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5. 22:00ㆍ#HaHoHe
첫 번째 사인과 프로 데뷔, 그리고 국가 기록까지, 케네트 아이히호른은 십 대 소년에게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일 년을 보냈습니다. 열여섯 살, 자체 유소년 학교 출신인 이 선수는 우리 수도 클럽, 헤르타 BSC에서 단숨에 여러 나이대를 월반했으며, 그 과정에서 매우 보기 힘든 성숙함을 드러냈습니다. 이 베어나우 바이 베를린 출신 미드필더는 편집자, 에리크 슈미트와 만남을 통해, 다사다난했던 지난 열두 달을 돌아봅니다. 등에 23번을 새긴 선수는 첫 번째 편에서 인내의 시간과 동반자들, 그리고 클럽과 관계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역주: 아래로 질문자의 말(굵은 글씨)과 "케니"의 답변이 교차하며 이어집니다.

케니, 정말 다사다난한 몇 주, 몇 달을 보냈어요. 들어가기에 앞서, 개인적으로 2025년, 제일 기억에 남은 일이나 장면은 무엇이었는지 알려줘요.
(생각에 잠기며) 아무래도 얼마 전, DFB-포칼에서 1. FC 카이저슬라우턴 상대로 넣은 골을 들어야겠습니다. 그 순간, 정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간 순서대로 일 년을 돌아봐요. 후반기 막이 오른 1월, 당시, 함부르거 SV와 시합에 벌써, 프로 선수들과 경기 일정을 함께했어요. 그때 무엇이 가장 인상 깊었나요?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들과 분위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몸을 풀던 때부터 함성이 얼마나 큰지, 그야말로 엄청났습니다. 관중석이 아닌, 경기장, 잔디 위에서 그를 직접 경험하기란, 또한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훈련 주간 내내 함께했고, 상대에 대비한 훈련과 영상 분석에도 참여했으며, 경기 당일의 흐름도 익혔습니다. 정말 흥미진진했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경험이 확실히 도움이 됐습니다.
같은 시기, 솅켄도르프플라츠(역주: 올림픽 공원 내 헤르타 BSC 프로팀 훈련장)에서 첫 훈련 일정을 앞서서 이야기했죠. 그때 얼마나 긴장되던가요?
저는 원래 차분한 성격이라, 사실, 그다지 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저를 잘 받아주기도 했습니다. 공을 차는 실력이 있다는 점을 보이면, 금세 인정해 주고, 무리에 끼워 줍니다. 선수단 분위기는 어린 선수들에게 대체로 아주 친화적입니다. 하지만, 잔디 위에서는 유소년 영역에서와 강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네다섯 번 훈련한 후에 근육을 다쳐서, 몇 달간, 전력에서 이탈해야 했습니다.
그 부상 때문에 후반기 내내, 19세 이하 DFB 유소년 대회에서 두 경기밖에 뛰지 못했고, 8월까지 다음 공식전을 기다려야 했어요. 그 시기가 얼마나 힘들었나요?
매우 힘들었습니다. 축구선수로서, 당연히 경기장에 서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기분이 좋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는 제 정신적인 건강도 어떠한 도전과 마주했습니다. 평소만큼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6월 중 '드디어' 건강을 되찾았을 때,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즌 준비 기간에 돌입하여 팀 훈련을 완전히 소화할 수 있도록, 부상을 완전히 털어버리는 일에 특히 신경 썼습니다. 그래서 서너 달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힘든 시기, 누가 도움을 주었나요?
당연히 부모님께서 가장 큰 힘이 돼 주셨습니다. 제게는 세상 최고의 부모님이 계십니다! 항상 제 곁에 계시고, 좋은 조언을 해 주시고, 언제든 이야기 나눌 수 있습니다. 재활 코치, 피티(헨드리크 피트)도 힘든 시기, 함께하며, 제가 훈련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해 주셨고, 정말 큰 도움이 돼 주셨습니다.

부상으로 빠진 기간에도 슈테판 라이틀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예, 감독님께서 헤르타 BSC에 처음 오셨을 때부터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다가오는 시즌(역주: 지금 지나는 2025-26년)부터는 제가 프로 선수단의 확실한 일원으로 편입되며, 감독님께서 제게 기대가 크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름 이후에도 "베를린의 길(Berliner Weg)"을 계속 걷기로 결심하고, 장기 계약에 서명한 결정적인 이유가 또 있다면요?
저는 이 클럽에서 벌써 십 년째 보내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헤르타 BSC를 좋아했고, 응원석에 서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다른 곳에서보다 이곳에서 출전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조금 더 컸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합쳐져, 남겠다는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헤르타 BSC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두 문장으로 요약해 줘요.
헤르타 BSC는 제게 가족과도 같습니다. 저는 이 클럽과 함께 컸고, 성장했습니다.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 처음 갔을 때, 곧바로, 프로 선수가 돼서 저 잔디 위에서 뛰고 싶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앞서서 부모님을 이야기했는데요. 아직 어린 당신의 선수 생활 중, 누가 특히 또 큰 도움과 영향을 주었나요?
단연코, 17세 이하 팀 코스타스 코치파키스 감독님입니다. 10세 이하 팀, 11세 이하 팀, 그리고 12세 이하 팀에서는 제 코치님, 15세 이하 팀에서는 제 감독님이셨습니다. 감독님 아래서, 영상 분석 덕분에도 축구에서 크게 성장했고, 동시에 인격적으로도 꾸준히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안테 초비치, 토비아스 융 같은 다른 감독님들도 당연히 들어야 합니다. 15세 이하 팀에서 제 코치님이셨고, 지금은 프로팀에서 다시 만난 파트리크 에버트 코치님도 마찬가집니다. 그는 제게 중요한 조언자이자, 항상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유소년 체계에서 나온 선수 가운데, 모범으로 삼은 선수가 있었나요?
이보(이브라힘 마자)가 걸어온 길은 이곳에서 선수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보이는 아주 좋은 예시이자, 모범입니다.

다시 개인적인 한 해 이야기로 돌아가 봐요. 시즌 준비를 시작하던 때부터 본격적으로 프로 선수단에 합류했어요. 이전 팀들과 비교하여,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나요?
하나는 앞서 언급한 강도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프로축구가 훨씬 약삭빠르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경험 많은 상대 선수가 의미 없는, 공격적인 말(Trashtalk)로 신경을 돋우려 할 때, 정신적인 부분에 훨씬 더 주의해야 합니다. 유소년 축구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초기 적응에 특별히 도움을 준 선수가 있나요? 누구를 가장 많이 보고 배우나요?
특별히 한 사람을 꼽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예를 들어, 파비 레제는 제가 계약을 연장하기도 전부터 제게 말을 걸어 주며, 제가 여기서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고, 제게 잠재력이 풍부하다고 해 주었습니다. 저와 같은 위치에서 활약하며, 경험이 실로 풍부한 파울 제구인과 디에고 데메에게서 당연히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상황마다 저를 도와주고, 지시를 내려줄 수 있는 두 선수 옆에서 뛰기는 정말 편합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시즌을 준비했어요. 전지훈련은 얼마나 힘들었나요?
저는 19세 이하 팀 대회 때문에 조금 늦게 합류했습니다(역주: 케네트 아이히호른은 부라크 외즈칸르와 같이, 슈파카센 분데스리가 컵 일정을 소화하고, 이틀가량 늦게 오스트리아로 이동했습니다.). 훈련 강도가 매우 높았고, 확실히 저를 한 단계 위로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부상으로 인하여 이전까지 지구력이 다소 부족했는데, 그 하나만으로도 전지훈련은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나이 탓에 프로팀 훈련에만 참여할 수 있었고, 경기에는 나설 수 없었어요(역주: 2009년 7월 27일생인 케네트 아이히호른은 열여섯 번째 생일이 지나, 나이에 의한 '족쇄'가 풀린 뒤, 프로팀 공식 경기에 잔디를 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 상황이 얼마나 답답했나요?
모두 뛰는데, 저만 지켜봐야 했으니, 아주 갑갑했습니다(옅은 웃음). 훈련도 훈련이지만, 경기는 또 완전히 다릅니다. 진지함이나 전반적인 진행 과정 면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제 생일을 더욱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출전 자격이 생긴 점이 확실히 제게 제일 큰 선물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제게는 또 다른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더는 훈련에만 참여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https://www.herthabsc.com/de/nachrichten/2025/12/interview-teil-1-kennet-eichhorn-2526
„Die Spielberechtigung war mein größtes Geschenk“ | Hertha BSC
Die ersten Übungseinheiten auf dem Schenckendorffplatz zur gleichen Zeit hast du bereits erwähnt. Wie aufgeregt warst du damals? Eichhorn: Ich war nicht wirklich aufgeregt, denn ich bin generell eher ein ruhiger Typ. Die anderen haben mich gut aufgeno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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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트 아이히호른은 대개 잔디 위에서 다시, 거듭하여 다시, 끊임없이, 공을 요구하며, 제일 까다로운 상황조차, 마치 당연하다는 듯 풀어냅니다. 고작 열여섯의 나이에 말입니다. 긴장감?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솅켄도르프플라츠에서든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그 넓은 경기장에서든 마찬가집니다. 이 미드필더는 에리크 슈미트와 긴 대화에서도 그와 같이 침착하고 분명하게 자기 이야기를 전달했습니다. 첫째 편에서 인내의 시간과 동반자들, 그리고 클럽과 관계에 관해 회상했다면, 이야기 마지막인 두 번째 편에는 자체 유소년 학교 출신, 이 선수가 잊을 수 없는 경험과 일상의 변화, 그리고 목표에 관해 말합니다.
역주: 아래로 질문자의 말(굵은 글씨)과 "케니"의 답변이 교차하며 이어집니다.
새 시즌 준비가 한창일 때 베를린에서 여름방학이 시작됐는데, 휴가와 같이 보낼 시간이 있었나요?
시즌 준비에 들어가기 전에 학교에서 수업 없는 이 주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첫 주는 다만, 계속 체력을 끌어올리는 데 매진했습니다. 남은 한 주는 부모님과 코르푸섬에서 보냈습니다.
즉, 제대로 된 휴식은 거의 취하지 않는 편이네요. 일반적인 훈련 일정 외, 평상시, 얼마나 더 추가적인 노력을 들이나요?
여기서 재활 코치의 역할이 다시 중요합니다! 피티가 운동 목록을 짜주셨는데, 몸통 근육을 강화하고 부상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일주일에 서너 번씩 소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왕왕, 훈련 단위가 끝나고, 훈련장에 남아서 공을 갖고 무언가, 예를 들어, 패스 연습을 돕는 벽에서 연습하기도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게 데뷔 기회가 오는 법이죠! 이론적으로는 FC 샬케 04와 첫 번째 경기에도 나설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정말로, 그때 출전하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근소하게 뒤지고 있었으니(역주: 헤르타 BSC는 펠틴스-아레나에서 2025-26년 2. 분데스리가 공식 개막전, 1 대 2로 졌습니다.), 더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들 투입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그다음 주,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 칼스루어 SC와 경기에, 팬 친선 관계 덕에 아주 특별한 분위기 가운데 데뷔할 수 있어서 오히려 더 완벽했습니다.
https://baumhaus.tistory.com/879
마리우스 게어스베크와 레온 옌젠이 말하는 헤르타 BSC, 칼스루어 SC
마리우스 게어스베크(헤르타 BSC)와 레온 옌젠(칼스루어 SC)은 각자 헤르타 BSC 유소년 축구 학교를 거쳐, 몇 년 뒤, 칼스루어 SC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지난 토요일,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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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트 아이히호른 "최연소 데뷔"에도 웃지 못한 헤르타 BSC
Sieh dir diesen Beitrag auf Instagram an Ein Beitrag geteilt von Hertha BSC (@herthabsc) 헤르타 BSC가 지난 일요일,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 칼스루어 SC와 득점 없이 비기며 부진한 시즌 출발을 받아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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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10일이었어요. 몸을 풀던 때부터 교체 투입, 그리고 잔디 위에서 첫 번째 행동까지 순간들을 한 번 묘사해 줘요.
그 주에 그야말로 제대로 훈련했기 때문에, 무언가 되겠다고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골대 뒤에서 쿠헨(헨리크 쿠흐노)과 몸을 풀며, '그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그 신호를 받았을 때, 정말이지, 아드레날린이 솟구쳤습니다. 그 뒤로는 전부 순식간에 지나가서, 제 기억 속에서도 왠지 흐릿해집니다. 그렇대도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유니폼과 정강이 보호대를 착용하고 나니, 어느새 잔디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공을 잡고 싶었고, 팀을 위해 제가 해낼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는 너무 많은 문자와 축하를 받아서, 휴대전화가 거의 폭발하는 줄 알았습니다(빙긋 웃음).
하노버에서는 첫 번째 선발 출전 기회가 따라왔어요. 당시 순위표 최상단의 팀을 상대하는 원정 경기, 관중이 오만 명 가까이 됐고, 황금시간대 생중계였어요. 이러한 출발점이 어떻게 다가왔나요?
그 전주, 국가대표팀에서 조금 일찍 복귀했습니다. 제가 다음 경기에 선발로 나갈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확정된 사실은 경기 당일 회의 때 알았습니다. 그 뒤로는 경기가 무척 기대됐고, 평소와 같이 준비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경기장에 오셨는데, 실은 거의 매번 오시는 편입니다. 그렇게 강한 팀에 3 대 0으로 이길 수 있어, 매우 자랑스럽고, 기뻤습니다. 우리 팀에도 아주 중요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언급한 17세 이하 독일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고 있어요. 팔에 찬 완장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그 무엇도 국가대표팀보다 크지 않으므로, 특별한 영광입니다. 감독님께 신뢰받는다는 점에 기쁘고, 그는 또, 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17세 이하 대표팀에 예전부터 알고 지낸, 함께 시간 보내기가 즐거운 친구가 많고, 그래서 대표팀에 소집돼 여행하기도 항상 기대됩니다.

동시에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고, 현재 12학년이죠. 학업과 프로축구라는 이중 부담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나요?
푈샤우 학교(Poelchau-Schule), 특히, 스포츠 담당, 율리안 라베 선생님께 대단한 지원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원정 경기 이동 탓에 시험을 치지 못할 때, 그 모든 상황을 최선의 방식으로 헤쳐갈 수 있게, 좋은 방안이 늘 마련돼 있습니다. 모든 수업 자료가 담긴 아이패드도 항상 들고 다닙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을 분산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제 반복적인 규칙이 필요해서, 보통은 경기에 온전히 집중하는 편입니다. 그러지 않을 때는 훈련 일정을 마치고 수업에 가거나, 학습실에서 진도를 따라잡습니다. 배우는 속도가 빠른 편이라 도움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교정 내 동선이 짧고, 기숙사 방이 있다는 점도 수월하게 해줍니다. 아비투어까지 13학년제라, 학교를 일 년 더 다녀야 합니다.
그밖에, 지난여름 이후로 일상이 얼마나 바뀌었나요?
밖에 자주 나가는 편이 아니라, 크게 변한 점은 없습니다. 전보다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저는 제 할 일을 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물론,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부모님과 코치님들께 배운 대로, 이러한 상황을 잘 다루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스포츠 이야기로 돌아가 봐요. 1. FC 카이저슬라우턴과 DFB-포칼 시합에 대회와 클럽 역사상 최연소 득점자가 됐어요. 골이 들어갔을 때, 어떤 생각과 기분이 들었나요?
1. FC 카이저슬라우턴과 2. 분데스리가 경기에 이미 골대를 한 번 맞혔으니, 언젠가 들어갈 때가 됐습니다. 그 상황에 빈구석이 보였고, 그리로 공을 차 넣기만 하면, 된다고 알았습니다. 그 골이 이후 경기에 제게 큰 동기부여가 됐고, 남다른 자신감과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기록과 같은 문제는 제게 완전히 부차적입니다. 결국, 누구도 거기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는 성인들을 상대로 뛰고 있고, 거기서는 오로지 결과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제 목표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 팀에 이바지하기입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런 기록을 엄청난 야망 없이는 달성할 수 없죠. 다음 단계로 계속 개발할 수 있는, 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하나는 경기장 최종 삼분의 일 지점에서 의사 결정 능력인데, 그곳에서 제가 아직, 때로 잘못된 선택을 하기 때문입니다. 개선을 위해서 슈테판(역주: 슈테판 라이틀 감독), 안드레(미야토비치), 또는 에비(역주: 파트리크 에버트 코치)와 개별 면담을 정말 많이 합니다. 영상도 분석해서, 제 다양한 경기 장면에서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지적받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더 자주 공을 만지기입니다. 어린 선수가 어느 정도 안정감을 얻으려면, 이 점이 정말 중요합니다. 개인 훈련을 할 때도 그래서 주로 이 부분에 집중합니다.
이제 성탄절과 새해를 맞아, 우선, 잠시, 조용한 날들을 보내게 되는데요. 무엇이 가장 기대되나요?
누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입니다. 누나가 몇 달간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다가 이제 막 독일로 돌아왔습니다. 푹 쉬면서 날씨도 즐길 수 있는 푸에르테벤투라섬으로 온 가족이 여행을 떠납니다. 물론, 저는 운동도 조금 하겠지만 말입니다(히죽 웃음).
끝으로 내년을 전망해 봐요. 2026년의 소원이 있다면요?
헤르타 BSC의 승격이 제 가장 큰 소원입니다. 더불어, 계속 발전하고, 제 경기력을 꾸준히 끌어올려서 더 좋은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https://www.herthabsc.com/de/nachrichten/2025/12/interview-teil-2-kennet-eichhorn-2526
„Das hat einen richtigen Adrenalinschub ausgelöst“ | Hertha BSC
Nichtsdestotrotz lassen sich diese Rekorde nur mit sehr viel Ehrgeiz erreichen. Was kannst und willst du in deinem Spiel als nächstes weiterentwickeln? Eichhorn: Zum einen die Entscheidungsfindung im letzten Drittel, denn da wähle ich manchmal noch die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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