 테니.

 

 베를린에서 삶은 가파르게 비싸졌습니다. 각자 방 하나를 쓰고, 주방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주거 형태가 독일에서 일반적인데, 모제스 멘델스존 연구소(Moses Mendelssohn Institut)에 따르면, 베를린에서는 이 방 하나를 얻는 데 평균적으로 2025년, 월 650유로(전기와 인터넷, 가구 사용료 포함)가 필요합니다. 월 800유로를 부르는 뮌헨이나, 675유로 수준의 프랑크푸르트암마인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함부르크(월 620유로)를 제치고, 전국 셋째입니다. 조사 대상 주요 도시 중 최하위를 차지한 켐니츠에서는 월 288유로가 듭니다. 물론, 주거 비용 상승이 베를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비스바덴의 연방통계청(Statistisches Bundesamt) 자료에 따라, 독일 재통일(1990년 10월 3일) 이후 35년, 인구가 가장 많이 증가한 여섯 개 도시가 뮌헨(22%)과 라이프치히(20%), 드레스덴(15%), 함부르크(13%), 그리고 쾰른과 베를린(각 7%) 순입니다. 라이프치히에서는 방 하나 구하는 데 월 420유로, 드레스덴에서는 월 380유로, 쾰른에서는 월 600유로가 필요합니다. 드레스덴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축에 들지만, 사실, 어느 곳에서도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베를린은 이 중에서도 인구(작년 기준, 369만 명 수준)가 가장 많은 도시입니다. 또, 2015년부터 제곱미터당 임대료 상승폭을 도시별로 비교해 보면, 8.4% 오른 베를린이 전국에서 압도적인 선두(제곱미터당 임대료 자체는 뮌헨에 이은 2위)를 달립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경제적인 능력이 아직 부족한 학생들의 부담을 특히 키웁니다.

 연방통계청은 대학생들이 월 수입(부모로부터 지원을 합쳐서)의 52.9%를 주거 비용에 쏟으며, 62% 정도는 그 때문에 상당한 부담을 겪는다고 전합니다. 베를린에서 18개월 이상 '대기 기간'을 우습게 요구하는 기숙사에 들어가기 어렵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월세로, 길게 들어갈 집을 구하기는 더 어려우니, 위치가 왕왕 뒷순위 고려 대상으로 빠지고, 뭇 유학생(꼭 국제 유학생만이 아니라, 독일의 다른 지역에서 오는 유학생도)이 임시적인 짧은 기간 전대라도 마다하지 못합니다. 몇 달 지나면, '또' 악명 높은 도시 주택 시장에서 치열한 싸움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데도 말입니다. 빈첸초 라트로니코가 <<Perfection>> 초반부에 정성껏 그 모습을 묘사하는 안나와 톰의 노이쾰른 아파트가 시장에 내놓는 족족, 각자 이유로 방을 구하는 세입자와 쉽게 닿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의뭉스러운 임차인들은 시장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오래된 계약을 이용하여, 자기가 실제로 부담하는 임대료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새로운 임대인에게 청구하고, 차액을 챙기려고 합니다. 최근, 베를린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2009년, 아직 주택 월세가 제곱미터당 9유로 수준에 머물던 시절에 달마다 460유로를 내고 샬로텐부르크의 아파트를 빌린 한 사람이 이를 전대하며, 월 962유로를 청구하고, 500유로 정도를 자기 주머니에 챙겼습니다(베를린 임대료 지수에 따르면, 최대 법정 임대료는 748유로 수준이었습니다.). 집주인이 이를 발견하고 퇴거 통지서를 보냈으니, 전대를 내준 임대인이 이의를 제기,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이 사건 판결은 전대가 임차인이 잠시 부재할 때 일시적으로 부담을 줄이려고 선택하는 수단에 머무는지, 합법적인 수익원이 될 수도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단, 어느 쪽이라도 당장 주거 시장의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급등하는 부동산 때문에 직격탄을 맞은 또 하나의 산업이 있습니다. 베를린을 대표하며, 지난해,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베를린 테크노, 클럽들이 위태롭습니다. 지난해, 두 유명 클럽, 워터게이트(Watergate)와 레나테(Renate)가 폐업을 발표한 데 이어, 두어 달 전에는 또 하나의 유명 성 소수자 클럽, 슈부츠(SchwuZ Queer Club)가 파산했습니다. 불과 칠 년 전인 2018년, 15억 유로의 수익을 창출해 낸 도시의 이 전설적인 상품이 쇠퇴하는 데는 사실,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순전히 이 클럽 문화만을 즐기려고 베를린을 찾는 관광객이 적지 않았다면, 코로나 범유행과 그 기간의 봉쇄 이후로는 그러한 발길이 줄어들었고,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으로 가자 지구에서 갈등이 격화하자, 그 영향이 미쳐, 신(Scene)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진영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진영으로, 둘로 나뉘기도 했습니다. 서로 등을 돌리고 배척하는 현상(Cancel culture)이 두드러지고, 대립각을 세우는 사이, 열기는 계속 식었습니다. 지난해, 절반 넘는 베를린 클럽이 고객 숫자가 줄었다고 보고했습니다. Z세대, 갓 성인이 된 젊은 층의 알코올 소비량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는데, 이 통계는 이 세대가 밤을 즐기는 방식이 이전 세대와 다르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인하여,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다 보니, 누구라도 클럽 찾기를 꺼리는 점도 물론, 작용합니다. '접근성'이 좋다는 시 중심가의 클럽들은 주변으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며, 소음에 대한 민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언뜻 독립적으로 보이는 이 인자들은 하나의 거대한 고리를 그려 순환합니다. 재통일 이후,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면서 비어 버린 터가 선구자들에게 물감을 입힐 깨끗한 캔버스를 제공하여, 90년대, 빠르게 성장한 클럽들이 버티고 버티다가, 더는, 종국에는 대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레나테(여담으로, 이곳에 올해 6월, 큰불이 나기도 했습니다.)가 올해를 끝으로 문을 닫는 이유는 공간 임대 계약을 연장하지 못해서입니다. 한때 베를린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었던 클럽 문화가 처한 현실은 도시 아픈 구석을 여과 없이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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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그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던 신호등 연합(적색의 독일 사회민주당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SPD), 황색의 자유민주당 = Freie Demokratische Partei (FDP), 그리고 녹색의 동맹 90/녹색당 =Bündnis 90/Die Gr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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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라이스트너 계약과 캔슬 컬처

지난 7일, 헤르타 BSC가 토니 라이스트너와 내후년 여름까지 효력이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전에 벨기에, 신트트라위던 VV에서 이 년간 활약한 라이스트너는 이로써,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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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 28세, 몰도바인, 독일어 시험 전문 강사: "이민자로서 영원히 하위문화의 일부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너는 독일에서 나지 않았잖아. 너는 영원히 외국인이야. 집에 있다는 느낌은 네 고향에서나 느낄 수 있지."라는 말을 종종 들어요.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구 년 전부터 독일에 살고 있고, 그 전 16년은 이탈리아에서 보냈어요. 몰도바에서 태어났는데, 그들 말대로라면, 제가 집에 있다고 느껴야 하는 곳이죠. 그런데, 몰도바에 가면, 오 분도 안 돼서 낯설다는 느낌을 받아요. 어디서 무얼 가장 잘 살 수 있는지 알지 못하고, 또래에게 통하는 농담도 몰라요. 초등학교에서 어떤 노래가 불리는지 모르고, 계절마다 특징을 몰라요. 완전히 솔직해지자면, 몰도바에서도 저는 집에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요. 이탈리아에서도 더는 아니에요. 노래와 영화, 시리즈, 구어체 표현을 지난 구 년간 완전히 놓쳤거든요. 스물이 돼서 몰도바를 떠난 제 오빠들을 보면, 어려서 다른 나라로 옮겼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이민자들은 여전히 하위문화의 일부라고 보는 편이 옳아요. 제가 완전히 독일인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수많은 사람처럼, 고향인 몰도바에서라고 다르지 않아요. 지금, 최소한, 독일에서 집에 있다는 편안함은 받거든요. 그렇다면, 제 '집'은 어디인가요?

 

K, 37세, 독일인, 경찰관: "제가 '유토피아'를 꿈꾸는 건 아니에요."

 뮌헨이 여전히 선두를 달리지만, 베를린에서 삶도 지난 몇 년 새, 정말 만만찮게 비싸졌죠. 방 구하기도 어렵고, 장을 보러 가도, 엄청나게 뛴 물가에 깜짝깜짝 놀라요. 이주민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 이곳에 오래 산 사람일수록,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그치면, 그나마 나아요. 한데, 외국인 혐오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갈수록 전반적인 업무 난도가 높아지는 느낌이에요. 이전에 공항에서 근무하던 때보다도 어려운 일을 자주 맡아요. 알다시피, 차별과 관련한 문제는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거든요. 제가 '유토피아'를 꿈꾸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서로를 탓하기보다는 덜 싸우고, 더불어서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같이 고민해 보면 어떨까요?

 

 

 로버트 보시 재단(Robert-Bosch-Stiftung)은 이 주 전, 독일 사회의 최신 "다양성 지표(Vielfaltsbarometer)"를 발표했습니다. 올해 5월 중 독일어를 쓰는 16세 이상, 4,76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내용을 종합한 결과인데, 7년 전인 2018년 자료와 비교하여, 사회 다양성에 대한 전반적인 수용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장애(83-82, 차례로 2018년 지표와 2025년 지표)나 성별(69-74), 나이(70-71)에 의한 구분에 대해서는 큰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더 너그러워졌지만, 성적 지향(77-69)과 인종적인 뿌리(73-56), 사회경제적인 취약성(58-52), 종교(44-34) 관련 문항에서는 추세가 전혀 달랐습니다. 이에 관해, 재단의 국제 이슈 부문을 담당하는 오틸리 벨츠는 현재, 많은 사람이 불안하거나,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며, 상실의 두려움 때문에 경계를 설정하고 스스로 보호하려는 특성이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불안정한 세계임은 분명하나, 특히 인종적인 뿌리에 의한 다양성에 대하여 사회적인 수용 정도가 급감한 점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개방적이고, 자유롭기로 소문난 베를린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경전철에서 중국인들은 모든 언어를 중국어로 만든다며, 그들의 영어와 독일어가 시끄럽고, 매우 우스꽝스럽다고 (어떠한 문제의식도 없이) 말하는 튀르키예계 독일인을 만났고, 대학 교수들을 줄줄이 면담하며, 그들조차 피부색만 보고 상대를 재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매우 관용적이라고 홍보하는 이들이라도 다를 바 없습니다. 장벽이 무너진 뒤로도 베를린은 "고정관념의 도시"로 불렸습니다.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된 가상의 벽(Mauer im Kopf)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경계를 둘렀기 때문입니다. 실은 서쪽에 속했던 크로이츠베르크와 노이쾰른을 드나들며, 도시 동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고, 팡코나 마찬은 지도 밖으로 빼놓은 안나와 톰처럼, 많은 베를린 시민이 웬만해서는 자기 생활권을 벗어나, 도시 내 다른 편으로 "여행"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가상의 벽이 지리적인 경계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점점 더 많은 항목에 대하여 구분점을 짓는다면, 혹자의 말처럼, 베를린은 더는 "힙"하지도 않고, 매력적이지도 않은 도시로 전락합니다. 그 연료의 주요 공급원을 걷어차는 꼴이니 말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때, 내가 주장하는 나의 개성이 나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오늘의 베를린에는 순서를 바꾸어, 자기 개성만을 주장, 고집하는 사람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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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ring will come. ... They will sit around with their old Berlin friends discussing how hard it is now - there, in the city of abundance - to find an apartment, a spot at preschool, a table at the new Indian, an English-speaking therapist, an available charge point for the Tesla."

 "It's all completely perfect, the story will say. It's just like it is in the pictures."

 

 불변하는 진리가 있다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옵니다. 베를린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회의론자가 더러 보이지만, '그래도 아직' 베를린을 사랑할 만한 이유도 있습니다. 하루는 칸트슈트라세 파리 바(Paris Bar)의 자유분방, 예술적인 분위기 가운데 저녁 식사를 즐기고, 다음 날에는 노이쾰른의 버려진 건물에서 열리는 광란의 파티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국제적이고, 서로 다른, 다양한 생활 방식이 공존하며 독특한 매력을 더해 가는 도시라서 가능한 일입니다. 도시는 거대하지만, 지나치게 밀집돼 있지도 않습니다. 대중교통을 타고 도시 곳곳을 덮은 녹지를 향해, 평화로운 오후를 즐길 수 있습니다. 언제든 반제(Wannsee)로 나갈 수 있고, 마찬헬러스도르프에서는 세계정원(Gärten der Welt)이 방문객을 기다립니다. 안나와 톰의 점증하는 도시에 대한 환멸과 그들의 진보적 이상의 한계를 투영하는 공간, 템펠호프 공원(Tempelhofer Feld)도 있습니다. 소설에서 그 광활한 공간과 냉전 시대부터 난민 위기까지 중첩된 역사, 그리고 국제적인 문화 중심지로서 베를린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이곳은 그야말로 거칠지만, 동시에 따뜻합니다. 낮게 깔린 안개 속, 잔인한 겨울이 뭇사람을 힘들게 하는 만큼, 베를린의 여름은 환상적입니다. 기후 위기로 인해 올해는 그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는데, 다시 그런고로, 가득한 행동주의자, 활동가들과 더욱 확고한 신념을 갖고, '그 여름을 지키려고' 싸우는 사람들도 베를린 시민들입니다. 독일은 오늘, 2025년 10월 3일,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대단히 중요한 전환기를 지나는 중에 재통일 35주년을 맞았습니다. 거의 한 세대가 지났지만, 여전히 약한 서쪽과 동쪽에서 국민적인 유대감은 정교한 접근이 필요한 통합의 과제를 제시합니다. 이제는 엄청난 숫자의 이주민도 같이해야 합니다. 전 독일 차원의 문제인 만큼, 베를린에서도 그러합니다. 그 자체로 독특한, "완벽함"의 환상을 파는 이 도시는 이미 끓고 있습니다. 비약적으로, 베를린은 "세상의 종말"에 준비가 됐는지 묻는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유토피아'까지는 아니라도, 각자 영역을 존중하고, 더불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도시를 꿈꿔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